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아는 상상적 반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허상이다(라캉)


 섬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술만 취하면 늦은 밤에 전화하는 초등학교 동창이 있다.

 그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나는 평소에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고 올 때만 받는다.

 일이 있어 무음으로 해놓았을 때는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는다.

 술에 취하면 ‘나’가 사라진다. 

 ‘나’가 사라진 세계, ‘야생의 사고’로 세상을 본다.

 언어로 지식을 구성하는 ‘문명의 사고’는 ‘나 중심’으로 세상을 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만나면 그를 지배하려 한다.

 나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그를 본다.

 그래서 나는 술이 좋다.

 한 순간에 나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야생의 사고를 가진 원시인이 된다.

 어떤 원시 부족에게 축구를 가르쳐줬더니 두 팀이 동점이 될 때까지 경기를 하더란다.

 그들은 모든 존재를 대등하게 본다.

 그래서 그들은 승부를 가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승부가 나면 누구는 잘나고 누구는 못나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나는 원시인이 되어 문명의 숲을 헤맨다.

 아,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는 그 막막한 섬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사람은 너무나 아득하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섬은 무인도다.

 아무도 없다.

 초등학교 동창 녀석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안타까이 들려온다.

 그는 섬에 있다.

 하지만 나는 섬에 갈 수 없다.

 나는 문명인, 그는 원시인.

 우리는 다른 종(種)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서로 알 수 없는 말만 하다 전화를 끊는다.

 나도 술에 취했을 때 그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내가 원시인이 되어 그 섬에 가면 그는 섬을 떠나버린다는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환상의 섬’이다.

 아, 나는 환상의 섬을 바라지 않는다!

 영화 ‘아바타’에서 ‘통과의례’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제이크가 나비족이 되기 위해서 익룡처럼 생긴 아크란과 교감을 할 때까지 기 싸움을 한다.
  
 그 싸움은 제이크가 아크란의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릴 때 끝난다.

 ‘나’가 사라져야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

 문명 속의 우리는 어떤가?

 다른 사람과 교감할 때까지 싸워본 적이 있는가?

 술에 취해 잠시 원시인이 된 초등학교 동창생.

 그와 나는 싸움을 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가?

 드라마 ‘구해줘’에서 어른들의 농간으로 갈라진 두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 서로 주먹을 날린다.  

 피투성이가 되어 그들은 다시 친구가 된다.

 ‘교감의 의례’를 통과한 것이다. 

 우리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에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반가운 척 악수를 한다.

 우리는 ‘교감’ 없이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서로의 사이에 섬을 두고 산다.

 이제 술집에서도 낯선 사람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런 술집들이 다 사려져 버렸다.

 나는 술에 취해 마구 떠드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우리들을 갈라놓은 섬들.

 ‘그 섬에 가고 싶다’

 즐거운 척 떠드는 우리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공허한가!

 ‘아,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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