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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 올라 백두산을 바라보다

기사승인 2017.11.15  1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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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기>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13구간

이계환 / 종주대원

일자 : 2017년 10월 22일 (무박산행)
구간 : 거림마을~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로타리대피소~순두류~중산리
산행거리 : 14.02km
산행시간 : 11시간 10분 (휴식시간 포함)
산행인원 : 11명(성인 10명, 초등학생 1명)

 

   
▲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이번 백두대간 산행 13구간은 지리산 마지막 구간으로서 세석대피소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산행이다. 원래 백두대간을 탈 때 맨 처음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타면서 대장정의 출발을 해야 했는데, 대간을 처음 시작할 때가 4월 중순이고 그때가 지리산 산불방지 기간이라, 첫 산행을 고기리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애초부터 풍광 좋은 가을에 지리산 구간을 산행하기로 잡았는데, 이 예상은 적중했다. 지리산 네 번의 구간에서 산행 내내 가을의 향취와 지리산 단풍지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날 천왕봉 오르는 길 단풍은 절정이고 산행길은 천하절경이었다.

물론 산행은 가을산행만이 최고인 것은 아니다. 내 경험에 지리산만 한정해 볼 때 어느 계절이고 다 좋다. 봄에는 연한 이파리와 계곡을 깨는 물소리가 일품이고, 여름은 말 그대로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푸른 숲과 향기로운 풀이 어느 꽃보다 나을 때다. 가을엔 단풍과 서늘한 바람에 취하고, 겨울엔 미끄럼 치는 눈길에다 앙상한 가지 사이 전후로 지리산 종주길이 훤히 보이니 이 또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다. 오죽하면 금강산도 철 따라 금강산(봄), 봉래산(여름), 풍악산(가을), 개골산(겨울)으로 불리겠는가 싶다.

   
▲ 천왕봉 정상석 뒤에 쓰여진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천왕봉에 오르니 정상석 뒤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고 새겨져 있다. 유병창 대원이 전에는 여기에 ‘산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로 쓰여 있었다고 말한다. 산행 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느 카페에 “첫 번째 때 ‘경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였다, 두 번째 때 지워져서 그냥 ‘***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였고, 세 번째 때 ‘전남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이며, 네 번째 때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고 쓰여 있다고 나와 있는데,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나는 운이 좋게도 북녘 땅을 거쳐 백두산에 두 번 간 적이 있다. 백두산 정상에는 ‘민족의 영산’이라 쓰여 있다. 산청인이든 경남인이든 또 전남인이든 모두가 한국인이다. 그리고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이다. 내륙 남쪽에 가장 높은 지리산 천왕봉이 있으니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도 맞고, 또 백두산은 우리 민족 대대로 신성시해 온 종산(宗山)인데다 한반도 최고봉이니 남이든 북이든 민족의 영산이라 부르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백두대간 남단인 천왕봉에서 북단인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향해 이미 첫발을 뗀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80세 ‘어르신’까지 함께하는 산행

이날 산행은 11명. 많을 땐 20여명 적어도 13명 수준이었는데, 오늘은 가장 적다. 우리 산악회는 모토를 ‘초등학생부터 80세 어르신까지 함께하는 산행’으로 잡았다. 당연히 산행 속도는 느리고 산행 시간은 많이 걸린다. 자주 오던 대원들도 이번 산행에는 빠졌다. 지리산 천왕봉 산행에 다소 우려를 했는가보다.

   
▲ 이계환-정빈 부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조한덕-민성 부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나는 오늘 아들 정빈이와 동행이다. 정빈이와는 어렸을 때 지리산을 함께 탔기에 익숙하다. 그간 정빈이가 시간이 안 맞아 대간을 타지는 못했지만 지리산 천왕봉 구간만은 가보고 싶다고 해서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나선 것이다. 25세 청년이니 마음이 든든하다. 이번 산행에는 또 다른 부자(父子)가 있다. 조한덕-민성 부자. 이들 부자는 우리 대간 산행의 정규 성원이다.

사당역에 도착해 버스를 탈 때만도 이번 산행이 바람과의 싸움이 될 줄은 몰랐다. 새벽 2시 30분쯤 산청휴게소에 내렸을 때 바깥 날씨는 쌀쌀했고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감쌌다. 화장실을 갔다 오는 그 짧은 시간에 온몸이 오싹할 정도였다. 그때 이번 산행에 철저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환절기라 바람이 불고 날씨는 추워지는데 2주전 산행 바람으로 그냥 걸치고 나온 것이다. 얇은 등산복에 바람막이도 없이...

