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욱 / 민족자주통일대회 준비모임 집행위원

 

이 글의 문제인식은 한마디로 말하면 북이 비핵화를 하면 판문점선언에서 천명한 ‘핵없는 한반도’가 실현되고 나아가 자주통일의 문이 열리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난 5월 16일, <통일뉴스>에 게재된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의 글은 우리에게 일정한 충격과 책임을 일깨워 주었다.

지면을 통한 논쟁은 성과적이기보다 오해와 선입견을 증폭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그리 선호할 만한 방식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름 용기를 내게 된 것은 유 연구위원의 글은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현 정세를 추동하는 힘과 북미간 역관계의 근본적 변화 등에 대해서 서로 관점이 상이한 부분이 있고, 이미 대중운동에 일정한 혼선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유 연구위원의 글 자체의 완결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문제인식과 주장에 대한 반론이기 때문에 글의 완성도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음을 독자들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 필자 주

 

첫째, 유영재 연구위원의 글은 ‘조속한 북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만이 평화협정과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간주할만한 ‘인식적 위험성’과 ‘현실 왜곡’의 여지가 있다.

핵대결로 압축하여 표현되는 현 정세는 1950년 한국전쟁시기 때부터 시작된 미국의 핵사용 위협과 적대정책에 맞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의 체제수호와 안전을 지켜 내고자 했던 오랜 역사적 결과이다.

문제는 미국의 대북말살정책은 '조선'에 대한 위협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미국에 의해 분단된 우리 민족의 분열과 대결을 조장하는데 구조적으로 작용해 왔다는데 있다.

전쟁을 통해 주한미군의 영구주둔과 한미동맹을 확보한 미국은 이를 지렛대로 하여 한반도의 모든 현대사의 질곡과 비극에 배후세력이자 주범이었으며 악의 중심축으로 역할을 해왔다.

시간을 뛰어 넘어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정책’과 소위 전영철의 ‘동상을 까부시는 모임’(동까모)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거치면서 '조선'은 핵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를 선언하고,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핵보유를 통해 미국과의 대결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간고한 여정에 돌입하게 되었다.

‘콩심은데 콩나고, 핵심은데 핵나는 것’이 세상의 평범한 이치다.

'조선'이 핵보유를 할 수밖에 없게 된 1차적인 원인은 조미 간에 있어 왔던 합의와 협정들을 집요하게 거부하고, ‘평양점령’ 및 ‘한미공동정권 수립’에 이어 ‘참수작전’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발을 뻗고 편한 잠을 잘 수 없게 만든, 한반도를 1년 내내 화약내가 멈추지 않는 대북핵전쟁 훈련장으로 만들어 놓은 미국의 핵위협 정책에 있다.

‘핵없는 지구’를 주창했던 오바마 역시 자신들은 첨단 핵능력을 개발하는데 집착하면서도 정작 다른 나라에게는 IAEA와 NPT라는 핵독점체제를 강요하면서 정권교체와 침략전쟁을 수시로 벌여 왔던 미국의 역대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대결관계가 해소되고, 근본적으로 호혜평등하고 평화적인 국제관계가 성립하려면 반드시 상호비례, 동시행동의 원칙아래 적대성을 감소 또는 폐기해야 한다.

조미관계가 장기화되고 복잡성을 띤 것은 '조선'이 핵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 '조선'에게 선제적이고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강요해 왔기 때문이란 것은 이미 국제적인 상식에 속한다. 오직 군산복합체와 미국의 침략주의 강경세력을 옹호하는 언론과 정치인, 학자들만이 '조선'의 호전성과 불예측성을 과대포장하여 국제여론을 호도해 왔다고 보는 것이 전 세계 양심세력들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조선'의 보도를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조미대결은 최종단계에 있으며, 세기적 대결의 종착점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조선'은 체제의 안전문제를 걸었고, 미국은 결국 최상의 전략적 가치인 ‘자국민 보호와 본토의 안전’ 문제가 경각에 달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예정된 조미협상은 이러한 위급한 정세의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은 소위 ‘레드라인’이라는 것을 놓고 지연전술과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부글부글 끓는 속내를 애써 감추며 '조선'의 핵무력의 고도한 완성을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으며, 제재와 봉쇄 외에는 별다른 묘책 없이 조미협상장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것이 국제여론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조미협상 국면의 ‘팩트’(fact)이다.

다른 나라 사례들을 거론하며 미국이 '조선'을 상대로 핵군축을 한다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라거나 ‘긴장을 재연시킨다’거나 ‘통일협상 국면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거나 하는 등의 주장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정세는 정방향으로 더욱 발전해 오지 않았던가. 리비아식도 안되고, 카자흐스탄식도 안되고, 이란식도 안되니 ‘트럼프식’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를 되돌아봐야 한다.

정세의 주도권은 태평양 건너 트럼프가 쥐고 있는 것이 아니고 판문점선언을 온 세상에 공포한 우리민족에게 있음을 살펴봐야 한다.

둘째, 판문점선언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아니다.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은 ‘민족자주선언’이며, ‘통일선언’이며 ‘평화선언’이다.

