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우사김규식연구회는 17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한 남북협상 7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구, 김규식 선생과 남북협상에 참가한 그 일행은 대의명분과 현실정치 사이에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민족적 대의명분을 선택함으로써 그 뒤 한국민족사에서 통일이야말로 자신의 명예와 기회를 희생하고서라도 취해야 할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와 우사김규식연구회가 17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한 '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한 남북협상 70주년 기념 학술회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축사를 통해 70년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하에 남한만의 5.10 단독선거가 정해진 상황에서 1948년 4월 19일부터 진행된 이 협상에 참여했던 김구와 한독당 세력, 김규식과 중도파 인사 등 통일정부 수립 노력을 지향했던 인사들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단독정부 수립노선을 극복하고 통일정부를 세우려는 최초이자 최후의 정치회담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학술회의를 주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해방된 조국에서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첫 과업이자 소망은 통일국가 건설이었다. 그 같은 꿈은 외세와 단독정부 지지세력에 의해 무참히 깨졌지만 그 어둠속에서도 분단을 막기 위해 백범과 우사가 기울인 노력은 참으로 빛난다"고 밝혔다.

우사김규식연구회 김재경 회장도 "우리 민족의 선각자 백범 김구 선생과 우사 김규식 선생 등은 지금으로부터 70년전인 1948년 4월에 국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 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개최 중인 평양을 방문하여 분단을 방지하고자 남북협상을 진행하였다. 비록 역사는 소망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그분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력을 가진 민족지도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회의는 1948년 4월 19일부터 23일까지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열린 '전 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와 연석회의가 끝난 후인 4월 26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전 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이하 남북지도자협의회)와  4김회담(김구·김규식·김두봉·김일성) 등을 망라해 '남북협상'이라는 주제로 삼았다.

▲ 우사김규식연구회 김재경 회장(왼쪽)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오른쪽).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북한에서 보는 남북협상과 남북관계 개선전망'을 주제로 발표한 이신철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2018년 개최될 남북정상회담은 1948년의 남북협상과는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다르지만, 통일된 국가를 수립하려는 목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1948년 남북협상은 북측이 주도하고 남측의 좌파와 중도파들이 적극 참여했던 남북연석회의만이 아니라 남북요인회담과 남북지도자협의회가 더불어 개최되었고 실질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던 경험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1948년 남북협상은 비록 그 이후 남북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그 성과가 빛이 바래버렸지만, 전쟁기간 북으로 '모셔진' 임시정부 인사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계속적으로 상호 인정을 통한 통일을 주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나아가 1960년 4.19혁명을 거치면서 북한이 연방제 통일론을 주장하게 되는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김구와 김규식이 북의 요청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였거나 북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면 1948년 남북협상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결국 그들의 노력으로 실질적인 남북대화가 성사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로부터 1948년 남북협상의 과정과 결과는 확고부동해 보이는 북한의 혁명전략, 민주기지론을 남측의 역량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실지로 변화시켰던 가장 대표적이고 가시적인 사례라고 언급했다.

이상수 전 <한겨레> 기자는 '1948년 남북협상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1948년 시작되었던 한반도의 전략적 대화가 바야흐로 다시 이어지려 하고 있다면서 코앞으로 다가온 남북·북미 정상의 대화에 보탬이 될만한 70년전 남북협상의 교훈을 몇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1948년 남북협상이 열리던 때 북측의 '민주기지'가 상대적으로 우위였던 점과 지금 북한이 핵무기를 사실상 개발한 상태인 점이 닮았고, 당시 자주적 통일국가의 수립을 위해 미국과 소련의 협력이 절실했던 것처럼 지금도 북핵문제의 해결이 한반도 영구적 평화체제 구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도 유시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벽초 홍명희가 1946년 12월 발표한 '나의 노선'에서 쓴 바와 같이 전민족의 일치분투가 필요한 때 서로가 알력하지 않도록 힘쓰고 밖으로는 미소 양국의 의려(의심과 염려)가 풀리도록 적어도 반미나 반소의 태도를 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는 입장과 같이 '한반도 영구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전략적 대화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와 관심사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남북협상의 역사적 재평가)와 박태균 서울대 교수(마지막이 아니라 첫번째 시도이다-버취문서를 통해 본 김규식)가 주제발표를 했고 이승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 한승동 <한겨레> 기자, 장원석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학예연구사와 김숙임 (사)조각보 공동대표가 토론자로 나섰다.

한완상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이번에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잘되어서 세계사적으로 새로운 평화의 전기가 마련된다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1989년 12월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선언은 했지만 결국 헛선언이 된 세계 탈냉전선언을 한반도에서 완성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피력했다.

이어 "그렇게만 된다면 1948년 4월 온몸으로 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으로 발걸음을 옮긴 백범과 우사의 의지가 오늘 발현되는 것일텐데, 여러 사람의 기원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축사를 보내 "김구·김규식 선생 일행이 통일조국의 염원을 안고 38선을 건너 남북협상에 임한 지 70년이 흘렀다. 두 분의 열정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은 각자의 길을 갔고, 민족분단은 가슴아픈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두 분께서 걸어가신 길은 지금도 민족통일을 향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면서 "이제 열흘 후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남북 공동번영의 길을 여는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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