거림마을에서 세석평전에 오르다

   
▲ 들머리인 거림마을에서 산행 시작.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어둠 속에 들머리인 거림마을에 내렸다. 새벽 3시 40분. 산골마을이라 작은 버스를 돌릴 수 있을 정도의 공간에 차를 세운다. 평소대로 짐을 챙기고 몸을 푼다. 그리고 들머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산행길에 오른다.

지리산 남쪽에서 세석평전에 오르는 길은 세 갈래다. 대성골과 남부능선 그리고 거림마을. 대성골과 남부능선은 그전에 몇 번 탄 적이 있는데 거림마을을 들머리로 잡은 건 처음이다. 초행길인 만큼 강한 호기심과 함께 투지도 났다.

백두대간은 구간마다 산행거리가 길기에 무박산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무박산행일 경우 당연히 새벽에 오른다. 새벽에 오르는 산행길은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아직 어둡기에 해뜨기 전 2-3시간 동안 주위 풍경을 못보고 지나친다는 것이다. 장점은 산행 초기이기에 힘도 있는데다가 어둠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에 집중을 해서 빠른 속도로 움직여 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이다.

   
▲ 새벽산행 중 다리를 건너며.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번 거림마을 코스는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계속 오르막이니 새벽에 오르기가 좋았다. 사방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주위에 큰 계곡이 있는지 계속 물 흐르는 소리가 났고, 새벽 산행임에도 땀이 났는데 바람과 함께 물소리가 금세 땀을 식혔다. 따지고 보니 이 계곡도 꽤 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쯤 올랐을까? 6시쯤 되니 사위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여명이 밝아오는 것이다. 계곡을 오르는 중이라 일출을 볼 수는 없지만 여명도 일출 못지않게 장관이다. 오르는 길 왼편으로 멋진 능선이 그림자처럼 뻗어있다, 전용정 대장이 남부능선이란다. 어둠 속에 남부능선이 무슨 기다란 성처럼 솟아있다. 7년 전쯤에 남부능선을 탄 적이 있다. 청학동 마을에서 시작해 세석평전에 이르는 10킬로나 되는 매우 긴 능선길이다.

   
▲ 세석평전에 오르는 중 왼편에 보이는 남부능선.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제 헤드랜턴을 끌 시간이다. 날이 환해지면서 주위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 소리도 새롭게 들리는 듯하다. 이럴 때 기분은 묘하다. 정신도 맑아진다. 어둠과 고요 속의 환각 상태에서 여명과 바람소리가 들리는 현실과 대면한다. 이제 비로소 현실을 인식한다. 아, 내가 산에 있구나. 백두대간을 타고 있구나 하는 현실감... 주위가 아주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는 것 같더니 우측에 뭔가 큰 봉우리가 어른거린다. 촛대봉이다. 세석평전이 가까워졌다는 표시다.

이미 전용정 대장, 오동진 후미대장, 유병창 대원 3인은 아침식사 준비로 라면을 끓여야 한다며 선발대로 올랐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고마운 사람들이다. 산도 잘 타지만 무엇보다 헌신적이다. 힘든 일,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 날이 밝아지자 맨앞에 우리 종주대의 마스코트 민성이가 보인다.[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날이 밝아지자 우리 종주대의 마스코트 민성이가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이다. 민성이가 오늘은 처음부터 잘 걷는다. 아직 어린 나이에 버스 간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또 새벽에 깨서 산을 올라야 하니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개 잠에서 막 깬 초반엔 덜 깬 잠과 추위, 배고픔 등으로 한동안 속도를 못 내거나 가다 쉬다를 반복하기도 하며, 또 어느 땐 아예 주저앉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어른들과 비슷한 속도로 오른다. 새벽산행을 자주 하다 보니 적응이 되나 싶기도 하다.

