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경 / 농부

 

살구나무를 찾아서 살구나무 동산을 만들고 있다. 올해는 살구나무 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올해 우리 마을에는 많은 살구나무들이 새로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인데, 나는 그것이 북측 회령 백살구나무이기를 바래서, 그것을 구하려 안타깝게 뛰어다니고 있다.

사라진 살구나무를 찾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살구나무를 잃어버렸듯이 아주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무엇을 위하여 그 많은 것들을 놓아버린 것일까? 여기 연재할 글들은 살구나무처럼 우리가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두고 온 것들에 대한 진지한 호명이다. / 필자

 

 

시대

〈암살〉(2015/1933), 〈귀향〉(2016/1943), 〈동주〉(2016/1945), 〈밀정〉(2016/1920), 〈박열〉(2017/1923), 〈말모이〉(2018/1942), 이들의 공통점이 뭘까? 이런 질문은 너무 쉽다. 누구라도 이 중 두어 편은 보았을 듯하니까. 옳다. 모두 일제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다. 모두 관객동원에 성공한 영화들이기도 하다. 거기에서 한 걸음을 더 들어가면, 이들은 개인의 질곡이 아니라 시대적 질곡을 다룬 영화들이며, 나아가 그것에 맞섰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괄호 속의 숫자는 영화가 개봉된 년대와 영화가 다루고 있는 년대를 적은 것이다. 이것들 말고도 또 여러 편이 있으니, 불과 3년 남짓한 기간에 동일한 시대와 주제를 다룬 영화들이 저렇게 쏟아져 나온 것은 하나의 현상이라 보여지기도 한다.

저 영화들은 모두 ‘시대’라는 것과 연관이 깊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대도 특별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관에 걸린 시대도 특별하다. 그것은 ‘다까기 마사오’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공중파에 내걸린 시대, 친일의 정체가 대중 앞에 폭로된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딸이 집권한 시대, 유신과 반공의 유령들이 머리칼을 까맣게 염색하고, 늘어진 주름을 펴고 다시 환생한 시대였다.

딸은, 1965년 치욕적인 한일협정 체결로 40년 민족의 수난을 헐값에 팔아 넘긴 아버지를 본받아, 2015년 ‘일본군위안부협상’을 타결하고, 2016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였다. 저 영화들은 그런 반동의 시대에 생산된 것들이니, 그 흥행의 비결은,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지는 비틀어진 한일관계에 대한 대중적 반감의 표현이었을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군사쿠데타의 공포로 잠재운 반일의식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이 그 딸이니, 이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보다. 사죄하지 않는 일본규탄과 역사청산의 목소리들이 세기를 넘어 확산되는 것에는 저 영화들의 몫도 만만찮을 터이니, 대중문화가 갖는 파급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소설을 더 좋아하니 영화팬이라 할 수도 없고, 무슨 평론가라거나 비평가는 더더구나 아니지만 감상문 정도야 못쓰겠나. 근 10년 어간에 영화라고 본 것이 달랑 저 정도이니 취향도 참 별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긴 하다. 하지만 시간 죽이려 보는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꼭 영화 편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저 암전의 시대를 다룬 영화들에서 보게 되는 것은 과거이고 또 현재다. 저 영화들은 우리가 잃어온 것들과 두고 온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변해버렸는가를,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와버렸는가를 알게 하지만, 동시에 본질에 있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또한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온전한 나라

영화에서 우리가 가장 의미심장하게 발견하는 것은 온전한 나라다. ‘온전한 나라’라 함은 현재를 반영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데, 일제에 통째로 빼앗긴 나라일 망정 하나의 민족이 갈라진 나라, 허리가 동강난 불구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아주 이상하고도 낯선 느낌이다. 그것은 1920년대와 30년대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자주 갈마들던 느낌이기도 하고, 이전 세대의 흘러간 과거이야기를 들으면서 받았던 느낌이기도 하다. 시대만 다를 뿐 모두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구성원으로 살아온 사람들인데, 그들은 마치 어느 색다른 우주의 세계를 산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로 그건 다른 세상이었을까? 의심할 바없이 그들은 더 큰 세상을 살았다.

