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헌 /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역사와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적은 없었다.

70년 앙숙, 세기의 대담판에서는 무한 적대의 고정관념을 깨고 대결과 전쟁이 아닌 평화와 협력을 선택했다. 한 세기 동안을 제국주의, 패권주의, 핵무력을 배경으로 독선적 세계 질서를 주도한 아메리카 합중국과 반세기 넘게 핵선제 공격의 위협 아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허리띠 조이며 마침내 국가 핵무력 완성이라는 전략국가로 부상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하 ‘조선’)이 마주한 결과였다. 

온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는 순간 어제 날의 적수들은 장전된 무장력에 ‘돌격! 앞으로!’ 대신 방아쇠를 잠그고 현실을 바로 보는 인식의 대전환을 보여주었다. 왜 그랬을까?

먼저 미국은 언제까지나 절대적 패권자로 군림할 처지가 아니었다. 최초로 핵무기를 만들고 사용하여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낸 그 위력으로 핵패권을 틀어쥐고 있었지만, 이제는 일방적 핵공갈 시대가 아니었다. 아니 수억의 자국민이 핵전쟁의 공포에서 잠들 수 없게 정세는 변화․발전되고 있었다.

‘조선’ 측도 핵무력 완성, 전략국가, 힘의 균형을 말했지만, 이는 처음부터 공격수단이 아니라 자위적 억제력이었다. 군사적 위협해소와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해왔었다. 다만 이 같은 억제력 확보는 유일 패권국가 수뇌를 세기의 대담판장에 나오게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양 수뇌는 지난 시기의 편견과 관행을 깨부수는, 인류가 지향하는 생명․평화에로의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자세로 싱가포르행 비행을 했을 터였다.

그래서 펜토사섬 카펠라호텔로 모아진 전 세계의 귀와 눈은 서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흉한 모습이 아니라 두 나라 인민들과 온 인류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냉철한 이성적 판단으로 대답하려는 듯 굳게 손잡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요 7개국 정상회의장을 비우면서까지 싱가포르로 날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은 첫 만남에서 “우리는 좋은 토의를 할 것입니다. 굉장한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라며 “내게 영광이고 우리는 엄청난 관계를 맺게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김정은 ‘조선인민주의공화국’ 국무위원장은 “오늘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라며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라고 화답했다. 양 수뇌의 공개된 첫인사말에서 싱가포르의 담판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점치게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어제 날까지의 두 나라 대결 조건에서는 가히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정확히 두 나라는 73년 동안 대결과 전쟁, 불신과 적대감, 분노와 증오의 상대들이었다. 아니 지난 70년을 지우고서라도 2017년에 벌어졌던 일촉즉발의 핵전쟁 일보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화염과 분노”라는 막말에 ‘화성-12’형으로 “괌을 포위사격” 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전략폭격기 B-1, B-2, B-52를 비롯한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 등 240여대로 ‘조선’을 금방 초토화할 무력시위를 벌였다. 로널드 레이건호를 비롯한 3척의 핵추진항공모함이 한꺼번에 동해에 진입, 수백 대의 함재기와 핵잠수함, 이지스함, 순양함 등으로 핵공격 위협을 감행했다.

이에 ‘조선’은 6차 핵실험(2017.9.3, 수소탄 시험)에 이어 중․장거리 탄로미사일 ‘화성-12’형 발사(2017.5.4)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을 잇달아 시험발사(2017.7.4, 7.28) 했다. 2017년 11월 29일에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시험발사 성공했다. 미국 본토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갈 위력적임을 과시했다. ‘조선노동당의 정치적 결단과 전략적 결심’에 따라 시험발사 했다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오늘 비로소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의 위업 실현”을 선언했다.

결국 싱가포르 회담은 이 같은 ‘핵 대 핵’의 피 말리는 대결 속의 역설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무력 완성’ 선언은 동시에 “책임 있는 핵 강국이며 평화 애호국가로서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목적 실현을 위한 노력”이 바로 세기의 대담판으로 향한 이유가 되었을 터였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 확대회담, 업무만찬, 단독산책을 거쳐 마침내 2018년 6월 12일 오후 1시 40분(한국시간 2시 40분), ‘조․미 정상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서명에 앞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성명문은 굉장히 포괄적이고, 양국 모두 굉장히 놀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둘 다 뭔가 이뤄내고 싶어 했습니다. 둘의 특별한 관계가 오늘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시작했습니다. 김 위원장께 감사드리고, 오늘 만남은 누가 기대했던 것보다, 예측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 우리는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서명을 하게 됩니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이런 자리를 위해서 노력해주신 트럼프 대통령께 사의를 표합니다.”라고 말했다(한겨레신문에서 인용).

과연 어떤 내용을 합의했을까.

언론들이 인용 보도한 북측 발표 문안에 따르면 양 정상은 “새로운 조․미 관계 수립과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문제들에 대하여 포괄적이며 심도 있고 솔직한 의견교환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에 “안전 담보를 제공할 것을 확언”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 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양 정상은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호상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성명하였다.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이하 조․미)은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두 나라 인민들의 염원에 맞게 새로운 조․미관계를 수립해 나가기로 했다.
 2. 조․미는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할 것이다.
 3. ‘조선’은 2018년 4월 27일에 채택된 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했다.
 4. 조․미는 전쟁포로 및 행방불명자들의 유골발굴을 진행하며, 이미 발굴 확인된 유골들을 즉시 송환할 것을 확약했다.

