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 살구나무의 꽃망울.

 

춘분지정

사나운 날씨 탓에 밭갈이에 바쁜 일손을 멈춘 것이 며칠 전이다. 새벽부터 눈발이 날리더니 잠시 개었다가 시커먼 먹구름이 뒤덮이고 비가 내렸다. 오후 가까이 잠시 해가 말끔히 내비치더니 다시 컴컴해지고, 처덕처덕 내리치는 것이 콩알만한 우박이다. 개집 지붕을 뒤집는 세찬 돌풍에다, 어디선가 하늘이 무너지는 듯 둔중하고 먼 우레소리에다, 급기야 한 밤중엔 철없이 눈까지 펑펑 쏟아지니, 하루 날씨가 그만하면 평생 가야 몇 번이나 보랴 싶게 유난스런 날이었다.

우레소리는 춘분이 바짝 다가왔다는 신호다. 이런 것을 알게 된 것도 농부가 된 연후의 일이다. 동쪽 골짜기에서 떠올라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해의 길이,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놀라우리 만치 정교하고 질서정연하다는 것도, 부산스레 중천을 넘어가던 해가 이제 제법 쉬엄쉬엄 여유를 부린다는 것도, 해의 위치가 일러주는 시각은 물론, 높이에 따라 해가 반사하는 빛깔이 이러저러하게 다르다는 것도, 모두 땅을 일구고 흙을 뒤적이면서 알게 된 일들이다. 그렇게 알게 된 일들이 어디 그 뿐이겠나. 그러고 보면 이런 걸 종시 모르고 죽었으면 억울해서 어쩔 뻔했나 하는 일들이 많기도 하다.

춘분이다. 남쪽으로 멀어졌던 태양이 적도에 이르러 지구의 낮과 밤을 공평하게 양분하는 때다. 다가온 태양의 온기가 땅 속에까지 깃들어, 입춘에는 채 알아차리지 못하던 봄이 마침내 온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흙 속에 깊이 박인 얼음을 녹이고, 세상없이 잠든 벌레들을 일제히 흔들어 깨우고, 봄낭군을 잽싸게 알아채는 나무들의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입춘에 일어선 봄이 그동안에 부지런히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던 셈이다.

춘분에는 제비가 날아온다고 하였지만 요즘에는 시골에서도 제비 보기가 어렵다. 대신 마을 아낙들이 모여 앉은 황토집 툇마루에는 파릇한 냉이가 수북이 쌓였다. 바지런히 냉이를 다듬는 아낙들의 손끝에도, 좀처럼 다물리지 않는 수다스런 입가에도 봄빛이 눈부시게 부서진다.

시간의 정체

우리가 시간이 갔음을 깨우치듯이 느끼는 때가 년 중 두차례 있으니, 하나는 여름이 다하고 찬바람이 들 때요, 또 하나는 겨울을 몰아내며 봄이 진군하는 요즘 같은 때다. 사람의 유전자는 달력을 넘기면서가 아니라 자연의 움직임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무엇인지 사람이 알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시간이란 의심을 허용치 않는 절대적이고도 명확한 개념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우리가 시간을 토막 내어 측정하는 도구를 가졌기 때문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시간이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고 가고있는지 오고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것이 무엇인지는 더더구나 알 수 없다. 사람은 단지 예외없이 이루어지는 삼라만상의 변화를 보며 시간이 간다고 인지할 뿐이다. 

사람에게 있어 시간은 자연의 반복되는 움직임이다. 시간을 가늠한다는 것은 사람의 우주에 대한 인식의 반영이다. 낮이 가면 밤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질서정연한 자연의 변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때를 알게 한다. 태어남과 자라남과 소멸로 반복되는 생명의 움직임은 사람으로 하여금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만물의 이치를 알게 한다. 사람들은, 한 장소에서 태고적부터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착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하늘과 땅의 움직임과 만물의 변화를 관찰하여 자신들의 시간을 만들어내었다.