온전한 나라를 산 사람들의 의식과 불구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의 의식이 같을까? 같을 수 없다. 삶의 터전으로 구획지워진 영역의 크기와 성격은 사람의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라고 했을 때 그들이 떠올리는 영역과 우리가 떠올리는 영역은 다르다. 그래서 동강난 나라를 두고 그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크고도 깊으며 또 실제적이다. 상실감은 다음 세대로 저절로 전해지지 않는다. 그들이 살았던 온전한 나라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는, 반쪽을 온전한 한쪽이라 착각하며 살아온 우리는, 휴전선 장벽에 막히고, 수십년을 두고 조작된 북에 대한 공포에 질식해 의식마저도 섬나라의 그것으로 갇혀버리고 말았다.

영화의 인물들이 움직이는 행로와, 남부와 북부의 억양이 뒤섞여 들려오는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 온전한 나라를 만난다. 〈귀향〉은 성노예로 처참하게 혹사당한 우리 언니 누이들을 강제로 끌어간 곳이 반도 전역에서임을 등장인물들의 조선8도 억양을 통해 고발한다. 〈동주〉에서 골간을 이루는 관북지방의 억양, 〈말모이〉는 그야말로 8도 사투리의 전시장이라 할까. 배우들의 어설픈 억양이 끊임없이 영화에의 몰입을 방해하지만, 고증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들의 진지한 시도는 뜻밖에도 온전한 나라에 대한 표상까지를 덤으로 얹어주었다.

반도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철로를 따라 영화는 무대를 대륙으로 연결한다. 우리는 거기에서 질곡의 시대가 만들어낸 자화상과도 같은 디아스포라를 만난다. 땅을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털리고,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들, 민족적 수난이 양산한 범죄자로 낙인되어 조국을 떠나 떠도는 사람들,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낯선 이국에서 풍찬노숙하는 독립운동가들, 어디에서 왔건, 무슨 일을 하건, 잘났건 못났건, 재산을 가졌건 못 가졌건, 조선인이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망국노의 운명공동체가 되었던 사람들이다.

 

조선의 얼굴

우리말과 일본말과 중국말까지 번갈아 들려오는 영화 화면은, 현진건의 단편 <고향>에 등장하는 액자 속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미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도 곧잘 철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라를 잃고, 농토를 빼앗기고, 살 길이 없어 고향을 떠났던 사람, 간도로 규슈로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떠돌아다닌 세월, 부모는 타국에서 굶어 죽고, 그리움에 돌아온 고향은 폐허로 변했다. 그와 혼인 말이 있던 여자는 20원에 유곽으로 팔려갔다가 병과 빚만 안고 돌아와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던가. 그의 피눈물나는 인생역정을 듣게 된 작중의 화자는 코메디 같은 그의 기이한 옷차림과 말을 일러 ‘조선의 얼굴’이라 생각한다.

또 있다. 영화 〈동주〉의 엔딩크레딧 화면에 천천히 떠오르는 윤동주와 특히 송몽규의 사진이다. 그것은 정체성에 대한 자각으로, 시대의 모순에 눈뜬 조선청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진실한 얼굴, 굳게 다물린 입에 실린 무거운 침묵, 그리고 깊고 진지한 눈빛, 그 사진에서 우리는 식민지 조선청년을 그려내는 하나의 전형을 발견한다.

그러나 저 많은 영화들 속에는 조선의 얼굴이 없다. 조선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시대도 없다. 영화들은 조선의 얼굴을 보여주는데도, 남루한 시대를 보여주는데도 하나같이 실패했다. 그 시절도 지금만큼이나 빈부의 차이가 극단적이었으니, 일본인과 친일파들이 차려놓은 화려한 세상은, 절대다수 조선인의 빈곤과 굶주림의 바다에 솟은 섬이었다. 임정이나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젖줄도, 만리타향으로 흘러와 천대받는 민족의 설움을 안고 남루하게 살아가는 동포들이 꼬깃꼬깃 모아바친 목숨이나 다름없는 자금들이었다. 감독들은, 화려함을 보여주는 데는 아낌없는 열정을 퍼부었으나, 남루함을 보여주는 데는 정성을 바치지 않았다. 그래서 적과 아가 미리 설정되어있는 교과서적인 공식이 없었다면 허공에 뜬 설득력 없는 영화가 될 뻔한 거다.

