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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은 시대를 역행 말라!!!

기사승인 2018.05.15  20: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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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손미희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

4.24 한신교육투쟁 70년 추도모임과 <조선학교>를 지지, 지원하는 일본단체들과의 협의,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관련 나고야 아이치재판이 연이어 있어 조금은 긴 출장길에 올랐다.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들은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해방된 감격과 기쁨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빼앗긴 민족의 넋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으로 아이들에게 우리민족의 말과 글, 역사를 가르쳤다.

우리 동포들에게는 식민지 노예살이로 일본교육밖에 못 받던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고 보람이자 절박한 과제이기도 했다.

70여년 피눈물 나게 지킨 <조선학교>와 ‘4.24 한신교육투쟁’

“힘 있는 자 힘으로, 돈 있는 자 돈으로, 지혜가 있는 자 지혜로”라는 슬로건 아래 일본 땅 방방곡곡에 ‘국어강습소’를 세웠다. 이것이 민족교육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때로부터 70여년 피눈물 나게 지켰다. 이것이 바로 <조선학교>다.

1946년에는 500개가 넘는 학교를 세웠으나, 현재는 유치원 38교, 초급부 53교, 증급부 33교, 고급부 10교, 대학교 1교 등 홋카이도로부터 큐슈까지 일본 전국에 64교 학생 수 8천명에 이르고 있다.

일본사회에서 우리의 민족성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60만 재일동포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이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은 일본인들의 차별과 탄압, 우익단체들의 끊임없는 협박과 물리적 폭력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 견디고 버티고 투쟁하며 오늘을 만들었다.

   
▲ <조선학교>를 건설하다. [사진제공-손미희]
   
▲ <조선학교>에서 공부하는 재일동포 학생들. [사진제공-손미희]

70년 전 1948년 당시 일본을 강점하던 미 점령군 연합군사령부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일본정부는 지방자치제들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폐쇄와 학생들을 일본학교에 편입시키라는 통달을 내렸다. 이른바 “조선학교 폐쇄령’이다.

이에 격분한 전국 각지의 애국적인 학생, 동포들과 일본인들이 조선학교를 지키기 위해 죽음도 각오하고 용감하게 총궐기해 나섰다.

‘4.24 민족교육투쟁’이라고도 하고, 오사카, 고베를 중심으로 한 한신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해서 ‘4.24 한신교육투쟁’이라고도 한다.

   
▲ 1950년 12월 20일 나고야 모리야마 조선학교 폐쇄 당시의 한 장면. [사진제공-손미희]

이 폐교령에 대해 일본각지에서 민족교육과 조선학교를 지키려는 격렬한 투쟁이 전개되었고 참가자가 약 1백만 3천명, 피검자자 3천명, 부상자가 150명이 넘었고 이 중에 16살 김태일 소년이 뒷머리에 총을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사망자 중 한명은 효고현의 투쟁을 이끈 재일본조선인연맹 효고본부 위원장인 박규범 선생이었다. 그는 극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감옥사를 우려한 권력에 의해 오쿠보형무소에서 가석방된 지 4시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현재 박주범 선생님의 묘소는 경북 의성에 있다.

   
▲ 김태일 소년 초상. [사진제공-손미희]
   
▲ 경북 의성에 있는 박주범 선생님 묘소. [사진제공-손미희]

당시 16세 김태일 소년은 현재 도쿄 아오야마 공동묘지 ‘무명전사의 묘’에 있는데 효고, 오사카 등지에서 싸우다 숨진 김태일이 어찌하여 도쿄에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는 일이라 한다.

‘여공애사’의 작가 호소이 와키조가 그의 재산을 기부하여 만든 이 ‘무명전사의 묘’에는 조선인 100명 이상과 각종 투쟁에서 목숨을 잃은 일본인들이 함께 묻혀있다.

지금은 <일본국민구원회>에서 이 묘지를 관리하고 있다. 이 아오야마 묘지에서 4월 24일이면 <그 날을 기리며 되새기는 마당>이 진행된다.

4.24 교육투쟁 70주년 맞아 6번째 4.24 마당 진행

4.24 교육투쟁 70주년이 되는 해인 올해 6번째 4.24 마당이 진행됐다.

모인 사람들이 함께한 사람들에게 당시 체험을 얘기하고 서로의 심정을 토로하는 소박하지만 의미 있고 귀한 시간이었다.

<조선학교가 있는 풍경>의 김일우 선생님의 진행으로 당시 체험자인 오형진 선생님께서 그 때의 이야기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오늘을 이야기하셨다.

