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화 / 종주대원

 

일시 : 2018년 11월 24-25일 (무박)
구간 : 고치령~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오전2리 생달마을
거리 : 17.7km (접속구간 4Km 포함)
인원 : 6명

 

▲ 들머리 선달산 맑은계곡 오전2리(생달) 표지석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기다림이고 설렘이다. 마주할 소백의 설경, 상고대 생각에 맘이 설렌다.

눈산행에는 등산장비도 2배다. 아이젠은 기본, 스패치, 방수벙어리장갑, 등등...

그리 춥지 않는 날씨라지만 준비는 야무지게 해야 한다. 배낭을 꾸려 사당역으로 간다.

이번 산행인원은 역대 최소인 6명이다. 첫 산행 때의 그 많던 대원들은 어디로? 초등학생부터 4.19세대까지, 산만하긴 했지만 활기차고 풍성해 보였는데... 아쉽긴 하지만 오늘은 오늘대로 새로운 역사를 쓰리라.

북진에서 남진으로

사당역을 출발할 때만 해도 이번 산행이 고난의 길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당역을 출발한 버스는 단양휴게소에 잠시 정차했다. 주차장에 눈이 쌓여있다.

야간, 눈산행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차에 오른다.

날머리 고치령에 차가 올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갑자기 차안에 긴장이 감돈다. 버스는 풍기를 향해 달린다. 차창 밖으로 군데군데 쌓인 눈이 들어온다. 결정을 해야 한다. 좌석리 이장님 트럭도 예약이 돼있지 않으니, 난감하다.

▲ 오르는 중에 잠깐 쉬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들머리 오전리 생달마을로 날머리를 고치령으로 남진하는 걸로 결정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니 차가 뜸한 지방도로는 살얼음이 낀 눈길이다. 운전하는 손길이 조심스러워 보인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기사님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되어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다.

꾸불꾸불한 빙판길을 곡예하듯 달려 오전리에 도착하니 새벽 3시다. 차에서 내리니 밤공기가 싸하다. 군데 군데 녹은 부분도 있지만 도로는 눈으로 덮여있다. 선달산 맑은계곡 오전2리(생달) 표지석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왼쪽 길을 따라 걷는다.

안개 자욱한 물야저수지, 여기 정착해 살던 보부상, 김주영 소설 ‘객주’에 얽힌 이지련 단장의 얘기를 들으며 걷다보니 생달마을 버서정류장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버스가 들어왔어야 했는데 도착지를 착각한 전대장이 미안해 하지만 왠지 손해 본 듯한 느낌은 지을 수 없다.

눈으로 덮인 마을은 적막하기만한데 드문드문 있는 길가 집들은 펜션인지 민가인지 멋스럽게 꾸며져 있다. 계곡을 흐르는 청아한 물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들려온다. 상운사 입구까지 길은 약간의 경사진 포장도로다.

접속구간에 힘들어 하는 대원들을 향해 전용정 대장이 접속구간도 대간길이라 우기며 대원들을 독려한다. 상운사 입구 삼거리에서 한숨 돌리고 휴식을 취한다.

▲ 외씨버선길 안내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외씨버선길에 대한 안내판이 보인다.

외씨버선길, 사뿐사뿐 빠져드는 4색매력 외씨버선길.

외시버선길은 경상북도 청송군의 주왕산 국립공원부터 영양군,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의 관풍현까지 4개 지역 총길이 240킬로를 연결하는 문화생태 탐방로이다.

외씨버선길은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따온 말로,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하여 맵시가 있는 버선이라는 의미이다. 이 길의 약수탕기길과 마루금길이 대간길과 약간 겹친다.

길 이름이 예뻐 꼭 한번 걸어보고 싶다.

눈 덮인 대간길 늦은목이를 향해

▲ 늦은목이 표지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아이젠을 차고, 늦은목이를 향해 출발이다. 산으로 접어들자 갑자기 산불예방을 위한 안내방송이 나온다. 누가 우릴 엿보고 있었나? 차단 장비 감시를 받으며 눈 덮인 산길을 걸어 올라간다. 늦은목이 옹달샘을 지나고 조금 걸어 오르니 늦은목이재다. 늦은목이는 소백산 끝이고 오늘 대간길의 시작지점이다.

늦은목이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과 봉하군 물야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갯마루이다. 늦은목이의 ‘늦은’은 느슨하다는 뜨이며 ‘목이’는 노루목 허리목 같이 고개를 뜻하는 말로 느슨한 고개 또는 낮은 고개라는 뜻이란다. 낙동강과 한강의 분수령이다.

늦은목이에서 1킬로 정도 오르니 966미터 갈곶산이다. 랜턴 불빛에 눈이 반짝인다. 눈 헤치며 걷는 오르막은 에너지 소비가 심하다. 아침을 먹을 마구령까지는 4.9킬로 3시간은 가야한다. 잠깐의 휴식에도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행동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걷는다.

▲ 갈곶산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마구령을 향해 오르락내리락 걷고 또 걷는다,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다. 가끔 이른 폭설에 놀란 산짐승이 먹이를 찾아 나왔는지 짐승발자국만 간간이 눈에 띤다. 우리도 대장의 발자국만 보고 따라 가고 있다.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 적막강산이다.

