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오사카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전경. 지난 9월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재일동포들 힘내세요.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세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이자 여성 인권운동가인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이다. 93세 김복동 할머니는 지금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동안 자신이 피해자이면서도 콩고와 우간다, 이라크, 베트남 등 무력분쟁하에서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평화를 담은 나비를 날려 보내며 지원해 온 할머니는 이제 그 마지막 나비의 날갯짓을, 자신의 몸도 지탱하기 힘겨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재일 조선학교로 이어가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의 삶과 재일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차별과 탄압을 없애고, 아이들에게 보장된 교육권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설립된 ‘김복동의 희망’은 21일 병상의 할머니가 전하는 메시지를 안고 일본 오사카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를 찾았다. <통일뉴스>도 동행했다.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는 지난 9월 태풍으로 심각한 피해를 본 상황. 유리창이 깨지거나 혹은 또 다른 피해를 대비하기 위해 4층 전체 유리창에 임시방편으로 테이프를 붙여놓은 채 서 있는 학교 건물, 그 건물 앞에서 기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차별과 탄압 속에서 견뎌온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힘겹게 버티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가 보였다.

외양으로 보기에는 희망이 꺼져있을 것 같았지만, 일행은 정문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서 얼굴에 활짝 핀 미소를 띠며 맞이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 이 안에 희망이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고 있구나. 이 아이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이구나” 하고 감탄했다.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한자로는 中大阪朝鮮初級學校. 말 그대로 일제 강점기 끌려가거나 가난으로 현해탄을 건너온 조선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오사카의 중앙에 있는 학교이다. 오사카 지역을 넘어 일본 내 조선인들의 자부심이 오롯이 담긴 학교이다.

오사카 한복판(中大阪)이란 말이 보여주듯, 학교는 1945년 8.15해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15해방 이후 당시 동성(東成)지역 ‘국어강습소’가 생겼다. 이듬해 4월 조련초등학교가 세워진다. 그리고 1948년 1월 오사카의 한복판, 지금 부지에 ‘동성조선학원 초등학교 및 중학교’가 창립됐다. 70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는 학교가 바로, 지금의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이다.

김채현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교장은 “우리학교는 오사카 조선교육의 출발이다. 이곳은 70년째 오사카 지역 조선학교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자부했을 정도.

지난 3월 창립 70돌 당시 1천 명의 오사카 지역 재일동포들이 모였다는 기사는 나카오사카초급학교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줬다. 2016년 당시 하시모토 오사카시장이 학교 터를 내놓으라는 협박에도, 지금의 학교는 지켜졌다.

하지만 70년의 세월은 무상했다. 일본 정부의 재일 조선인 차별 정책으로 초중급학교에서 초급학교로 줄어들었다. 한때 5백 명에 달하던 학생 수는 2018년 현재 40명으로 줄었다.

▲ '김복동의 희망' 관계자들이 21일 오후 일본 오사카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를 방문, 김채현 학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일본 정부의 탄압 속에서 학생 수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1968년 9월 새로 지어진 학교는 지진으로 곳곳이 금이 갔다. 지난 9월 불어닥친 태풍은 학교의 창문을 망가트렸다. 다른 지역 재일 조선학교와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의 교육비 지원이 중단되고 탄압이 진행되면서 형편이 좋지 않은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복도의 창문을 앗아가 버렸다.

‘김복동의 희망’이 마주하고 있는 재일 조선학교의 아픈 현실이었다. 그동안의 무관심을 반성하게도 했다.

이날 마주한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의 모습에서 기자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함께 손잡고 그동안 힘겹게 싸우며 지켜왔던 재일 조선학교의 역사를 알리며, 이곳에서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 아이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더 큰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가지런히 모은 손이 강한 바람에 무섭게 요동치는 촛불을 더 확실하게 되살리는 느낌. 그렇게 김복동 할머니의 재일 조선학교 아이들을 향한 희망은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로 이어졌다.

자연재해 속에서 초급학생들이 힘겹게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복동 할머니는 병상에서 5천만 원을 통장에서 꺼냈다. 할머니의 통 크고 아픈 기부에 부끄러움을 느낀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 장상욱 휴매니지먼트 대표는 김복동의 이름으로 1억 원을 내놨다.

그것이 더 많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고, 감동하게 하여 어떤 사람은 1백만 원, 또 어떤 사람은 1천만 원을 김복동 할머니 이름으로 기부했으며,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사회도 감동하여 세계 각지에서 모금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렇게 성금이 잇따랐고, 일본 시민들도 함께했다.

모금과정은 단순한 모금행위 자체를 넘어서서 재일 조선학교 문제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오늘 재일동포들이 일본 내에서 겪고 있는 차별과 탄압은 결국 우리의 공적 책임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 '김복동의 희망' 윤미향 공동대표가 아이들의 환영에 김복동 할머니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학생들과 교직원 그리고 '김복동의 희망'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김복동 할머니의 꿈과 그 꿈에 함께 가고자 하는 국내외 사람들의 꿈을 함께 모아 21일 오후 ‘김복동의 희망’ 윤미향 공동대표 등 7명의 관계자가 학교에 들어서자, 40명의 학생이 모여들었다.

한데 모인 학생들은 “우리 학교를 찾아오신 ‘김복동의 희망’ 선생님들을 열렬히 환영한다”며 “김복동 할머니께서 우리 민족교육을 위해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데 대하여 마음속으로부터 감사하다”고 말했다.

윤미향 공동대표는 “오늘 이 자리에 김복동 할머니께서 병상에 계셔서 오시지 못했지만, 여러분을 잊지 않고 계시며, 재일 조선학교 학생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어줄 것을 바라고 계신다"고 전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서도, 여러분을 잊지 않고, 여러분이 일본에서 차별받지 않고, 탄압받지 않고, 밝게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싸우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강조했다.

▲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에는 작은 '평화의 비'가 자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학생들이 배구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할미의 사랑’, 김복동의 희망을 아는 듯,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한쪽에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고발하는 작은 ‘평화비’ 모형이 자리했다. 교실 곳곳에는 우리말을 가르치려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엿보였다. 70년의 역사를 지닌 너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축구공을 발로 차고, 배구공을 튕기며, 까르르 웃었다.

오사카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중심. ‘김복동의 희망’을 품은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김복동 할머니의 희망이 70년 역사의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의 새로운 100년을 꿈꾸는 만드는 주춧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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