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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교통문화③ 지하철(편)

기사승인 2018.04.23  10: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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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96회)

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자체 생산한 새 전동차운행은 평양지하철 역사의 분기점
       
필자가 볼 때 평양지하철의 역사는 자체기술로 생산한 새로운 최신형 전동차가 운행된 2016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크게 구분된다. 최신형 전동차가 도입된 후에는 기존과 달리 전동차 안에 김일성 김정일 두 지도자 영상(사진)이 걸려있지 않았다. 또한 새 전동차가 도입되기 전에는 모든 전동차들의 앞부분 좌석을 특별좌석으로 분류해 ‘전쟁로병 자리(우대석)’만 마련했으나 새 전동차가 도입된 후에는 ‘노약자석과 임산부석’도 추가적으로 마련되었다.

또한 1973년 평양지하철이 정식 개통되면서는 그 이후 중국 장춘시객차공장(장춘궤도객차주식유한회사)에서 생산한 새 전동차를 사용했으며 2000년부터는 독일에서 생산한 신형객차를 수입하여 사용하였으나 2016년 1월부터 운행되는 신형 전동차는 북의 자체기술력으로 생산해 보급하고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어보였다.

또한 그동안 평양지하철 전동차는 자동시스템으로 열리고 닫히는 서울지하철과는 달리 수동으로 열거나 닫아야 했으며 역내 열차봉사원이 표지판을 높이 들고 수신호로 지하철 도착과 출발 신호를 보냈으나 신형 전동차는 출입문이 자동으로 개폐 되었다. 또한 전동차 객실 내부는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전동차가 어느 역을 통과하는지 알도록 했으며 플랫폼에도 전광판을 설치해 승객들의 주의사항을 알리고 있었다.

또한 과거 필자가 처음 지하철을 탑승하던 시기에는 지하철 내부와 승강장 전체 공간을 절전모드로 전환해서 전체적으로 침침하거나 어두웠으나 김정은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에는  역사 내부와 에스컬레이터 통로, 승객이 탑승하고 하차하는 승강장 공간 등이 매우 밝고 환했으며 전동차들도 전력부족으로 인한 열차 지연 현상은 거의 없이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 평양지하철 천리마선 봉화역 역사 앞에선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지하철 천리마선의 승리역 지하계단 입구. 평양은 각 지하철역마다 역사건물이 있으나 승리역만 역사가 없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황금벌역 역사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건국역 역사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지하철 매표소 앞에선 평양시 승객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지하철 매표소 입구 앞에 선 필자. 뒤로 노선 안내판이 보인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하는 승객들과 지하철 남녀 보안원들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지하철 개찰구 모습. 정액권 티켓을 구입한 승객은 개찰구 위에 표를 찍고 출입할 수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가장 붐비는 역은 승리역, 가장 화려한 역은 영광역
         
평양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에 도착해 표를 구입하고 티켓 개찰구를 통과해야한다. 그리고 지하 플랫폼으로 가기 위한 첫 행동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에스컬레이터를 타야만 한다. 유사시 방공호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일반 승강기(엘리베이터)가 비상용으로 있고, 에스컬레이터도 있으나 평소에는 승강기는 개방을 안 하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 외에 다른 이동 루트나 방도가 전혀 없다.

지하 150-200미터로 내려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타니 마치 끝없이 깊고 깊은 거대한 동굴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오르내리는 승객들은 과거와 달리 서로 웃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덕담을 나누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으며 친구들과 가벼운 장난을 치는 학생들이나 연인끼리 팔짱을 끼거나 밀착한 채 오르내리는 모습도 간혹 목격할 수 있었다. 의복들도 더욱 화려해지고 고급스러워졌으나 퇴폐적인 의상을 입은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평양지하철 요금은 2000년대 초반까지 국돈(북 화폐)으로 2원이었으나 2010년 이후에는 5원으로 인상됐다. 평양지하철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매표소에서 현금을 주고 일회용 티켓을 구입해도 되고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승객들은 정액카드를 구입해서 카드를 찍고 개찰구로 출입할 수 있다. 일회용 표나 정기 카드 없이 개찰구를 통과하려고 시도하면 개찰구 게이트가 닫힌다. 필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카드 없이 개찰구를 지나가려고 하는 외국관광객들이 간혹 있었으나 평양시민들은 그런 승객들이 전혀 없이 모두가 질서를 잘 지켰다.