아이젠에 달라붙은 눈을 털어가며 걷다보니 속도는 나지 않고 진이 빠진다. 털어도 털어도 끝없이 달라붙는 눈을 감당할 수 없어 몇몇 대원은 아예 아이젠을 벗고 걷는다. 그렇게 눈과 씨름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백두대간이 아니면 이 깊고 험한 눈길을 땅을 언제 밟아보겠나 싶어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눈 위를 비추는 휘영청 둥근 달

▲ 음력 시월 보름을 갓 지난 둥근달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눈 덮인 봉우리를 비추고 있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음력 시월 보름을 갓 지난 둥근달이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눈 덮인 봉우리를 비추고 있다. 하얀 눈과 밝은 달 온천지가 환하다. 랜턴을 끈다.

휘영청 둥근 달 아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숨바꼭질 하며 놀던 어릴 적 생각에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맘껏 뛰놀지 못하고 경쟁에 찌든 요즘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지기도 하고.

눈 덮인 깊은 산속에도 여명은 밝아온다.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든다. 멀리 바다 위 섬처럼 떠있는 봉우리, 안개인지 구름인지 분간할 수 없는 광경, 그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하얀 눈 위에 서서 바라보는 일출. 힘든 대간길의 유일한 보상이다.

전용정 대장이 먼저 마구령을 향해 간다. 따뜻한 라면을 끓인다며. 나와 김성국 대원이 천천히 뒤 따른다. 남은 대원들은 아직도 눈밭에서 일출 광경에 넋을 놓고 있다.

마구령까지 3.5킬로 아직 갈 길이 먼데. 앞서간 대장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길을 원망하며 걷는 발길이 무겁다. 간간이 뒤에서 이지련 단장과 이계환 대원의 얘기소리가 들려온다. 두 분의 두터운 우정에 가끔 시샘이 나기도 한다.

마구령 눈 위에서 먹는 아침밥

▲ 마구령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따뜻한 라면 국물을 기대하며 도착한 마구령. 걷기 시작한지 5시간. 눈 속을 헤치며 무사히 도착했다. 이번 대간길 힘든 고비는 지났다는 안도감. 묵묵히 버텨준 나의 몸에게 위로를 보낸다.

전 대장은 버너와 씨름중이다. 그사이 뒤처진 대원들도 도착하였다. 대장은 버너에 열심히 펌프질을 했지만 결국은 실패. 허탈감이 몰려온다. 굴라면을 끓이려 가져온 굴은 배고픈 짐승들 위해 뿌렸다. 먹을 건 늘 푸짐해 걱정 없는데 추위를 녹일 따뜻한 국물이 없으니...

눈 위에 자리를 깔고 각자 도시락을 꺼낸다. 김장김치와 수육, 굴무우나물, 된장국, 푸짐한 아침상이다. 점점 발끝이 시리고 저려온다,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털장갑을 껴도 아려오는 손끝은 쉬이 따뜻해지지 않고.

고치령을 향한 8킬로

마구령에서 고치령까지는 8킬로. 지나온 길에 지치고, 추위에 떨며 급히 먹은 아침이라 그런지 힘이 나지 않는다. 고치령까지는 대체로 완만하고 평이한 길이라 하니 눈길 즐기며 걸어보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구름이 많지만 이따금 해가 비추니 추위도 조금은 누그러진다. 간간이 눈이 녹아 낙엽 위를 걷기도 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눈 속에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은 앞으로 나아간다.

▲ 산행중 졸음을 못이겨 잠시 취침 중인 이계환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얼마를 걸었을까? 이계환 대원이 졸음을 참을 수 없다며 5분간만 자고 가잔다. 휴식은 그자체가 또 다른 고통인데. 손발이 시리고 아려서다. 사방이 눈인데 어디서 눈을 붙인단 말인가? 뒤돌아보니 벌써 의자를 깔고 나무 등걸에 기대 눈을 감는다. 손발이 얼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된다. 이지련 단장만 남기고 간다.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뿐이다. 얼마나 갔을까? 11시 넘어서니 배도 출출하고 몸도 처진다. 남은 먹을거리를 꺼내 정리하고 가기로 한다. 이계환 대원이 쑥찰떡과 청포도를 내놨다. 꿀맛이다. 그 힘으로 끝까지...

▲ 하산길에 앞서 체력보충을 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좌석리 이장님께 트럭도 예약했다. 고치령 0.5킬로 고난의 행군의 끝이 보인다.

고치령에 도착하니 이장님 트럭이 서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다행히 눈은 없다. 어제 눈을 모두 치웠다고 한다. 안전한 하산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있으니 아직은 살만하다 싶다.

트럭을 타고 내려오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소백산 하면 눈이다. 눈꽃과 상고대가 어우러진 소백의 설경, 기대와 설렘의 낭만적 눈산행.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아이젠에 달라붙는 눈덩이, 급격한 체력의 소진, 잠깐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는 추위,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백두대간 잠정 중단의 결정적 계기가 된 산행이었다. 어쩌면 이 또한 내일이면 아스라한 추억으로 남을 모르겠지만...

▲ 날머리 고치령에서.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수정 : 12월 19일 오후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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