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원래 유력한 후보지였으나 확정되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이 나오면서 계속 움직였다가 9일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이다. 한달 전 (싱가포르) 얘기 나왔다고 해서 그때 이미 확정이 됐다는 건 아니다. 계속 요동치다가 원래 자리로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1일 아침 청와대 핵심관계자가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확정되어 공표되기까지 과정을 이같이 요약했다. 북한이 선호했던 평양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싱가포르와 판문점에 비하면 가능성이 낮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일(현지시간) <CNN> 보도도 대체로 일치한다.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가지는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나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같은 미국 측 고위당국자들은 처음부터 싱가포르를 선호했다.

장소 선정에서 ‘그림’을 중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미국 고위관리들은 ‘중립성’을 중시했다. 워싱턴 DC와 평양이 그들의 선택지에서 배제된 이유다. 중국과 러시아 등 옛 공산권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리적 요소와 이동수단도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지난 7~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랴오닝성 다롄을 전용기를 이용해 방문했다. 이를 통해 미국 관리들은 김 위원장이 전용기를 이용해 싱가포르까지 이동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변수는 북미정상회담에 이은 남북미 3자 정상에 의한 종전선언을 제안한 한국의 문재인 정부였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두 개의 세기적 이벤트를 실시할 장소로 판문점을 강력 추천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흔들렸다. 판문점에서의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4월 28일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75분 간 통화했다. 판문점과 싱가포르가 가진 장단점에 대한 의견이 오고갔다.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판문점) 평화의집/자유의집이 제3국보다 더 대표성이 있고 중요하며 영속성이 있는지” 물었다.

<CNN>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한 켈리 비서실장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싱가포르에서도 판문점에서와 같은 기념행사가 가능하다고 입증하려 애썼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 가는 것은 김 위원장에게 너무 유화적이고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판문점 개최를 포기했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를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볼턴 보좌관으로부터 ‘6.12 싱가포르 개최안’을 통보받았다. 9일 방북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장소와 날짜를 최종 확정하고, 억류 중이던 미국인 3명을 데리고 귀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새벽 2시 42분(미국 동부시간) 매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미국인들의 귀가를 환영하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잠시 뜸을 들인 뒤 트윗을 통해 장소와 날짜를 깜짝 발표했다. 

‘속도’를 중요시해온 문재인 정부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6.8~9)’ 이전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기를 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옵저버로 참석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남북-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하길 원했다. 

11일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판문점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싱가포르 개최가)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니까 우리는 그것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판문점과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북미정상회담 직후 남북미 정상의 종전선언을 붙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정창현 한국현대사연구소 소장도 11일 새벽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세기의 회담인데, 뭔가 좀 아쉽다”고 토로했다.

(추가,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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