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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와 안철수, ‘인지불능’의 위기에 처하다

기사승인 2018.04.18  22: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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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우리 세기는 무신론자의 시대로 특징지을 수 있다. 특히 철학자나 과학자들 가운데서 유신론자이거나 나아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혐오스럽고 저질로 여겨질 정도이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얼마 전에 서거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서구에서 기독교를 구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문화 인류학자로 알려진 그가 무신론자에서 천주교인이 된 데는 그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가 사용한 용어 가운데 ‘모방욕망’과 ‘인지불능’(認知不能)은 그가 기독교 옹호론자가 된 배경이 된다. 그는 기독교 성서 속에서 그의 사상을 형성시키는 논리를 발견한다. 간음한 여인을 바리세인들이 예수 앞에 끌고 와 돌로 쳐 죽이려 할 때에 예수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하나 둘 쥐었던 돌을 놓고 흩어지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바리세인들은 인지불능이 아니었다. 인지불능은 자기도 똑 같은 잘못을 하고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죽는 순간에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누가복음 22장 34절)라고 했다.

예수의 이 말은 인지불능이 죄이고 인지불능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용서해 달라고 한 것이다. 지라르는 예수의 이 점에 가장 감동을 받은 것 같다. 지젝은 누가복음의 이 한 구절로 단행본을 한 권 저술할 정도 이다. 바울의 로마서 전체가 인간들의 인지불능 상태를 고발하는 것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바울도 자기 자신이 인지불능 상태였던 것이 죄인 것을 깨닫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롬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롬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지라르와 함께 수학자이고 논리학자 이었던 괴델 역시 예외적으로 유신론자이었다. 괴델의 제2 정리는 “어떤 체계이든지 그 체계 안에서는 진위를 판가름할 수 없다”이다.

지라르가 많이 영향을 받은 사람 가운데 괴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전반적인 사상 체계가 괴델 정리를 그대로 원용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인지불능이란 다름 아닌 괴델 제2 정리를 그대로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중이 제 머리 못깍는다’와 같은 속담이 인지불능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의 원죄란 사실 이 인지불능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인지불능 상태에서 해방되는 길은 자기 밖으로 나와야 하는 데 이를 ‘메타화’라고 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회개를 ‘메타-노이아’라고 한다. 인지(노이아)를 메타화 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생각 자체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홍준표와 김성태, 그리고 안철수란 정치인들을 보면 이들이 인지불능 상태가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김기식 사태로 국회의사당 앞에 천막까지 치면서 농성 중이다. 그런데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이들이 여당일 때에 똑 같은 짓을 하지 않았던가. 예수가 농성장 앞에 나타나 너희 가운데 피감기관으로부터 돈 받지 않은 자 있으면 김기식에게 돌을 던지라고 한다면 이들은 황당하게도 돌을 던질 자들이다.

그러면서 예수를 향해서는 폭력 방조죄로 몰아 갈 것이다. 간음한 여인을 죽이라고 했다고 여론 몰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인지불능 상태에 빠진 언론들은 돌을 던질 것이다. 아니 던지고 있다.

그러면 문재인 여당은 어떤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선관위의 결과가 나오자 수용했다. 피감기관으로부터 돈 받은 자들 전수조사 하자는 것이다. 자기들이 설사 거기에 포함되더라도 말이다. 자기가 한 말에 자기를 포함시키는 것을 두고 메타노이아, 즉 회개라고 한다. 정치적인 행위일지라도 회개를 한 척 했다. 척이라도 해야 않느냐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

지라르나 괴델 같은 철학자들은 인지불능 시대에 기독교가 할 역할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자기들의 논리에 철저하다가 무신론자들의 시대에 유신론자임을 자임하고 기독교에 입교까지 한다. 한국 같은 기독교가 거듭나는 길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인지불능에서 그것을 회개하는 길 밖에 없다.

지라르에 따르면 홍준표나 안철수의 인지불능은 ‘모방욕망’을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인지불능을 주변 사람들에게 모방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예수를 죽인 자들은 남이 하니깐 따라 예수를 죽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행동의 대부분은 모방욕망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모방욕망 때문에 만인이 만인에 대한 싸움이 아닌 만인이 한 사람에 대한 공격이 생기는 데, 그 때 공격의 대상이 ‘희생양’이다. 오늘도 한국 사회에서 저 야당 지도자들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 아파한다.

‘도그 빌’이란 영화에서 무균질의 청교도들만 사는 마을에서 가장 추악한 범죄가 다 벌어지지만 막상 그 마을 안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모른다. 마을 전체를 폭파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여주인공.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 역시 지라르가 말하는 모방욕망이 아닐 때에 그리고 인지불능 상태가 아닐 때에 성공할 것이다. 성공을 빈다.

 

김상일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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