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 실무회담이 17일 열렸다. 10차례 회의를 거쳐 남북은 총 11개 항의 합의사항이 담긴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 실무회담이 17일 열렸다. 10차례 회의를 거쳐 발표된 공동보도문은 11개 항의 합의 내용을 담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측 참가에 한정됐지만, 면면을 들여다보면 ‘남북 대통로’를 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북측은 이번 평창 올림픽에 응원단 230여 명, 예술단 140여 명, 태권도선수단 30여 명 등을 보낸다고 밝혔다. 여기에 동계 패럴림픽 150여 명과 고위급대표단, 올림픽 대표단.선수단, 기자단 등을 포함하면 약 6백여 명의 대규모 파견단이 방남하게 된다.

경의선.판문점.동해선 이동, ‘대통로’ 열리다

이번 합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대규모 북측 파견단의 이동 경로. 지난 15일 열린 북측 예술단 파견 실무접촉에서 북측은 ‘삼지연 관현악단’을 판문점을 거쳐 육로로 이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백 명 단위 북측 인사들이 판문점 육로 통과는 지난 1985년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교환방문 이후 최대 규모다.

그리고 오는 2월 1일 북측 선수단, 2월 7일 올림픽 대표단, 응원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이 각각 경의선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 이후 경의선 길이 복원되는 의미가 있다.

또한, 1월 말 2월 초 추진되는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는 동해선 육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2015년 10월 남북 이산가족상봉 이후 2년 5개월여 만에 동쪽 금강산길도 열린다.

그뿐만 아니다. 정부는 1월 말 2월 초로 예상되는 북한 마식령스키장에서의 남북 스키선수들의 공동훈련 때 남측 선수 이동을 위해, 서울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 혹은 양양공항을 통해 북한 원산 갈마공항으로 전세기를 띄운다는 구상이다. 2014년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북측 고위급 3인방이 전세기로 남북 직항로를 이용한 이후 처음이다.  

▲ 1985년 9월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교환방문 당시 모습. 이 때 이후 대규모 북측 인사들의 판문점을 통한 방남은 평창 올림픽 북측 예술단 파견이 된다.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판문점 통로, 개성공단과 이어지는 서해통로, 금강산관광과 연관된 동해 통로 등 모든 남북 육로가 뚫리는 셈. 여기에 남북 직항로 복원의 상징성도 갖고 있어, 바닷길을 제외하고 모든 통로가 다시 열린다는 의미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소 떼 올라간 것 못지않은 장관이 될 것”이라며 “북한 스스로가 평창 올림픽을 참가하는데 유엔 대북제재 때문에 우리 정부가 고민하지 않도록 하려는 자세가 읽혔다. 해로나 공로는 복잡한데, 육로로 온다는 것이 이유”라고 평가했다.

정창현 현대사연구소 소장도 “북한은 평창 올림픽 계기로 남북의 연결통로 3곳을 모두 열려는 생각”이라며 “박근혜 정부 때 북한이 쓴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로’를 열자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017년 1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온 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야 한다”고 밝힌 신년사를 구체적으로 이행하겠다는 의미인 것. “의의있는 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만들겠다는 올해 신년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도 맞물린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첫발은 남북 간 연결통로 복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닫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가 1차 과제이기 때문. 

이번 합의로 북한이 일단 문재인 정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숨통이 트이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창현 소장은 “평창 올림픽 이후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큰 틀에서 호응하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문제도 자연스럽게 논의해 보자는 포석이 깔렸을 수 있다”고 짚었다.

물론, 이는 3월까지 한정돼 열린 ‘대통로’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남북 간 통로가 열리면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다음 과제인 금강산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은 유엔 대북제재는 물론, 미국의 대북제재를 넘어야 하기 때문.

이는 북핵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 평창 올림픽 기간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미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고, 어떻게 북한과 미국이 마주 앉을 계기를 마련하느냐에 남북관계 향배가 달렸다.

▲ 지난 1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이번 실무회담 합의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평화올림픽 5대 구상' 공약 실현와 맞닿아 있다. [자료출처-청와대]

남북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담긴 ‘금강산, 마식령스키장 개방’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 마식령스키장 남북 공동훈련 합의는 문재인 정부의 평화구상 실현은 물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가 적절히 배합된 결과로 해석된다. 모두 남측이 제의했지만, 북측도 반길만한 사안이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의중이 담겼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해 대통령 후보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1월 북한 금강산 호텔이나 마식령스키장 등을 숙소나 훈련시설로 활용하고, 금강산에서 동시 전야제를 하자고 밝힌 생각은 그해 4월 구체화 됐다.