실화를 극화하고, 실존 인물들을 등장시켰다고는 하나, 〈암살〉과 〈밀정〉에서 그려내는 독립운동 조직의 모습은 어딘지 익숙하다. 마피아 영화나 조폭영화에서 본 집단의 모습이다. 거기에는 독립운동조직의 분위기가 없다. 영화에서 역사적 배경을 제거한다면 그저 흥미진진하게 잘 만들어진 현대적 액션물, 헐리우드식 영웅서사만이 남는다. 고증되지 않은 시대불명의 의상들, 터무니없이 세련된 이런저런 소품과 장치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말투들… 영화가 시대를 보여주는 건 ‘사건’ 뿐이다. 영화는 시대의 모습과 분위기를 재현하고, 시대의 인물을 형상화하는데 실패했다.

영화의 감동은 사건이 아니라 형상화에서 온다. 영화의 힘은 사건의 무게가 아니라 형상화의 수준에 실려있다. 그 형상화의 수준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로지 감독의 몫이다. 감독들의 문제는 재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성실함의 결여로 보인다. 성실한 감독이라면, 자신이 영화에서 구현해내야 할 시대상과 인물들의 모습을 사진이나 소설, 다큐멘터리 필름 등 널려있는 여러 자료들 속에서 필경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름

고향의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노래말로 시대상을 압축해 보여준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구요.

처절한 시대였다. 그러나 처절한 만큼 운명공동체라는 전제도 두텁고 뚜렷한 시대였다. 옳고 그름이 명백했던 시대, 반일은 애국이요 친일은 매국이니, 그 누구도 한 번은 대답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명제였다. 〈동주〉의 주인공 윤동주는 조서에 서명하라는 형사의 요구에 피를 토하듯 비통하게 답한다.

“당신 말을 들으니까 정말 부끄러워서 못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 못하겠습니다.”

살아있는 윤동주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짧은 삶을 총화하며 시대의 물음에 답했다. 아름다운 시를 쓰며, 시인이 되고 싶었던 스물아홉 맑은 조선청년은, 생체실험이라는 천인공노할 일제의 범죄로 희생되었다.

사람이 한 생을 일관되게 살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영화 〈박열〉은 한 때 아나키스트로 살았던 한 조선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조선청년의 자유로운 정신을 과시하고 독설과 기행으로 일제의 법정을 조롱하며 주목을 끌었으나, 거기까지였다. 그는 사형에서 무기감형 후 9년 뒤에 전향했다. “저 역시 천황폐하의 적자로서… 응분의 책무와 분담의 광영을 부여 받은 것을 생각하면 매우 기쁘다.” 그는 전향의 변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1945년 출소의 변으로 재차 보여주었다. 그는 “전향 이후 일본인으로 살기로 맹세한 이상 사회가 받아들여주지 않더라도 나는 일본인으로 살고 싶다. … 이것은 폐하의 능위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1945년, 그는 친일파를 배제하고 결성된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에 반대하여 우익진영을 결집해 재일본조선거류민단(민단)을 결성, 단장에 취임하고, 단독정부수립을 획책한 이승만 정부에 복무했다.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혔고, 박열은 지바 형무소에 갇혔다. 윤동주는 흔들리며 살았으나 깨끗하게 민족적 양심을 지켰고, 박열은 열정적으로 살았으나 노골적으로 민족적 양심을 버렸다. 윤동주의 이름은 죽음으로 별이 되었고, 박열의 이름은 살아나와 더럽혀졌다. 어떻게 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는가는 더욱 중요하다. 박열을 불러내는 것이, 그 삶의 일부만을 불러내는 것이 무슨 의의를 가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변절

‘변절(變節)’은 ‘절(節)’을 전제로 한다. ‘절’이 없다면 ‘변절’도 없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을 나쁜 놈들이라 할지언정 변절자라 이르지는 않는 것이다. 믿음이란 함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 시절 사람과 사람사이 믿음의 두터운 층위를 형성한 건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이었다. ‘항일은 못하더라도 친일만은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의식의 기저에 깔린 조선인들의 불문율이요, 조선인들의 정의였던 것이다.