굳이 재해석이 필요 없게 명확하고 선명했다. 두 나라 사이의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적대관계와 이로 인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해소하고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과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부당한 적대정책과 핵공격 위협의 산물인 자위적 억제력은 조․미관계 정상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아니 완전하게 폐기될 수 있을 터였다.

이번 공동성명을 두고, 일부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 내용이 빠졌다느니 비핵화 과정의 구체성이 없다느니, 심지어는 ‘북의 일방적 승리’ 따위 정상회담 자체를 먹칠하려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주장들이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냉전과 대결의식의 박제된 사고일 뿐이다. 이른바 CVID 주장은 이미 9․19 공동성명 이행과정의 걸림돌이 되었던 마치 패전국가에게 강요하는 주권침해 행위였다. 회담날짜가 잡히고부터 두 정상이 마주한 날까지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미국의 일방적 주장인 CVID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이는 마치 4․27 판문점 선언이 있기 전 그들이 한결같이 ‘북핵 폐기’만 외쳤던 오류를 되풀이한 것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나쁜 현상을 제거하려면 그 원인을 없애야 한다. 목청 높여 CVID를 주장하지 않아도 핵억제력의 원인이었던 적대정책과 핵공격 위협이 완전히 해소되면, 마땅히 비핵화도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이 문제는 문리적으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두부모 자르듯 해결되는 게 아니다. 원인 해소와 함께 단계별 과정이 동시적으로 이행되는 것이 합리적일 터이다.

또 하나, 정상회담을 마치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공동성명에는 없었지만, ‘조선 측이 도발로 간주하는 합동군사연습’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것은 ‘조선’ 측에서 일관되게 주장했던 적대관계 청산의 주요과제였다. 이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 발언을 또 다시 나라 안팎에서 ‘미국의 일방적 양보’라고 공격했다. 과연 그럴까? 적대관계와 군사적 긴장완화 과정이 아닐까? 이미 문재인 정부도 한․미간 조율이 된 것으로, 곧 ‘합동연습 중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그건 내 제안이었습니다. 우리는 (한․미연합훈련) 연습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돈을 많이 쓴다는 것이 중단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지적했듯이 ‘조선’ 측은 이미 지난 4월 20일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으로 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 탄도로켓의 시험발사를 중단하기로 했고, 실제로 이제까지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있다. 풍계리 핵시험장은 5개국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폭파 폐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군사연습’ 중단 선언은 그 대응조치였을 터이고, 그것은 적대관계와 군사적 긴장해소의 상호작용일 뿐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조․미공동성명의 역사적 의미와 우리의 과제를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70년 앙숙인 양 정상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파격이고 경천동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혔듯이 지구상에 남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청산하는 역사적 사변이었다. 조․미 수뇌의 만남과 적대해소, 관계 정상화로의 대담판은 두 가지로 나누어 그 역사적 의미를 새겨볼 수 있다.

하나는 제국주의화 된 서방 자본주의의 동방침략의 마지막 상처를 지우는 의미다. 미국의 조선침략은 1866년 셔먼호 사건을 시작으로 강화도 침략(1871, 신미양요), ‘가쓰라 태프트 밀약’(1905년)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봉건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지배의 공범자였고, 오늘까지 그 기조를 이어오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1945년, 식민지 피해자로 일제와 맞서 싸운 사실상 전승국 조선을 미국은 전후패권전략차원에서 남북으로 갈라 냉전체제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동족상잔이란 비극마저 겪게 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 초 동․서 냉전체제가 해소되는 과정에서도 이 땅에서는 동족대결이 강제되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핵선제공격위협 등 군사적 압살책동, 그리고 가장 잔인한 제재와 압박을 자행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조․미 적대관계 청산, 새로운 관계 수립,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체제가 제거됐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새겨지고 있다. 올바른 역사는 당대를 사는 구성원들의 불의와 모순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켜내는 과정이다. 풍요와 번영도 필요하지만 자주와 공평은 더욱 절실하다.

싱가포르 조․미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은 4․27 판문점 선언과 결코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우리 민족 전체의 운명을 가르는 외세와 분단, 불신과 대결을 허무는 선순환관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체 우리 민족의 존엄과 이익, 그리고 한결같은 염원을 이뤄내는 방향에서 남과북, 해외 온 겨레가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가 한 세기 넘게 겪고 있는 고통의 원천이 외세침략이고, 민족분단임을 옳게 인식하고, 이 모순을 청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판문점 선언은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과 자주의 원칙을 천명한 6․15, 10․4 선언을 재천명하고 그 이행을 다짐했다. 동족을 겨냥한 어떠한 외세와의 공조가 이어져서는 안 된다. 싱가포르 공동성명 또한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 청산과 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합의했다. 더 이상 북의 침공을 이유로 한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이 존재할 명분을 잃었다. 이제는 휴전선을 의식하지 말고, 남북사이 화해와 단합, 폭넓은 교류협력, 자주통일의 한 길로 나아가야 한다. 

끝으로 조․미 공동성명을 환영하고 지지하지만, 아메리카합중국 자체의 제국주의, 패권주의 본질 또한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지난 시기 제네바협정과 조․미공동코뮤니케, 9․19 공동성명 등을 어긴 장본인이다. 경각심을 갖고, 공동성명의 올바른 이행을 추동시키고, 모두가 승자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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