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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싸워야 한다

기사승인 2018.10.03  15: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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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람기> 이미혜의 영화이야기

   
▲ [사진출처-Daum영화]

연개소문은 양만춘을 내버려뒀을까?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궁금한 건 알아봐야 직성이 풀리니 일단 사실 확인부터 들어가 보자.

우선 안시성의 성주 이름이 양만춘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단다. 안시성 성주가 대단한 호걸이라고 전해지기는 하나, 역사서에는 ‘안시성 성주’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야사에 그의 이름이 나오지만, 이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의 입을 빌어 중국 사서의 기록을 따른 것. 그 사서가 현재 전하지 않으니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이름과 생몰 연대를 알 수 없기는 하나, 그의 주요한 활약상은 대부분 영화와 일치한다. 안시성은 지리적으로 험한 곳에 자리 잡은 전략적 요충지에다 군사들도 정예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한다.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을 때 그에 복종하지 않자 연개소문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을 정도이다. 당 태종의 50만 대군에 맞서 68일 간 항전한 끝에 당군을 물리친 것도 사실이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몇 가지 다른 점은 당 태종이 안시성 공격을 시도할 때 고구려는 15만 병력을 출동시켜 당군에 포위된 안시성을 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군이 대패하고 말아 안시성은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영화에서처럼 처절한 항전을 벌여야 했다.

당군은 흙산을 쌓아 위에서 화살을 쏘며 안시성을 공격하려 했는데, 이에 맞서 안시성도 흙산을 쌓았다. 마침 비가 내려 당군의 흙산이 안시성 쪽으로 무너지며 성벽을 덮쳐 성벽 일부가 허물어지자, 이를 기회로 삼아 당의 흙산을 공격, 정상을 정복하고 3일 동안 당군의 총공세에 맞서 이를 물리쳤단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전쟁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당군은 어떻게 물러가게 되었을까? 흙산은 뺏기고, 요동의 날은 일찍 추위가 찾아오고, 식량도 떨어지자, 결국 철군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안시성 성주는 성루에 올라 송별의 예를 표했고 당 태종은 비단 100필을 주면서 성을 방어한 그의 용맹함과 충절을 격려했다니,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당 태종은 이 전쟁의 후유증으로 3년 만에 세상을 뜨는데, 눈에 화살을 맞고 부상을 당해 회군했다고도 하고, 회군 중 고구려 군의 공격에 쫓겨 간신히 도망가면서 병을 얻어 죽었다고도 한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나라에 반대해 고구려의 11개 성이 끝까지 저항했는데, 안시성도 그 중의 하나였단다. 양만춘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당에 맞서 안시성에서 최후를 마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아니면 적어도 호걸 성주의 기백이 고구려 부흥운동으로 계승되었을 것이리라.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역사 속 양만춘의 흔적을 찾아볼수록 처절한 안시성 전투와 그를 이끈 성주의 능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이 치열한 고구려 시대의 전장(戰場)과 매력적인 성주에 대한 상상력을 한껏 부풀려 풀어 놓는다. 그리고 그 성주는 영리하고 용맹하며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성민들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가진 젊은 성주이다.

비록 아버지의 직위를 상속받은 것이지만, 연개소문은 15세에 대대로라는 고위 관직에 올랐다. 가까운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남이 장군이 무과에 급제한 것이 17세, 혁혁한 전공을 세워 병조판서로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 27세였다. 이 파란만장한 젊은 장수는 28세에 시기와 질투의 희생양이 되어 처형당했다. 요즘으로 치면, 연개소문은 중2에 최고 관직에 오른 것이고, 남이 장군은 고1 나이로 참전해 공을 세우고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 나이에 국방부 장관에 오른 셈이다.

의학이 발달하고 사회 진출이 늦은 오늘날에 비해, 수명이 짧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일찍 제 한 입을 책임지는 노동의 주역이 되어야 했던 과거 시대를 생각해 보면, 안시성 성주는 영화에서와 같은 연배였을 가능성이 높다. 잘 생긴 조인성은 헙수룩한 수염에 얼굴을 묻고 성민(城民)들에게 ‘성주님’이 아니라 ‘성주’(!)라고 불리는, 수직적 위계보다 수평적 연대감이 훨씬 강한 젊은 성주의 역할을 과장 없이 소화해 낸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젊은 성주의 리더십이다. 모두들 그를 성주, 성주라고 부르며 굳게 신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어린 아이들의 하찮은 말 한 마디에도 귀찮아하지 않고 진지하게 응대하며 북돋워 주는 모습은 아버지 같고,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여 툭하면 싸움질을 일삼는 부하들을 다스릴 때는 큰형님 같다. 길을 잃고 성 밖을 헤매는 치매 노인네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셔오기도 하고, 성을 떠났던 젊은이가 돌아왔을 때 그가 안시성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차별과 홀대를 당하지 않았는지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듯 살펴 묻는다.