필자가 시간을 측정해보니 가장 깊은 지하철역은 개찰구에서 승강장(플랫폼)까지 5분가량 걸렸다. 전동차는 보통 5∼7분 간격으로 다녔으나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는 2분 간격으로 왔다. 원래 지하철 운행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이며 보통 운행간격은 5분으로 아침과 저녁 출퇴근시간대에는 3분 간격으로 운행되었으나 2017년 초반에 확인결과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1시30분까지 연장 운행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마 배차시간과 시작시간, 마감시간에 관한 문제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 듯 했다.

승객들의 표정을 보니 학생들도 조잘조잘 떠들지 않고 조용했으며 일반 성인들도 전동차 내에선 거의 말이 없이 침묵을 지키며 평온해보였다. 간간히 휴대전화(손전화) 사용자가 눈에 띄었다. 북에서는 휴대전화로 로동신문을 읽을 수도 있고 갖가지 생활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인트라넷이 깔려있어서 과거와 달리 손전화에 집중하는 젊은 승객들도 많아졌다. 또한 지하철 창문을 응시하거나 독서에 집중하는 승객들도 보였고 컴퓨터 노트북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태블릿을 사용하는 승객은 보지 못했다.

독서를 즐기는 승객들은 차량을 기다리는 승강장이나 객차 안에서 흔하게 목격되었으며 객실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플랫폼에 설치된 신문 게시판에 모여 머리를 들이밀고 조용히 신문을 읽는다. 물론 지상에는 신문을 판매하는 가판대도 있으나 모든 역의 승강장에는 로동신문 판독대를 설치해서 로동신문 6면을 그냥 서서 편하게 읽으면 되기 때문에 그런 듯했다. 아무튼 지나칠 정도로 질서정연하고 조용한 승객들의 빈틈없는 모습들이 나에게는 언제쯤 익숙해지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이나 서방세계 지하철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하느라 옆 사람을 처다 보지도 않는 삭막한 풍경도 없었다. 서로 밀치고 밟고 떠밀고 저녁에는 술 먹고 토하고 여성들을 추행하고, 소매치기가 들끓는 서울지하철과는 비교되었다. 왁자지껄한 서울지하철에 비해 모두 조용하고 차분하고 격조 있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서로에 대한 예의를 잘 지키는 평양의 승객들에게 매료되었다는 의미이다.

지하철역 가운데 가장 붐비는 곳은 승리역이었다. 승리역사를 빠져나오면 주변에 만수대언덕, 김일성광장, 인민대학습당, 평양제1백화점, 평양학생소년궁전, 만수대의사당 등 중요한 국가기관 건물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에 항시 붐볐다. 특히 김일성광장에서 평양시민궐기대회나 군사퍼레이드나 열병식 등이 벌어지는 국가행사 날이 되면 수많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간혹 안전사고도 발생하기도 한다. 지하철 내부가 다른 역에 비해 가장 크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역은 아무래도 영광역이다. 선로 주변 풍경도 웅장했고 높다란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영광역은 평양역(국철)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근무하는 로동당 중앙당 청사와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역이다. 승강장에는 3미터 높이의 김일성 동상 입상이 설치돼 있고 천정에는 대형 무리등(샹들리에)이 달려 있어 은은한 조명 아래 동상을 더욱 돋보이게 했으며 승강장 전체 벽면은 갖가지 벽화로 장식돼 있다. 모든 평양지하철 역사에는 지상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는데 반해 영광역에만 두 개가 있다.

