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운동가 김규철 선생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2개월 시한부로 병상에 누워있다. 왼쪽이 병문안을 간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오른쪽은 부인 이영자 여사.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통일운동 열심히 하시오.”

“평생 바른 말만 하고 살았는데, 이제 후배하고 기자 양반 왔으니 한 말씀 하세요” 하고 부인 이영자 여사가 보채자, 입을 우물쭈물하다가 나지막이 내뱉은 말이다. 

김규철 선생. 얼마 전까지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서울본부 상임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범민련 남측본부 서울연합 명예의장이다.

병상에 누운 지 15개월째. 2016년 11월 갑자기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 처음엔 담낭에 이상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위암 말기 판정이 났다. 수차례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했다. 2개월 시한부란다.

▲ 2015년 8월 ‘광복 70년, 8.15반전평화 시국행동’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김규철 선생. [통일뉴스 자료사진]

2년 전만 해도 그는 각종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마이크를 잡으면 특유의 경상도 목소리에 원칙적인 논리로 연설을 하곤 했다.

지난 6일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와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서울시 북부병원을 찾았다. 그는 다소 못 알아볼 정도로 하얗게 세어진 머리카락에 살이 빠져 말라 있었다.

권 대표와 기자가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자 알고 있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띠며 손을 펼쳐 악수 겸 잡으려 한다.

▲ 권낙기 대표와 기자가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자 손을 내미는 김규철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병상에서도 뉴스만 봐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꼭 챙겼어요.” 사모님의 말이다. 하긴 그는 건강할 때 늘 자료를 보며 정세를 살폈다.

하노이 회담 합의 불발로 그가 안타까워 할까봐 권낙기 대표가 “이번에 합의 안됐지만 앞으론 잘될 거예요. 통일도 가까워졌어요”하고 미리 안심시키자, 그의 입에 미소가 깃든다.

김 선생이 말은 알아듣지만 말을 하긴 힘들단다. 그래서 사모님한테 몇 가지를 물었다.

사모님은 “평생 외길로 살아오다가 지난해 4.27 판문점회담 때 통일이 된다고 기뻐했는데 병상에 누워계셔 안타깝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결혼해서 단돈 10원 안 갖다 줬다. 다섯 번이나 감옥에 갔다. 내가 교편 잡았는데 저 양반 때문에 7년간이나 실직해 있었다. 7년간 과일장사 떡볶이장사 안 해본 게 없다”고 푸념조다. 사모님은 부산사범대를 나와 교편을 잡았다.

“결혼한 건 후회 안 되세요” 하고 기자가 묻자, 사모님이 “후회할 겨를이 어디 있었나요. 후회나마나 저이가 제 뜻대로 살아 영광이지요”하며 즉각 두둔한다.

그리고는 “친정 오빠가 저이를 소개해줬어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멋있는 내 친구를 동생한테 넘긴다’ 하면서. 평생 함께 사는 걸로 알았지” 한다.

사모님의 오빠는 이상배. 김규철과 요샛말로 절친이었다. 이상배는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다.

김규철과 이상배를 잘 아는 1934년생 동갑이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을 다음날인 7일 만났다.

박 명예의장에 따르면, 이상배는 경남고와 서울법대를 나왔는데, 집이 가난해 고등학교 때부터 가정교사로 입주를 하며 독학하며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 때는 태권도 사범을 할 정도로 스포츠맨이었다.

박 명예의장은 ‘김규철-이영자’ 결혼과 관련 오빠 이상배가 소개시켜줘 결혼한 건 맞지만 그 뒤엔 당시 인혁당 사건으로 수배돼 피신 중인 도예종 선생이 도와줬다고 귀띔했다.

김규철은 4남매 중 맏이로 부친과 삼촌이 모두 좌익운동을 했으며, 모친도 삐라 살포 등을 했다. 부산대를 나와 교사하며 교원노조 활동을 했는데, 5.16쿠데타 후 해고됐다.

김규철도 인혁당 사건 관련자인데, 6.3사태 때 안 잡히고 피신했다. 이후 단독범으로 구속됐다.

이때를 회상하며 박 명예의장은 “김규철이가 인혁당 사건 때 피신했다가 나중에 단독범으로 잡혀 (인혁당 사건) 피해를 줄였다”고 안도했다.

박 명예의장은 김규철에 대해 “이론공부를 많이 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 교조적이라 하는데 본인은 원칙주의라 한다”면서 후자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김규철은 사람이 좋아 친구가 폭넓었다. 결코 쉬는 사람이 아니다. 옳은 걸 남기려 노력했다”며 평했다.

사모님과 이런저런 얘기가 길어지자 김규철 선생이 끼어들려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움찔움찔 한다. 그러나 소리가 여의치 않다.

▲ 김을수 선생 등 민자통 회원들이 병문안을 왔다. [사진-통일뉴스 이계환 기자]

이때 김을수 선생 등 민자통 회원들이 병문안을 왔다. 좁은 병실 안이 부산해졌다. 으레 병문안이라는 게 새 문병인이 오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법.

기자는 병실을 나서면서 권낙기 대표에게 김규철 선생은 어떤 분이냐고 물었다.

권 대표는 “6.15남측위 서울본부 상임공동대표를 함께할 때 이제 후배들을 위해 함께 빠지자고 했을 때 두말 않고, 묻지도 않고 ‘그럽시다’ 하고 함께 사임했다”며 후배사랑이 남달랐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배웠다고 덧붙였다.

“김 선생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항상 바른말을 하셨다. 또한 항상 독서하고 늦은 나이에도 컴퓨터를 배워 자료를 찾으며 늘 공부했다.”

그러면서 권 대표는 “좋은 시대가 올 텐데, 더 오래 사셔야 하는데...” 하며 말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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