드디어 세석평전에 올라 대피소 식당으로 간다. 옆에 개방형 식당은 쌀쌀한 바람 탓에 등산객이 별로 없다. 폐쇄형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목욕탕 문을 연 것처럼 뿌연 김이 얼굴에 와 닿는다. 대략 만원이다. 구수한 라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우리 라면도 이미 끓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는 라면을 안 먹는 축이지만 산행 길엔 다르다. 산행 중엔 무엇이든 댕긴다. 게다가 새벽바람에 추위를 먹었으니 따뜻한 국물이 있는 라면은 더할 나위가 없다. 술도 두어 잔 마신다. 이 정도면 바람과 추위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세석평전에서 장터목으로 : 연하선경이 펼쳐지는 구간

   
▲ 세석대피소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세석평전에서 장터목 가는 길. 이 구간은 지리산 산행길에서 가장 멋지고 고즈넉한 길이다. 연하선경이 펼쳐지는 구간이다. 기대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촛대봉에 올라야 한다. 나는 지리산에서 세석평전을 가장 좋아한다. 1980년대에는 산에 텐트를 치고 고기도 구워 먹었다. 그 시절 둥근 원형극장 형태의 세석평전에는 층층이 텐트가 쳐져 있었고 등산객들이 낮엔 무더위에 물고기처럼 느릿하게 지내다가 밤이 되면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술이 오갔다.

   
▲ 촛대봉에 오르명서 뒤돌아보니 세석평전과 함께 세석대피소가 보인다.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그 아련한 추억도 새롭지만 그보다는 영신봉이나 촛대봉에 올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넓은 평지의 세석이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었다. 이리 높은 산 위에 저렇게 넓은 평전이 있다니... 지리산 빨치산이 이곳 세석평전에서 무슨 체육대회를 열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기록은 깨지는 법인가? 아니 경험이 많아지면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것일까? 북측의 개마고원을 빼고, 남측의 고원지대에서 세석평전이 가장 넓은 평전일 줄 알았는데 이는 깨졌다. 이번 백두대간 산행 중에 7구간에서 덕유산에 올랐는데, 덕유평전은 세석평전보다 더 넓은 것 같았다.

특히 세석에서 촛대봉에 오르는 0.7킬로의 길은 언젠가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라야 한다는 일종의 신조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20분정도 걸리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도 한 번에 오르기로 작정했다. 식사 후 산행에다 거센 바람에 잠시 주춤거리기는 했지만 무난히 올랐다.

   
▲ 촛대봉에 올라.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촛대봉에서 이석화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촛대봉에서 유병창 대원. [사진제공-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촛대봉에 오르면 7월말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바람과 만난다. 이날 가을이 지나는 터에 태풍 여진마저 있으니 바람이 오죽했으랴. 촛대봉 바람에 5분도 견디기 힘들다. 그래도 여러 절경을 담기 위해 이리 저리 바위산을 오르며 연신 찰칵이다.

사진을 더 찍고 싶어도 손가락이 마비되기에 카메라나 핸드폰을 꺼낼 수 없다. 모두가 서둘러 내리막길로 향한다. 얼마나 갔을까? 낮은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 반복하더니 앞서 가던 선두가 갑자기 멈춘다. 전 대장이 산행길 옆켠으로 살짝 들어서면서 손가락으로 전방 어딘가를 가리킨다. 멀리 아련한 안개구름 사이로 또 다른 절경이 나타난다. 연하봉이다. 전 대장은 백두대간도 두 번이나 타고 지리산도 수없이 탔기에 포토라인이나 멋진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곳을 알려준다.

   
▲ 연하봉 오르는 길.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연하봉 오르기전 대원들이 뒤를 돌아 손을 흔든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연하봉 오르는 길 전용정 대장.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연하봉 오르는 길 김은정(왼쪽)-심주이 대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윽고 낮은 오르막에 올라 방향을 트니 앞에 비경이 펼쳐진다. 연하봉이다. 그리고 연하선경의 절정이다. 지리산 주능선 25.5㎞에서 가장 아름답고 아련한 곳.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 바위에 앉아 넋을 잃고 연하봉 주위를 보며 감탄을 한다. 산행길 사이사이에 비경이 펼쳐지면서 단풍이 보인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마치 무슨 섬처럼 한 묶음씩 무수히 떠 있다. 세찬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와 광경을 지우면 에이 하며 사진을 참다가 구름이 가시면 우와 하는 탄성과 함께 연방 사진을 찍는다. 신선이 된 듯하다.

연하봉 주변에 안개구름이 없이 그 자태를 그대로 보여준다면 멋진 풍경이긴 해도 아마 선경까지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안개구름이 몰려와 연하봉 자태를 보일듯 말듯 해줘야 그 감칠맛에 끌려가면서 확실하게 못 본 풍경까지 상상력을 더해 최고의 경치로 간주하게 되는 것 아닐까?

