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진보 진영 내 논쟁에 있어 두 가지 편향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핵무기 포기와 무관하게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의 핵전쟁 전략이 수정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한반도 비핵화란 남북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한반도와 그 주변국가들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비축, 도입, 사용하지 않는 걸 의미한다. 이 중 어느 한 나라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상대방 역시 한반도에서 핵무기 사용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냉전 이후 러시아와의 협상에 의해 한반도에 핵무기를 비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건 아니다. 냉전시대의 통합핵전쟁계획(Single Integrated Operational Plan), 핵무기사용전략(Nuclear weapons Employment Strategy)을 보거나 냉전 이후의 핵전쟁계획인 Operations Plan 8044과 Operations Plan OPLAN 8010, 그리고 핵태세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를 보더라도 미국은 지금까지 북을 핵공격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최근 비밀을 해제한 '1959년 핵무기 구비연구‘(Atomic Weapons Requirements Study For 1959)에 따르면, 미국은 북의 28개 도시를 포함한 90곳을 핵 공격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가장 최근의 2010년 핵태세보고서(NPR) 의하면,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거나 핵개발 중인 북한을 핵공격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북 문제가 아니라도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에서 핵전쟁 전략을 포기한 적이 없다.

결국 일부 진보 진영의 한반도 비핵화 요구는 이들 강대국들의 한반도 핵전쟁 계획을 방치한 채 북한만의 핵포기를 주장하는 셈이다. 주변 열강들이 현재 한반도에 핵무기를 비축하지 않으니 북과 사정이 다르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반도에 핵무기를 비축하지 않는 걸 비핵화라고 한다면 오늘날 다양한 미사일이나 전략폭격기의 핵공격을 감안할 때 그 건 무의미한 주장이다.

둘째, 이런 강대국들의 한반도 핵전쟁 전략에도 불구하고 북이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북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자위적 억제력이라고 천명해왔고 김일성 주석의 한반도 비핵화 유훈을 명시적으로 폐기한 적이 없다. 지금도 어떤 조건에서 핵무기 폐기를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지 무조건 영원한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지 않는다.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전제는 최소조건과 최대조건으로 구성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 미국 등 강대국들의 한반도 핵무기 사용 포기,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 일본과 괌의 대북 타격수단 철수 등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국들의 협정문이나 합의서가 아니라 전략적 힘의 균형만이 평화와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도 엄연한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전문가 대다수가 북한은 핵무기를 언제까지나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진단한다. 미국이 북의 핵 관련 조건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북 입장에선 핵무기가 매우 저렴하고 효과적인 방어수단이고, 한국과 미국이 강요하는 재래식 무기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국가 자원을 경제발전에 투자할 수 있으므로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리하면 한반도 비핵화가 불가능한 것은 관련국들의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해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보 진영이 취해야 할 올바른 입장은 미국과 북의 핵무기 등 지구상 모든 핵무기의 반대이고 폐기여야 하지 않을까. 또한 관련국들이 핵무기의 폐기를 상호 수용하려면 일방적인 폐기가 아닌 상호 비율적 폐기가 필요하다. 북미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지구상 모든 핵무기 폐기 이전이라도 북과 미국, 중국과 러시아 등이 한반도에서 핵무기 비축, 도입,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려면 북한의 핵무기 폐기와 함께 미국의 한반도 핵전쟁 계획, 러시아와 중국의 극동 핵전쟁 계획을 폐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인사들은 북한 이외의 국가들의 비핵화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으며, 강대국들에 대한 반핵투쟁도 열정적으로 전개하지도 않는다.

남한에서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으면서 미국의 핵정책을 전환하기 위한 투쟁 없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는 건 비겁, 무지, 위선, 기만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자기 등 뒤의 미국 핵에 대해서 눈을 감고 북에게만 핵을 버리라는 주장이 진보 진영에서 제기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린피스처럼 감옥 갈 정도로 미국의 한반도 핵전쟁 계획에 대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대해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주장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