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저는 오랜 기간 학생운동, 통일운동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2012년부터는 사회운동을 접고 수학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요 관심사는 한국 수학교육을 혁신하는 것입니다.

5년 정도 일선 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업활동가로 일할 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 첨단 과학기술을 접하면서 새로운 시각도 갖게 되었습니다.

촛불이 있었고 신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촛불과 신정부 출현은 또 한 번의 정권교체라기보다는 어떤 시대의 종말과 시작 같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1970년대 초반 대도시에 출현한 청년 인텔리들의 꿈과 염원이 실현된 것으로 봅니다. 익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386세대가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해 보는 것도 유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수학 선생으로 일하면서 갖게 된 이런 저런 생각들을 격식 없이 적어 볼까 합니다. ‘새로운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정도로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 필자 주

 

언제부터인가 헬조선, 흙수저, 1:99와 같이 빈부격차를 우려하거나 풍자하는 조어들이 늘어나고 있다. 헬조선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는 것이 본 글의 과제이다.

1. 먼저 객관 현실을 살펴보자.

 

위 그림은 1990~2016년 수출입 추세이다. 2002년 2000억불을 넘지 못하던 수출은 드라마틱하게 성장하여 2011년 6천불에 육박한다. 10년이 되지 않는 사이에 3배나 늘어난 것이다. 무역수지 또한 큰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다. 2011~16년 수출입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 통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2000년대 한국을 압도적으로 규정했던 것은 다름 아닌 수출과 성장이다.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사안을 논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헬조선의 경우에도 수출이 벌어들인 거대한 파이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파워 게임 같은 것이다. 사회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붕괴하며 벌어지는 막장 혈투를 연상케 하는 헬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2000년대 한국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해외여행이다.

몇 년 학원을 하다 보니 확연히 느낀다. 방학 때면 학생 상당수가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데 그 규모나 양상이 점점 더 커지는 느낌이다. 이제 해외여행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냥 일상이 되어 버렸다.

 

위 그림은 2000~16년 서비스 수지 적자 중 해외여행 경비이다. 수출의 성장 정도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성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명절 때마다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말끝마다 헬 운운하는 장면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문제는 상대적인 빈곤이다. 상대적인 빈곤을 논함에 있어 결정적인 쟁점은 의미 있는 빈곤 계선이 어디서 형성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헬조선이 시사하고 있는 것처럼 1:99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지점인가 하는 점이다.

http://v.media.daum.net/v/20170412184604082

위 그림은 캔자스대 사회학과 김창환 교수가 주간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했다(이 글은 위 자료가 옳다는 것을 전제한다. 만약 이 데이터가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그림은 1990~2015년 소득불평등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p10, p50, p90은 사람들을 소득별로 일렬로 늘어세웠을 때 각각 10%, 50%, 90%에 있는 사람의 소득을 의미한다.

2006년부터 p90/p10, p90/50의 변화가 커지고 있다. 반면 p50/p10의 변화는 거의 없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 2005년 이후 상위 10%의 사람들이 소득이 늘어난 반면 50% 이하의 소득은 변화가 없거나 하락했다. 상위 10%의 사람들은 헬조선을 운운하지만 철마다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자녀들의 교육비로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한다.

한국은 1:99 사회가 아니다. 한국에서 빈부격차를 가르는 의미 있는 계선 중 하나는 10:90이다. 그리고 이 10에는 민주화운동 세력이 포함된다. 대표적으로는 노조를 갖고 있는 대졸 정규직과 교섭력을 갖고 있는 제조업 노동자들이다.

이는 내 경험과도 일치한다. 나는 5년 전 학원을 시작하면서 운동권 자녀들과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의 자녀들을 주요 고객으로 상정했다. 그런데 운동권 부모들의 소득이 생각보다 매우 높았다.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나름의 이권이 형성되어 1980년대 몸뚱아리밖에는 없었던 청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결론을 내려 보자. IMF 이후 한국의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고착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헬조선이라는 극단적인 담론으로 표현될 정도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었다. 빈부격차가 확대되었지만 그것은 1:99가 아니라 10:90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특히 50% 이하 계층의 빈곤이 문제였다. 결국 헬조선이란 담론은 현실을 반영한 경제적이고 객관적인 지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심리적이고 정치적인 조어였다.

2.

그렇다면 다양한 사회집단이 헬조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헬조선에 부합하는 집단이 있다면 단연 노인이다. 이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조차 없다. 실상을 알고 싶다면 통계를 찾아보면 된다. 노인 문제의 특징은 통계를 들이댈수록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나는 이를 나름 생생히 경험했다. 나는 2000년대 중반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2년 정도 간호한 적 있다. 간호라고 해봐야 1주일에 한 번 요양 중인 어머니를 찾거나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 며칠간 병원에서 숙식을 하는 정도였다.

서울 근교의 요양 병원을 찾을 때마다 많은 경험을 했다. 요양 병원의 부모들은 대부분 고생 끝에 자식을 고생시키고 힘겨운 여생을 남겨 두고 있었다. 반면 그 혜택을 입은 자식들은 나름 여유 있고 고학력이었다.

중년의 아들, 딸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도 부모들의 노후에는 인색했다. 자원 배분은 철저히 이기적으로 이뤄졌고 그 틈바구니에서 노인 세대는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찾은 곳이 금천구였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구의 삶은 팍팍했다. 특히 노인들의 삶은 처참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폐지 줍는 노인들과 마주쳤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할머니는 자신보다 2~3배는 될 듯한 수레를 끌고 고갯길을 오르곤 했다. 그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단칸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헬조선에 부합하는 거의 유일한 집단인 노인은 아예 발언하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히 퇴장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했다. 촛불의 승리는 박근혜 정부를 지탱했던 저학력 고령층이 아무런 저항 없이 조용히 퇴장한 것과 관련 있다.