   
▲ 지하철 전동차를 타기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승강장을 내려가는 필자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모습. 우측 두 개는 올라가고 맨 좌측은 내려온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서울지하철과 평양지하철
       
평양에 지하철이 개통된 시기는 서울지하철 1호선보다 1년 빠른 1973년이었다. 1년 먼저 개통했지만 외형적인 발전은 서울이 더 빨랐다. 그러나 서울지하철이 아무리 눈부신 초현대식 최첨단 장비나 설치물로 운영이 된다 해도 서울지하철과는 달리 인민의 지하궁전으로 불리는 평양지하철은 건축형식과 양식에 있어 주체성과 민족성이 철저히 반영되었다. 설계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하철 공간을 활용한 결과물을 볼 때 철두철미하게 인민들의 이익과 편의를 우선시하였음을 익히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잘롭닉(Jalopnik)’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지하철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세계 1위에 ‘서울 지하철’을 선정했다. 이어서 ‘평양 지하철’은 세계 9위로 선정했다. 같은 남북조선 우리민족이 모두 10위권 안에 들었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그러나 서울지하철은 단지 시설의 편리함과 첨단장비를 적용한 현대식 운영방식임을 인정하나 출퇴근 시간에는 마치 전쟁터를 불사할 만큼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거기에 따른 폐단 또한 매우 부정적이다.

필자는 서울지하철이나 미국의 지하철과는 판이하게 다른 평양지하철의 일상을 느끼기 위해 방북 시마다 반드시 지하철을 탑승하였다. 처음 탑승했을 때 보다 최근에는 새로운 전동차가 운행되어 매우 밝고 화사한 느낌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플랫폼에서 빨간 피켓을 들고 전동차의 도착과 출발 신호를 보내주는 아리따운 여성봉사원들과 제복을 입고 전동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들의 모습은 그대로였고 여전히 이채로웠다.

그동안 운행되던 전동차 객실내부는 나무벽면으로 처리되어 포근한 이미지를 주었는데 새로운 전동차는 최첨단 금속성 내장재로 마무리하였기 때문에 서울지하철을 탄 것인지 평양지하철을 탄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그렇다고 모든 객차가 새 전동차로 교체된 것은 아니다. 이제 조금씩 늘려가는 추세에 있다. 아무튼 늘상 인파들로 몸을 부딪혀야하는 복잡한 서울지하철과는 사뭇 다른 평양지하철은 운치와 낭만 그 자체이다.

평양지하철만의 특징은 캡슐카나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철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가파르고 까마득하다. 보통 10∼30m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도착하는 서울과 달리 평양에서는 지하 150∼200미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도대체 그 옛날 70년대 초반에 어떻게 그런 고도의 에스컬레이터 기술력을 확보했는지 미스터리이다. 서울에도 깊은 곳에 설치된 지하철 궤도가 있는데 이는 1996년 11월 개통한 8호선 남한산성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깊이가 겨우 지하 56미터이니 그야말로 평양 지하철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서울지하철은 서울시와 위성도시 전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데 비하면 평양지하철은 십자형의 2-3개 노선이기 때문에 매우 단조롭다. 또한 서울지하철은 354개의 역을 보유하고 있고 수도권에만 562개의 전철역이 있다. 부산지하철을 비롯해 지방의 지하철을 모두 합하면 전국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평양지하철은 모두 17개의 역만 보유하고 있으니 숫자적으로는 비교가 되지는 않는다. 노선도 평양은 3개 노선이지만 서울은 10개 노선이며, 지하철의 길이도 서울은 332Km이지만 평양은 39Km 정도라 서울지하철 길이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지하철은 10개 노선의 지하철이 하루 5백만 명을 태우는 반면 평양지하철의 하루 이용객은 대략 30만 명으로 매우 약소한 규모지만, 인구대비 남측과 북측은 절반 수준이며 서울과 평양인구는 4분의 1수준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평양에도 출퇴근 시간대는 혼잡한 편이다. 평양지하철은 각 역의 명칭이 고유명사가 아니라 추상명사이다. 지하철역 이름이 하나같이 전투적이고 혁명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봉화, 승리, 통일, 개선, 전우, 붉은별역 등이 사용되고 있으나 애초에는 봉화역이 당창건, 승리역은 공화국창건, 통일역은 혁명전통, 개선역은 조국개선, 전우역은 토지개혁, 붉은별역은 경제국방역 등으로 잠정 결정됐으나 최종 승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현재 이름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기둥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밖에 없는 서울지하철과 달리 평양지하철은 각 역마다 역사(건물)가 자체적으로 있으며 지상의 역사가 없는 지하철역은 승리역이 유일하다. 아울러 지하철 역사 출입구가 모두 하나뿐인데 반해 영광역만 두 개다. 또한 서울지하철은 지상 구간이나 고가 구간에도 전동차 철로(궤도)가 설치돼 지하철 전동차가 달리는 반면 평양지하철은 철저하게 땅속만을 달린다.

