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 개의 창

북미 정상회담이 정말 열렸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언제든 전쟁 재개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 채 다음번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양측의 정상이 처음으로 손을 마주잡았다. 웃음도 보였다. 나아가 새로운 관계, 평화 체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을 담은 공동성명에 서명까지 했다. 북미 간 전쟁 재발 여부에 생사의 끈을 매달고 사는 남과 북, 미국과 일본 등 수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그럼 어디까지 온 것일까? 지난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이며 시작된 북미 대화, 협상 국면에서 공식 명칭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거기 접근하려면 1) 6월 12일 북미 공동성명 2) 당일 오후 트럼프 기자회견 3) 6월 13일 북 노동신문 관련 보도 4)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정상회담 이후 언행 등 네 개의 창을 살펴야 한다. 먼저 북미 공동성명을 보자. 

2.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빠진 이유

정상회담 하루 전인 6월 11일에도 북미는 싱가포르 현지에서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30분 등 2회에 걸쳐 4시간 30분이나 실무협상을 벌였다. 그 직후 품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을 자청,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만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결과”라면서 특히 “검증(V)”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직까지 도 실무협상은 타결되지 못했다는 것, 타결을 가로막는 쟁점은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의 채택 여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이 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최후의 순간까지 배수진을 치고 북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그날 저녁 9시 50분 실무협상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다음날, 예정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그러나 북미 공동성명에는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이란 문구가 없다. 왜 일까? 답은 공동성명에 있다. 공동성명은 서문, 4개항의 약속, 후속 조치 관련 등 세 개의 덩어리로 구성됐는데 그중 서문의 세 번째 문장은 이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을 제공하기로 공약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그의 확고하고 변함없는 악속을 재확인했다> 

위 문장에서, “미국이 북에 안전을 공약했고” 이후, 북이 재확인한 약속은 “북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이다. 따라서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이 포함될 경우 그것은 북뿐만 아니라 남쪽의 미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미군은 스스로 자랑하듯 세계 최대 핵 무력 집단이다. 게다가 그들은 2014년부터 무려 1조 달러를 투입하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등 핵 3원 체제를 ‘현대화’하고, 핵탄두를 소형화하는 등 핵무기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쉬지 않고 핵폭발 모의실험을 한다. “미국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0번의 모의실험을 했다(중앙일보. 5.28)” 6년 동안 50회를 했으니, 1년에 8번 이상이나 했다. 

이러한 미군의 일부가 바로 주한미군이다. 주한미군과 핵무기가 무관하다는 말은 문어발이 문어와 무관하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둘이 정말 별도 존재가 되려면 적어도 주한미군의 성격과 역할이 대폭 변경되어야 하며, 이를 검증하고, 되돌릴 수 없어야 한다.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중단하면서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그들 아닌가? 협상을 위해 ‘북한만의 비핵화’를 접고 ’한반도의 비핵화‘로 돌아선 순간, 검증과 불가역은 더 이상 미국의 주장일 수 없다.    

이런 앞뒤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미국 주류 언론과 우리 수구언론은 그럼 왜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이 빠졌다고 아우성일까? 북미 공동성명에 ‘한반도의 비핵화’라 적혀 있음에도 그들은 이를 여전히 “북한만의 비핵화”로 읽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일부러 오독을 할까? 북미 간 합의사항을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만의 비핵화’로 왜곡, 대중에게 각인시킬 목적이다. 

3. 북미 정상회담 - 협상의 문 열어     

공동성명에서 북미는 “상호 신뢰 형성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인식하며” 1) 새로운 북미 관계 설립 2) 영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드는 노력에 참여 3) 북한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 내용 재확인 4) 한국전쟁의 미군 포로, 실종자 유해 즉시 송환 등을 순서를 매겨 차례로 ‘언명’한다. 