영화 〈말모이〉에서, 각 지방 사투리를 모은다는 광고에 응답한 수많은 편지들을 몰래 모아두었다 전해주면서 우체부는 말한다. “지도 조선사람이잖어유.” 그는 운동가도 조직원도 아니었지만, 직장은 물론 목숨까지 걸어야 할지 모르는 일에 제 힘을 기꺼이 보탠 것은 ‘조선인’이라는 한가지 이유에서였다. 멸시와 차별, 빈곤과 핍박 속에서 꼬깃꼬깃 모은 돈을 섬겨바치고, 도망하는 운동가를 숨겨주고, 저는 굶으면서도 싸우는 사람들의 길양식을 챙겨주었던 사람들, 그는 그렇게 나라 찾는 일에 제 힘을 바친 무수한 조선인들 중 하나였다. 일제 40년 세월 지속적인 독립투쟁이 가능했던 건, 바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들을 존경하고 지지하고 도와 나섰던 갑남을녀, 무명씨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일제로부터 되찾은 나라가 그들을 위한 나라여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우체부는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변절자라 불리우지는 않는다. ‘변절자’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그 존재에 실려있는 무게감과 걸려있는 믿음의 크기를 함축한다. 그 무게가 무겁고 믿음이 클수록 그 변절자는 악질이 되는 것이다. 일제의 조선지배에 봉사한 수다한 친일파들 중에서도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을사오적이 단연 으뜸인 것은, 그들이 차지한 지위가 높고 그들이 나라를 위해 부여 받은 임무가 막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제치하 40년 부귀와 영화를 누렸고, 그 자손들은 지금도 상속받은 부를 누리며 살겠지만, 일가친척붙이 누구도 그들의 후손임을 감히 말하지 못한다. 그들은 민족이 존재하는 한 지워지지 않을 공적(公敵), 어둠의 자식들이 되었다. 악랄하기로 말하면 친일 관료배와 경찰, 지주와 기업가들이 더했겠지만, 매국과 배족의 반열에 작가나 언론인 같은 친일문장가들을 앞장세우는 것도 그들이 끼친 영향이 전국적이고 전면적이며 지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영화에나 변절자가 등장한다. 〈귀향〉에서 성노예가된 여성들을 감시 관리 압박하는 것은 조선인이다. 〈말모이〉의 변절자 민우철은, 애국자 조선생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귀중한 원고를 일제경찰에 빼앗기게 만든다. 〈밀정〉의 변절자, 일본경찰보다 더 일본경찰 같은 하시모토, 동지를 팔고 발각의 현장에서도 궤변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조회령, 그들은 〈암살〉의 변절자에 비하면 피라미급에 지나지 않는다. 〈암살〉의 변절자 염석진, 검거된 후 전향하고, 밀정이 되어 조직을 팔아먹고 투쟁계획을 파탄시키는 염석진은 당시 활약한 일제 밀정들의 전형이다.

밀정과 친일파들의 다종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피할 수 없는 공통의 운명이 있으니, 동족으로부터 변절자로 규탄 받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복무한 일제로부터도 경멸 받는 존재들이란 것이다. 언젠가 미국 고위관리가 했다는 말이 있다. “남은 곱지만 경멸스런 동맹이고, 북은 밉지만 존경스런 적이다”라는 말. 일제 지배자들에게도 변절자는 경멸스런 동맹이고, 독립운동가들은 존경스런 적이었을 것이다.

독립투쟁이란 총과 총이 불을 뿜는 물리적인 싸움일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정신과 정신이 치열하게 맞붙는 사상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변절자들은 ‘사람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독립운동가들은 ‘사람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한다. 사람에 대한 관점을 두고, 둘은 건널 수 없는 강의 이편과 저편에 서있다. 우리는 두 가지 관점을 편리한 대로 다 사용한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질은 어떤 관점이 더 지배적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인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일 것은 분명하지 않겠나.

믿음

변절은 줄거리 전개상 특별히 도드라져 보이지만, 영화마다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건 믿음이다. 고난과 고통과 죽음으로 점철된 독립투쟁을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한 동력이 적개심이었을까? 명예욕이었을까? 적개심이란 너무나 소모적이기에 잠깐은 사람을 움직일지 모르나 지속성을 부여하지는 못한다. 명예욕은 근본적인 허약성으로 인해 버드나무 회초리에도 부러져 나가게 마련이다. 그런 종류의 얄팍한 정신으로 헤쳐나가기에 우리 독립투쟁의 여정은 너무나도 길고 험난했다.