△북한 선수단 참가를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의 협의, △금강산 육로를 통한 북한 선수단 참가, △북한 겨울철 스포츠 인프라 활용 방안 협의, △북한 응원단의 속초항 입항, △금강산에서의 올림픽 전야제 개최 등 ‘평창 평화올림픽 5대 구상’이다.

북측 선수단 등의 경의선 육로이동,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 마식령스키장 남북공동훈련 등 이번 남북 합의에 5대 구상이 대부분 들어갔다.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 ‘마식령스키장 활용’을 남측이 지난 9일 열린 고위급 회담에서 먼저 제안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평화구상 실현에 들인 공을 짐작할 수 있다.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는 2008년 6.15공동행사 이후 10년 만이기에, 문재인 정부가 ‘6.15선언’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이다. 17일 실무회담에서 북측 단장인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6.15시대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를 1월 말 혹은 2월 초에 당일 행사로 하며, 음악, 공연, 문학 행사 등 종합예술공연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남측 문화예술단체, 체육계,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을 행사의 중심에 놓겠다는 구상이다.

남측 시민사회는 우선 남북 공동응원에 집중하되, 금강산 남북 합동문화행사는 통일부와 협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대표상임의장은 “통일부가 어떻게 결정하려는 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6.15남측위에 이런 좋은 일을 맡길 것인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통일부와 협력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 2013년 12월 30일 개장을 하루 앞두고 마식령 스키장을 현지지도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 위원장은 마식령스키장을 활용한 스키 선수 양성 의지가 강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금강산 합동행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구상에 부합된다면,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꿈과도 맞물려 있다.

‘마식령속도’를 내세우며 2013년 12월 31일 문을 연 마식령스키장은 김정은 시대의 업적 중 하나. 2016년 12월 김 위원장은 직접 ‘마식령스키경기-2016’을 관람하며, “스키 종목을 하루빨리 세계적 수준에 끌어올려 국제경기들에서 당당히 우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지시로 스키선수 양성에 집중하고 있으며,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는데, 남측의 마식령스키장 남북 공동훈련 제안은 절호의 기회였던 것.

문재인 대통령의 5대 구상인 ‘북한 겨울철 스포츠 인프라 활용 방안’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스키 활성화 의지가 만나 이번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평가이다.

이번 합의로, 정부는 남측 국가대표를 제외한 스키협회 소속 선수 일부를 선발해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1박 2일 마식령스키장 공동훈련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남북 최고지도자 의지 담긴 평창 올림픽 합의, 앞으로 남은 과제는

남북 최고지도자의 의중이 담긴 금강산과 마식령스키장 개방 합의가 평창 동계올림픽에 한정되지 않고 4월 이후 본격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는 여전히 살얼음이 놓여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공화국 수립일로 이어지는 ‘의의있는 해’를 만들기 위해 한.미연합군사연습 중단을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 한.미는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연합군사연습 연기에만 합의한 상황. 야외 기동훈련인 독수리 훈련은 몰라도 지휘소연습인 키 리졸브 훈련은 실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17일 열린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 실무회담. 남북대화가 계속 이어질지 주목된다.[자료사진-통일뉴스]

이는 평창 올림픽 후속으로 열릴 남북 군사당국회담과 2차 고위급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남측이 원하는 이산가족상봉 문제는 여전히 중국 북한식당 여종업원과 탈북자 김련희 씨 송환과 맞물려 있어 쉽지 않은 상황. 

평창 올림픽 이후 남북관계 개선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남북대화 동안에 어떤 군사적 행동도 없을 것”이라고 한 발언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우리가 어떻게든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면서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오고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유발하지 않을 것이다. 금년 몇 달 그렇게 이어진다면, 남북관계가 업그레이드되고 북미대화의 징검다리가 되며 미.북 간 평화모드로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우리도 그 점에 대해 가장 유의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남북관계 개선의 큰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현재 북한과 실제로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하는 주체가 남북밖에 없지 않나. 올림픽이 끝난 이후라 해서 회담 모드가 끝난다고 보는 건 너무 비관적일 것 같다. 긍정적인 현실로 만드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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