비경에 취해 장터목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내겐 너무도 익숙한 곳. 천왕봉에 오고 싶을 때면 자정쯤 강변역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까지 단번에 버스로 와 새벽부터 백무동 능선을 타고 이곳 장터목에 올랐다. 해발 1,750미터. 이렇게 높은 곳에 장터가 섰다니. 자료에 의하면, 오래전 천왕봉 남쪽의 시천 주민과 북쪽의 마천 주민들은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서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 했다고 한다.

   
▲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해 김은정 대원 찰칵.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장터목에 오니 당장 현실로 돌아왔다. 등산객들이 그리 많이 보이질 않는다. 몸을 녹이기 위해 식당 안에 들어가니 만원이다. 여기에 다 들어와 있었구나. 겨우 자리를 비집고 몸을 추스린다. 커피도 한 잔 마신다. 몸을 데운 후 바깥에 나와 주변을 부감한다. 오동진 대원이 북부쪽 산 경사면을 보며 실상사 위치를 찾는다. 백무동과 인월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봉 오르는 길, ‘바람과의 사투’

   
▲ 장터목대피소에서 단체사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장터목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 조한덕 대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천왕봉 오르는 길 심주이 대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맨 뒤에서 늘 웃음을 머금고 대원들을 챙기는 오동진 후미대장.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날 산행의 최고 승부처다. 특히 장터목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첫 돌계단 길은 그 간격이 넓고 경사가 심해 무척 힘들다. 한발 한발 오른다. 문자 그대로 고행(苦行)이다. 힘이 들지 않으면 무아지경 상태에서 마냥 걷지만, 자꾸 옆과 뒤쪽으로 눈이 가는 걸 보니 힘들다는 징조다. 저 앞에 이지련 대원이 묵묵히 오른다. 나는 힘이 들어 길가에 설치한 밧줄에 몸을 의지해 주변 고사목도 보고, 또 가끔 뒤를 돌아 장터목 쪽을 보며 사진도 찍을 겸 숨을 돌리는데 그는 꾸준히 오른다.

이지련 대원은 전에 산을 많이 타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백두대간을 간헐적으로 타고, 특히 지리산 전 구간을 타면서 산행실력이 바짝 올랐다. 2, 4주에 대간을 타는데 그는 1, 3주에도 수도권 산을 타고 몸관리를 하니 우리들 중 가장 연장자임에도 가장 왕성하다. 노력하는 사람만이 앞서 갈 수 있다.

   
▲ 제석봉 오르는 길.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제석봉 오르는 길. 주위에 구상나무와 고사목이 즐비하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제석봉 고사목 안내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장터목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에 제석봉이 있다. 돌계단을 올라 계속 오르막을 걸으면 낮은 초지에 고사목(枯死木)이 주변에 즐비하다. 말 그대로 죽은 나무다. 이색적인 풍경이다. 안내판에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불을 질렀다고 적혀있다. 이곳 제석봉 고사목은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방화에 의해 타서 죽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만행이 이리 숭고한 지리산에서도 저질러진 것이다.

제석봉 고사목의 수종이 구상나무란다. 그러고 보니 제석봉에는 고사목과 함께 살아있는 나무가 있다. 구상나무다. 그러니까 고사목은 구상나무가 타서 죽은 것이다. 살아있는 구상나무와 그 구상나무가 타 죽은 고사목. 생과 사가 묘하게 공존해 있다.

   
▲ 통천문. 천연 암굴로 되어 있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제석봉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서 좀 가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뜸한 산행길 저 앞에 등산객들이 모여 있다. 통천문(通天門)이다. 한 사람씩만 오갈 수 있기에 등산객이 많으면 앞지르기나 교차 산행을 할 수가 없어 병목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천연 암굴을 통과해야 비로소 하늘로 올라갈 수 있고 그 하늘은 지리산에서 다름 아닌 천왕봉이다. 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할 수 없고 신선들도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통천문은 천왕봉에 오르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다.

통천문을 통과해 오르니 나무 하나 없이 하늘과 맞닿은 산길엔 거센 바람만 몰아친다. 짐작에 천왕봉은 멀지않다. 그런데 바람이 세다. 이때 핸드폰에서 문자가 왔다는 신호가 왔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문자를 보니 강풍주의보다. 11시 4분 핸드폰 문자에는 ‘강풍 경보 발령으로 어선 출항을 금지하고, 해안가 낚시 야영객들은 안전지대로 대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의 경상남도청 안전안내문자가 뜬다. 바람이 세긴 센가 보구나...

