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설 『분지』는 알지만, 작가 남정현(85)은 잘 모른다. 보다 정확하게는 『분지』의 저자 남정현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남정현이라는 한 작가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 이제 남정현에 대해 비교적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남정현의 첫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도서출판 답게, 2018)가 발간됐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이 그 작가의 삶 및 철학과 연관되어 있다면 『엄마, 아 우리 엄마』는 ‘남정현의 삶과 철학=작품’임을 밝혀주는 의미 있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에는 <엄마, 아 우리 엄마>, <거대한 암반 밑에서>, <그때나 이때나>, <정치재해의 와중에서> 그리고 <5박 6일의 성과> 등 모두 다섯 편의 산문이 들어있는데, 모두가 작가의 삶과 철학을 담은 자서전과도 같기 때문이다. 참고로 앞의 산문 네 편은 2001년에 나왔으며, 맨 뒤의 <5박 6일의 성과>는 2005년에 쓴 북한 방문기이다.

자서전과도 같은 산문, <엄마, 아 우리 엄마>

그 중에서도 산문 <엄마, 아 우리 엄마>는 작가의 삶이 가장 많이 묘사돼 있기에 자서전 중에서도 가장 자서전과도 닮았다.

▲ 남정현 『엄마, 아 우리 엄마』(도서출판 답게, 2018)

이 산문은 어린 시절 “죽음과 결부된 결정적인 사고만 해도 무려 너더댓 번”이나 치른 탓으로 “사십 킬로에도 미달하는 체중, 겨우 난쟁이 수준에 다다른 것 같은 신장 등” 왜소한 체구로 된 작가가 후에 훈련받은 차력사나 구척장신의 거구라도 하기 어려운 반미투쟁의 선봉에 어떻게 나서게 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본질은 ‘맑음’이다. 한없이 맑디맑은 작가의 삶과 의식이다.

구십 수를 바라보는 모친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엄마보다 아마 배는 더 살 걸”이라며 큰소리쳤지만, 작가는 이 나라의 현실 앞에 “아직 살아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자모(自侮)하고 자멸(自蔑)하는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8.15 이후 이 나라가 외세에 예속되어 가고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이 처참하게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 현장에 몸을 내던지기는 고사하고 목이 터져라 하고 속 시원하게 큰 소리 한번 쳐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순수한가? 얼마나 맑은가?

작가의 순수함의 극치인 어렸을 때 너더댓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이듯이, 세월이 흘러서도 기적은 순수함에서 일어난다. 작가는 1965년 『분지』를 통해 미국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민족의식을 일깨우지 않았던가?

당시 ‘분지사건’으로 체포되어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처박힌 작가는 1974년에도 세칭 민청학련 사건에 조작, 연루되어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돼 두 번째로 ‘남산’의 지하실에 처박히고 말았다. 그 남산의 으스스한 지하실에서 작가는 ‘파란 피부의 사나이’를 목격한다. 끝 모를 고문을 당해 “뭔가 파란 잉크통 속에 몇 날 며칠 푹 담가놓았다가 빙금 꺼내놓은 것 같은” 사내를 보고 작가는 한편으로는 공포와 분노를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치와 억울함도 느낀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작가는 “박정희, 박정희, 유신, 유신, 하고 꼭 무슨 염불을 외우듯 박정희를 외우기 시작”한다.

이유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그때 나는 내가 혹시 그 생지옥 같은 지하실을 끝내 빠져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는 일이 생긴다면 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저승에 가서라도 꼭 염라대왕을 찾아가 나라와 민족 앞에 저지른 박정희의 그 만만치 않은 죄상을 내가 본 만큼 내가 본 그대로 낱낱이 고발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얼마나 순수한가. 아니 순수하다 못해 얼마나 열정적인가?