‘판문점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조항이 박히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한반도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의 전제이며, 이는 곧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여건을 획기적으로 열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가 연이어 확인되고 있는 2018년의 정세는 '조선'이 핵과 평화를 맞바꾸려 했던 2000년대와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지금은 미국 국무장관의 입에서 “미국의 이익은 '조선'이 로스앤젤레스나 덴버 또는 우리가 오늘 아침에 앉아 있는 바로 이곳으로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을 막는데 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더 이상 '조선' 핵무기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점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분명히 할 것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조선'의 체제안전과 관련한 조미간의 당면문제를 푸는 것과 조미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중장기적 정세와는 구별해야 한다.

당면해서는 모든 적대정책의 폐기와 조미평화협정 체결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다시는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문제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근본적인 안전장치들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한반도로 날아 들 수 있는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수천발의 핵무기를 그대로 놓고 '조선'은 핵과 평화협정을 맞바꾸는 정도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셀 수도 없이 번복과 부정으로 일관해 왔던 90년대, 2000년대의 클린턴과 부시의 교활성과 기만성을 되돌아 볼 때 쉽게 납득이 가는 문제이다.

'조선'의 핵과 미국의 본토안전을 맞바꾼다? 그렇다면 미국이 내놓을 것이 평화협정뿐이겠는가? 한번 정해진 정세의 방향은 우여곡절은 있을 수 있으나 쉽게 되돌려지거나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조미대결의 전략적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속한 북 비핵화’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속한 북 비핵화로는 해결될 문제보다 미국의 호기와 오만방자함만 더 기승을 부리게 할 뿐이다.

조미대결을 근원적으로 청산하는 중장기적 정세에서 조미관계, 남북관계는 ‘한반도 비핵화’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적대정책 중단과 관계개선, 평화협정이 비례적으로 다뤄지게 된다. 또한 한반도 비핵화는 기필코 자주통일과 민족공동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에는 전략자산의 퇴거와 재진입금지, 그리고 전쟁동맹 대조선 말살동맹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해 왔던 핵우산의 퇴거까지를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 '조선'에게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매진할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하는 것이고, 우리민족에게는 자주통일과 공동번영의 미래를 확약하는 것이며, 미국에게는 본토안전과 호혜평등을 지향하는 국제정치질서의 재편이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는 ‘한반도 전역비핵화’이며, ‘조미 상호동시비핵화’는 이런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또한 범부의 관점으로 볼 때 ‘조선이 핵무력을 완성한 것’은 이 세계의 정치질서가 결코 G2나 G7과 같은 열강들의 배타적 패권적 이익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닌, 타국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과 침략행위 등의 오만방자한 전횡을 합법화해주는 유엔 주도의 국제거수기 정치에서 벗어나 자주적이며 친선적이고, 호혜와 평등의 원리 위에 각 나라의 자주적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의 세계정치질서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라 판단한다.

셋째, 판문점선언을 민족주체적인 입장과 관점에서 봐야 한다.

판문점선언의 요체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한 ‘민족자주선언’이라는 점이다.

모든 문제는 ‘자주’에서 출발하여 ‘자주’에서 결론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문점선언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가 미국의 오만한 개입과 간섭을 걷어 내고 민족자주의 길로 들어서는 조건과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판문점선언의 정신이다.

‘조미 상호비핵화’가 판문점선언을 위반하거나 부정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오히려, ‘북 비핵화’를 주장하지 않으면 진보단체라고 할 수 없다거나, 그런 단체와는 연대하지 않겠다고 하는 분열적이고 독선적이며 탈민족 비주체적인 주장에 대해 먼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핵보유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고착화·장기화시킨다거나, 통일정세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거나, 평화협정을 지체시킨다거나 하는 등등의 일부 주장들은 본의 아니게 반북적·대결적 관점을 유포하는데 일조하였음을 되돌아보고 과감히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현 정세를 주인된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의 핵능력과 대한반도 정책의 동향을 주목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우리사회에서 강력한 반미역량을 구축하는 것에 더 큰 주목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국과 평화협정하려면 ‘조선’이 비핵화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미국의 민족적대 분열정책을 반대한다. 미국은 우리 민족문제에 간섭하지 말고 떠나라. 우리 민족은 6.15통일로, 미국은 아메리카로, 자주와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모든 애국민주양심들이여! 친미로 망한 나라 반미로 되살리고 친미로 불거진 한반도 전쟁위기 반미로 평화와 통일을 되찾자’고 통크게 연대하고 단결해야 한다.

정세가 어떻든 자주와 반미의 한 길에서 민족통일의 길을 찾고, 그 안에서 경제도 살리고 민생도 구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민족주체적인 관점과 태도이다.

비핵화에 대한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단결할 지점은 ‘자주와 통일’이어야 한다.

임박한 전쟁과 분단을 반대하고 사선을 넘나들며 자주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헌신을 다한 역사적인 남북연석회의 70돌이 되었다. 이제 ‘남과 북에 다 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 계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하는 데에 힘을 모으고 올해에 반드시 우리민족끼리 마음을 모아 민족의 통일과 미래를 놓고 한 자리에 모이는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이 반드시 성사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나가자.

천지개벽, 경천동지하는 새로운 민족사의 격변기에 차이를 뒤로 하고, 각자의 주의주장을 미루고, 통큰 단결을 위해서 같이 노력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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