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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호 위원장의 헌신을 잊지 않을 것이다”

기사승인 2018.03.11  10: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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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유동호 남북경협비대위원장 경협기업인장’ 영결식 엄수

   
▲ '고 유동호 남북경협비대위원장 영결식'이 11일 현대아산병원 영결식장에서 열렸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 민족이 하나되는 그날, 우리 민족을 위한, 한민족의 경제협력을 위한 유동호 위원장의 헌신은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11일 오전 7시 20분 현대아산병원 영결식장에서 ‘고(故) 유동호 남북경협비대위 위원장 경협기업인장(葬)’ 영결식이 경협기업인들과 유가족 등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정양근 민간남북교류협의회 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제야 남북관계가 정상화 되어 갈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새로운 남북경제협력의 모델을 구상하고 경협사업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북한에 달려갈 유동호 위원장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고 애석해했다.

정양근 위원장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남북관계와 우리 경협인들을 위해 노력해온 유동호 위원장이 그립다”며 “우리 동지들이 유동호 위원장의 헌신을 잊지 않을 것이다”고 기렸다.

   
▲ 장례위원장 정양근 민간남북교류협의회 회장이 경협기업인을 대표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고인은 금강산관광이 중단되고 5.24조치로 인해 남북경협이 전면 중단되자 2013년 6월 남북경협 관련 단체들이 망라된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기업 피해대책과 남북경협 재개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특히 2016년 10월 4일부터 시작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 100일 철야농성과 2017년 2월 16일부터 시작된 무기한 농성 등 총 260일간 노숙농성을 벌였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추도사에 나서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모든 경제협력 사업이 중단되어 경협기업인들과 동료들이 절망과 고통에 휩싸일 때, 고인은 행동으로 그 고난을 극복하려 애써왔다”며 “남북관계를 나락으로 치닫게 한 권력에 맞서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행동하던 와중에 모진 병고를 얻게 되었으니 기실 그의 죽음 또한 분단적폐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복 의장은 “이제야 말로 분단과 전쟁을 끝내고 남과 북이 굳게 손잡으며 평화와 번영, 통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는데, 고인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보내게 되니 황망할 따름”이라며 “번영된 통일조국을 꿈꾸며 헌신해 온 유동호 위원장의 뜻은 앞으로 모두에게 이어져, 남아 있는 분단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남북단합의 시대, 직접민주주의와 평화의 시대를 활짝 꽃피워 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추도했다.

   
▲ 고인과 노숙농성을 함께한 김남하 남북경협비대위 자문위원(왼쪽)과 김영일 효원물산 회장이 '대정부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영결식에는 남북경협 기업인들과 유가족 등이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고인과 함께 통일부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였던 김남하 남북경협비상대책위원회 자문위원과 김영일 효원물산 회장은 ‘대정부 호소문’ 낭독을 통해 “정부가 남북경협기업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하는 단 하나의 길은 5.24조치 해제와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상식과 도덕적 잣대만으로도 보상의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웠던 박근혜 정부는 시간만 지연시키면서 끝내 해결해 주지 않았다”며 “대북기업인들이 지난 9년의 세월을 길거리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정부는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엄동설한 비닐천막 속의 노숙과 새벽잠을 뒤로하고 정부청사 앞 출근 집회를 하루도 빠짐없이 5개월 10일간 진행했었다”며 “10개월 기간 4계절을 자동차 소음이 귓전을 울리는 길거리에서 잠을 청해야했고 아침에 세수 할 때에는 코안에서 새까만 먼지가 묻어 나왔다”고 그간의 아픔을 토로했다.

특히 “2016년 10월 4일 시작된 노숙농성으로 2017년 4월 초순부터는 유동호 위원장의 건강상태에서 잦은 설사와 혈변으로 이상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암세포의 생성과 성장에서 가장최적의 환경은 자동차 타이어먼지와 장기간 자동차에서 뿜어대는 까스 흡입에 있었다는 것을 병원 검진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뒤늦게 발견된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 9일 향년 5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들은 “촛불민심으로 교체된 문재인 정부로 부터도 보상의 약속을 받아내기까지는 2개월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유동호 위원장의 병환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며 “오늘 이 장례식에서 유동호 위원장의 죽음은 현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고 현 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 고인의 부인과 딸 등 유가족이 슬픔에 잠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영결식은 참석자들의 헌화로 끝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고인은 2003년 (사)지금우리가다음우리를(지우다우)를 설립해 금강산 육로관광과 남북대학생 공동행사 등을 진행했고, 2006년 (주)바두바투를 설립, 개성공단 인근에 주유소를 착공하는 등 활발한 남북교류를 진행했지만 5.24조치 등에 가로막히자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주력했다. 2015년 한겨레통일문화상과 2016년 통일뉴스 창간 16주년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경협기업인 황창환 씨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에는 경협기업인 김기창 씨가 고인 약력 소개를, 이선영 씨가 조시 낭독을 했으며, 딸 유지원 씨가 유족의 인사를 전하고 헌화로 마무리됐다.

고인의 유해는 양재동 추모공원에서 화장해 장지인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된다. 당초 노숙농성을 벌였던 광화문 통일부 앞 노제를 추진했지만 진행되지 못했다.

(수정, 12일 09:44)

김치관 기자 ckkim@tongilnews.com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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