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김여정, 참 교육을 잘 받았고 훌륭하구나”

▲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이 10일 청와대를 방문,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이번 북측의 정상회담 초청은 적어도 김정은 위원장이 단순하게 떠보기 위해서거나 한․미군사훈련을 회피하기 위한 정도는 넘어선 것 아닌가 싶다.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결국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을 내세워 적어도 본격적인 북미대화나 6자회담에 응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2일 북한 고위급대표단 및 특사의 방남 의미에 대해 이같이 무게를 실었다.

실제로 국가수반급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을 특사로 내려 보낸 것은 북측 입장에서는 최선의 카드를 쓴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김여정 특사 카드는 마지막 카드”라며 “김여정 특사라야만 와서 보고들은 것을 가감없이 김정은 위원장한테 직접 보고할 수 있을 것이고, 향후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분위기나 가능성까지 직접 확인해 본 걸 거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이낙연 국무총리가 11일 워커힐호텔에서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초대, 오찬을 베풀었다. 임동원 전 장관은 헤드테이블에 자리를 함께 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11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 오찬장 헤드테이블에서 김여정 특사와 이야기를 나눠 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12일 <통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참 교육을 잘 받았고, 훌륭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외모도 요란하지 않고 소박하고 말수도 적고 열심히 듣더라”고 호평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고위급대표단으로 처음에 3명이 온다더니 나중에 김여정을 갑자기 끼워넣은 것 같았다”며 “원래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알고 있었는데, 소속을 밝히지 않고 제1부부장으로 격을 높여 보낸다고 해서 ‘아, 이건 특사다’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친서를 보고 답을 한 걸로 돼 있지만 아마 친서 내용을 사전에 알았을 것”이라며 “친서를 받아서 제1부속실장에게 넘긴 것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불과하고, 내용이 신통치 않았으면 밥을 왜 주고 4:5회담을 왜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10일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문재인 대통령 접견시 북측 고위급대표단 단장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비롯해 특사인 김여정 제1부부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함께해 이례적인 ‘4:5 회담’이 진행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정세현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이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방북을) 성사시키자”고 화답한 대목에 대해 “아, 친서가 복잡하구나. 먼저 미국한테 이것을 이해를 시켜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남북관계 끌어올려 북미대화 분위기 잡기

▲ 이른바 '4:5 회담, 북측 고위급대표단 김영남, 김여정, 최휘, 리선권과 남측 문재인, 임종석, 정의용, 서훈, 조명균이 마주 앉았다. 문 대통령은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김여정 특사 맞은편 중간에 자리잡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향후 3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여부는 미국 설득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는 것이 공통적 평가다.

통일부는 12일 ‘설명자료’를 통해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와 비핵화 과정의 선순환을 추진하되, 상황에 따라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대화를 견인하는 등 탄력적 상호 견인 도모”라는 정부의 입장을 내놓아 주목된다.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북한도 대미협상을 하기 전에 남북관계를 끌어올리려는 것 같다”며 “한국이 어느 정도 완충, 중재역할을 해야 북한도 협상력이 강해질 수 있다고 보는 거다”라고 분석했다.

북미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모두 우선 남북관계를 끌어올려 북미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방향에서 일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임동원 전 장관은 “미국이 계속 대북 적대적으로 나오면 참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다”며 과거 ‘페리 프로세스’를 떠올리며 “남북 간에는 얼마든지 풀릴 수 있을 것 같고, ‘페리 프로세스’나 ‘한반도평화 프로세스’ 같은 것을 통해 미국을 설득해서 견인해 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짚었다.

‘페리 프로세스’는 클린턴 정부에서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된 페리 전 국방장관이 1999년 10월 북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해결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 군사적 옵션을 포기하고 ‘포괄적 대북 관여정책’으로 돌아선 것으로 임동원 전 장관이 그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하일라이트는 남북 선수단 공동입장이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남북 선수단이 공동입장하자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북측 고위급대표단을 비롯해 내외빈이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펜스 미국 부통령 내외와 아베 일본 총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문 대통령 방북) 여건을 만드는 데서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대북정책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방법이나 수순은 문제가 아니다”며 “남북미 3국이 한발씩 양보하고 역지사지 자세로 접근하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계기시 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정상외교를 해왔고, 트럼프 대통령이 100% 함께 한다고 했지 않느냐”는 것.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미국의 발목을 옭아매야 한다는 우회적 제언인 셈이다.

대북지원단체인 ‘평화3000’ 운영위원장인 박창일 신부는 “미국에서 북한과 대결과 제재보다는 대화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미국에 위협이 되고 있는 핵과 미사일 문제를 푸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화마저 마다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분석하고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발언에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펜스 부통령은 10일 방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최대 압박은 계속될 것이고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할 것이다(But if you want to talk, we’ll talk)”라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내내 몽니를 부리던 것과는 다소 다른 기류다.

