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겨레하나는 7월 4일부터 31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시민강좌 ‘판문점선언시대를 읽는 아카데미’를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7월 17일 ‘과학기술도시 ’평양‘을 읽다’라는 주제로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원이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과학기술로 변화하는 북한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북한과 어떤 교류협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강연 :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원
정리 : 강혜진 서울겨레하나 홍보팀장

 

▲ 서울겨레하나가 17일 개최한  '판문점선언 시대'를 읽는 아카데미 세 번째 강좌.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원이 '과학기술도시 평양을 읽다’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혜진 통신원]


북한과 과학기술이라는 단어의 조합

아직도 북한과 과학기술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어색하다. 최근 이공계 대학원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는데 공통된 강연 소감이 ‘북한이 과학기술에 신경 쓰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 없이 살 수 있나? 없다. 당연히 과학기술 발전이 필요하고 과학기술 정책이 필요하다. 단지 북한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상식적인 질문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12년 4월 15일, 김정은 위원장의 첫 대중연설이 있었다. 20여 분의 연설 동안 50번 이상 ‘인민’이라는 단어를 말했는데,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시대에 경제 강국을 건설해서 인민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은 시대에 가장 집중하는 것은 경제 강국을 만드는 일이다.

주목할 점은 경제 강국을 실현하기 위해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에서 말하는 과학기술 강국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모든 분야에서 세계 첨단수준의 과학기술을 가지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제뿐 아니라 국가의 모든 영역을 과학기술의 힘으로 빠르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천리마운동 성공의 공로자, 기술혁신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과의 차별을 위해 과학기술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은 해방 직후부터 과학기술을 강조해왔다. 북한은 해방 이후 소련의 원조 속에서 국가를 발전시켰는데, 전후복구 이후에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위해 5개년 계획을 수립한다. 그런데 소련과의 노선상 이견으로 인해 원조의 80%가 감소했다. 그러나 목표를 낮게 수정하지 않았다. 최고 지도부가 현장 곳곳에 가서 인민들을 만나 상황을 호소했고, 당시 공업 성장률은 연평균 36.6%에 도달한다. 바로 50년대 후반 천리마운동 시기이다.

보통 천리마운동 하면 노동강도를 높여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민의 수는 정해져 있고, 하루도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어 노동강도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천리마운동이 초과달성될 수 있었던 또 다른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과학기술 혁신이었다. 리승기 박사의 비날론 공업화의 성공, 자체 생산한 트랙터 등이 당시 기술혁신의 대표적 예이다. 천리마운동을 겪으며 당시 북한의 지도부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 자립노선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국방공업으로 민간과학기술의 발전을

김일성 시대는 ‘중공업의 우선적 발전과 경공업·농업의 동시 발전’, ‘경제와 국방의 병진노선’을, 김정일 시대의 선군 경제 노선은 중공업 전체가 아니라 ‘국방공업의 우선 발전’과 국방과학기술에 우선 투자를 했다. 국방에 투입하는 비용은 흔히 매몰 비용이라고 한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 투입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일의 선군노선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우선 투자를 받아 비교우위를 가진 국방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켜 민간으로 흐르게 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CNC다. CNC는 컴퓨터로 소재를 정밀하게 가공하는 컴퓨터 수치제어 기술이다. 정밀도가 높은 인공위성, 장거리 로켓 부품을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을 민간에서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CNC를 개발한 기세로 다른 분야의 혁신을 일으키려 했다.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

북한이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가장 강조하는 것이 교육이다.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가 많아야 과학기술 강국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2년 ‘새 세기 교육혁명’이라는 정책을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11년제 의무교육을 12년제 의무교육으로 개편한 것이다. 수업 시수를 1년 늘렸고, 수학과 과학 과목의 교육 시수가 개편 이전 38% 정도였는데 개편 이후에는 45% 정도까지 늘어났다. 평양에 본보기 초등학교, 중학교를 만들고 이를 전국으로 확산하려 하고 있다.

대학의 경우 ‘종합대학화’로 내실을 다지고 있다. 예를 들어 건축분야라면 평양건축대학을 종합대학으로 만들고 이 대학을 중심으로 전국의 작은 건축 관련 학과들이 연계하는 체계다. 지역별, 부문별로 종합대학을 중심으로 교육개혁사업, 연구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집체적인 힘으로 역량을 극대화해서 대학교육을 개혁하고 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원이다. 작년 가을, 산골과 섬마을 오지에서 일하는 교사들을 평양으로 초청해서 잔치를 했다. 북한도 우리와 마찬가지다.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환경이 좋지 않으니 평양과 떨어진 지방으로 교사들이 지원을 잘 안 한다. 이런 지방으로 자원해서 간 교사들을 초청해서 그들의 노고를 격려한 것이다. 또한 전국적인 과학기술보급망을 구축하고, 전자교과서와 원격강의를 활성화해서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려 한다.