70년이 되는 이날, 소학교, 중학교 때의 회고를 백발성성한 노인이 되어서도 또렷이 기억하며 당시 불렀던 노래도 함께 부르고, 아직도 그때의 4.24투쟁이 계속되고 있다며 절대 포기하거나 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시고 격려하셨다.

특히, 당시 고베 조선 초등학교 1학년 때 4.24를 체험하고 10 여년 간 난치병과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타다시 선생님께서 불편한 몸으로 몇날 며칠 동안 혼신을 다해 그린 아름다운 꽃그림을 보내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더욱 울컥하게 했다.

   
▲ 아름다운 꽃그림. [사진제공-손미희]

김태일 열사를 가슴에 품고, 박주범 선생님의 시선으로 그분들의 심장으로 사는 이 분들이 이제 또 다시 역사를 이어가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열사를 가슴에 품고, 열사의 시선으로, 열사와 함께, 열사의 뜻을 지키기 위해 모인 분들이 노래를 부르며 각오하고 격려한다.

   
▲ 열사의 뜻을 지키기 위해 모인 분들. [사진제공-손미희]

마침 <우리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권말선 시인이 4.24 70주년을 기리며 특별히 시를 보내와 읽는 동안, 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다.

그 날의 투쟁이 있었기에
-<4.24교육투쟁> 70주년을 기리며

1948년 4월 24일 일본, 
미군정의 총성은
16세 소년 김태일의 심장을 헤갈랐다
일본 경찰의 칼과 몽둥이는
박주범 선생님의 뼈와 살을 찢었다
이국 땅에서나마 해방된 조국을 지키고
후대에게 민족의 얼을 물려주려는,
우리말을 잃었던 아이들에게
조선말을 쓰는 조선사람으로 키우려는
동포들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
학교를 부수고 책상을 부수고
조선의 말과 글 역사를 부수려 들었다
일제도 미제도 한통속으로 덤볐다

학교를 짓고 학생들을 기다리는 일이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일이
우리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는 일이
우리에겐 너무도 당연한 그 일이
바다 건너 일본 우리 동포들에게는
모든 것을 바치는 투쟁으로서만
목숨까지 바치는 투쟁으로서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일이었다니
일본을 둘러싼 바닷물이란
침략과 식민의 고통부터
차별과 탄압의 고통까지
조선사람들이 흘려야했던
짜디 짠 눈물이었구나

그러나 소년이었던 열사는 지금도 살아
젊은 시절 피땀 바쳐 마련한 교정에서
손주들 웃음 콩콩 박힌 책걸상
사랑어린 손길로 쓸고 닦고 꾸미시고
그 때 선생님이었던 열사는 지금도 살아
침략의 역사를 부끄러워해야지
아직도 우리 민족 괴롭혀서야 되겠냐며
아베 정권, 극우 망나니들
성성한 백발로 불호령하시고
고교무상화재판, 화요행동, 금요행동
깃발 들고 피켓 들고 전단을 돌리며
어린 학생들 지치지 말라고
<조선학교 차별반대>
투쟁의 맨 앞에 서 계시고
그 때 싸우시던 어머니, 아버지들
<우리학교>에서 배운 아이들
<우리학교> 선생님 되고
<우리학교>에서 자란 아이들
조국의 든든한 일꾼 됨을 바라시며
고난 많은 이국땅에도 통일의 봄이 오길
매일 아침 조국하늘 솟는 해를 그리워하나니

보라, 열사의 저 느꺼운 사랑
70년을 찬찬히 이어 온 교육투쟁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도
모든 어른들이 정성을 쏟아주고
총칼이나 억압, 그 무엇으로도
우리의 노래, 우리의 역사
다치지 않게 하겠노라던 다짐!
그 날의 투쟁이 있었기에
<우리학교> 우리 아이들
웃음소리 명랑하고
책 읽는 소리 창창하다
아, 승리를 말하여주는구나!

<우리학교> 아이들 부르는 희망노래
일본 땅에 차곡차곡 쌓이고
<우리학교> 아이들 부르는 통일노래
조국 땅을 감싸면
백년을 두고 흘렸던 짠 눈물도
열사의 심장에 박혔던 고통도
마침내 참해방을 맞으리니
그 때 열사의 목소리 가슴에 울리리라
“<우리학교> 우리 아이들아,
너희들은 새세대의 자랑이다
당당하게 나아가라!
너희들은 통일조국 기쁨이다
맑고 밝게 빛나거라!”

 

또다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는 <조선학교>..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

그런데 이런 <조선학교>가 또다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다.

일본당국은 민족교육의 초창기부터 눈에 든 가시처럼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을 끊임없이 감행해 왔다.