변절자들이 상투적으로 읊어대는 말은 ‘독립이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서정주가 그랬고, 〈암살〉의 염석진이 그랬다. 운동가들은 독립이 될 줄 알았나? 질문 자체가 코메디다. 그들은 변절자들처럼 나라의 독립을 객관화하지도 타자화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투쟁이 독립을 당겨올 것이라 믿었고, 나라를 되찾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지녔으며, 좋은 우리나라, 고루 잘사는 우리나라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 그들은 내가 못하면 후대가 하리라는 믿음으로 미래를 사랑한 사람들이다.

불의에 대한 저항은 사람을 숭고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사람은 함께 저항하는 가운데서 ‘동지’라는 절정의 인간관계를 경험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집단을 크고 강하게 자라나도록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도 그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 사람을 지속적으로 붙들어주고 고무하며 용기를 불어넣는 것은 바로 믿음이다.

영화들이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이런 시대물을 설득력 있고 힘있는 영화로 만들어주는 기본조건임에도, 멋진 배우들을 부각시키고 현란한 액션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는데 급급해 감독들이 간과하고 만 것이다.

뜬금없고 작위적이긴 하지만, 어설프게라도 이것을 보여주는 영화는 〈말모이〉와 〈밀정〉이다. 극장가 주변에서 소매치기로 연명하는 동네 양아치 판수를, 원고를 구하는데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애국자로 변하게 한 것은 믿음이다. 까막눈을 트이고 말모이에 기발한 착상을 보태도록 한 것은 잘난 류정환의 힐난이 아니라 조선생과 구자영의 따뜻한 정이었다.

〈밀정〉에서 이정철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믿음이다. 정채산은 단원들의 우려를 물리치고, 변절하여 일본경찰이 된 이정철의 또 한번의 변절을 기대하며 말한다. “이중첩자에게도 조국은 하나뿐이요. 그에게도 분명 마음의 빚이 있을 거요. 그걸 열어주자는 겁니다. 마음의 움직임이 가장 무서운 거 아니겠소.” 이정철에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백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해도, 정채산의 믿음은 그 백 가지 이유를 다 무력화시켰다. 영화니까 그런 거라고? 관심을 갖고 뒤져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실제 사례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결점은 그 점을 보다 인상적으로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종결

영화의 클라이막스와 종결은 감독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의 수준을 보여주고 영화의 성격을 규정지어주는 결절점이다.

〈말모이〉의 클라이막스는 판수의 죽음이다. 원고를 구하기 위해 도망치던 판수는 죽기 직전 원고가방을 어느 건물 창안으로 던져 넣는다. 장면이 바뀐다. 해방이 되고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된 원고가 출판되어 죽은 판수의 아들 딸에게 전달된다. 편안한 종결이다. 그러나 실제 진행된 사실은 다르다. 원고의 출판이 집필 못지않게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미군정 하에 친일파가 재차 득세하는 상황에서, 학회후원을 장담하던 재력가들은 죄다 다시 돌아섰다. 자금난으로 자력출판을 포기한 채, 세 번째 찾아간 출판사에 읍소해 6권 중 겨우 1권만을 출판하게 된다. "누구 하나 <큰사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우리나라가 해방된 의의가 어디 있단 말이오? 그래 이 원고를 가지고 일본 놈들한테나 찾아가서 사정해야 옳은 일이겠소?" 책상을 치며 토로한 이극로 선생의 한탄과 호소다.

8개월 후, 출판의 전망이 막막했던 나머지 5권은 미국 록펠러 재단의 물자제공으로 출판된다. 친일파들을 재기용함으로써 사전편찬사업에 난관을 조성했던 미국이 출판을 도움으로써, 병주고 약주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최초의 나라말 사전 출판에 얽힌 이 이야기들은, 당시 나라가 어떤 판세로 흘러갔는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의 의식이 여기에까지 천착했더라면 저렇듯 편안한 종결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암살〉은 멈춰야 할 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감으로써, 〈박열〉은 더 나가야 할 것을 중도에 멈춰버림으로써, 나란히 왜곡의 영화가 되었다.

