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기 부역혐의자 200~300명이 희생된 장소로 추정되는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의 폐금광 인근에서 2월 22일부터 3월말까지 유해발굴이 진행된다. 유해발굴을 앞두고 개토제가 진행되었다. [아산=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영령들이시여! 67년의 어둠, 깔끔히 거둬내고 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충남 아산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발굴이 22일에 본격 시작됐다. 이번에 유해 발굴이 진행되는 장소는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의 폐금광 인근(중리 산86-1번지 일대)이다.

이른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눈이 덮여 장관을 이룬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설화산(雪華山). 하지만 1950년~51년 겨울 설화산은 새하얀 눈 발 위에 붉게 유혈이 낭자한 피로 얼룩졌다.

충남 아산지역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에 걸쳐 인민군 점령시기의 부역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배방면, 선장면, 신창면, 염치면, 탕정면 등지에서 민간인 800여명 이상이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되었다.

이중 발굴이 진행되는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에는 최소 150~3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에는 이름조차 짓지 못한 어린 아이부터 부녀자, 노약자, 노인들까지도 무참히 학살당했다.

▲ 22일 오전 11시 유해발굴 현장에서 진행된 개토제에서 진혼무를 올리고 있다. [아산=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 유해발굴 개토제 현장에는 공동조사단과 유족들을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했다. [아산=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본격적인 유해발굴을 앞두고 오전 11시 발굴현장에서 개토제가 진행됐다. 개토제에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 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아산유족회를 비롯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아산지역대책위원회(이하 아산지역대책위), 전국 유족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개토제에서 김장호 아산유족회장은 “여기서 발굴된 유해들은 세종시 추모의 집에 마련된 임시 안치소에 안치할 예정”이라고 말한 뒤, “이분들은 67년 전 흉탄에 의해 돌아가셨다”며, “그동안 끌어안고 계셨던 저 흉탄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가해책임자들과 그간 유해발굴을 방치해온 정부를 향해 쓴 소리를 했다.

▲ 개토제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아산유족회 김장호 회장. 오른쪽으로 공동조사단 박선주 단장이 보인다. [아산=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아산지역대책위 장명진(전국농민회충남도연맹 의장) 상임대표는 “유해를 발굴해서 희생된 분들의 생명을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발굴해서 잘 모셔서 위로할 수 있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산시 전체에 유해매장지가 6~10곳이 방치되어 있다”며, “아산시 전체를 샅샅이 발굴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시민영역에서 함께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유해발굴은 공동조사단과 아산지역 단체뿐 아니라, 아산시(시장 복기왕)도 참여하고 있다.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아산시는 2015년에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며, 지난 2017년 시굴조사와 이번 5차 발굴조사는 아산시 예산으로 진행되어 큰 의미를 가진다”고 밝혔다.

유해발굴 비용은 주관단체 분담금, 후원회비, 시민 모금 등으로 마련되는 데 아산시는 이번 유해발굴을 위해 민간단체 보조금으로 1억여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김영환 아산시 자치행정국장은 이날 개토제에 참석해 “아산시에서는 이 발굴사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줄 것을 약속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진 속 아버지...
유해 발굴하다 기적적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김광욱(72세) 씨는 아버지 사진을 들고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아 왔다. 김 씨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유해 발굴을 하다가 기적적으로 미라처럼 아버님 얼굴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서 아버지 사진을 들고 나왔다”며, “당시 5살 밖에 되지 않아 아버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아버지 사진을 들고 울먹였다.

김 씨의 아버지 김갑봉(당시 32세) 씨는 1950년 10월, 2명의 형제들과 함께 치안대에 의해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했다는 혐의를 이유로 연행되었다가 이곳 폐금광에서 학살당했다.

▲ 아버지 사진을 들고 발굴현장을 찾은 김광욱(72세) 씨가 울먹이고 있다. [아산=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공동조사단은 이번 발굴조사에 앞서 지난 2017년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이번 발굴조사 예정지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설화산 폐금광 지역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유해 매장지를 찾아냈다.

당시 시굴조사결과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 최소 3명의 유해와 M1탄피 1점, 단추 등 유품을 발견하였다. 3명의 유해 중에는 어린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2009년 5월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부역자 처리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적법한 절차를 거치치 않은 채 살해되었고 특히 부역혐의자의 가족들은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되었다”며, “전시 계엄 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무장한 경찰 및 치안대가 단지 부역했다는 혐의, 또는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적법한 절차도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고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진실 규명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 사건에서) 희생자를 연행한 것은 주로 치안대가 담당하였고, 처형을 집행한 것은 경찰 혹은 경찰의 지시를 받은 치안대였다”며, 이 사건의 가해주체로 온양경찰서와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로 지목했다. 또한 “이들은 온양경찰서장의 지휘를 받아 가해행위를 했으므로 온양경찰서장에게도 가해책임이 있”고, “마찬가지로 충남경찰국에도 지휘감독책임이 있으며 공권력의 불법행사를 막지 못했던 이승만 정부에까지 그 책임이 귀속된다 할 것이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의 진실이 규명됨에 따라 국가의 공식사과와 함께 유가족들에게 위령사업 지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등을 비롯한 명예회복조치를 적극 강구할 것을 권고”하였다.

▲ 유해발굴 현장에는 지난 2008년에 진실화해위원회와 아산시에서 설치한 표지판이 위치해 있다. [아산=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된 후에는 국가 차원의 아무런 후속조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국가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마땅히 가져야 할 법적․정치적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윤리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공동조사단은 지속적인 유해 발굴을 통하여 민간인학살 사건의 실상을 기록하고, 하루속히 국가가 나설 수 있도록 강력하게 촉구하고 요구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들 또한 힘과 지혜를 모아줄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유해발굴은 22일시작하여 28일까지 1차로 진행된 후, 다시 3월 5일부터 3월 말까지 추가 발굴을 이어갈 예정이다. 4월 동안에는 감식작업을 진행한 뒤 5월 말까지 발굴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  개토제와 본격적인 유해발굴을 앞두고 발굴 현장을 정리하던 중 유해가 드러났다. 흰색 원 안에 드러난 유해가 표시되 있다. [아산=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이번 공동조사단의 유해발굴은 지난 2014년 경남 진주 용산고개, 2015년 대전 산내 골령골, 2016년 충남 홍성 담산리, 2017년 진주 용산고개 2학살지에 이어 5번째다.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을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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