4.24교육투쟁의 시기에도, 13년간에 걸친 <외국인학교법안>의 획책, 일본 땅에서는 민족성을 키울 필요가 없으니 일본학교에 들어가라고 한 문부차관의 통달, 그리고 대학입학시험 자격에서 조선학교만 제외시키는 등 그 차별은 교묘하고도 악착같았다.

2010년 4월에 고교무상화, 취학지원금 지급제도가 도입되고 각종학교인가를 받은 외국인학교도 취급대상으로 되었으나 일본정부는 조선학교만을 제외하였다.

2012년 말에 들어선 아베 정권은 조선학교의 무상화 적용 근거로 되는 조항까지 삭제하여 <조선학교>를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각 지방자치제로 부터 지급되어지던 보조금까지 동결하였다.

2013년 2월 20일 일본의 문부과학성에서는 <조선학교>만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는 성령을 공포, 시행했다. 일본 내에 있는 모든 외국인학교가 다 적용이 되는데 유일하게 <조선학교>만 배제한 것이다.

이 부당한 차별조치에 항의해 오사카, 아이치, 히로시마, 큐슈, 도쿄의 조선고급학교 학생, 또는 학교법인이 일본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조선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의 양심적인 단체와 개인들도 <‘고교무상화제도’로부터 조선학교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조선고등학생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을 결성하여 우리 동포들의 문제에 앞장서서 기나긴 투쟁을 함께하고 있다.

일본 전역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우리 동포들, 우리아이들의 문제에 정작 나서지 못했던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한국에서도 늦었지만 2014년 6월 13일 종교, 여성, 노동, 농민, 법조,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을 결성하여 함께 연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3년 2월 그때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길고 힘든 재판투쟁 끝에 2017년 히로시마, 오사카,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각기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중 오사카의 판결(2017.7.28.)에서는 원고가 전면 승소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히로시마(2017.7.19.)와 도쿄(2017.9.13.)에서는 원고 패소라는 부당판결이 선고되었다.

그것도 수년간의 투쟁이 재판정에서는 단 몇 초 만에 “원고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판의 비용은 원고 측에서 부담한다”의 몇 글자로만 하고서......

4.27 판문점선언 날에 아베 정권은 시대를 거꾸로 가다

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이고도 역사적인 날!

10년의 단절을 넘어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나는 모습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고, 분단을 걷어내고 통일을 만들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동포들은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남과 북의 정상들은 민족 앞에, 역사 앞에, 전 세계를 향하여 4.27 판문점선언을 했다. 전 세계가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바뀔 한반도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도 일본의 아베 정권은 우경화 행보를 계속하며 우리 재일동포들을 탄압하고 있다.

일본 땅에서 우리의 민족성과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며 60만 재일동포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곳! 자랑스러운 <조선학교>, 이 <조선학교>가 또다시 역사적이고도 역사적인 날에 아픔과 차별을 당했다.

히로시마, 도쿄, 오사카 보조금 지급재개요구 항소심재판에 이어 아이치에서도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부당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4.27 판문점선언으로 한반도가, 세계가, 화해와 평화의 발걸음을 시작한 날!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을 정당화하는 판결이 선고되어 일본 아베 정권이 시대를 거꾸로 가는 치졸함과 한심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부당판결' [사진제공-손미희]

히로시마, 오사카, 도쿄에 이어 네 번째로 사법 판단이 내려진 이번 나고야지방재판소 판결에는 현지인 아이치 현뿐만 아니라 일본 전국에서 조선학교를 지지, 지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500명 이상이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길게 길게 줄을 늘어섰다.

5년 이상의 투쟁이, 500명 이상 모인 이날의 재판은 5초!!!

“원고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재판의 비용도 원고들이 부담한다”

단 30글자로 주문하고 재판관들은 도망치듯이 후다닥 빠져 나갔다.

일본말을 모르는 나로서는 재판이 끝난 지도 모르고 멍!~~하게 있었다. 옆에서 통역을 해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소리를 지르려다보니 벌써 재판관들이 부리나케 나가고 난 뒤였다.

재판관들이 도망가듯이 나가버린 법정은 분노로 가득 찼고, 방청석에 들어가지 못해 재판소 앞에서 기다리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한 분노의 항의와 구호를 외치고 또 외쳤다.

   
▲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 부적용은 차별이다" [사진제공-손미희]
   
▲ "조선학교에도 배울 권리를" [사진제공-손미희]
   
▲ "부당판결 반대한다" [사진제공-손미희]

판결 선고 후 저녁에 열린 보고집회에서는 판결의 내용과 문제점에 대해 변호인단이 조목조목 설명했고, 조선학원과 원고, 어머니회, 지원단체들이 부당판결에 항의하는 규탄과 결의의 목소리로 집회장은 가득차고 넘쳤다.

