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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사람은 그렇게 나뉜다

기사승인 2019.02.11  17:5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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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서치의 둔한 서평(134)> 글린 포드의『토킹 투 노스 코리아』

한때 미드(미국 드라마)를 즐겨보았다. 꼬박 꼬박 챙겨본 것은 아니었고, 어쩌다 날을 잡아 몇 편씩 몰아보는 식이었다. 미스터리, 범죄소설을 즐겨 읽는 것처럼, 유사한 분야의 드라마를 특히 즐겨 본 것 같다. 그 중 <CSI 과학수사대>는 라스베이거스, 마이애미, 뉴욕 등 세 시리즈를 모두 끝까지 본,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다.

그 중 라스베이거스 시리즈의 몇 에피소드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제목은 잊었지만, 내용은 잊을 수 없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코리아 타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동양, 동양인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여지없이 드러난 것은 둘째 치고, 내가 잊을 수 없었던 것은 하나의 노래 때문이었다. 노래는 북측 가수 리경숙이 부른 <내 이름 묻지 마세요>였다. 가사는 대충 이렇다.

내 이름 묻지 마세요 / 이름을 묻지 마세요.
그 무슨 큰일 했다고 / 이름을 물으시나요.
땀 흘려 언제(호수의 범람이나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 위하여 쌓은 구조물)를 높이 쌓은 / 꽃나이 청춘들이
그 언제 이름을 남기려고 / 위훈 세웠던가요.
그러니 나의 이름 / 묻지 마세요.

멜로디도 좋고 가수의 음색도 개인적으로 듣기 좋은 노래다. 그런데 대낮 총격전이 벌어지는 라스베이거스의 코리아 타운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터져 나오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다. 그야말로 생뚱맞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당시 드라마를 보며 느낀 것은 미국인들은 코리아가 둘이라는 점, 남과 북으로 각각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코리아 타운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우리말을 구사하는 배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내용은 단 하나도 없으면서 엉뚱하게 리경숙의 노래가 BGM으로 깔렸다는 점에서, 한심함을 넘어 어떤 모욕감마저 느껴졌다. 그러다, 다시 생각을 바꿨다. “그래, 너희들에게 남북이 무슨 상관이겠어. 한국이나 조선이나 중국이나 일본이 뭔 차이가 있겠어. 그냥 유색인종이겠지.”

최근 장창준의 『북한은 미국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떠오른 장면, 그것은 태극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맹렬히 흔드는 성조기의 물결이었다. 최근엔 이스라엘 국기도 보인다. 이유 없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장면. 자발적 노예, 사대근성에 치가 떨리는 슬픈 모습이다.

도대체 언제부터인지, 심히 궁금하지만 우리는 유독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얼마나 인정해주는지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성향이 강하다. 아마도 우리 외에 타국 반응에 이처럼 민감하고 안달하는 국가는 일본 정도일 것 같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 같지만 80~90년대만 하더라도 민망할 정도로 해외 반응을 의식했다.

나는 이것이 사대근성의 또 다른 면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목매달고 있는 미국, 그리고 이른 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우리를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 다른 말로 우리를 얼마나 예뻐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간절하게 궁금한 것이다. 비굴하다싶을 정도의 그런 행태를 보면서 역시나 꽤 많이 부끄러웠다.

그렇다면 잠깐 관점을 바꾸어 보자. 우리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 특히 미국을 비롯한 유수 국가들의 시선이 과연 올바른지는 얼마나 고민해 왔을까. 그딴 것은 관심 없고, 다만 한 떨기 꽃이 되어 그저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애타게 기다린 것은 아니었을까. 때론 그것을 위해 허튼 노력과 비용과 아양을 투자해 오진 않았을까.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인정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싫다는 게 아니다. 한류 어쩌고, 국위선양 어쩌고 할 때에도 약간은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환호와 악명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상당히 이상한 시스템을 가지고 꽤 오랫동안 살아왔다. 한국 정치, 남북관계, 북한 문제를 우리 대학에서 가르치려면 우습게도 미국이나 영국 등 서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야 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전문가 대접을 받고 대학에서 강의라도 하고 싶다면 해외 학위가 중요하게 필요했다. 우스운 일인데, 하도 오래된 일이다보니 이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별로 없다. 거의 모든 학문 분야가 그렇다. 창피한 줄 모르고 지들끼리 카르텔을 구성해 끼리끼리 해먹는다.

이런 현상의 문제점 중 하나는, 이러다보니 한국을, 북한을, 그리고 한반도 문제에 대해 지극히 무지한 이들이라도, 이들이 미국 학자라면, 선진국의 권위 있는 학자라면, 정부의 고위 관계자라면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사회에서 인정을 해주고, 언론이 마구 인용하고, 또 우리 학자들이 그것을 언급하며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논리의 근거로 들이민다는 사실이다.