북미 정상은 회담을 통해 ‘서로간의 믿음 쌓기’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방법이라는데 동의했다. 그런데, 그 신뢰 통장의 잔고는 어떤가? 북은 3월 5일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핵, 미사일 실험 중단” 4월 20일 “핵, 경제 병진노선을 경제 건설 총력집중노선으로 수정”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일련의 조치를 했다. 그러나 미국은 6월 12일 현재 아무런 조치가 없다. 

6월 13일 북 노동신문(통일뉴스. 6.13 인용)은 북미 정상회담의 확대회담 관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면해서 상대방을 자극하고 적대시하는 군사행동들을 중지하는 용단부터 내려야 한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해의 뜻을 표하면서 “조미사이에 선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조선 측이 도발로 간주하는 미국-남조선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며“>라고 보도, 한미군사훈련 중단이 합의됐음을 알렸다. 북의 행동에 미국이 이제야 상응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은 공동성명 서명 직후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를 약속했다는 것이 트럼프의 전언이다. 이로써 북의 핵, 미사일 동결 완료와 미국의 한미군사훈련 중단, 진정한 협상의 문이 열렸다. 

4. 트럼프, 매티스와 투쟁, 그리고 타협

트럼프의 다음 수순은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실제로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군산복합체, 군부, 언론 등 주류 카르텔에 맞서 이끌어 내야 하는 참으로 벅찬 과제다. 트럼프는 먼저 공개 권력 투쟁에 나선다. 북미 정상회담이란 세기적 뉴스가 미국인들을 달군 당일 오후, 그 열기가 식기 전에 트럼프가 1시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기자회견을 한 것은 그 투쟁의 첫 포성이다. 

그는 먼저, 북의 핵탄두 장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북한은 이미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핵 실험장을 폭파, 폐쇄했고 미사일 엔진 시험장의 폐쇄도 약속했다”면서, “우리 바로 이웃국가에서 이런 전쟁연습을 한다면 매우 도발적일 것”이라고 했다. 훈련 중단을 거부하는 자들을 미 본토를 북의 ICBM 위협 앞에 방치하는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돈 문제를 꺼낸다. "6시간 반씩 괌에서 폭격기 등이 한반도로 출동하는데, 정말 많은 비용이 든다“ 훈련 중단을 거부하는 진영을 미국인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자들이라 공격한 것이다. 

북의 핵, 미사일 위협에서 미국을 구하고, 세금 낭비를 줄인다. 훈련 중단에서 오는 미국인들의 실질 이익을 기준으로 찬, 반을 가르는 트럼프의 프레임은 먹혔다. 6월 13일 로이터 통신은 6월 12-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51%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여론의 상승세를 타고 트럼프는 전진했다. 6월 15일 유트브에 올린 영상에서 “핵 위협을 끝낼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추구해야 한다”고 했고, 6월 15일 “오토 웸비어의 죽음을 알면서 어떻게 북 인권을 방어하느냐”는 기자를 향해 “핵무기가 당신과 당신 가족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매티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6월 12일 화이트 미 국방부 대변인의 “훈련 중단은 트럼프 대통령과 매티스 장관 사이에 사전 논의한 부분”이라는 발언이 나왔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6월 14일 저녁 한미 국방장관이 전화 통화를 했으나 훈련 중단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 국방부의 발표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포함한 연합훈련 전반에 대해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했고 향후에도 긴밀한 공조를 지속 유지하면서 가능한 빠른 시기에 직접 만나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가 전부다. 여기서, 가능한 직접 만나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대목은 우리 발표에만 있다. 우리 쪽이 바라는 발언이 나오지 않으니, 만나서 설득하려는 것,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6월 18일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열린 <미국 국가우주위원회> 회의에서 미 국방부에 우주군 창설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한다. 지금까지 공군이 담당하던 우주 분야를 따로 떼어내 새로운 병과를 창설, 미군은 기존 5병과에서 6병과 체제로 확대된다. “미국이 우주군을 창설하는 것은 이 조약(유엔이 제정한 우주조약)에 위배될 수 있다(조선일보. 6.19)” 그러나 군부에게는 인력과 예산이, 군산복합체에게는 새로운 시장이 제공된다. 바로 이날 미 국방부는 “8월로 예정된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중단 한다”고 발표한다. 일면 투쟁, 일면 타협으로 트럼프는 비로소 어음으로 끊어준 훈련 중단을 현찰로 바꿔 들었다. 