과학기술보급망은 학생뿐 아니라 전체 인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 보급망의 허브가 바로 평양에 있는 과학기술전당이다. 이곳에는 최신 과학기술 자료들이 저장되어 있는데, 국가전산망을 통해 전국 각지의 과학기술보급실과 연결된다. 주민들은 자기 지역, 공장, 농장의 과학기술보급실에서 과학기술전당의 자료를 볼 수 있다.

혁신의 집결지이자 확산의 근거지, 평양

흔히 북한에서 평양은 ‘조선의 심장’이라고 말한다. 과학기술중시정책도 평양에 집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특히 컴퓨터를 이용한 통합생산체계를 주요 경공업공장, 식품공장에 구축하여 노동력을 절감하면서도 생산성을 높이게 되었다. 메기 양식장도 양어 수조, 사료 생산 설비, 물 순환 설비 등을 컴퓨터와 연결, 종합지령실에서 통제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상황별 시뮬레이션을 돌려 있어서 어떤 조치를 하는 게 생산성을 위해 좋은지 선택할 수도 있다.

북한은 친환경기술 확산도 강조하고 있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생활전력을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려 하는데, 요즘은 그 쓰임새가 넓어졌다고 한다. 려명거리는 대표적인 에너지 절약형 녹색거리다. 현재 북이 활용하고 있는 친환경기술이 집약된 곳이다. 태양광, 태양열, 자연채광, 국산화된 지열설비 등이 들어가 있다.

친환경기술의 확대에서 눈여겨 볼만한 곳이 생산현장이다. 장천협동농장의 경우 태양광, 태양열뿐 아니라 폐설물을 모아 메탄가스도 생산한다. 류원신발공장이나 평양화장품공장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이용해서 생산하고 있다.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과 과학기술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는 중요한 정치 행위이고, 새해 첫 현지지도 장소는 그 해의 중요한 정책 방향을 짐작하게 해주는 곳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처음으로 간 곳이 바로 과학원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평양교원대학을 방문했다. 그리고 4월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고 선언했다. 단순히 몇 년의 경제지표를 올리자는 게 아니라 백년대계를 보고 교육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4월 20일 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와 핵의 병진노선을 종결하고,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을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과학기술과 교육의 발전을 강조했다.

5월에는 당 중앙군사위원회를 열고 군 최고위직을 교체했다. 서열 1위 총정치국장 김수길은 평양이 과학기술 중시 정책에 따라 빠르게 변화한 2014년 4월부터 4년간 평양시당 위원장이었다. 서열 3위 인민무력상 노광철은 최근까지 군수경제를 총괄하는 제2경제위원장이었다. 이는 북한이 2009년부터 진행해온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 이전을 더욱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크다.

과연 우리는, 북한에게 매력적인 교류협력 국가인가

최근 한반도 신경제지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남북 교류의 종합판, 완성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하고 싶은 내용을 모두 넣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교류협력이라는 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도 하고 싶어야 한다.

흔히 교류협력 하면 남쪽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의 결합을 말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러한 모델만으로 바람직한 교류협력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남북의 상황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0년대 초반의 가난한 국가가 아니라 우리와 단절된 10년간 경제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또한 앞서 얘기한 대로 과학기술의 힘으로 빠르게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따라서 북한은 더 이상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과 자원의 제공자 수준에 머무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있다. 북한의 협력파트너가 남한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중국, 러시아가 있고 이제 미국도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지금 일본도 북과 대화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이들보다 자본력과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나?

최근 북미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한의 숨어 있던 협력파트너 싱가포르도 부상했다. ‘조선익스체인지’라는 싱가포르의 작은 민간단체는 지난 10년간 북한과 교류하면서 벤처창업 교육을 진행해왔다. 우리가 이명박근혜 10년간 북을 고립시키고 모욕했을 때, 이렇게 신뢰를 쌓으며 북한을 협력파트너로 만들어 왔다. 과연 우리는 북한에게 믿을만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과학기술을 매개로 상상력을 발휘하자

북쪽의 기술 중에 경쟁력 있는 것들이 있다. 다른 전문가에게 들은 얘기인데, 탈북자들에게 북의 기술 중에 남쪽 기술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 있냐고 물었더니 공통적으로 ‘용접봉’과 ‘타이어 재생기술’을 답했다고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력갱생하다 보니 재활용 기술이 발달한 것이다.

이런 예처럼 북한의 상황에서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기술이나, 또는 최근 북한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기술들을 검증해서 남북이 함께 쓰는 걸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남북이 함께 어려운 과학기술 개념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과학기술 교육 콘텐츠를 만들 수는 없을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남북 교류를 하면 초반에는 만남 자체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별다른 게 없고, 내 삶도 바뀌지 않으면 관심이 떨어질 것이다. 과학기술을 매개로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이해당사자 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보자. 새롭게 변화하는 시대, 우리도 새로운 교류협력의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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