〈암살〉의 클라이막스는 의미심장하다. 동지 셋을 밀고한 혐의로 반민특위의 재판정에 선 변절자 염석진, 현재 대한민국 경찰 고위층이다. 염석진은 신발을 던지며 자신을 규탄하는 방청객들 앞에서, 웃통을 벗어 젖히고 자기 몸에 남은 총알자국을 가리키며 변절을 부인한다. 유일한 증인은 주검으로 발견되고, 무혐의로 풀려나 법정 문을 나선 염석진에게 부하경찰들이 늘어서 거수경례를 붙인다. 좋은 세상이라고 너덜거리며 그가 걸어가는 거리에는 ‘반민특위 해체하고 북진통일 이룩하자’는 극우집단의 시위대가 고함을 치며 행진한다.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훌륭하다고 생각할 뻔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어진다. 시장 안을 걷던 염석진은 안옥윤과 명우를 만나고, 그들의 총에 맞아 마치 깃발과도 같이 흰 직물들이 주런히 펄럭이는 황량한 벌판에 모로 쓰러진다. 영화는 그렇게 복수를 완성하고 관객들은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이 영화가 그토록 인기있었던 것은 아마 이런 방식의 종결에 힘입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염석진을 제거함으로써, 시대를 다룬 영화는 시대를 빗겨나 그저 흥미로운 판타지 중 하나가 되었다. 분노해야 할 시대를 후련함으로 마감한 것이다.

〈박열〉의 종결은 중도반단의 전형을 보여준다. 후미코는 자서전을 남기고 죽고, 단식을 하던 박열에게 변호사는 ‘살게, 살게’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박열의 살겠다는 결심은 다른 데서 온다. 오래오래 살아서 그렇게나마 이름을 알리라는 미즈노의 조롱에, 박열은 벽을 치며 울분을 터뜨린다. “그래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서 너희가 한 짓을 전부 치밀하게 추궁해주겠다”고. 현실은 반대로 되었다. 영화는 변절자를 영웅으로 연출한 것이다. 그렇게 반대로 되었던 사실을, 아무런 암시도 없이, 거기에 고정시켜도 되는 것인가. 필름이 모자랐을까.

〈밀정〉의 종결은 아름답다. 변절에서 다시 변절한 이정출은 독립투쟁의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와 주인공이 되었다. 친구 김장옥을 밀고해 죽인 김황섭을 처단하고, 동지들이 못다한 투쟁을 이어나간다. 이정출로부터 폭탄을 전달받은 대학생이 조선총독부 정면을 향해 자전거를 달려 멀어져 간다. 자전거 뒤에는 검은 포장지에 쌓인 폭탄이 선물처럼 놓여있고, 슬라브 무곡의 청아한 선율과 함께 내레이션이 울려 나온다. ‘우리는 실패해도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동지들이 차가운 감옥에 갇혔어도 투쟁은 계속된다는 비장미가 물씬한 아름다운 종결이다. 그러나 실패는 쌓여도 실패일 뿐이다. 테러방식의 투쟁으로는 나라를 되찾는 것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도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귀향〉과 〈동주〉는 영화의 종결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탐색해보기에 적절한 비교물이다. 두 영화는 같은 시대를 다루고 있고, 복기와 고발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가졌으며,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둘 다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시점이 교차하는 구성으로 만들어진 비슷한 영화다. 두 영화의 차이는 과거로 안내하는 주체의 성격에서부터 시작된다.

〈귀향〉의 주인공을 과거로 안내하는 것은 영매(靈媒)이고, 〈동주〉의 주인공을 과거로 안내하는 것은 적(敵)이다. 〈귀향〉이 보여주는 것은 영매를 매개로 한 치유의 과정이고, 〈동주〉가 보여주는 것은 적과 대치하며 자아를 세워가는 투쟁의 과정이다.