작가의 순수함과 열정은 여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8.15 이후 4.19, 5.16, 5.18 등등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목숨을 던진 열사들을 떠올리면서 작가는 그렇게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어디 아무데다나 이 육신을 시원스럽게 내버리고 싶은 충동에 이따금 사로잡힌다.”

상황과 시기를 따지지 않는 순수함의 극치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모친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엄마보다 아마 배는 더 살 걸”이라며 큰소리를 친 순진무구한 효심도 저버릴 정도로 ‘아무데나 육신을 내버릴 정도로’ 부러 불효를 자청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시대와의 불화에 내키지 않는 불효를 하게 될지도 모른 탓에 산문 마지막에서 “엄마, 용서해 주세요”하면서 “엄마, 아 우리 엄마”하고 부른다.

심화되는 반미의식.. <거대한 암반 밑에서>, <그때나 이때나>, <정치재해의 와중에서>

작가의 순수성과 열정, 반미의식은 뒤이은 산문에서도 이어진다.

산문 <거대한 암반 밑에서>에서 ‘암반’은 외세다. 흉물스럽고 추악한 한국 사회를 ‘폐기처분’해야 할 기회였던 4.19마저, 즉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해 활화산처럼 용솟음쳤던 사일구”마저 “공룡 같은 거구(巨軀)”에 의해 좌절당한다. 5.16군사쿠데타에서 “미제 탱크가 국군을 태우고” 등장한 것이다.

작가는 이때 “외세다”하고 외마디 소릴 외친다. “그것은 무슨 논리적인 학습을 통한 귀결이 아니라 한 인간의 현실적인 소중한 체험과 직관을 통한 자연스러운 진실에의 접근이다.” 작가는 한국 사회의 근본 모순이 외세에 의해 규정돼 있음을 직관을 통해 알아챈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에 있어 “외세란 이름의 육중한 암반 밑에 깔려있는 나의 의식은 늘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작가는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는 투쟁적이고 낙관적이다. “기어이 이 외세를 그 암반을 힘껏 들어 올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요즘도 전혀 딴 생각을 할 새가 없는 것”이며, 나아가 “머지않아 오천년 우리 민족사를 일관되게 지켜온 우리 민족혼은 기어이 외세란 이름의 이 거대한 암반을 들어 올리고 외세의 부당한 간섭망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이 애초에 염원한 대로 이 땅에다 인간의 낙원을 건설”할 것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산문 <그때나 이때나>에서는 작가의 표현을 빌린다면 “외세문제에 약간 관심을 기울여본” 소설 『분지』를 구상하게 된 내력이 나온다.

작가가 『분지』를 쓴 1960년대는 “미국, 그저 미국이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다 만세 만만세”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어이없게도 만세 만세하고 미국을 추켜세우기만 하면 그동안 민족 앞에 온갖 죄악을 저지른 자들도 순식간에 다 애국자로 둔갑해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다른 데도 아닌 바로 이 땅의 방방곡곡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그러기에 작가에게는 “반만년이나 키워온 우리 민족적인 고유한 미덕이, 그 미풍이, 그 빛나는 전통이 성조기가 몰고 온 핵의 위력에 휘말리어 순식간에 풍비박산이었다. 아, 그 황폐함. 그저 돈만 생긴다면 그 무엇도 다 죽일 수 있다는 극한적인 개인 이기주의와 황금제일주의에 정복당한 금수강산은 그 아름다운 경관에 어울리지 않게 패륜과 배덕으로 팽배하게 팽창하여 그만 언제 팡하고 폭발하여버릴지 모를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일이었다.”

그때 작가는 외친다. “아, 그렇다 분지(糞地)다” 하고. 이렇게 해서 소설 『분지』를 구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분지』는 나오자마자 국가보안법으로 걸린다.