자영업자 또한 헬조선의 명백한 피해자이다. 그런데 자영업자 또한 헬조선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1980년대 용어를 빌린다면 도탄에 빠진, 민생 파탄과 같은 말이 어울릴 것이다.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한국은 헬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헬조선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조어나 담론은 정치적 의사 표현의 통로이다. 자영업자들은 지금 자신들의 언어를 사회화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내가 볼 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치사회적 담론으로 부상한 흙수저, 민중,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서 자영업자는 없다. 그들의 민중론이 1980년대 버전이기 때문이다(80년대 상인은 노동자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헬조선이라는 담론을 유포시킨 1차 진원지는 아마도 청년일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청년실업 등이 헬조선이라는 말이 태어난 배경이다. 나는 앞으로 이 문제를 길게 다루게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는 요점을 중심으로 언급해 보겠다.

헬조선이라는 말의 1차 진원지는 청년이었지만 정작 청년들은 이를 사회적으로 확대하지 못했다. 헬조선이라는 담론을 확대시킨 것은 청년이 아니라 중년이 된 386이었다.

인구에 회자되었던 88만원 세대라는 조어는 유럽 유학 경력이 있는 1967년생 우석훈의 작품이다. 우석훈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럽 유학 배경 때문이다. 토착 386은 여전히 민주와 통일과 같은 제3세계 담론에 묶여 있었다.

청년을 NL(National Liberty, 민족해방) 사투리인 ‘구국의 선봉대오’가 아니라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로 파악하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청년유니언이 만들어졌다. 청년유니언은 세력에 비해 과도한 주목을 받았는데 이 또한 날로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에 비해 청년들의 발언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언의 그늘에는 청년에 대한 386의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청년을 둘러 싼 담론은 두 갈래에서 경합하기 시작했다. 첫째, 한국의 청년은 88만원 세대처럼 고도 자본주의의 희생양인가 아니면 보수진영을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의 일원인가? 둘째, 독자적인 세력화가 필요한가 아니면 범민주진영의 일부로 장차 출현할 민주정부의 수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상황은 논란의 여지도 없이 후자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청년과 386세대 사이의 현격한 힘 격차 때문이다. 길고 긴 우여곡절을 거쳐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지금 청년의 지위는 현격히 추락해 있다. 그들은 민주정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적 감수성을 거의 상실했다. 그들의 경제적 이익은 공무원 증원과 같은 시혜적 조치로 대체되고 있다.

본 글의 문제의식에 충실하자면 2000년대 중반 헬조선의 1차 진원지가 청년이었지만 그것을 확대시키고 사회적 담론으로 정착시킨 강력한 배후 세력은 다름아닌 386이다.

386은 청년시절 그렇게 한 바 있다. 전두환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역사와 민중을 동원했다. 역사는 전두환이 독재를 넘어 친일파라는 점, 민중은 전두환이 민주주의를 넘어 민중 전체를 도탄에 빠지게 하는 만인의 적이라는 점을 환기시켰다. 그렇게 그들은 부족한 아군의 역량을 보강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못 견디게 싫었다. 그런데 이에 반대하는 운동은 좀처럼 발전하지 못했다. 이 간극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신비주의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 취약한 자가 주로 동원하는 전략이 역사와 음모 그리고 신화이다. 레미제라블, 암살, 군함도 등 역사물이 범람했고 세월호, 천안함을 둘러 싼 음모론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경제파산, 민중도탄과 같은 담론이 확대재생산 되었다. 그 와중에 발탁된 386의 미감으로 얼룩진 담론이 다름 아닌 헬조선이다.

마침내 촛불이라는 대회전이 벌어졌다. 저학력 고령층은 퇴장했다. 거대한 진공지대를 무대로 20~50대가 정치적 힘을 과시했다. 거대한 정치적 힘에 비해 내부의 갈등이 미미했던 것은 마땅히 진행되었어야 할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어떤 이유로 봉합되었기 때문이다.

헬조선이라는 청년적 감수성은 촛불과 함께 함몰되었다. 이제 그들은 조용히 노사정 대화의 일원으로 참여하거나 정부 재정 정책의 시혜(공무원 증원)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목적을 달성한 386은 헬이라는 언술을 걷어 들이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회경제적 이해를 대변한 ‘헬’이 아니라 ‘나라다운 나라’(이게 나라냐의 반대말)였기 때문이다. 5.18과 독립운동 유공자들을 정당히 대우하고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 직접 받는 상식적인 대통령, 정부였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해 보자.

헬조선이라는 담론이 있었다. 헬조선의 진원지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헬조선의 유용성을 감지한 50대가 헬조선을 보수진영을 반대하는 자산으로 동원했고 이는 박근혜의 학정에 반대하는 상징적인 언어가 되었다. 반대로 청년들의 문제의식은 거세되었다.

양자의 불균등한 연합은 촛불에서 분출되었다. 양자는 목적을 달성했다. 이후 청년층이 헬조선이라는 문제의식을 잃어버린 반면 386은 지옥 같다던 헬 대신 “나라다운 나라”로 담론 지형을 교묘히 바꾸고 있다.

이게 나라냐, 나라다운나라에는 사회경제적 갈등이 담겨 있지 않거나 약화되어 있다. 애초부터 헬이라는 용어가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정직하게 대변한 용어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비장하게 치장하고 청년층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정치적 색채로 윤색된 담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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