다음날인 10월 23일(월) 뉴스를 보니 “제21호 태풍 '란'의 영향으로 제주와 동해안, 남해안 지역에는 매우 강한 바람이 이어지겠다. 제21호 태풍 '란'이 일본 열도를 강타하면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항공편이 무더기 결항하는 등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바람과의 사투’가 진행됐다. 보통 정상에 오르기 8부 능선부터는 깔딱고개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에 강풍까지 더해진 것이다. 시야에 정상이 아련히 보인다. 등산객들이 바람에 몸을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는 모습이 보인다. 천왕봉에 오르기까지 누구나 한두 번은 바람에 몸이 실리는 듯한 당혹감을 느꼈으리라.

천왕봉에 올라 백두산을 바라보다

드디어 정상 도착. 여기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장장 1,400km에 걸쳐 흘러내린 산줄기가 머무는 곳, 지리산 천왕봉이다. 천왕봉의 제일 자랑은 당연히 일출.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이니 그 감내의 시간과 일출 앞에 선 환희를 짐작할 수 있다. 나도 언젠가 몇 번에 걸쳐 새벽 산행에 올라 이곳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해돋이를 기다린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이날은 대원 11명이 이곳에 무사히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상에 오르면 누구나 뽐내기 마련이다. 힘든 노정을 밟아온 자신을 대견해 한다. 축구에서 골을 넣은 선수는 팔짝팔짝 뛰거나 또는 거센 포효를 하며 운동장을 질주한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대원들도 정상에서 두 팔을 하늘에 뻗으며 기쁨을 만끽한다. 우리는 종주대의 목표인 백두산이 있을 북쪽을 향해 예를 갖춘다.

   
▲ 천왕봉에서. 바람이 심하게 불고 정상석에는 등산객들로 붐벼 조금 아래에서 찍은 단체사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이제 정상을 밟았으니 남은 건 두 가지. 하나는 천왕봉 인증샷이다. 정상엔 등산객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모진 바람 속에 줄을 서야 했다. 20여 팀이 줄서 있다. 전 대장이 어느새 그 사이에 서 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아뿔싸, 막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으려 할 때 그만 모자가 바람에 날려 뒤편으로 날라 갔다. 뒤돌아보니 다행히도 절벽 아래로 날아가진 않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채 바람에 조금씩 뒤로 밀리다가 돌에 걸려 후덜거린다. 아들 정빈이가 잽싸게 뛰어가 모자를 주워온다.

이 모자에 대한 추억이 있다. 나는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 편이어서 마음에 드는 모자 하나만 쓰고 다닌다. 10여년 전 정빈이와 지리산을 탈 때 그만 모자를 잃어버렸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새벽에 일어나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나섰다가 그만 모자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 내가 모자를 찾기 위해 험하게 오른 길을 뒤돌아 장터목대피소로 내려가자 초등학교 6학년인 정빈이 눈에 힘들게 오른 산을 다시 내려간다는 투정보다는 모자가 얼마나 귀하길래 그랬나 싶었나 보다.

그 후 한동안 모자 없이 산을 탔는데 정빈이가 중학교 1학년 때 필리핀에 갔다가 선물로 모자를 사왔는데 내게 딱 맞을 뿐만 아니라 어울리기도 했다. 이때 정빈이는 “아빠가 지리산에서 모자 잃은 게 너무 서운해 하는 것 같아 사왔어요”하면서 “아빠 취향을 아니 잘 맞을 것이예요” 한다. 기특했다. 그때 그 모자를 그러니까 12년째 쓰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군청색인데 그간 세월과 햇볕에 낡고 색이 바래 하얘졌다. 그런 모자가 바람에 날려 절벽 아래로 떨어질 운명이니 정빈이가 잽싸게 구해온 것이다.

찰칵. 추위와 바람 속에 천왕봉이라 쓰인 정상석에 나란히 선 우리 10명은 영화 ‘암살’의 세 주인공처럼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한 명은 사진사가 되어야 했기에... 요모조모로 사진을 더 많이 사진을 찍고 싶은데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서둘러 정상석 자리를 비운다. 나중에 보니 정상석 사진에는 ‘천왕봉’ 글자에서 ‘봉’자가 찍히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정상주. 그런데 정상 근처에선 바람과 추위 때문에 자리할 수가 없다. 우리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 조금 내려와 바위들 틈에 모였다. 인삼술과 소주가 나온다. 누군가 소시지 안주를 꺼낸다. 이 상황에서 한 잔의 정상주는 마셔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하산길, 백두대간 산행은 계속된다

   
▲ 천왕봉 바로 하산길. 계단에서.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하산길로 접어들자 바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바람이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다.’ 햇볕이 들고 몸에 온기가 돈다.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은 남향인 것이다. 남쪽으로 산과 산들이 연결되면서 멀리 퍼져 있다. 누군가 저 남쪽 끝으로 남해바다가 보였는데 몇 년 전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직 11시30분 정도인지라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직방으로 천왕봉에 오르는 길이니 경사면이 오죽하랴. 가장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사람들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고 숨도 가쁘다.

