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주 / 문화기획자

 

3,523명이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기차 여행을 했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역 광장 일대에서 열린 ‘평화로 2017’ 행사에서 마련된 인터렉티브 체험에 참가한 것이다. 수억 원대의 예산을 써서 개최한 행사에 참여한 인원치고는 대단히 낮은 숫자이다. 1/3 제작비의 웬만한 단일 공연에 동원되는 숫자에도 못 미치는 결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부는 통일준비위원회 사업의 일환으로 3년 전부터 ‘통일박람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정권이 바뀐 탓인지, 행사명도 ‘평화로 2017’로 변경하고, ‘평화로, 통일로, 미래로’란 세 가지 주제로 서울역광장, 만리동광장, 서울역고가공원에서 분산 개최했다.

통일대박의 허황된 불을 지피려던 통일준비위원회가 ‘쪽박’을 찬 것처럼, 통일박람회도 통일부의 대표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주무 부서였던 신설부서인 통일문화과는 불과 수 년 만에 폐지가 되어 정책협력과로 담당 부서가 이관되었고, 또 다른 측면에서 관제행사의 대표격인 ‘국풍81’의 재현이라는 본질적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박람회(博覽會)는 말 그대로 ‘널리 보게 하는 모임’으로서 상호 이해와 교류를 심화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통일부의 정책 홍보에 우선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통일부는 ‘소통’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통일부에서 기획하고 간섭하고, 예산으로 통제 관리하는 상황에서 소통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직간접적으로 지원을 받는 기관과 단체 입장에서는 참가를 원하지 않을 경우에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공간 마케팅(spce marketing) 측면에서 박람회는 전시와 소통, 대면 접촉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재창출하는 긍정적인 면이 중요한데, 이념이 진영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 다양한 의견 개진을 통해 담론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는 통일박람회는 애초부터 실패를 전제하고 있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에 앞장서서 국가적 합의를 무시하는 선례를 남기고 정부를 믿고 투자한 개성공단 입주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통일부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블랙리스트 문제로 문화부가 대국민 사과라도 했다면, 통일부는 사과 한 마디조차 없이, 정권이 바뀌고 치러진 포장만 바꾼 통일박람회에서 무슨 진정성을 보여주었으며, 여기에 희망와 비전을 가진 많은 민간 대북 단체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할 수 있을까.

▲ 서울역앞 인도적 대북지원단체들이 운영하는 부스 모습. [자료사진 - 북민협]

세부적인 행사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문제는 많아 보인다. 소통의 핵심일 수 있는 ‘국민이 보내는 편지’는 요식적인 행사에 그쳤다. 15만 건이 접수된 문재인 정부의 정책제안인 ‘광화문 1번가’가 성공한 요인 중에 하나는 그 행정의 일관성과 투명함에 있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주관해 접수와 분류, 정책 반영에 대한 보고대회까지 그 과정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국민이 보내는 편지’는 달랑 두 명의 아르바이트 스텝이 접수를 받았고, 민원사항으로 간주해 접수 후 살펴보겠다는 것이 현장에 나온 통일부 관계자의 입장으로서 성의와 절차와 숙의 등이 결여된 형식적인 프로모션에 불과했다.

그간 통일부가 주요하게 추진해 왔던 통일관련 사료 기증 행사인 ‘기록으로 보는 통일이야기’는 대표적인 실정사업이었다. 통일부는 향후 통일사료관 건립을 목표로 민간에서 통일관련 사료와 기록 등을 수 년 간 모집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출발부터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 10만 명 이상이 평양을 다녀가던 시절 많은 이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북한의 상품과 예술품, 도서 등을 가지고 왔다. 당연히 통일부에 반입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통일부가 사료나 기록 등을 기증 받으려면, 최소한 반입 신고를 득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각종 물건들에 대해 예외적인 조항으로 반입 허가를 득한 것으로 간주하는 행정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전제가 되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제화된 절차와 기준도 없이 사료관 사업을 추진하는 통일부는 스스로 아마추어임을 자임할 꼴이 되었다.