거의 대부분 싸구려 소설 같은 이야기를 주절거리는 일본의 북한 관련 도서는 아예 무시한다 하더라도, 미국이나 여타 서구에서 발간되는 책들도 엉터리가 많다. 북측 땅 한 번 밟아보지 않은 이들이 확인할 수 없는 탈북자들의 증언이나, 국내 보수 전문가 및 전직 관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와,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주장한다. 그럼? 그걸 또 국내 보수 언론은 대대적으로 소개하며 크나큰 권위를 부여하신다. 꼴값하고 자빠졌다. 쓰레기의 순환이라고나 할까.

말이 더럽게 길었다. 알만한 분들은 지금까지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대충은 감이 잡혔을 터이고, 알보다 좀 작은 분들은 ‘이 놈이 뭐라 떠드는 거야’ 하실지 모르겠다. 어쩌겠나.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수치입니다. 동계올림픽입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 북에 대한 악의적 무시, 혹은 편견이 반세기 넘게 지속된 결과, 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심각한 지경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잘못된 이야기를 전달하고 과장하고 왜곡하며 살아가는 사이비 국제 전문가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 이들이 또 한국에 와서 전문가 행세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그러한 잘못을 수정하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편승해왔다. 동시에 마치 북을 깎아내리고 모욕을 주는 것이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 인양 살아왔다. 부끄러운 역사였다.

북에 대해 비판할 부분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리고 북 당국이 보다 많은 북 인민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북을 악으로 규정하고, 붕괴와 소멸만을 외치며 핏대를 세우는 것은, 우리정부를 비판하면서 어이없게 성조기를 흔들고, 탄핵당한 대통령의 석방을 외치며 엉뚱하게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정신분열과 다르지 않다.

   
▲ 글린 포드 지음 / 고현석 옮김,『토킹 투 노스 코리아』, 생각의날개, 2018. 11. [자료사진 - 통일뉴스]

<토킹 투 노스 코리아>는 그런 면에서, 매우 반가운 책이다. 저자는 영국 노동당 국제위원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유럽의회 의원 자격으로 50회 이상 북한을 방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경험으로 만나게 된 북측 당국자들을 통해 보통 외국인이 결코 알 수 없는 북의 이야기들을 알게 되었고, 단순히 북을 괴물이나 미친 집단으로만 알고 있는 미국의 평범한 국민들과는 전혀 다른 안목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한반도의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북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

물론 책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이 타당하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일부 과장과 오해도 보인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그의 문제의식과 주장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의 문제의식, 통찰력, 역사인식이라도 우리 국민들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만큼 그는 성실히 글을 써내려갔고, 한반도 문제에 천착했다. 감히 이 정도의 해외 인사도 없다는 생각이다.

힐러리가 트럼프 대신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지금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상상한 적이 있다. 지금보다 아름다웠을 것이라 장담하기 힘들다. 한반도 문제는 민주당, 공화당 간 큰 차이가 없다. 그들에겐 언제나 관심 없는 문제였다.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한참은 먼 이야기였고, 때문에 전문가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관심 없는 문제니, 돈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누가 연구하겠나. 이는 국내도 비슷하다. 대북전문가가 차고 넘치는 것 같지만, 그 중 북을 온전히 전공하고 깊이 있게 연구한 이들은 드물다.

이제 곧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 그 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측을 방문할 것이다. 세계가 다시 한 번 한반도를 주목할 것이고, 우리는 또 한 번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 기회를 성공으로 마무리 지으려면, 우리 내부의 강한 의지와 역량이 필요하다. 동시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올바른 사실, 객관적 사실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리는 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류를 세계에 알리는 것만큼, 한반도 문제, 남북문제를 제대로 알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제대로 된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각자가 희망하는 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북, 그리고 반대세력을 죽이기 위해 필요한 북의 이미지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평화로울 수 있는 한반도를 그려야 한다. 그게 단 하나 남은 정답이다.

멀쩡히 유가족이 생존해 있는데도 5.18을 모욕하는 동물들이 있다(인간은 당연히 동물이다). 멀쩡히 피해자가 생존해 있는데도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 섬나라 동물들도 있다. 이들을 비난하고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에 이것도 생각해야 한다. 멀쩡히 내 나라가 있고, 내 민족이 있음에도, 사대근성에 빠져, 노예근성에 빠져 타국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 우리 곁에 있음을. 물론 그들의 굴종이 생존과 번영의 방법이겠지만 말이다. 동물과 사람은 그렇게 나뉜다.

사람들에게 권한다.

간서치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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