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걸 / 서울 영동일고 교사

연재를 시작하며

통일(通一)하는 통일(統一), 통일(統一)과 통일(通一)

바람직한 토론 문화와 민주주의 실현에 관심이 많다. 2004년 전교조 통일위원회 일을 하면서 방북의 경험을 통해 분단의 아픔과 통일 문제에 눈을 떴다. 현재는 소통하는 통일(統一), 나아가 모든 생명체의 통일(通一)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 통일관련 다양한 서평이나 영화평 그리고 학교교육에서의 통일 등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한다. / 필자 주

 

내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토론과 통일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내 자신은 얼마나 분단의 아픔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 학생, 여성, 장애우 등 사방에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아 고통은 늘 내 곁에 있지만 아픔의 연대와 공감의 걸음을 얼마나 걸었는지 자문하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런 많은 아픔 때문에 분단의 아픔까지는 더더욱 가까이서 느끼거나 참여할 계기가 없었다.

‘북핵이다 트럼프다, 사드는 왜 배치하나, 문재인 정부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등등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는 내면에 들끓지만 정작 나는 분단의 수혜는 입었을지언정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본 적이 있는가? 멀고도 가까운 분단. 그래서 분단은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철조망 같은 이미지로만 존재하면서, 눈 감게 되고 알지 못하는 삶과 사유와 행동의 사각지대에 소리 없이 공고하다. 그 시멘트 같은 무딤을 녹이듯 다가온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 시민입니다>라는 낯선 상황의 제목을 단 책이다. 어? 어떻게 평양 시민이 대구에 사나? 아래를 자세히 보니

브로커에 속아 한국에 잘못 오게 된
탈북자 김련희씨의 수기와 대담
나는 꼭 돌아갈 것이다
나의 어머니 조국에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쓰여진 글을 읽고, ‘아, 몸은 대구에 있지만 마음이 평양에 있는 시민이구나’하고 이해를 했다.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지만 그래도 인간인지라 간혹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화려한 휴가>의 도청 진압작전은 그냥 맨 정신으로 보기 어렵고,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벌어지는 남북한 군사들 간의 총격전을 볼 때나, <토니 에드만>에서 이네스가 원 가수인 휴트니 휘스턴의 노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the greastest love of all)을 부르며 절규할 때 뜻 모를 눈물이 흐른다, 나도 모르게.

책을 읽으며 가슴이 조이고 안타까운 순간들이 종종 있었으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가물하다. 필력이 뛰어난 작가들이 한둘이 아니고 세상살이 극적이어 봤자 거기서 거기지, 사람살이 뭐 있나 죽으면 흙속에 묻힐 그 육신 가지고 따위의 심정에 기대어 한사코 눈물 흘리기를 거부하는 나이지만, 최근 평양시민의 생생한 고생담을 읽다가 마침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저자의 이름은 김련희. 평양에서 가족들과 단란한 생활을 하다가 중국 여행 와중에 건강이 안 좋아져 몸을 치료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던 차에 딴 마음을 품고 친절을 베풀어준 탈북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에 들어온 것이 가족과 헤어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애타는 신세가 되었다.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가 만든 영화 <자백>에서 국정원이 북한 이탈 서울시 공무원 유오성씨를 간첩으로 만들기 위한 집요한 공작을 벌이는 과정을 소름끼치게 보았다. 김련희 씨는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남한에 내려온 초반부터 애원하고 사정했으나 이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개인의 양심과 이전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은 채 21세기 이산가족을 만들었다.

고향으로 돌아기 못하고 국정원과 경찰의 감시 속을 살기 싫은 김련희 씨는 여권이 나오지 않아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는 외국으로 갈 수가 없어 밀항, 망명, 등 여러 가지 방법들도 고민하고 시도해보나 길은 열리지 않았다.

살아갈 공간이 열려 있어도 감옥과 다름없고, 살아도 산 사람 같지 않은 생활에 거짓으로 간첩 자백을 하고 그 과정에서 민변 변호사를 만나 그나마 남한에서 정붙이고 살아갈 사람과 직업을 얻은 덕분에 2011년 9월부터 현재까지 6년 넘도록 남한 밥을 먹으며 살아가지만 마음은 늘 그리운 고향과 가족에 있으니 이 생이별의 한이 얼마나 애달프랴!

평범한 한 북한 시민이라 하기에는 경계인의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북한의 한 시민이 겪은 삶과 사상은 또한 그러하니, 평범한 남한의 시민들과 다른 철저한 사상과 공동체(집단주의적) 삶은 우리가 북한 사람을 바라보는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바닥에서 흔들어놓는다.

너무도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자본에 의해 모든 삶이 결정되는 이곳과 달리 그곳은 돈보다 인간을, 아니 적어도 돈과 인간을 같이 생각하는 사회이며 고난의 행군이라는 그 지독한 가난과 기아의 시기에도 인간적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한 처절한 고통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물론 북한은 우리보다 살기 좋다거나 경제적으로 발전한 곳은 아니다. 양측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뿐이다.

대학생과 진행된 질문 대답에서 잃어버린 추억이 된 자기 첫사랑에서부터 가족, 학교, 풍속, 문화(심지어 성생활까지) 등을 세밀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황석영 작가의 책 제목 그대로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실감케 한다. 기나긴 분단과 휴전의 역사가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들고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하게 했을 따름이지 밥먹고 잠자고 일하면서 사는 인간의 사회 문화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오는 11월 17일 그녀를 만난다. 책 속에 그녀가 걷던 대동문 거리 이야기가 나온다. 물어보니 대동문은 그녀가 살던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것으로 설날이면 종을 울려서 많은 사람들이 종소리를 들으러 대동문에 모인다고 한다. 마침 십년 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사온 눈 내리는 대동문 그림을 표구해 놓은 액자가 있어 그녀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그림 속에서나마 그녀가 평양 대동문 종소리를 들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니 더 간절한 마음으로 그녀의 귀향을 기원하고 정부에 촉구한다. 위안부의 귀향을 막고 외면한 일본을 비판하면서 우리도 같은 짓을 한다면 과연 우리 대한민국을 북보다 나은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자신도 없으면서 우리 스스로 어떤 국가적 자부심을 갖고 살겠는가?

적폐청산이 한창이다. 지난 정권의 부정부패로 적폐 아닌 곳이 없지만, 분단의 적폐야말로 가장 오래되고 뿌리 깊은 적폐다. 남의 적폐만 청산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온 분단의 적폐를 청산할 때,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민주공화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가 김련희 씨를 인도와 정의의 마음으로 귀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청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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