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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한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

기사승인 2018.04.10  2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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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정상덕의 평화일기(55)

정상덕 (원불교 교무)
 

"위대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신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문제와 사회적 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건축에 있다."

   
▲ 르 코르뷔지에. [사진제공-정상덕 교무]

2017년 3월 중순, 예술의전당 전시를 통해 만난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스위스, 1887~1965)는 건축에 대한 신비로움과 포근함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3시간여 동안 생소한 이름과 어려운 건축용어들을 이해하며 천천히 르 코르뷔지에를 마주했습니다. 그의 사람을 향한 자비로운 건축은 제 삶의 화두인 평화와 하나되어 마주했습니다. 
 
전시실을 나오며 함께 둘러본 동지들과 토론하고 메모하고 사진으로 기록하며 이미 건축은 제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고 있고 그 분은 저의 건축인생에서 존경하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에 평화일기를 통해 그 분의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시대의 문제와 사회적 균형을 해결하는 혁명적 건축을 꿈꾸다
 
세상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던 20세기 초, 기존의 생각과 질서를 뒤집는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각 분야에서 놀랄 만한 변혁의 바람이 일었습니다. 산업화와 기계화의 영향은 인간의 내면이나 정신세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의학, 미술, 문학, 과학에서 시작한 변혁은 건축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사람이 사는 집’에서 더 많은 사람이 더 효율적인 공간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집’으로 건축의 개념이 바뀌는 시대, 그 선두에 르 코르뷔지에가 있었습니다. 그가 펼쳐낸 혁명의 이름은 바로 ‘건축’이었습니다. 
 
건축의 중심은 인간이다, 인간을 위한 건축을 짓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르 코르뷔지에의 가장 유명한 선언에는 건축의 중심은 바로 인간임을 외치는 그의 신념이 녹아있습니다. 당시 건축은 권위와 지배를 위한 기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권위적인 공간에서 인간을 진정으로 탈출시킨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 스스로에게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권리와 존엄성을 쥐어준 혁명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의 결실 뒤엔 참을 수 없는 반대와 모욕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도 당시 보수적인 건축가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혁신적이면서 합리적인 설계와 시대를 앞서나가는 이론으로 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르 코르뷔지에게 집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스쳐 지나가는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편리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한 황금비례로 현대건축의 모태를 창안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집을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빠르게, 더 많은 집을 지어줄 수 있을까,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당한 집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 고민의 결과로 나온 건축 공법이 바로 돔이노 이론입니다.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와 혁신을 뜻하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결합한 단어인데, 최소한의 철근콘크리트 기둥들이 모서리를 지지하고 평면의 한쪽에서 각 층으로 갈 수 있게 계단을 만든 개방적 구조가 돔이노 이론의 핵심이었습니다.

또한, 돔이노 이론에 이어 ‘모듈러’라는 수치를 고안해내는데 수치의 기준은 바로 사람의 몸이었습니다. 사람이 팔을 들어 올린 높이, 즉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한 수치들이 건축의 핵심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인간이 생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비율, 사람이 살기에 가장 편안한 최적의 수치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 곳곳은 폐허로 변했고 거리에는 집이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 도시의 많은 건물이 헐리고, 새로운 도시 건설 계획이 세워졌습니다. 그는 도시 재건을 위해 프랑스 임시정부의 의뢰를 받아 시대의 어려움을 건축으로 해결하고자 모듈러 이론을 적용해 콘크리트 구조의 대규모 공동주택인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s d'habitation을 설계하였습니다. 이는 현대식 아파트의 모태, 세계 최초의 아파트였습니다. 
 
건축이란 틀에 놓여진 그는 예술적 감흥을 잔뜩 채워 놓고도 건축적 윤리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엔 건축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민을 위해 지은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들른 친구이자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의 미술보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이 훨씬 더 진보했음을 눈치챘다고 합니다. 
 
열린 손, 인류를 위해 나는 과연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독립하면서 인도에 펀자브 정부가 탄생하며 찬디가르에 수도를 세우면서 르 코르뷔지에에게 도시계획을 부탁했습니다. 독립은 했지만 여전히 평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던 인도 펀자브 정부의 제안에 르 코르뷔지에는 도시계획에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함께 넣었다고 합니다. 평화 메시지는 26m 크기의 거대한 청동으로 만든 ‘열린 손’ 기념비입니다. 
 
추상적 구성과 상징으로서 청소년기 때부터 그를 매료시켰던 ‘열린 손’을 주제로 택한 이 기념비에는 르 코르뷔지에 평생의 건축적 신념과 인류를 향한 간절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인도와 세계,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대한 성명이자 또한 미래에 대한 유언이기도 했습니다. 이 열린 손Main ouverte 기념물은 세상에 갈등과 분쟁은 종식되어야 하며, 세상은 모든 걸 평화롭게 수용하고 열린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는 한 손 가득 받았고, 한 손 가득 주었다. 
열린 손은 내 생의 유일한 정치적 행위입니다. 
세상은 곧 모든 갈등과 분쟁을 중단하고 평화와 화합의 정신의 상징인 이 열린 손을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4평으로의 회귀
 
거장이 만든 작은 집은 결국 ‘본질’에 대한 질문을 현대사회에 던지는 것 같습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아내 이본느와 함께 말년을 보낸 별장은 4평의 통나무집이고, 이 크기는 도시계획과 건축의 거장이 삶과 인생의 본질에 대해 세상에 던진 메시지로 느껴집니다. 

불필요한 치장과 허식 없이 효율적으로 구성된 4평이라는 공간을 보여주며 최소한의 것만 있어도 정신적으로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이 공간은 그가 설계한 라 투레트 수도원의 수도사 방과 똑같은 4평입니다. 더할 것 없는 완전한 공간 4평에서 인생의 본질과 만나 성찰하는 이 카바농은 그의 유명한 모듈러 이론에 기초하여 지어졌습니다. 
 
사회를 향한 잦은 외침으로 정치인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 르 코르뷔지에는 시대를 아우르는 사상가이자 개혁가이자 건축가였습니다. 건축을 통해서 더 나은 인간 사회를 외치며 대중 앞에 선 인물이었습니다. 카바농도 4평이라는 최소한의 공간을 통해 조형이나 형태보다는 그 안에 담긴 사유를 중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가 남긴 작은 오두막집이 화려한 건축 작품들 속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도 이같은 그의 사유가 인정받은 결과라고 입을 모읍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평화입니다
 
2018년 4월 10일 정 상 덕 합장

 

   
 

원불교 교무로서 30여년 가깝게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함께해 왔으며, 원불교백년성업회 사무총장으로 원불교 100주년을 뜻 깊게 치러냈다.

사회 교화 활동에 주력하여 평화, 통일, 인권,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늘 천착하고 있다.

정상덕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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