또한 서울지하철 노선은 교각 또는 해저 터널을 통해 한강을 가로지르는 반면 평양지하철은 대동강을 지나지 않고 오로지 땅 속만을 통과한다. 그 결과 대동강을 건너지 못하기 때문에 동평양 쪽에는 지하철 자체가 없다. 대동강을 건너려면 지하 전동차 궤도가 지상으로 나와야 하는데 평양 지형상 급경사가 돼 곤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북 당국은 대동강 하저터널을 뚫어 동평양 쪽으로 지하철을 연결하려고 5∼6차례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평양지하철 객실 안에서도 서울지하철처럼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가장 흔한 것은 승객들의 돈주머니를 터는 소매치기인데 대부분 지방에서 원정 온 부랑아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다고 한다. 필자도 가짜 산삼을 진짜 산삼으로 속이는 어린 학생들에게 대동강변에서 당한 적이 있었다.

   
▲ 플랫폼이 하나로 형성된 평양지하철역 광경. 이런 경우 플랫폼을 가운데 두고 상행선, 하행선 전동차 철로가 양쪽 벽면 쪽으로 배치된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플랫폼이 두 개로 형성된 평양 건설역 플랫폼 모습. 이런 경우 상행선, 하행선 전동차 철로가 서로 쌍둥이처럼 붙어있듯 나란히 배치된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전동차가 도착하자 탑승하려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전동차 도착과 출발 출입문 개폐 여부를 기관사에게 수신호로 알려주는 여성 철도봉사원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제복을 입고 전동차를 운전하는  기관사 모습.[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전동차 내부 모습. 대체적으로 생각에 잠겨있거나 조용히 독서나 손 전화를 보는 승객들이 많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 지하철은 그 자체가 미술관
      
지하철을 타 보면 그 도시의 정신과 철학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 서울지하철과 평양지하철은 마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상징처럼 각기 고유한 특성들이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어느 평양의 인민은 지하철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 말하기를 “심청이는 인당수에 뛰어들어 용궁을 보았다지만 우리 인민들은 지하로 100메타만 내려가면 용궁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지하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평양에 있는 철도박물관과 전차박물관에 가면 평양시민들이나 북녘의 인민들이 왜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지니는지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장식무리등)는 오색찬연한 꽃다발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장식됐으며, 곳곳에 아름답게 장식된 고풍스런 대리석 기둥들이 줄지어 있고 아치형으로 처리한 천장과 벽화들은 차량을 기다리는 인민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그 웅장함과 예술적 분위기는 평양지하철이 뉴욕이나 모스크바 지하철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승강장의 선로 벽면에도 모자이크화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내부 인테리어 장식에는 대리석, 부각, 조각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특히 ‘부흥역’과 ‘영광역’은 내부가 가장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 얼마 전까지 해외동포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단골로 직접 탑승하고 견학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 두 곳은 특히 지상역사를 들어가 개찰구를 통과해 지하를 내려가면 대형 샹들리에와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고, 벽면에는 혁명을 상징하는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돼 지하 궁전을 연상하도록 해 마치 ‘지하의 평양’이라 일컬을 정도로 매우 화려하고 인상 깊은 곳이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하공간을 격조 있는 독특한 미술관으로 보이도록 한 일등공신은 이곳저곳에 그려진 화려한 장식 벽화 때문이다. 그 자체가 ‘벽화 미술관’이었다. 지하철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공간을 적절한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지혜와 경륜이 놀라울 뿐이다.

에스컬레이터에서 하차해 넓고 큰 계단을 내려오면 플랫폼(승강장) 공간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큰 계단을 내려오기 직전의 큰 벽면에는 어느 역을 가던지 “선군 조선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문구가 적혀있거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과 관련된 사실화나 혁명화를 대형 벽화로 그려 놓았다. 또한 벽과 기둥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양식의 모자이크나 소조로 장식했는데 인민들의 노동의 삶과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삶을 다양한 형식으로 묘사하였다.