3만 명에 달하는 많은 북한이탈주민을 대표해 여러 관련 단체가 참여를 했다. 개별적인 노력은 돋보였지만, 그것을 아우르는 통일부의 대표적인 사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2019년 강서구 마곡지구에 오픈할 예정인 ‘남북통합문화센터’가 지역민들의 반대로 진행이 늦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역에서 요구하는 프로그램 등 개선 방안이나 지역민을 설득할 논리와 사유 개발도 미진해 당연히 이번 행사에 그 ‘원대한’ 계획을 발표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물론 2016년에 신설된 주무 부서인 ‘공동체기반조성국’은 폐지가 되었고 MB 정부 때 폐지된 ‘인도협력국’으로 바뀌었다.

이번 ‘평화로 2017’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역시 장소의 문제이다. 행사기획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장소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간 통일박람회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려 그나마 많이 이들이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 해는 이미 서울아리랑페스티벌이 예약이 되어 있었고, 차선이었던 시청광장은 민중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따라서 도로에 밀려 광장의 규모와 기능이 축소된 서울역 광장 인근에서 치러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적합지 않은 공간에서 열린 본 행사는 노숙자들과 공존해야 했고, 역을 이용하는 많은 이들이 집중해서 참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근처 만리동 광장에서 열린 정규 공연에는 4명의 관객이 전부였던 웃지 못 할 상황도 목격할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참여했던 많은 기관과 단체의 열정과 노력이 그나마 빛을 발했다. 대표적으로 ‘(재)통일과 나눔’이 나누어준 팝콘이 행사장을 풍요롭게 했다. 서울시를 대신해 참가한 ‘(사)희망래일’은 창의적인 프로그램으로 1평 불과한 부스를 10평 이상의 즐거움으로 채우었고, 특히 통일관련 대표적인 퍼포먼스의 하나로 알려진 ‘기다리다 목빠진 역장’은 최고의 인기 콘텐츠가 되었다.

담론을 만든다는 측면에서는 역시 오랜 기간 다양하게 북측과 교류해 온 대북민간단체협의회의 공동부스가 인상적이었다. “남북협력은 만남이다”란 주제로 북한 출입국 과정이 스토리텔링이 된 전시부스와 평양공항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 북측의 커피 시음행사 그리고 남북협력을 주제로 한 포스트잇 메시지는 참가의 전형이 될 만했다.

‘평화로’(toward peace)로 보다는 ‘평화로’(for peace)이기를 개인적으로 기대한다. 평화로 나아가는 방향성에서는 제재와 협력이 공존하겠지만, 평화를 위해서는 제재보다는 협력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평화 체제를 안착하고 반드시 통일로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통일박람회가 행사명이 바뀌어도,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민관 합작의 합목적적인 통일 행사로 자리매김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의 변경이다. 관주도란 인허가의 군림에 익숙한 발상이 아니라 민간의 창발성에 기초한 차별화되고 생동하며 폭 넓은 참여가 전제된 행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안을 통일부에서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공모해 국가적 담론을 시즌 행사로 치부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는 지역 행사에서 익숙한 KBS 열린음악회 유치였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께서 부산영화제에서 갈파한 것처럼, 문화 영역에서 이미 성공한 사례로 확인된 “공공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 길이 원칙’ (arm’s length principle)’이 당연히 적용이 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통일부는 재정과 행정적 지원을 하는 후원 기관으로 물러나고, 대북 민간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가칭 “평화로조직위원회”를 구성해 민간의 다양한 경험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은 유의미한 벤치마킹 사례이다. 대북지원단체, 학술단체, 남북문화교류단체, 언론계 등의 전문가 집단이 참여한 조직위원회가 기획과 주관을 하고, 재정적 지원은 통일부 산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를 통해 집행이 된다면 비로소 관치행사에 머물렀던 통일박람회가 바람직한 ‘평화로’ 행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통일과 평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생각이 표출이 되고, 민주적 절차와 광장의 토론을 통해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고 민족적 관점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진정한 박람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또한 이렇게 될 때 해외의 많은 평화와 통일의 단체들도 참여를 긍정적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북측의 단체들에게 참가 제안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경의선 노래를 하루 종일 틀어 놓는 ‘반쪽’의 행사가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는 북한의 서정가요와 신민요도 울려 퍼지는 통일박람회장의 무대에서,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예술단체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상품의 견본시가 아닌 박람회라면, 세계유일의 분단국임을 강조한다면, 반면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하는 독보적인 국제적인 평화축제로 키워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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