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호환마마’를 가장 두려워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마마는 천연두를, 호환은 그야말로 호랑이나 표범에게 잡아먹히거나 상해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세종 때에는 호랑이 사냥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척호부대를 둘 정도로 호환의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두가 두려워하는 맹수이기에 호랑이는 매력적인 사회적 상징이 될 수 있었다.
사무라이가 활약했던 일본에서는 용맹하고 무자비함, 도교가 발전한 중국에서는 액막이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좀처럼 이런 호랑이의 상징을 수용하지 않았다. 고작 상상의 동물인 백호와 결합한 호랑이가 군대 깃발에 사용되는데 그쳤다.

▲ 단원 김홍도/송하맹호도/비단에 채색/18세기/리움미술관.
단원 김홍도는 호랑이에게 기개가 높고 지혜로운 조선의 선비를 투영했다. [자료사진 - 심규섭]

호랑이그림은 영.정조시대를 거치면서 수용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청나라 문화가 광범위하게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군대의 무력이나 도교적 상징을 가진 호랑이가 아니라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요소를 바꾸어 수용한다.
그러니까 선비의 용맹한 자기수양, 혹은 학문적 양심이나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하는 강력한 의지를 투영한 것이다.
호랑이는 정홍래, 김양기, 이의양 같은 화원도 잘 그렸지만 뭐라고 해도 독보적인 호랑이그림을 완성한 화가는 단원 김홍도이다.

김홍도는 사람을 해치는 포악한 호랑이, 사냥꾼에게 쫒기는 호랑이가 아닌 의연한 조선 선비의 풍모를 투영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송하맹호도]이다.
김홍도의 호랑이는 결코 포악하지 않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포효하지 않는다. 또한 발톱을 감춘 앞발은 공손하기까지 하다. 역동적으로 휘어진 등과 기분 좋게 말려 올린 꼬리에서 경쾌함이 느껴지고 맑은 눈빛은 사악하거나 비굴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기와 지적인 느낌을 준다.

제목처럼 김홍도의 호랑이는 소나무 아래에 있는데, 소나무는 영원성이란 상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호랑이의 용맹함과 영원성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결합하여 어떠한 경우라도 굴복하지 않는 강력하고 변치 않는 의지를 투영한 것이다.
가끔 대나무와 결합한 호랑이 그림도 있는데, 대나무를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본다면 호랑이의 상징과 중복시켜 효과를 높인다.
또한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 때에는 깊은 밤 달과 대나무, 포효하는 호랑이 그림이 나타나기도 한다. 달은 깊은 밤을 드러내는 장치이고 어려운 환경을 뜻하는 부정적인 요소이다.
대나무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뜻한다. 결국 포효하는 호랑이는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거나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긍정성의 상징으로 본다.

조선이 망한 이후 우리나라에서 창작되는 호랑이는 대부분 액막이, 군대, 스포츠의 상징이 붙어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외세에 의한 침략과 수탈에 나약해진 민족의 정기를 높이는데 공감을 이끌어낸다.

▲ 왕호王虎/선우영/120*160/조선화/1993.
북한 최고의 예술가에게 주는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선우영 화백은 조선화 영역에서도 독특한 화법을 창안했다. 마치 점으로 찍은 듯 한 붓질과 세밀한 묘사를 통해 금강산, 백두산과 같은 풍경화를 그렸고, 이후 호랑이그림을 개척한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선우영 화백의 호랑이는 인자하고 기품 있는 산신령을 닮았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상징이 붙어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산신령일 뿐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북한에서 언제부터 호랑이그림이 창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김정일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북한의 호랑이그림은 조선화가 표방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충실하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화면처리나 적절한 과장, 치밀한 묘사, 이상적인 형상이라는 조선화 방식에도 잘 부합한다.
호랑이 털을 가닥가닥 치밀하게 묘사하는 방식은 김홍도의 [송하맹호도]와 닮아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호랑이그림은 단순히 용맹함이나 액막이 같은 도교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 사회의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북한에 그리는 호랑이는 대부분 백두산 호랑이이다. 북한 지역에서 백두산에만 호랑이가 서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백두산을 강조하는 이유는 백두산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했기 때문이고, 김정일의 출생지가 백두산 밀영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백두산 호랑이는 혁명전통에 따른 김일성과 김정일을 상징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 백두산 호랑이/차정현/조선화/2007.
한겨울 백두산에 오른 호랑이를 그린 것이다. 실제 이런 풍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백두산과 호랑이를 결합시켜 새로운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 안영민/수림속의 흰범/조선화/70x135cm/2010.
우리나라에서는 백호, 백사, 백록 따위처럼 흰색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다. 흰색의 호랑이는 특별한 호랑이이자 호랑이 중의 호랑이이며 백두산 호랑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그래서 호랑이그림을 개척한 선우영 화백의 그림에 표현되는 대부분의 호랑이는 인자한 산신령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90년대 말 이후 북미대결이 한창일 때는 포효하는 호랑이, 용맹한 호랑이가 등장한다. 신선 같은 호랑이가 김일성을 상징한다면 용맹한 호랑이는 김정일과 비유된다. 또한 백두산의 배경으로 호랑이 두 마리를 그리는 경우는 김일성, 김정일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다.
가끔 두 마리의 새끼 호랑이를 거느린 그림도 있는데 이것이 뭘 뜻하는지는 별로 어렵지 않다.

▲ 김훈/백두산의 기백/유화/2012.
호랑이는 홀로 생활하는 생태성을 가지고 있다. 두 마리를 함께 그린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이다. 백두산에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는 김일성, 김정일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료사진 - 심규섭]
▲ 리률선/호랑이/조선화/2006.
백두산 숲을 배경으로 호랑이가 누워있다.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거나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지도 않았다. 인자하지만 기백 있는 산신령과 닮았다. [자료사진 - 심규섭]

북한의 호랑이그림은 중국과 같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잘 팔려나간다.
전통 수묵화나 서양의 유화방식이 아닌 조선화로 그린 담백한 맛의 호랑이그림은 특별하고 새로운 감성을 담고 있기에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대부분의 호랑이그림이 용맹, 포악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수려한 배경을 바탕으로 인자하면서 굳센 의지를 표현한 모습도 큰 매력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호랑이그림은 금강산그림, 무희그림과 함께 미술품 수출의 3대 주력상품이다.

북한의 사상을 담긴 호랑이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용하긴 힘들 것이다. 또한 조선이 망한 이후 선비의 상징으로 받아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호랑이에게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산신령이라는 민족 공통의 정서가 담겨있다. 이런 호랑이에게 우리민족에게 드리운 전쟁의 위협을 제거하고 평화를 이루기를 기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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