원주민의 시간

시간에도 국적이 있을까? 어리석은 질문인듯이 여겨지지만,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춰보면 시간에도 엄연히 귀속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런던 그리니치 천문대가 세계의 표준시를 결정하는 본초자오선이 된 것이나, 동경 135도가 우리나라의 표준시의 기준경도가 된 사실은 시간의 국적에 대해 말해주는 초보적인 사례일 것이다. 표준시의 확립이 철도와 우편통신의 발달이 가져온 요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산업혁명과 인류가 경험한 적 없는 대량생산이 가져온 제국주의의 등장은 자신들의 고유한 시간을 갖고 살아온 세계의 모든 장소를 하나의 시간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역사는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근대의 시간이 제국주의의 산물임을 말해준다. 제국주의의 팽창과 함께 세계적 표준시가 소수의 나라들에 의해 결정되고 그들이 점령한 모든 장소에 적용되면서 시간은 지구적 차원에서 하나로 통일되고 보편화되었다. 근대의 산업화가 빚어낸 문명이라는 이름의 기계적 시간이 사람들의 삶을 토막내는 시대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모든 곳의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렸을까? 그렇지 않다. 평상의 생활에서 사람들은 표준시를 사용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문화라는 이름의 삶의 양식 속에 의연히 존재한다. 고유한 전통과 의례 속에, 그들이 존중하는 기념일들 속에, 그들이 기억하는 날과 달의 이름 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수우족의 1월은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이다. 체로키족의 3월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이고, 4월은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다. 이누이트족의 7월은 ‘순록이 털갈이를 하는 칸라라크’이고, 8월은 ‘순록이 돌아오는 투크투니그피크’이다. 테와푸에블로족의 9월은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이고, 나바호족의 11월은 ‘연약한 바람의 달’이다.

이러한 달이름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들이 살았던 장소가 어떤 곳이었는지를 말해주고, 그들이 부정할 수 없는 그 땅의 주인임을 나타낸다. 생태학자들이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멸종에 이른 동식물을 보호하고자 그토록 애쓰면서, 소멸에 이르러 가는 원주민들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한 장소의 생물다양성에 대해,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원주민들만큼 잘 알고있는 사람들은 없다. 동식물의 멸종은 그것을 기반으로 살아온 원주민 공동체의 소멸과 함께 진행된 일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인가.

‘원주민’이란, 말 자체가 ‘이주민’의 존재를 전제로 한 낱말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원주민은 고정값이니 이주민이라는 말이 특정값으로 쓰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인이 뒤바뀐 세계 어디에서도 이주민이란 말은 사용되지 않는다. 이주민이 아니라 원주민이란 말이 사용되는 것은, 그 자체로 그들이 보편 존재가 아닌 특수 존재이고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원주민’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현상 속에는 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죽임을 당해 소멸에 이른 참혹한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소멸되지 않은 이 땅의 원주민이다. 이 땅의 첫 사람들로 명명된 역포아이, 승리산인, 흥수아이로부터 오늘날까지, 이토록 오랫동안 한 장소에서 한 혈통을 유지하며 살아온 민족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땅의 원주민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일까? 우리는 이 장소의 주인으로서 우리의 시간을 갖고 있을까?

‘우리의 시간’이 기록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대국가 시대부터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는 독자연호(年號)를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고구려 광개토태왕비는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백제의 칠지도와 불상 등의 금석문, 그리고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용한 연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선조들이 써오던 독자연호를 버리게 되는 것은 남북국 시대 신라 진덕왕 때의 일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독자연호를 버리는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신라사신 한질허가 당태종으로부터 "신라는 신하로서 대국 조정을 섬기면서 어찌하여 따로 연호를 칭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한질허는 "일찍이 대국 조정에서 정삭(正朔)을 반포하지 않았으므로, 선조 법흥왕 이래 우리 나름대로의 연호를 사용한 것입니다. 만약 대국 조정의 명령이 있었다면, 작은 나라가 어찌 감히 다른 연호를 사용하겠습니까?"라고 답한다. (삼국사기 진덕왕 2년-648년)

이렇게 독자연호를 버린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이것이 천년을 두고 중국의 시간이 이 땅에 자리잡게 되는 출발점이다. 고구려 유민들이 창건한 나라 대진국 발해에서 전 기간 독자연호를 썼다는 것이 특기할 사실이라 할까.

