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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이미제중(以美制中)’ 전략

기사승인 2018.03.09  12: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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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전현준 우석대 초빙교수

전현준(우석대 초빙교수)

 

지난 3월 5일 깜짝놀랄만한 사진 한 장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미국의 핵잠수함 칼빈슨호가 베트남의 다낭항에 기항한 사진이었다. 베트남의 다낭항은 미국이 1965년 베트남 침공을 위해 세계 최강 미해병대가 상륙한 곳이다. 베트남으로서는 치욕적인 항구에 미국의 최첨단 항공모함을 합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가히 ‘저승 사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할 무장력을 갖춘 칼빈슨호는 1990년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상대로 치러진 전투에 참여했고, 9.11테러 사태 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첫 공습 작전을 전개했다. 2011년 해군특공대(Navy Seals)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후 그의 시신이 칼빈슨호로 옮겨진 후 북아라비아해에 수장됐다.

베트남이 칼빈슨호를 받아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 간 갈등은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베트남 침략은 기원전 179년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베트남은 기원후 938년까지 1000년 이상 중국에 병합되었다. 이 기간 베트남인은 중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숱하게 싸웠다. 기원 후 2세기경 중국의 3국시대 때 촉나라 책사 제갈량이 베트남의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 일곱 번 놓아주었다는 고사가 있을 정도로 베트남은 중국에게 끈질기게 저항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민족 역시 기원전 수십 세기 전부터 중국과의 갈등을 겪었고 고조선이 한나라에 의해 망했으며 고구려도 중국과의 투쟁에서 패배하였고 발해도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고려는 원나라에게, 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는 신세였다. 이로 인해 중국은 한반도를 자신의 영토로 생각하고 한반도 역사도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속내로 언젠가는 한반도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어야겠다는 야심이 있다. 중국은 1950년 한국전쟁 때 ‘항미원조’라는 명분으로 참전하였다.

최근들어 중국은 급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남북한 모두를 무시하는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남(한)에게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이유로, 북(한)에게는 핵무기 개발을 빌미로 무시하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북에 대한 무시와 오만은 옛날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했던 것과 비슷할 정도이다. 북은 이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고 중국은 이에 대해 응징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도와주는 척하면서도 UN안보리 제재를 매우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북에 대한 정치적 외교적 압력을 함께 구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전통우방인 북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한 번도 정상회담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북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미국과 짜고 김정은 정권을 강제로 교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북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한국전쟁 때처럼 수십만의 군대를 일시에 투입하여 북을 점령할 수 있다. 북은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북의 불신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서는 김일성 주석이 중국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있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김정 국무위원장 역시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미국과의 ‘2.29 합의’를 깨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비록 실험은 실패하였지만 중국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시진핑 시대’가 막 개막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이때부터 김정은 위원장을 불신하고 바꾸려는 생각을 한 것같다. 2018년 2월 13일 일본의 NHK는 흥미로운 보도를 하였다. 2017년 2월13일 김정남이 암살당한 배경에 김정남을 북의 최고지도자에 앉히고 싶다는 장성택의 발언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NHK는 중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장성택이 김정일 사망 후 8개월 뒤인 지난 2012년 8월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과 회담한 자리에서 김정남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대화 내용이 저우융캉 전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설명했다. 저우 전 상무위원이 부하를 통해 회담 내용을 도청한 뒤 이듬해인 2013년 초 이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은 위원장에게 밀고했다는 것이다. 장성택은 밀고가 행해진 뒤인 2013년 12월 북한에서 국가반역죄 등으로 처형을 당했고,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암살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을 철저히 불신하게 되었고 중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갔다. 2015년 8월 12일 북한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는 광복 70주년 기념보고서에서 중국 정부를 향해 “말로는 북남관계의 개선을 바란다고 하면서도 북남 사이에서 때에 따라 이편도 들고 저편도 드는 식으로 자기 안속을 차리는 외세도 있다”며 우회 비난했다. 그런가하면 “북남 사이에 합의되지 않은 그 어떤 일방적인 청탁을 들어주는 것 자체가 우리 민족 내부 문제에 간섭하고 궁극에 가서는 우리 민족의 적으로 되는 행위임을 똑똑히 알고 신중히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북한은 대북 제재·압박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7년 5월 3일 ‘북중 관계의 기둥을 찍어버리는 무모한 언행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공조 모드인 중국을 향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북이 그동안 ‘주변국’, ‘이웃 나라’ 등으로 지칭하며 중국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던 관례에 비춰볼 때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직접 중국을 맹비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통신은 25년 전에 이뤄진 한중 수교에 대해, “중국은 한국과 경제교류의 테두리를 벗어나 정치·군사적으로까지 관계를 심화시켰다”며 “동북 3성은 물론 중국 전역을 반공화국 전초기지로 전락시켰다”고 과거부터 품어온 불만까지 끄집어냈다.