또한 영광역에 모셔진 김일성 동상과는 달리 개선역 플랫폼 공간에는 양복정장을 입고 오른손을 들고 있는 김일성 주석의 황금 반신상이 모셔져있다. 주변공간은 상대적으로 어둠속에 있는데 반해 동상은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며 지하공간을 압도했다. 승강장 샹들리에 조명이 비추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뿐 아니다. 개선역보다 더 멋지고 화려한 동상은 광복역에 모셔진 김일성 동상이다. 이 동상은 평양지하철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화려한 기념물 중 하나일 것이다.

청년시절의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하던 무장 복장을 입고 그 위에 외투를 걸친 모습을 형상화한 이 동상은 침침해야 할 지하에 한 송이 찬란한 꽃이 피어 있는 듯 보였다. 순백의 샹들리에 조명아래 흰색 둥근 아치 벽면 앞에 모셔진 동상은 다른 동상들과는 달리 유난히 황금색이어서 눈이 부셨다. 황금동상은 지금까지 보아온 만수대 언덕 동상이나 다른 동상들과는 달리 완전히 순황금 동상으로 보여 매우 찬란했으며 지하철의 모든 작품들과 조형물들중에 가장 인상 깊은 랜드 마크가 되었다.

필자는 지하철 대형벽화가 17개 역마다 각기 그 이름에 걸맞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부흥역’의 벽화는 젊은 노동자들이 직장과 일터로 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그렸다거나 ‘영광역’의 경우에는 전후 폐허가 된 평양 시가지를 복구한 모습을 형상화했다. 어느 역에 가면 철로 벽면에는 ‘조선독립만세!!’라는 글씨와 함께 일제 강점기 3.1운동 장면을 그린 대형벽화가 그려져 있었는데 대개 선로 안쪽에는 전쟁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벽화나 혁명화가 그려져 있었다.

어느 역에 가면 플랫폼 기둥에는 “여성해방만세!”라는 제목의 모자이크벽화가 그려져 있고, ‘황금벌역’에는 황금과일과 풍성한 가을을 연상하는 타일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이런 그림들은 캔버스에 그린 대형 유화처럼 보이지만 한 발짝 다가가면 조그만 색자기(타일) 쪽을 이어 붙여 만든 소위 ‘우리식 쪽무이(모자이크) 벽화’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벽화의 크기와 규모에 놀라고 아름다운 색상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대형 유화같이 보일 정도로 섬세하였고 색깔도 화사하고 선명했다.

또한 동판화도 아주 많았다. 대미결전을 상징하는 청동판화들을 보면 소위 남조선 농부 일가족이 주한미군기지 부대 앞에서 출입금지 간판을 보고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을 그린 장면, 지하철 공사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등을 걸어놓았다. 또한 항일투쟁 당시 백두밀영에서의 회의장면, 혹은 항일 돌격대가 나팔수의 신호와 함께 일제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 등의 동판화가 거의 모든 역마다 부착돼있었다.

   
▲ 과거에는 전력을 아끼기 위해 하루 중 잠시 절전모드로 전환하여 절전했다. 절전 모드로 바꾼 승강장 공간에 필자의 얼굴이 빼꼼 보인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절전모드에서 다시 밝게 조명이 켜진 지하철 승강장 공간.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외국인 담당 안내원과 함께 승강장 공간을 돌아보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승강장 벽화 앞에 선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승강장 신문판독대에서 로동신문을 읽고 있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동판화 그림이 부착된 통일역 승강장 기둥.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개선역 승강장 공간에 모셔진 김일성 주석의 반신상 황금동상을 배경으로 상행선과 하행선 전동차가 정차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개선역 승강장 공간에 모셔진 김일성 주석의 반신상 황금동상.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광복역 승강장 공간에 모셔진 항일투쟁 복장의 김일성 황금동상.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김일성 주석이 지하철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을 담은 벽화.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지하철 공사 노동자들이 땀흘려 지하철 공사 작업을 하는 모습을 담은 벽화.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신형 지하철 전동차를 보니 김종태, 신영복 선생이 생각나다
     
지하철 내부와 플랫폼에서는 외국인이 사진촬영을 하는 것에 대해 특별한 제한은 없었다. 그러나 지하철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에는 군사시설로 전환되기 때문에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금지한다.