마침내 열린 조선의 하늘

‘우리의 시간’을 찾아보는 길에서 꼭 잊지 말아야할 시기가 있으니 조선조 세종대왕의 시대다. 조선이 세계사에 드물게 500년 왕조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건국 초기에 세종이라는 걸출한 군주를 맞이하였던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종의 업적은 한글창제로 대표되고 있지만 그의 치적의 근본은 특출한 애민사상과 자주사상이었다. 한글창제, 4군 6진으로 명명된 영토의 개척, 농서와 역서의 편찬, 과학기술의 연구와 기구제작과 같은 모든 업적들은 바로 그 사상에 뿌리를 둔 서로 다른 줄기들이었으며, 그것은 농업생산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길로 수렴되는 정책이었다.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는 세종의 특출한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 서로 맞지 아니하여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가엾이 여겨 새로 스물 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 쉬이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어내었을까? 그는 농업생산력의 발전이 나라를 부강케 하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한 군주이다. 그의 생각은, 농업생산력의 발전은 우수한 농업기술의 보급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 문자란 바로 우수한 농업기술 보급을 위한 최상의 도구임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 세계역사 어느 구석에서도, 바친 세금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농업생산의 발전을 위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비슷한 생각조차도 발견할 수 없다. 조선 농업의 중심은 곧 쌀농사였으니, 한글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쌀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쌀은 우리를 인류역사에서 전무후무하게 만들어진 한글이라는 놀랍고도 자랑스런 문자를 가진 민족으로 만들어준 바탕이었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하여 편찬된 최초의 농서가 「농사직설」이다. 「농사직설」 서문에는,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다. 예로부터 성왕이 이에 힘쓰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정사에 힘을 써 더욱 백성 일에 마음을 두셨다. 지방마다 풍토가 같지 아니하여 곡식을 심고 가꾸는 법이 각기 맞는 게 있어, 옛 글과 다 같을 수 없다 하여, 여러 도의 감사에게 명하여 고을의 늙은 농부들에게 물어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된 것을 아뢰게 하시고…”라는 내용이 쓰여있으니, 이것은 농사에서의 탈중국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농사직설」은 우리 손으로 우리 농업기술을 정리하여 만든 농서로서 우리 농업연구와 농서편찬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니, 장영실이라는 이름을 후세에 남긴 자격루, 앙부일구, 간의, 혼천의 등 여러가지 천문관측기구들의 발명과 제작 역시 농업생산의 과학화를 위한 것이었음이 자명해진다. 세종이 이러한 측정기구들을 이용하여 즉위기간의 절반이 훌쩍 넘는 20여년을 고스란히 바쳐 편찬한 「칠정산 내편」과 「외편」은 우리나라 최초의 역서로서, 그것은 실로 ‘우리의 시간’을 되찾는 일이었다.

조선조에는 ‘동지사’라는 사절이 있었다. 동지사란 매년 동지달에 명과 청에 보내는 사절이었는데 역서, 즉 달력을 받아오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하였다. 스스로를 천자로 자임한 중국의 왕들은 달력 만드는 일을 천자의 특권이자 의무로 여겼거니와, 그 달력이 사용되는 영역은 곧 천자의 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의미했다.

태종실록에 보면 “조선의 사신이 찾아와 ‘고명(誥命)과 인신(印信)과 책력(冊曆)을 청하는데 그 뜻이 간절하여 허락한다”는 명나라 왕의 칙지가 기록되어 있다. 고명은 태종을 조선의 왕으로 인준한다는 문서이고, 인신은 도장이며, 책력은 달력이다. 조선은 매년 동지사를 파견하여 중국의 달력을 받아왔다. 신라 이래 1천년을 넘는 장구한 세월 이 땅을 지배했던 시간은 중국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옛 사람들은 우리가 살고있는 공간을 우(宇), 시간을 주(宙)라 하여 우주에 나타나는 천체운행의 규칙성을 파악하려 애써왔다. ‘칠정산’이란 일월오성, 즉 해와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종은 서운관의 이름을 관상감으로 바꾸고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여기에 간의, 혼천의, 규표 등과 같은 천문관측 기구를 설치하고 별자리를 비롯한 일출과 일몰, 일식과 월식, 혜성과 행성들의 운행을 관찰하도록 하였다. 날짜와 절기, 시간을 정확히 알려 과학적 농업생산의 바탕으로 삼고자 했던 세종은, 천자의 권력에 맞서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 자주노선을 걸어 마침내 조선의 하늘을 열어 조선의 시간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의 시간, 농부의 시간