‘분지사건’을 겪은 작가의 ‘그때나 이때나’의 소회는 간단하고도 명징하다. “소설 『분지』의 테마가 되어준 외세문제와 그 『분지』를 끝내 유죄로 몰고 간 당시의 ‘국보법’이 현재 우리 현실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는 그때나 이때나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산문 <정치재해의 와중에서>의 ‘정치재해’란 다름 아닌 미국과 그 미국을 추종하는 이 땅의 지배세력이다. 지배세력은 미국이 쥔 전시작전권, 주한미군주둔, 주한미군범죄 등에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그러기에 한국 사회에서 근간에는 “우리말과 우리글까지 팔아버리고 영어로 대치하자는 일군의 세력마저 등장”하고, 머지않아 미국의 시민이 되고자 태극기를 내리고 성조기로 대치하자는 일군의 세력이 출현할 수도 있다는 예측 아닌 예측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북핵 문제’ 해법 담은 산문 <5박 6일의 성과>

산문 <5박 6일의 성과>에서는 6.15공동선언으로 남북화해시대가 도래하면서 문인들의 남북교류로 작가가 북측에 가 보고 느낀 5박 6일간의 소회를 담았다.

방북한 작가의 관심은 오직 하나. 북이 ‘어떤 나라’냐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미국이 북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리기 위해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그렇게 오랜 세월 목을 짓누르고 있는데도 도대체 북은 무슨 재주로 지금도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미국과 당당히 맞서있는가를, 그 비결을 다소나마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5박 6일 동안 가능한 범위 내에서 북측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그의 결론은 “일심단결”이었다.

그리고 작가는 지금도 세계적 최대 현안인 이른바 ‘북핵 문제’와 관련 방북 중에 얻은 소신을 밝힌다. “미국이 진정으로 제국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북과 행동으로 실질적인 관계 정상화를 도모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방북 소회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5박 6일 간의 평양 방문에서 얻은 단 하나의 고귀한 성과로 “우리에겐 북핵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손쉬운 길이 마련되어 있다”며 “그것은 다름 아닌 6.15선언”이라고 선언한다.

“남북이 힘을 합쳐 확실하게 6.15선언을 실천함으로서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협력하여 공존공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때, 비로소 우리 강토는 핵이 없는, 아니 핵뿐만 아니라 지배와 예속도 없는 청정지대가 되어 전 인류의 우러름을 받는 성지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작가적 예언은 4.27판문점선언과 6.12북미정상회담을 맞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시종일관 민족주의자’이자 ‘문학적 비전향 장기수’

산문집 『엄마, 아 우리 엄마』는 남정현의 본격적인 자서전은 아니며, 다섯 편의 산문 역시 그의 삶 전체를 보여주거나 하나로 이어져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산문집에는 곳곳에 작가의 삶이 편편히 박혀있으며 무엇보다도 작가의 의식, 철학이 전체를 감싸고 있다. 그의 삶과 문학에 영향을 준 사람(아산 아저씨)과 사건(‘분지사건’, 고문)이 들어가 있으며, 반미의식이 일관되게 깔려있다. 한마디로 작가의 삶과 철학이 소소히 녹아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작가의 의식은 오늘날 ‘분지사건’으로 대변되는 외세에 대한 의식, 특히 반미의식이다. 작가의 소설만이 아니라 여기 산문들에도 반외세 의식, 반미의식이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작가가 소설만이 아니라 모든 산문에서도 외세 문제와 미국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이는 필경 작가의 삶 그 자체가 반미의식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을 것이란 합당한 추론을 할 만하다.

그런데 외세와 미제에 대한 반대의식과 저항은 필경 그 내면에 무언가에 의해 안받침되고 있다. 산문 곳곳에 ‘민족사’, ‘민족혼’, ‘우리 민족’이 나오듯 민족의식이 아닐까? 이 땅에서 문학세계를 통해 최초로 반미의식과 민족의식을 일깨워준 작가가 만년에 이르기까지 그 초심을 일관하게 지니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그에게 ‘시종일관 민족주의자’이자 ‘문학적 비전향 장기수’라 부른다면 어폐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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