더욱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초대해 톈안먼 광장 주석단에 자리하게 했던 사실까지 상기시키며 “한국과 세상 보란 듯이 입 맞추며 온갖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북의 이 같은 대중국 비난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대북 영향력 행사를 요구받은 중국 당국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한 데 이어 추가 대북 제재를 시사하고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까지 거론한 데 대한 반발로 보인다. 북은 또 논평에서 “이미 최강의 핵보유국이 된 우리에게 있어서 선택의 길은 여러 갈래”라며 중국을 버리고 러시아를 의지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7년 5월 4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해외판 소셜미디어 매체인 ‘협객도(俠客島)’는 “북한이 북·중 관계가 악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다”면서 “비이성적인 인간처럼 핵을 반대하면 적이고 지지하면 벗이라고 하는데 이런 시각에서 보면 북은 이미 벗이 하나도 없고 전 세계가 다 북의 적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이 한반도를 통일시키려고 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북·중 관계는 이미 전통적인 우호 관계 시기를 지났고 새로운 양국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면서 “국가 간의 친선은 공통된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북은 자신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후 북은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였다. 북은 2017년 5월 21일 탄도미사일의 지상 발사용 미사일인 북극성-2형을 발사하였고 이것은 500km를 날아 동해상에 떨어졌다. 당시 북은 북극성-2형에 달린 카메라에 찍힌 미사일의 상승 장면을 보여줬는데, 중국 랴오닝 반도가 포함되었다. 이는 북극성-2형을 포함한 북의 탄도미사일이 중국 주요 도시를 겨냥한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는 북이 중국에 대해 전에 없던 고강도 무력 시위를 벌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북은 지난 2012년 중국의 제18차 당 대회 때는 북중 친선 내용을 담은 800자 분량의 축전을 보냈지만, 2017년 당 대회에는 북중 친선이란 표현을 뺀 고작 세 문장의 축전을 보냈다. 과거 혈맹으로 인식됐던 북중 관계에도 큰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북의 중국 무시는 2017년 11월 17일부터 20일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이 기간동안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의 특사인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장을 만나지 않았다. 이것은 정의용 안보실장 등 남의 대북 특사를 극진히 대접한 것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었다.

북은 2018년 1월부터 중국을 비방하는 주민교양을 강화하고 있다. 대북제재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중국의 배신 때문이라는 식으로 주민교양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의 대북제재로 생활난이 가중되면서 중앙당에 대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모든 책임을 중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북은 중국을 북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을 기회로 이윤만 추구하는 ‘속검은 돼지’라고 비하하고 있다. 이 같은 반중 감정은 최근 중앙에서 진행하는 회의나 정세강연을 통해 전달되고 있고 특히 여맹회의에서 반중 감정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의 대북 특사단이 지난 3월 6일 가지고 온 합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남북 정상회담 4월말 개최, 미국과 한반도 비핵화 논의 의향, 대화 중 핵 및 미사일 발사 중지, 한미합동군사훈련 용인 등은 전문가들도 예상못한 성과였다. 특히 그 동안 북은 비핵화 문제는 미국과만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서 남이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을 불쾌해 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모든 것을 시원시원하게 풀어나갔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대전략 때문이다. 북은 김일성시기부터 ‘중·소 시계추 외교’를 펴서 국익을 극대화하였다. 김일성은 중국이나 소련 모두 북을 버릴 수 없는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여 중국과 소련을 왔다 갔다 하면서 경제 원조를 얻어 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 못지않게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협이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은 쉽지 않은데 반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언제든 북의 국경을 침범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한반도 담당은 선양군구(瀋陽軍區)다. 동북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지역 담당으로 유사시 한반도도 관할하고 약 43만명 규모로 알려져 있다. 선양군구에는 제39집단군, 제16집단군, 제40집단군이 배속돼 있다. 북은 중국 견제를 위해서는 베트남처럼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등은 국내정치에서도 ‘이이제이’ 전술을 종종 구사한 바가 있다.

다만 굳이 남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을 견인하려는 것은 미국의 대북 불신이 심한 상태에서는 직접 나서는 것보다 미국의 신뢰를 받고 있는 남을 활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북이 추구하는 부수적 효과는 중국이 북의 대미 경도를 방지하기 위해 대북 제재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북마저 미국으로 경도될 경우 중국은 완전히 고립무원에 빠지기 때문에 중국이 북을 끌어안기 위한 당근을 제시할 것이라는 노림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 민족공조를 이루려는 전략 때문이다. 북으로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다각적인 외교를 전개했으나 남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 그런대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남의 대미 외교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는 문재인 정부를 상당히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남의 설득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남을 중개인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는 남북경협 및 관광재개일 것이다. 90%정도의 대중 경제 의존도는 북의 주체사상과도 크게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북으로서는 시장다변화가 필수이다.

북은 미국을 끌어 들이기 위해 상당한 당근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체제안전 보장만 한다면 핵폐기 수순에 들어갈 것이고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면 개방정책도 과감히 시행할 것이다. 중국 견제에 필요하다면 북미 수교는 물론, 주한미군 주둔도 용인할 것이고 베트남처럼 북의 군항도 미국에게 개방할지 모른다. 북은 이미 1992년 김용순의 방미를 통해 주한미군이 한반도 통일 후에도 지역의 세력균형과 안보를 위해 주둔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달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를 확인했다. 남에서 미국이 빠질 경우 중국이나 일본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 다시 중일전쟁을 일으킬지 모르고 누가 승리하든 최악이기 때문이다.

남과의 민족공조를 위해서 남북경협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고 군사회담도 개최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북(한)판 등소평’이 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전문가들마저도 과거의 ‘경로의존적’ 논리만으로는 북의 행동을 전망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중국이 적극적인 구애를 하면 ‘시계추 논리’에 입각하여 못이기는 척하고 중국으로 경도되겠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하루아침에 청산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최소한 50년 이상 세계 패권국가로 남아 있으면서 중국을 강력히 견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정은 위원장의 대전략을 이해해야만 우리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운전자’ 및 ‘중개인’ 역할이 빛을 발할 것이다.

 

전현준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전현준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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