칠정산에 수록된 우리의 시간은 1년, 4계, 12월, 24절기, 72절후로 요약된다. 72절후는 보름간 이어지는 24개의 각 절기를 삼분하여 ‘초후’, ‘중후’, ‘말후’의 대표적 자연현상을 기술한 것이다. 칠정산이 보여주는 천체의 운행에 따른 만물의 변화는 아름답고도 시적이다.

3월은 중춘이라 경칩과 춘분의 절기이다. 경칩에는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고(초후), 꾀꼬리가 울고(중후), 매는 보이지 않고 비둘기가 날아다닌다.(말후) 춘분에는 남쪽에서 제비가 날아오고(초후), 우레소리가 들려오며(중후), 처음으로 번개가 친다.(말후)  

도시에서는 이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도시에서는 우리의 시간을 잃어버린 군상들에 속해있는 존재였다. 이 소박한 문장들이 전해주는 세상은 시골에 와서 흙을 만지면서야 비로소 다가왔다. 쌀을 먹고사는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의 도덕률은 쌀 생산의 증감이 그 척도로 되어왔다. 쌀 생산에 보탬이 되는 것이 곧 ‘선’이었던 세상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의 근대는 ‘우리의 시간’과 일제가 이식한 ‘서구의 시간’이 뒤섞인 혼돈의 시대였다. 서구의 시간 속으로 편입된 세월이 한 세기에 반세기를 더했다.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달력마다 표기된 명절과 스물네 번의 절기로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은 점점 글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시간, 다른 누구가 아닌 우리의 시간은 내용을 필요로 한다. 세계 곳곳의 원주민들이 그들 속에서 전승된 이야기와 풍속과 의례로 그들의 고유한 시간을 간직하고 있듯이, 우리의 시간도 이야기와 풍속과 전통의례라는 내용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문화다.

자신의 고유함을 버리고 크리스마스요 발렌타인이요 할로윈이요 하는 이국적 ‘데이’만을 떠들썩하게 축하하고 기념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일컬어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아이들을 과연 누구라고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종족의 소멸은 물질적으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실존의 소멸보다 무서운 것은 정신과 문화의 소멸이다.

‘정체성’이란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스며드는 것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입춘첩을 대문에 붙이는 일, 3월3일 삼짇날에 진달래 화전놀이, 답청놀이를 노는 일, 한식에 찬밥을 먹고 성묘를 하며, 추석에 송편을 빚고, 동지에 팥죽을 끓이는 일, 설에 차례를 올리고 세배를 드리며, 대보름에 부럼을 깨고 쥐불놀이를 하는 이런 일들… 그것을 함께 하고 나누는 것은 성장하는 아이들의 온 몸에 뚜렷한 정체성이 스며드는 일이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이어주는 버릴 수 없는 상징들이다.

쌀이 곧 도덕이요 윤리였던 우리의 시간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그래도 시골인가 보다. 쌀금이 커피값도 못하게 전락하면서 해체에 해체를 거듭해온 시골도 쌀이 아니라 돈이 도덕이자 윤리인 세상으로 된 지 오래이지만, 쌀을 짓는 농사라는 업이 사라지지 않는 한은 우리의 시간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을 것이다.

“창포잎을 보고 밭갈이를 시작하고…
개나리꽃이 피면 모판에 볍씨를 뿌린다.
매우(梅雨)가 지고 사철나무 꽃이 피면 모내기를 하고,
검정깨꽃이 필 때까지 김매기를 마치며,
들국화 시들고 울타리 박을 탈 때 벼를 베어 쌓는다.”

하늘은 사람과 더불어 의논하지 않으나, 자라는 것을 보고 자랄 것을 심고, 죽는 것을 보고 죽은 것을 수확하니 농부의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자연 속에 있다. 농부의 시간은 하늘의 시간과 땅의 시간, 우리의 시간에 속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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