5. 폼페이오의 불안한 언행

그럼 이제, 6.12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공개 희망한 “3-4개월 안에” 북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고 이번처럼 양국 관계의 진전과 트럼프의 국내정치적 성과가 맞물려 돌아갈 수 있을까? 북미 정상은 서로 상대를 초청했으나 시간과 장소는 아직 미정이다.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대로 굳건한 상호 신뢰만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이다.  

이와 관련, 6월 13일 북 노동신문의 보도(통일뉴스. 6.13 인용)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을 통한 관계개선이 진척되는데 따라 대조선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 이에 김 위원장은 미국 측이 조미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한 신뢰구축조치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하게 계속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한다. 미국의 대북제재 완화와 해제, 상응하는 북의 추가조치가 서로에게 동력을 제공하는 자연스런 흐름이 연상된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이후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언행은 불안하다. 그는 6월 13일 서울에서 미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여기서 그는 몇 가지 중요 발언을 한다. 먼저, “2년 반 안에 중대한 비핵화가 이뤄지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2년 반이란 시간표도 처음 나온 것이며, 중대한 비핵화란 단어도 그렇다. 2년 반은 트럼프 재선을 겨냥한 것이며, 중대한 비핵화란 북 핵무기의 해외 반출 같은, 재선에 활용 가능한 성과를 의미한다고 해석 가능하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 새겨지길 열망했던  바로 그것이 그의 입을 통해 사후 공개된 것이다. 

미국이 어떤 희망을 가지던 그건 그들 자유다. 그 희망을 대화, 협상 통해 지향, 조정해 나간다면 말이다. 그러나 품페이오는 이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이 공동성명에 빠졌다는 기자들의 추궁에 “장담컨대,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완전한 이란 말에 검증 가능한 이란 말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공동성명에는 없는데 마음속에는 있단다. 그러니 그건 미국 쪽 혼자 마음인 것이다.  

2년 반 안에, 북의 중대한 비핵화, 그리고 검증. 이 세 가지 이루지 못한 희망을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대북제재 유지다. 그는 6월 14일 서울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입증하기 전까지는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다.”며 입증을 언급, 검증 필요성을 거론했다. 또한, “우리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를 완료하는 시점과 관련, 긴급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발언, 비핵화 시간표까지 압박했다. 둘 다 북미 공동성명에는 없는 것이다. 

합의에 없는 것을 합의 강제하려는 그의 행보는 중국에까지 미쳤다. 여기서 잠깐, 북은 왜 싱가포르를 오갈 때 중국 민항기를 사용했을까? 전용기의 항속거리도 충분하고, 미국의 정찰기를 비상착륙(2011.3.4)시킬 정도로 전자전 능력도 넉넉한데, 왜 그랬을까?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돌파하려는 생각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2016년 2월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는 북에게 민항기를 대여하는 등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 정상을 만나러 가는 길에 중국 민항기를 타고 간다, 이건 미국과 중국 양쪽에게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의 유효 만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효과가 있다. 폼페이오는 이 기류를 끊고 싶다. 6월 14일 베이징에서 미중 외교장관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중국은 완전한 비핵화 이후에 제재가 해제된다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왕이 중국 외교장관은 “미, 중 사이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협력으로 모두 승리하는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대항으로 모두 패배하는 것이다. 미국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받았다. 무역 협상이나, 대만 문제, 남중국해 등 미중 사이 갈등 사안에 대북 제재를 패로 쓰겠단 것이다. 

상호 신뢰 구축이 추동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하고도, ‘힘으로 누르는 북한만의 비핵화’를 추구한다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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