〈귀향〉은 우연히 가까이하게 된 신끼충천한 젊은 영매의 빙의(憑依)에 기대어, 그 처절함과 억울함과 하늘 끝에 가닿아도 풀지 못할 포한이 다 치유되어, 나비가 되어 날개를 팔랑거리며 고향으로 돌아온다. 위험한 시도다. ‘귀향굿’으로 명명된 클라이막스는 산 자를 위한 의례이며 카타르시스로 귀결되는 설정이다. 다루고 있는 소재의 무거운 역사성에 비추어 볼 때, 현재진행형이라는 주제의 성격에 비추어볼 때, 치열한 문제제기여야 할 영화가 어줍잖은 문제해결의 영화로 되어버린 것이다.

그에 비하면 〈동주〉의 클라이막스는 눈부시다. 후쿠오카 형무소, 북간도에서 일본까지 이역만리를 건너온 아버지들 앞에 나타난 몽규의 얼굴은 처참하다. 동주는 왜 안 나오냐는 물음에 몽규의 너덜너덜한 얼굴이 이지러진다. “동주는 죽었습니다. 저도 오래 살지는 못합니다.” 주사바늘 자국으로 꺼멓게 죽은 팔을 걷어 보이며 몽규가 절규한다. “제가 죽으면 뼛조각 하나 이 땅에 남지 않게 해주세요.”

〈귀향〉의 종결은 편안하고, 〈동주〉의 종결은 불편하다. 〈귀향〉이 남기는 것이 연민과 슬픔이라면 〈동주〉가 남기는 것은 울분과 분노다. 비슷한 두 영화의 차이는 이렇게 크게 벌어진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무엇을 남기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감독들은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 하게 마련이고, 그것은 영화가 종결되는 시점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떠오른다. 두 영화가 다룬 시대와 주제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과제를 떠올릴 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그 과제를 던지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단

정민은 나비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동주는 끝내 내지 못한 시집의 제목을 이야기한다. 하늘은 반짝이는 별로 가득하고, 윤동주의 유고시집은 맑은 부끄러움으로 가득하다. 그토록 피눈물 나게 되찾고 싶었던 나라가 이렇게 진절머리 나게 떠나고 싶은 나라로 되어가고 있는데, 어줍잖은 글이나 쓰고 있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나비는 강을 건너고 녹음이 푸르른 산 능선을 넘어 날아간다. 나비의 날개짓은 정민의 고향에서 멈추지 않고 정태춘의 ‘민통선의 흰나비’에로 이어진다. 식민지의 끝은 분단으로 가는 길이었다.

맑은 햇살 푸르른 수풀 돌보지 않는 침묵의 땅
긴 긴 철조망 살벌한 총구 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바람에 눕는 억새 위 팔랑거리는 흰 나비
저 수풀 너머 가려네 저 산도 넘어 가려네

기름진 땅, 무성한 잡초 흐드러진 꽃밭에서 쉴래
소나무 그루터기 무너진 참호 녹슨 철모위에서 쉴래
졸졸 시냇물 건네며 팔랑거리는 흰나비
저 강도 넘어 가려네 저 언덕 너머

해 기울어 새들 날고 서편 하늘 노을이 지면
산봉우리 스피커, 초소위의 망원경 날개짓도 조심 조심
외딴 아기 새 둥지 위 팔랑거리는 흰나비
어두워지기 전 가려네 저 너머로

〈귀향〉의 나비는 애달프고, 정태춘의 나비는 비장하다. 수많은 선열들이 낯선 이국 땅에서 무주고혼이 되었다. 그 시대의 자화상이었던 디아스포라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자이니치로, 고려인으로, 조선족으로 그 땅에 남겨졌다. 식민지 시대에 이어진 분단의 시대는 하나였던 민족을 여러 갈래로 찢어놓았다.

시계를 돌려 과거를 거슬러가면 우리가 하나였던 시대를 만난다. 일제 식민지 시기, 처절했지만 하나였던 시대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던 시대, 조선인이라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사람들 사이에 정과 믿음이 살아있던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이 다 거기에 있다. 우리는 그 시대를 더 꼼꼼히 뒤져야 한다. 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문이 풀린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것인지. 거기에서 시작하면 다시 하나가 되는 길도 열릴 것이다.

이렇게 거듭해서 그 시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건, 벅찬 만세의 함성으로 온 나라를 뒤덮었던 삼일만세항쟁, 그 100년이 막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가 바로 잘못 채운 단추를 다시 채워야 할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