다른 시각도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어쨌든 북한은 바깥에서 보는 것과 달리 충분히 준비됐다고 한다”며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데, 미국하고 물밑 접촉 없이 북한이 저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북미간 교감설을 제기했지만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 9일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직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한 리셉션에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고의 지각'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한편,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이후에는 북중관계 개선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이 운신의 폭을 가지려면 남한 만 가지고는 안 되고 북중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북중관계 개선 전망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한 전문가는 “북중관계는 후순위로 밀리는 게 아닌가 싶다”며 “두 지도자의 개인적인 특성이 달라서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이 오지 않으면 먼저는 안 만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충격은 크다. 한 일본 전문가는 “북의 행동에 상당히 쇼크받은 사람들도 있지만 과거를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놀랐지만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며 “대체적으로 말려들어 가면 안 된다며 ‘아웃 복싱’을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소수의견으로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는 게 큰 흐름이라면, 일본이 미국을 설득해서 대화국면으로 가도록 이니셔티브를 쥐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다수는 “트럼프는 미친놈이다. 북을 때릴 것이다”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많다고 진단했다.

어쨌든 남북관계는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정상회담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됐고, 북한식 표현으로 ‘단번 도약’을 이뤘다. 그러나 전격적인 남북관계 개선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우연의 결과만도 아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7일 한미정상회담까지 한미동맹 강화에 전력투구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까지 국가핵무력 건설 완성에 매진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방한까지를 한미동맹 구축기로 정하고 전력투구했고, 이를 토대로 평창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결정적 기회로 삼아 숱한 장애물을 뛰어넘어 북한 선수단의 참가는 물론 고위급대표단의 방남을 실현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 전망이 어두울 당시에도 “대통령이 저렇게 평창 올림픽 성공을 위해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데 안 될 리가 있겠느냐”며 문 대통령의 ‘평창 올인’을 각별하게 평가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1월까지 엄청난 국제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가핵무력 완성 선포를 위해 질주했고, 올해 신년사를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전격적으로 나서 문 대통령의 ‘평창 구상’에 전면 호응해 나섰다. 문 대통령이 내민 손에 손뼉을 마주친 것이다.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현재의 국제정세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한국이 할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보는 것 같다”며 만경봉호 유류 지원 요청 철회나 제재대상인 고려항공기 대신 전용기 ‘참매-2호기’를 이용한 사례 등을 들었다. 실제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곡 중 민감한 가사를 과감히 없애는 등 북측의 유연성은 예상보다 컸다.

임동원 전 장관은 서훈 국정원장과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남북문제 베테랑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의지가 있다고 평가하고 기대감을 표하면서도 “미국 설득이 쉽지 않아 걱정”이라고 근심을 내려놓지 못했다.

정조의 화성 능행과 틸러슨 방북 카드

▲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경기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북측 고위급대표단이 함께 관람, 응원했다. 북한 응원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했다. 그러나 북한 응원단이나 태도권시범단 등은 예전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정세현 전 장관은 지난 1월 9일 남북고위급회담 실무회담에서 합의한 ‘고위급회담’을 주문하면서 “산 넘고 물 건너야 할 일이 많다. 정조가 화성 능행(陵行)을 위해 한강에 주교(舟橋)를 놓았듯이 주교를 만들어서라도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큰틀은 가닥이 잡혀 탄력이 붙을 것이므로 가시적인 성과를 단계적으로 만들어가면서 국내 여론은 물론 주변국까지 설득하면서 가야 한다”고 제언하고, 한․미 군사훈련 등 앞으로의 난관에 대해서는 “3월말까지 어떻게 남북관계를 이끌어 가고 상황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박창일 신부는 “북에서도 특사가 왔기 때문에 임종석 실장 정도가 특사로 가야 한다”면서도 “모든 것을 정부끼리만 풀 수 없다”며 “이럴 때일수록 민간들의 개입이 필요하고 민간들의 대화를 통해서 남북 간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유엔 제재의 예외조항인 인도적 지원 분야부터 민간이 나설 수 있다”며 “북쪽에서 독감이 유행하고 있어 타미플루가 필요하고 농사짓는데 비닐박막이 필요하니 육로를 통해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 6.15남측위원회 공동응원단과 해외동포 응원단, 재일 총련 응원단은 10일 황영조기념체육관에서 '남북공동응원전 민족화합한마당'을 별도로 펼쳤다. 그러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응원은 표를 구하지 못해 스크린 응원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민간단체에 대한 정부의 배려는 거의 없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남북간 대화통로가 확보됐으니까 북한이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초청하도록 제안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평창올림픽 이후 한․미 군사훈련 재개 문제를 우리가 부담을 더는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틸러슨 장관이 방북 초청에 응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억류하고 있는 3명의 미국 국적자를 돌려보내 주거나 핵.미사일 관련 진전된 조치를 시사해야 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이 관계 개선에서 ‘단번 도약’을 이뤄 ‘한반도호’의 운전석에 앉았다면, 이제는 앞길과 주위를 잘 살펴 안전운전을 하면서도 속도를 내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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