아기를 낳은 성민의 집을 스스럼없이 찾아들어 축하해 주며 성민의 애경사를 내 일처럼 나누는 이 성주의 모습은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몸에 무수히 새겨진 칼자국은 백성과 함께해 온 고락의 세월을 말해 준다. 그는 권위로 군림하지 않음으로써 권위와 존경을 얻었고, 오로지 성민을 믿고 그들을 사고의 중심에 둠으로써 성민의 중심이 되어 안시성 그 자체가 될 수 있었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그는 말한다. “누군가 내 소중한 것을 짓밟고 빼앗으려 할 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지금이 그때이다!” 그리고 묻는다. “너는 이길 때만 싸우냐?” 목숨보다 소중한 성민이 자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천근만근 그 수많은 눈동자들의 무게를 짊어진 성주는 설령 안시성이 패배하리라는 예언이 그의 앞을 막아선다 할지라도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이길 수 없다 하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는 무릎 꿇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성민들을 버리고 무릎 꿇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기에 성민들은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그의 명령을 기다리며 대오를 이탈하지 않는다. 부하를 형제처럼 아끼고 성민을 가족처럼 사랑하는 성주가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기에 결코 그들을 보내려 하지 않는 성주를 뒤로 하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간다. 성민과 성주가 혈연보다 더 굳건하게 서로 믿고 따르기에 사랑하는 여인과 늙은 노모를 성주에게 부탁하고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의 장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감독은 쓸데없이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인위적인 곁가지들을 깔끔하게 제거했다. 옛 인연이 등장했을 때 '혹시나 또!' 하고 우려했지만, 영화는 여자와 남자가 만나기만 하면 다 감정의 스파크를 일으키고 관객의 감정을 소모시키는 신파로 빠져 들어가는 흔한 설정에 눈을 주지 않는다.

안시성의 성주는 두 개의 갈등 축 중심에 있다. 밖으로는 당 태종의 침공을 막아내야 하고, 안으로는 그를 제거하고자 하는 연개소문과 맞서고 있다.

대당 강경파였던 연개소문은 나라의 지도까지 갖다 바치는 보장왕의 굴종적인 자세에 반기를 들고 왕을 폐하였다. 안시성의 성주는 자주 노선을 표방하는 연개소문의 명분에 동조하지 않았고, 당 태종의 침략에 맞서 군사를 일으켰을 때도 협력하지 않았다. 따라서 연개소문의 눈에 비친 안시성의 성주는 반역자이자 고구려의 배신자였다.

그러나 연개소문의 반정(反正)은 오히려 당 태종의 침략에 명분을 주었고, 벌판에서의 대치는 고구려 군에 불리한 전략이라는 것이 양만춘의 판단이다. 대고구려라는 명분이 앞서는 연개소문과 안시성을 지키는 것이 곧 고구려를 지키는 길이라는 양만춘의 신념은 정치적 입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백성의 이익에 더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연개소문과 양만춘을 대립하게 만든 것이다.

정치적 갈등을 정쟁과 암투로 그리는 사극들을 나는 싫어한다. 그런 것들은 정치의 본질을 왜곡하여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정치의 본질은 사소한 이권 다툼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계급•계층적 이해 관계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해 나가는 고도의 기술이다.

성민을 살리기 위해 연개소문의 지원을 요청하는 양만춘과, 당군에 맞선 안시성의 사투를 양만춘을 제거할 호기로 여기는 비열한 정치꾼들을 물리치고 ‘안시성도 고구려’라는 호소에 감응하는 연개소문의 결단은, 정치적 갈등을 진흙탕 개싸움으로 전락시키지 않아 좋다. 정치를 다루는 관점에서 영화는 올바르고 서사를 흐트러짐 없이 힘 있게 밀고 나간다.

   
▲ [사진출처-Daum영화]
   
▲ [사진출처-Daum영화]

영화는 재미있다. 벌판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은 웅대하고 성벽의 접전은 박진감 넘치며 역동적이다. 영화는 잘 만들어진 액션 활극으로 눈을 사로잡는 비주얼을 뽐낸다.

또한 영화는 능력과 인성을 갖춘 젊은 지도자의 영웅적 활약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히어로물이다. 그러나 오로지 정신력과 주인공의 개인기로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지략과 기술로 승부하는 고대의 전쟁이란 참신한 설정으로 극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전쟁은 과학이다!

영화는 여기에, 연개소문과 함께 전장을 누빈 학도병 ‘사물’이라는 젊은, 아니 어린 태학(太學) 학생을 안시성 성주의 관찰자로 내세워, 잘 생김 한 스푼을 추가하면서 차세대 리더의 성장담을 곁들인다. 결국 이 영화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무 많은 스포를 했나? 어쨌든 이 가을, 전쟁담의 외피에 소통의 리더십을 담아 관객의 가슴을 후련하게 적셔 줄 영화 한 편, ‘안시성’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미혜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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