필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신형 전동차에 탑승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승객들의 표정은 대체로 수줍어하는 느낌이었다. 이때 불현 듯 잠시 김종태, 신영복 두 선생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들이 생각난 이유는 2016년 1월 1일부터 새롭게 운행된 이 지하철 전동차가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에서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다. 제품을 만든 회사이름이 1969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서 가장 주동자급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 김종태의 이름을 땄기 때문이며 신영복 선생도 그때 김종태와 함께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의 연혁을 보면, 처음에는 1945년 11월 평양철도공장(서평양철도공장)으로 설립되어 1961년 전기기관차를 처음 생산하면서 '평양전기기관차공장'으로 발전됐고 다시 회사 명칭이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로 변경된 것이다. 김종태 선생이 사형당한 뒤 해주사범대학교 이름도 ‘김종태사범대학교’로 바뀌었으며 평양전기기관차공장도 ‘김종태기관차연합기업소’로 바뀌었다. 재판결과 김종태 선생은 사형을 언도받아 결국 집행되었고 무기징역을 언도받은 신영복 선생은 20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석방되었다.

북 자체능력으로 제작된 새 전동차가 탄생한 배경을 살펴보면 김정은 위원장의 대담성과 추진력에 따른 결과물로 보였다. 2015년 7월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를 현지지도하며 “우리식 지하철 전동차를 개발”할 것을 최초로 지시했다. 원래 이 기업소는 객차, 전동차, 궤도전차 등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공장들과 설비들을 갖추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완성 시기가 문제였다. 김 위원장이 신형 전동차를 당창건 기념일까지 개발해 완성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 주변의 걱정을 불식시키고 불과 석 달 만에 전동차 제작에 성공한 것이다.

그후 그해 10월에 다시 이곳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은 큰 만족을 표시하였고 드디어 그해 11월 19일 밤 10시30분 새로 개발된 지하철 전동차의 시운전 행사에 참석했다. 개선역에 직접 현지지도를 나와 통일역, 승리역, 봉화역, 영광역까지의 구간을 왕복하는 운행 과정을 지켜보았으며 큰 만족을 표시했고 관계기술자들과 플랫폼에서 기념촬영도 했고 전동차에 직접 시승도 했다. 그 후 2016년 새해 1월 1일부터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 2일 토요일, 새로운 지하철 전동차량이 지하궁전에 자강력 제일의 기적소리를 뿜어내며 운행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박정희 정권 당시 통혁당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김종태(맨 우측) 선생과 신영복 선생(우측에서 네 번째). 김종태는 사형이 집행됐고 신영복은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20년형을 복역하고 출소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기존 전동차는 ‘전쟁로병우대석’, 새 전동차는 ‘임산부석’과 ‘노약자석’도 추가
     
자체기술로 개발 생산한 신형 지하철 전동차는 지금도 운행을 하고 있지만, 서너 대만 교체되어 일부 시간대에만 운행되고 있었다. 보통 출퇴근 시간에는 약 5~7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으나 워낙 지하철 노선 전체 구간이 짧다보니 신형 전동차가 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할 만한 사실은 전동차 객실 출입문 위에는 차량이 통과하거나 정차하는 역과 주행속도 등을 표시하는 전광판(디스플레이)이 각 객실마다 설치돼 있었으며 전자광고판 스크린도 설치되었다. ‘붉은별역’과 ‘부흥역’을 잇는 천리마선에 투입된 최신형 전동차는 차량 내부 조명이 기존 전동차량보다 밝아졌고 객실은 핑크색 손잡이와 좌석들이 설치되어 여성 승객들의 취향을 고려한 듯하였고 노약자나 장애인 전용좌석이 설치되었다.