하산길이지만 속도가 안 붙는다. 워낙 가파르기도 했지만 4명이나 부상당했기 때문이다. 대개 무릎이나 발가락이 아프다. 그래도 경상이라 다행이다. 경상자가 네 명이나 되니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이동할 수가 없다. 지금부터는 자신의 몸상태를 보며 각자도생해야 한다. 자신과의 싸움이다. 하산 길엔 오랜 친구 이지련 대원과 함께 내려오며 이야기도 나누고 풍광에 감탄하며 사진도 찍는다.

조금 내려오니 천왕샘이 보인다. 해발 1800미터이니 따져보면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샘인 셈이다. 바위틈에서 나온 물이 역시 옴폭하게 패인 바위에 잠시 모였다가 흐른다. 자료를 보니 이곳이 서부 경남 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로서,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지로 하는 경호강과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다.

   
▲ 천왕샘을 마시는 이계환 대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마침 먼저 내려온 유병창 대원이 기다리며 샘물을 마시라고 하면서 한 사람씩 사진을 찍어준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라 했던가?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산하를 물려준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약간의 티끌이 묻어나는 물을 마시니 상큼하진 않지만 그래도 기분은 가뿐하다.

목도 축였겠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지만 하산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중산리에서 보는 천왕봉은 어떻게 생겼을까? 낮은 봉우리나 나무에 가려 잘 안 보인다. 조금 내려오다 의자가 있는 쉼터에서 뒤돌아보니 천왕봉이 무슨 성처럼 솟아 있다. 새로운 모습이다.

문득 카프카의 소설 ‘성(城)’이 생각난다. 카프카의 K는 그렇게도 들어가 보고 싶은 성에 결국 못 들어가고 좌절한다. 그러나 천왕봉은 카프카의 성처럼 피안의 세계가 아니다. 천왕봉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르고 싶은 사람에게 모든 걸 허락하는 그런 따뜻하고 인자한 산이다. 못 들어가는 성이 아니라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인 것이다.

   
▲ 하산길  풍광 좋은 단풍산을 배경으로 선 이지련 대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조금 더 내려가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능선길이 나왔다. 능선 너머에 산들이 단풍옷을 입고 멋지게 층층이 겹쳐 있다. 새로운 또 하나의 절경이 펼쳐진다. 그 반대편엔 우리가 지나옴직한 산들이 멋진 자세로 서있다. 우린 배낭을 풀고 아예 주변을 관광하기로 한다. 마침 그때 이지련 대원과 김은정 대원이 있었기에 우리 셋은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풍광에 취한다.

법계사를 지나 로터리대피소에 도착한다. 부지런하고 호기심 많은 이지련 대원은 법계사에 들어가 구경도 하면서 잔뜩 사진을 찍고 온다. 우리 대원들이 다 모인다. 시장하므로 점심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점심은 길게 가지 못했다. 우리 버스가 있는 중산리까지 완전히 하산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 로터리대피소에서 점심식사.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중산리로 출발하기 전 로터리대피소에서 날머리 단체사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마침 법계사에서 운영하는 순두류에서 중산리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그렇다면 순두류까지 가야 한다. 로터리대피소에서 순두류까지는 2.8킬로미터. 1시간 걸리는 길이다.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부랴부랴 식사를 하고 4명의 부상자는 먼저 보내고 나머지 대원들이 뒷수습을 하고 나선다.

이날은 점심을 했기에 중산리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곧바로 상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 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술자리도 산행의 연속이라면 서울에서도 산행은 계속되었다. 서울에서 새로운 술자리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종착점인 사당역에 내리자 이날 산행에 오지 못한 장소영 대원 부부를 비롯해 모두 5명이 마중 나왔다. 16명으로 불어난 우리는 모두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백두대간 산행은 계속된다.

 

 

이계환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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