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6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MaxThunder) 훈련과 태영호 전 공사의 국회 증언을 문제삼아 당일 예정되었던 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서 같은 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를 통해 볼턴 등 미국 고위관리들의 발언을 문제 삼아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기로 한 북미정상회담회담을 재고할 수 있다는 뜻을 표명하고 나섰다. 17일에는 <조선중앙통신>이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과의 질의문답을 보도하면서 재차 ‘맥스선더’(MaxThunder) 훈련과 태영호 발언을 언급하며 현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을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기야 19일에는 북한 적십자회 대변인이 북한의 여종업원 송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오는 23~25일 중 공개 예정인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도 한국만 접수를 받지 않고 있다. 남북 관계는 판문점 선언이 한 달도 채 안되어 급속히 냉각되었다.

안이함인가 무능함인가?

북한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이럴 줄 알았다고들 한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몸값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못해 어린아이 떼쓰기 같은 억지 황당 요구에 우리 정부 길들이기라고까지 평가한다. 그러나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자. 최근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쓴 <70년의 대화>에 나오는 구절 그대로이다. 거울 앞에서 내가 웃으면 거울 속의 상대도 웃고, 내가 주먹을 들면 상대도 주먹을 든다. 이번엔 우리가 주먹을 들었다. 그런데 주먹을 든 지도 모른다.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말귀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북한이 이럴 줄 알았다가 아니라 이러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겁쟁이 바보가 될 수 있다.

16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와 김계관 담화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남 얘기하는 듯했다. 우리가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대한 메시지이고 기싸움이라고 보았다. 통일부는 고위급회담 연기에 대해 유감이며 다시 회담에 나올 것을 촉구하고 할 말이 있으면 나와서 하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이러한 논법은 박근혜식 3단 적폐논법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여타는 아직 적폐의 언어에 더 익숙한 듯하다. 결국 친절하게도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까지 설명을 해야 했다. 미국이 아니라 정확히 우리를 지목했다.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말고 니 이야기 한거야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못 알아먹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외형적으로는 F-22랩터 스텔스전투기까지 참가한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Max Thunder) 훈련을 문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일정 범위에서 연합훈련 실시를 양보했고 훈련 역시 이미 지난 11일부터 시작되었다. 여종업원 문제도 이산가족 상봉문제와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보면 판문점선언에서 양해하고 넘어갔다고 봐야한다. 최고 존엄과 체제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태영호 공사의 발언만 가지고 북한이 이렇게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모든 것이 누적된 원인일 것이다.

상상해보면 공군은 훈련을 앞두고 국방부에 어찌하오리까 문의를 했을 것이고 국방부는 안보실에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조치 없이 흘러갔다면 지금까지 온 것이 오로지 대통령 혼자 Top-down 방식으로 온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관련 부처의 무능함의 결과로 보여 우려스럽다. 어쩌면 우리가 판문점 선언 이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버린 안이함으로 인해 오히려 인화성이 높은 발화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통일부든 국방부든 남북간 당면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거나 해법을 찾아보려는 진진한 노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판문점 선언이 상대에게 어찌 행동해도 되는 면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북한의 말이 가슴 아프게 들리는 이유이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배우 김영철이 내뱉은 명대사이다. 북한이 아무런 보상 없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유예와 함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공개하고 나서자 미국은 이미 승자처럼 오만하게 행동하고 있다. 볼턴의 개인적인 일탈이든 아니면 트럼프가 시킨 것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합의에 WMD(대량살상무기)와 ICBM(대륙간탄도탄)이 포함되어야 한다든가 사전에 핵물질을 미국으로 반출해야 한다는 언급까지 마치 점령군이 된 양 떠들었다. 폼페오 국무장관은 핵포기를 하면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북한을 유혹했지만 이 말은 오히려 독배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북한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양보한 탓일까? 조금 더 누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자신감에 넘쳐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과연 미국에 북한을 읽은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이후 트럼프가 변화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다시금 북미회담에 긍정적 신호이다.

북한은 이미 내부적으로 핵을 포기하겠다는 점을 공개해버렸다. 그런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는 것은 당당함이지 압박에 굴복한 것이거나 돈 받고 팔아먹는 모습으로 비추어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설령 북한이 제재 해제와 경제적 지원을 간절히 원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포기를 돈거래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지금 북한의 행동엔 한국에 대한 섭섭함과 실망감을 넘어 미국에 대해서는 모욕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 북한의 행동을 그저 북미회담을 앞둔 기싸움 정도로 봐서는 안된다. 미국에 대해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아느냐”는 우려일 테고 분명 내부적인 수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한에 대한 실망감이 아닐까 한다. 한미연합훈련이든 최고 존엄이나 체제에 대한 문제이든 당면한 남북관계에 대해 기대했던 남한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 대한 섭섭함과 실망스러움이다. 또 미국이 마치 다 이긴 게임인냥 저렇게 나오고 있는데 중재자를 자임한 남한이 도대체 뭐하고 있는가 하는 불만도 담겨있다. 그래도 역설적으로 남북관계를 꼭 붙잡고 가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있기에 우리가 다시 움직여야 한다. 지금 북한의 가벼운 기침이나 딸꾹질 정도로 취급하고 가서는 안될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풀어야 할 때이다. 한미정상회담에서 또 한 번 대통령의 외교역량을 믿어본다.
 

 

해군사관학교 경영과학 학사(OR)

국방대학교 국제관계 석사(안전보장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학박사(군사안보전공)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및 정외과 조교수(박사주임교수), 북한연구학회 이사,

한반도평화포럼 안보센터장, 국방부/통일부/연합사 자문위원,

예) 해군중령 (2011년 8월 19일 전역 / 군 근무20년)
- 국방부 북핵WMD담당, 대북정책기획담당, 대북협력정책담당
- 남북군사회담 10여회 참가(2007~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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