그동안 기존의 평양지하철 전동차 안에는 서울지하철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좌석이 있었는데 이는 전쟁참가 노병을 위한 좌석이 따로 마련됐다는 사실이다. 다른 나라처럼 전동차 객실 내부 양쪽에 노약자나 임산부, 환자,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좌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영웅이나 로력영웅 혹은 영예군인(상이군인), 전쟁참가로병(6.25전쟁 참전경력이 있는 노인)들의 자리가 우선적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과연 선군정치를 추구하는 사회다웠으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퇴역군인들을 사회적으로도 매우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새 전동차가 도입된 후에는 노약자보호석과 임산부석이 마련돼 있어 천만대행으로 생각되었다. 객실 내부구조는 버스처럼 가운데에 통로가 있고 양쪽으로 좌석이 배치돼 서로 마주보면 앉게 돼있는 구조이다. 그동안 경로석이나 여성전용칸이 별도로 없이 로병우대석만 있었지만 배가 부른 임산부나 노인들, 환자들 혹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여성들이나 유아를 업은 산모들이 객실에 나타나면 승객들이 순식간에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했다.

또한 지하철 플랫폼에는 비디오 패널 광고도 새롭게 등장했다. 비디오 패널에는 심장약이나 아동용품 광고가 주기적으로 나왔으며 서방세계의 옥외 전광판처럼 생긴 플랫폼 전광판에는  승객들에게 당부하는 주의사항 글자들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올라갔다. 또한 객실 출입문 위에는 전광 스크린에는 해당 전동차의 운행속도와 경유하는 역이 표시되었고 요일과 날씨는 물론 그날의 온도 습도등도 표시돼있다.

평양에는 평양지하철 외에도 통근형 전동차를 이용한 통근열차로 평양뿐만 아니라 신의주, 혜산, 무산 등지에서도 운행되고 있는데 이들 객차에도 전산화가 되어 디스플레이를 적용하는 중이라고 한다. 평의선, 평남선 국철은 1구역 대동강역 → 평양역 → 서평양역, 2구역 대동강역 → 평양역 → 보통강역까지 운행되고, 트램으로 불리는 무궤도전차는 서평양역에서 영광역 쪽으로 뻗은 선, 서평양역에서 부흥역 쪽으로 뻗은 선, 앞 두 갈래 선 중앙 쪽을 가로지는 선 이렇게 세 갈래로 나뉘어져 운행되고 있는데 더욱 편리하도록 현대식으로 변모중임을 알 수 있었다

   
▲ 기존 전동차 안에는 전쟁참가로병 우대석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신형 전동차에는 노약자와 임산부석이 추가로 마련됐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소에서 제작한 최신형 전동차가 플랫폼을 향해 진입하고 있다.[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최신형 전동차가 출발하기 직전 출입문이 열려진 상태. 객실 내부에는 여성 열차봉사원이 개폐여부를 점검하며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지하철의 역사를 알게 되다
     
필자 일행을 보호해주는 안내원과 해설자가 평양지하철의 역사와 좋은 점, 특징들에 대해 설명해주는 바람에 평양지하철에 대해 더욱 소상히 알게 되었다. 특히 여성 철도봉사원과 역무원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양지하철은 제1차 7개년 계획기간 중인 1961년에 착공돼, 1973년 9월 남북노선 천리마선 즉 1호선이 개통됐고 그 뒤, 1978년 9월에는 제2단계 공사로 동서노선 광복역과 낙원역을 잇는 2호선 즉 혁신선이 완공됐고, 1987년에 봉화역에서 부흥역간의 연장공사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 평양지하철은 1957년 1월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께서 수도건설과 관련한 교시와 함께 평양지하철도 건설을 최초로 발기하셨습니다. 그 결과 1961년 지하철도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건설 초기부터 제4계단 건설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의 현지지도와 수백 차례의 교시를 내려주신 결과에 의해 오늘날의 웅장한 공화국 지하철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안내원이 설명한 4단계를 살펴보면 1단계는 1973년 9월에 개통된 천리마선(붉은별-봉화역 구간 12km)을 말하며 2단계는 1975년 10월 개통한 혁신선 일부(락원역-혁신역 구간)를 말한다. 3단계는 1978년 9월 개통한 혁신선(혁신역-광복역 구간 추가 공사) 총 20km 길이를 완공한 것을 말하며 4단계는 1987년 4월 개통된 만경대선(천리마선의 봉화역에 영광역, 부흥역 연장)을 말한다.