   
▲ 보고집회에서는 판결의 내용과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는 필자 손미희 대표. [사진제공-손미희]
   
▲ "조선학교의 차별을 반대한다. 고교무상화를 적용하라!" [사진제공-손미희]
   
▲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며 다짐하고 있다. [사진제공-손미희]

특히, 집회에 참가한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학생들이 무대에 올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며 <소리여 모여라. 노래여 오너라!>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하염없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눈물만 났다.

분단조국을 물려 준 것도 미안한데 또다시 남의 땅에서, 차별과 탄압 속에서도 또 길 위에 서야하는 아이들에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역사적인 4월 27일에 온 민족이 기뻐하고 흥분해있는 민족의 축제장이 된 이날에도 식민의 땅 이역만리에서는 차별이, 탄압이, 분단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고 반드시 이겨서 우리민족이 꿈에도 그리고 그리던 통일조국을 만들어 가겠다는 우리의 신념은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확인했다.

단순한 재판의 승리가 아닌, 민족의 승리!, 정의의 승리!, 역사의 승리를 향해 우리는 가고 있다!!!

남과 북이, 우리민족이, 전 세계가 평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일본의 아베 정권만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이런 아베 정권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아니, 가련하기 짝이 없다.

5월 3일 대규모 개헌 반대집회,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려

2018년 5월 3일!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바꾸려는 야욕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3일 헌법기념일을 맞아 도쿄 오다이바에서 대규모의 개헌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6만 명이 모여 평화헌법 조항인 헌법9조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좋다. 일본헌법" [사진제공-손미희]
 
   
▲ 5월 3일 헌법기념일을 맞아 도쿄 오다이바에서 대규모의 개헌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6만 명이 운집했다. [사진제공-손미희]
   
▲ 5.3헌법집회 안내서. [사진제공-손미희]

옆자리에서 열심히 통역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설명도 사람들의 열기에 파묻혀서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한국처럼, 촛불항쟁, 정권교체, 4.27, 남과 북, 정상회담, 코리아, 평화, 판문점...”이란 단어가 계속적으로 들렸다.

중간중간 “아베 정권을 규탄한다”, “아베 정권을 타도하자”라는 소리까지도 들렸다.

한 저널리스트는 ‘일본의 평화집회에 노인들이 많은 이유는 전쟁세대라 무엇보다도 평화의 중요성을 알기에 그런 것이다’라고 했고, 피폭 피해자들의 단체인 일본원수폭 피해자단체에서는 ‘헌법9조는 피폭자에게는 생명’이라며 자위대가 헌법에 명기되면 일본은 전쟁을 하는 국가가 된다‘고 규탄했다.

저널리스트로부터, 국회의원, 홋카이도, 오키나와의 각 지역에서부터 함께한 사람들로 오다이바 광장은 규탄과 결의의 소리가 가득했다.

다양한 단위의 호소와 연설이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가슴 뜨거웠던 것은 조선학교 아이들이 나와서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반대와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호소를 하고 ‘고향의 봄’과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노래를 할 때였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들이 들리고 덩달아 말 모르는 집회장에서 함께 훌쩍거렸다.

   
▲ 조선학교 아이들이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반대와 고교무상화 적용을 위한 호소를 하고 ‘고향의 봄’과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노래를 불렀다.[사진제공-손미희]

마무리 연설 중 평화포럼 후쿠야마 신고 대표의 말씀은 더 가슴에 남는다.

‘남과 북이, 한반도가 평화로 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 일본에서도 평화의 발걸음을 함께하고, 무엇보다 우리들이 지금부터라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재일본동포들과 어떻게 함께하고 연대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라는 것이다.

집회 후 행진이 진행되었고, 다음날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전달된 신문과 사진속의 나!

‘아이구! 깜짝이야!!!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

일본 공산당 기관지 ‘적기’라는 신문 1면에 떡하니...

한국에서처럼 집회를 할 때 손을 끄덕끄덕 높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 ‘적기’ 신문 1면에 떡하니 나온 필자. [사진제공-손미희]

남과 북 우리민족이 손을 잡으면 세상은 우리를 보며 함께 손을 잡지만 우리가 등을 돌리면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들러리가 되는 것이다.

온 세계가 한반도의 4.27 판문점선언을 하던 그날로부터 함께 발걸음을 맞추려는데 유독 아베 정권만 뒷걸음치는 우스운 행동을 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이제 그만 전쟁의 야욕을 버리고 식민지배를 사죄하고 북일관계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야만적인 재일동포에 대한 탄압도 즉각 중단하여야 하고,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도 즉시 멈추어야한다.

온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지 않으려면 발걸음을 맞추어라!

혼자 시대를 역행하지 말라!!!

 

손미희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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