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12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어 한반도에 예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평화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요즘, 남북 모두에게 의미 있는 책 한권이 출간된다. 평전 및 자료집 『권양섭』이다.
「권양섭은 박정희와는 고향을 같은 경상북도로 한 1917년 동년 생이다. 하지만 박정희와는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르다. 박정희가 일제강점기에는 만주군으로 독립군을 토벌하고, 분단시대에는 ‘반공반북’을 국시로 통일운동에 철퇴를 가할 때, 권양섭은 기본계급으로 태어나 트럭운전사를 하며 박정희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일제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하고 분단시대에는 통일운동을 한 것이다.」 (박중기, 『권양섭』 권두언에서)
오는 17일(화)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 경내에 위치한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권양섭 선생 탄생 100주년 평전 및 자료집 출판기념식’이 열린다.
평전 『권양섭』의 주인공 권양섭 선생은 평생을 비합법 지하조직운동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종형 권효섭 님과 조선공산당과 연계된 조직의 레포(연락원)로서 고향땅 봉화지역과 전라도 정읍지역 그리고 만주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시기에는 남북을 오가면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경북 노동자 대표로 참석하고, 같은 해 8월 해주 인민대표자회의까지 참석한 뒤 남하했다가 체포되어 5년간 옥살이를 했으며, 한국전쟁기에 스승처럼 따르던 종형 권효섭을 잃은 슬픔도 뒤로 하고 새로이 성장한 친동생 권영섭과 같이 통일운동에 전념했다.
성장기에 꿈꿔왔던 비행기 조종사 대신 항일운동 시기 피신과정에서 차량운전을 배워 한평생을 운수노동자로 살았다. 남북이 통일된 자주독립국가 건설 투쟁을 이어가던 선생이 그만 영어의 몸이 된 것은 1972년 설날을 이틀 앞둔 2월 13일이었다. 선생이 구속된 사건은 세간에는 ‘지하통혁당조직 거물간첩사건’, ‘여간첩 유위하 사건’, ‘경상북도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에는 29명이 체포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포장되었다.
그리고는 선생은 이인모 노인이 북송되던 해인 1993년에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수감된 지 21년 1개월만이었다.
책이 나온 사연도 간단치 않다. 원래는 지하운동을 한 변혁운동가들의 삶이 대개 그렇듯이, 자료들이 이미 다 파기된 상태라 남아 있는 자료만 모아 평전이 아닌 자료집으로만 내려했다. 발간시기도 탄생 100주년이 되는 작년(2017년) 7월로 잡았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하고 안동에 있는 경북독립운동기념관(관장 김희곤)과 고향땅 경북 봉화를 두 차례 방문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자료들을 추가로 확보하게 되었다. 그래서 발간위원회에서는 자료집과 평전을 동시에 내기로 의견이 모았다. 그 바람에 일 년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평전을 쓴 박소연 작가는 고려대 국문과를 나와 실천문학 신인문학상에 『눈부처』로 등단했다. 또한 권양섭 선생이 생존했을 때 선생을 인터뷰하여 「수난삼대」라는 글을 작성하였으며, 2015년에는 『꽃그림자놀이』로 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발간되는 책 『권양섭』에는 평전을 비롯하여 여덟 종에 이르는 관련 기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권양섭의 삶과 활동의 키워드는 ‘기본계급’, ‘비합법 지하조직운동’, ‘항일운동’, ‘통일운동’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이다.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라는 두 시대를 거쳐 권양섭이 이같이 견결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사생관에 기초하지 않나 싶다. 암 선고를 받은 권양섭은 수술을 하자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병하고 같이 살다가 죽어야지, 나 혼자만 살겠다는 건 너무 인색하지 않느냐”면서, 부인한테 “3월쯤 되면 갈 테니 그리 알라”고는 그날부터 식사를 줄이며 죽음을 맞이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모범이자 혁명가의 전형일 터다.」 (박중기, 『권양섭』 권두언에서)
책과 출판행사와 관련된 문의는 4.9통일평화재단(02-720-7511)으로 하면 된다.
<권양섭(權養燮) 선생 이력> 1917년 7월 17일 소백산 남서쪽인 경북 봉화군 봉화면 유곡리에서 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