정리하자면, 그동안 평양시내 지하철 규모는 2개 노선에 총 17개 역이며 총 연장 길이는 35km에 이르렀다. 그중에 천리마선이 20km, 혁신선이 15km이다. 별도로 추가 건설된 만경대선의 3개 역의 길이는 천리마선에 포함되어 총 길이가 24km가 되어 현재 총 길이는 39km이다. 결국 평양지하철은 40km에 가까운 길이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승차요금은 구간에 상관없이 당시에는 무조건 2원이었으나 지금은 5원이다.

노선도를 보면 동서노선은 혁신선 “광복 - 건국 - 황금원 - 건설 - 혁신 - 전승 - 삼흥 - 광명 - 락원”과 남북노선은 천리마선 “승리 - 통일 - 개선 - 전우 - 붉은별”이고, 만경대선은 “부흥 - 영광 - 봉화”이다. 현재 총 길이 24km인 천리마선과 혁신선 등 두 갈래로 나뉘며 경우에 따라 천리마선에 만경대선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동평양, 만경대 노선의 지하철을 추가 건설을 계획하였으나 아직 답보상태이다.

평양 최초의 지하철은 공화국 건국 25주년인 1973년 9월 6일 맞춰 1호선인 천리마선이 개통되어 1974년 8월에 개통한 서울지하철 1호선보다 1년 앞서 개통되었다. 본래 총 17개역이 있었지만 김일성 주석 서거 후 유해가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하차하는 혁신선의 광명역이 폐쇄돼 현재 16개의 역만 운영되고 있다. ‘광명역’은 ‘락원역’과 ‘삼흥역’ 사이에 있었다.

잘 알다시피 평양의 지하철은 핵 대피소를 겸해서 만들어진 방공호 기능으로 건설되었기 때문에 고심도(高深度) 지하철이다. 도시철도의 기능과 공습대비 방공호의 기능이 있다 보니 그동안 보안상 외국인에게는 천리마선의 부흥역(보통강호텔 앞)부터 영광역(평양역 앞)까지 1개 구간 정도만 부분적으로 개방을 해왔다. 그 후 점차 공개 구역이 넓어져서 관광객 이용가능 구간은 만경대선(봉화-영광-부흥 구간)과 천리마선의 영광역, 승리역 등 내부 장식이 가장 잘 된 몇 개의 역만을 외국인에게 참관을 허용했었다.

그러나 2014년도부터는 평양지하철의 모든 역사를 외국인 관광객에게 일제히 개방하고 직접 전동차를 탑승 가능하도록 허락했다. 해외동포나 외국인 관광객에게 처음으로 평양지하철 2호선(혁신선)의 이용도 허용된 것이다. 관광상품에 1호선(천리마선) 모든 역을 둘러보고 다음날 2호선의 모든 역도 다 방문하도록 했으며 개인적으로 안내원을 동반한 상태에서 모든 전철역의 방문도 가능해졌다. 외국인들이 1호선 부흥, 영광, 봉화, 승리, 통일, 개선, 붉은 별 등의 역들을 모든 역들을 둘러보고, 다음날 2호선의 광복, 건국, 황금벌, 낙원역 등 모든 역들도 다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혹은 1호선 역들을 다 방문한 후 평양시에서 최초로 하루 24시간을 여는 식당인 ‘해맞이 식당’을 방문하는 코스도 있었다. 또 외국인 관광객들은 1, 2호선을 모두 견학하고 개성시, 함흥시의 공업 지역들도 방문하고, 외국인들에게 최초로 소개되는 평양시의 ‘경흥바’라는 동네 맥주집도 방문하는 상품도 있었다.

   
▲ 플랫폼에 마련된 전광판에는 반복적으로 글자가 올라가며 승객들 주의사항 문구가 뜨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전동차 객실 내부 출입문 위에는 전광판 디스플레이가 작동되어 전동차의 속도, 경유역 등을 표시해주고 날자와 날씨 온도 습도 등도 표시해준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승강대 신문판독대 옆을 지나는 필자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최재영 9191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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