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이하 ‘안철수’)가 당 대표 경선 출마에 출마했다. 이에 대해서는 당 내외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특히 호남 출신 의원들과 이른바 동교동계라고 불리는 원로 그룹들은, 안철수와 같은 당 동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등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출마를 고수하고 있고, 특히  출마 선언을 하면서 어울리지 않게 안중근 의사와 자신을 비교하는 비장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족민주운동의 관점에서 본 ‘안철수 현상’

한때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았고, 새정치라는 이슈로 제3당까지 나오게 한 안철수가 어쩌다가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그리고 이런 평가를 모르는 바 아닐 텐데 그는 어째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출마를 강행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정치공학적 평가들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역사적 흐름과는 얼마간 거리가 있는 것이다. 이제 지금의 현상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민족민주운동의 관점으로 안철수를 둘러싼 작금의 사태를 평가해 보자.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왜 생겼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정리해 보자면 한국사회의 발전 및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사회의 발전은 한국경제의 발전만이 아니라 정치의 발전까지도 의미한다. 한국경제와 정치는 발전했는데 그에 걸맞은 정치세력을 기존 정치세력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국민대중은 새로운 정치세력 혹은 정치적 인물이 출현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왜 사회의 발전에 걸맞은 정치세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는지는 여기서 길게 언급할 여유는 없을 듯하다.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그것은 민족민주운동의 주체적 결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해방 정국 이후 6.25전쟁과 그 뒤의 극악한 파시즘에 의한 무자비한 탄압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그러한 조건하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상이 왜 안철수였을까 이다. 그 까닭은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이 그 하나이고, 일상의 시기에 안정적인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요구가 다른 하나이다. 안정적인 변화를 바라는 대중의 요구는 그 변화를 담지할 세력 혹은 사람을 기존 제도 정치권이 아닌 곳에서 찾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기존 질서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흔히 말하는 그 사회의 주류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의 모순에 대한 근본적 극복을 담지할 만한 세력 혹은 인물은 이 사회의 주류에서는 있을 수 없지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시행위를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나오게 마련이다. 안철수는 이러한 조건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기성 정치권에 물들지 않았으면서 지명도가 있고, 성공한 기업가였다. 학벌이나 경력 등도 이 사회의 최고 엘리트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대중의 바람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람을 일으키는 토대가 되는 그의 지명도나 기반은 오히려 이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장애가 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구의역 아르바이트생 사망 사고에서 그가 한 발언, ‘좀 더 나은 여건이 되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 그의 본질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중의 열망을 해결할 수 없는,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오히려 이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와 김영삼의 공통점과 차이점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이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듯한 위치에 서게 되는 사람으로 안철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김영삼)에 비견될 만하다. 김영삼 역시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는 걸맞지 않은 발언과 행동을 많이 했고, 그것 때문에 민주세력의 상징처럼 여겨졌었다. 그는 1979년에 신민당 총재가 되면서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을 ‘해방정당’이라고 일컬었고, YH노조의 농성투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으며, 이후 전두환 정권에서도 앞장서서 싸웠다. 하지만 그는 결국 더 이상의 전망을 찾지 못한 채 3당 합당을 하게 된다.

물론 김영삼과 안철수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도 존재한다. 그 차이 중 핵심적인 것은 두 사람이 주된 활동을 하는 시대의 차이다. 김영삼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민족민주운동은 독자적인 정치적 진출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맹아만이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철수가 돌풍을 일으키고 영향력을 끼치던 최근 몇 년 간의 시기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 민족민주운동이 완전히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하지는 못하였다고 하여도 이제는 누구나 민족민주운동의 존재를 알고 있고, 극단적인 수구세력이 아니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능력의 차이이다. 이런 점 때문에 안철수를 김영삼과 비교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김영삼의 정치적 능력은 사실 탁월하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이른바 중도통합론을 통해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희석시키려는 이철승 등의 노선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긋고 선명한 야당을 .이끌어서 박 정권 몰락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부터  전두환 정권 시절 어용 야당인 민한당에 대해 신민당을 만들어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1야당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서 흐릿해지는 신민당의 노선에 반대하여 통일민주당을 만들고 전두환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서 결국 6.10항쟁으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데 일조한 것 등은 그의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리더십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능력의 차이일 뿐 아니라 투쟁성의 차이이기도 하다. 김영삼은 나중에 3당 합당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까지 그가 이룬 민주화 투쟁에서의 공은 이 투쟁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반면에 사실 안철수는 제대로 투쟁했다고 볼 만한 것이 없다. 이러한 투쟁성의 차이가 안철수의 정치적 지향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안철수는 새정치를 한다면서 기존 제도정치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는 것처럼 하다가, 탄핵정국에서는 선명한 대여투쟁을 구호로만 외치더니, 대선 국면에 들어가서는 갑자기 보수층까지 끌어안는다는 식의 행태를 보였다. 한마디로 우왕좌왕 오락가락하였던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본다면 김영삼과 안철수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그 공통점으로는 두 사람 다 민족민주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연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역사가 제대로 가는 길은 민족민주운동이 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진출을 하고 세력화해서 마침내 정권 창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민족민주운동에 복무하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관점은 변함없이 지녀야 할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마치 낡은 방식이라고 치부하고, 그 외의 다른 길을 좇는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민족민주운동에서 일탈한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수구의 품에 안길 안철수

어쨌든 이와 같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많은 차이를 보였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안철수에게 또 민족민주운동에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다. 먼저 안철수에 대해서 말해 보자. 김영삼은 앞에서 보았듯이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지는 데 온몸을 바쳐 싸웠다. 그가 3당 야합이란 것을 통해 변절함으로써 만들어낸  후과를 글쓴이는 결코 작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그 이전까지 민주화 운동에, 그 결과로 우리의 역사에 기여한 점 역시 결코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적어도 민주화 투쟁 기간 내내 민족민주운동을 자신의 동지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철수는 그러하지 않았다. 그는 수구세력과 싸우는 것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민족민주운동을 낡은 세력으로 치부하였다. 국민의당의 강령을 만들 때 4.19혁명이나 5.18민주항쟁의 정신을 빼려고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으므로 여기서 단정 짓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그 동안의 그의 행태로 볼 때 글쓴이는 적어도 그가 민족민주운동을, 수구세력과 싸우는 자신의 동지라기보다 수구세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자신의 경쟁세력으로 인식했다고 본다.

이러한 그의 사고방식은 탄핵국면이 시작되고 대선이 시작되자 금세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거기에 그의 무능까지 겹치면서 그는 대선에서 패배하고 급격히 지지가 추락하여 인기 없는 정치인으로 몰락하게 되었다.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을 하려고 했다면 자신의 역사적 책무를 정확하게 꿰뚫었어야 했다. 그것은 수구세력과 일전을 불사해야 하고, 민족민주운동과 손을 잡고 그것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할 수 없었고,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로 대표되는 국민의당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국민의당에는 복잡다단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안철수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제3의 길이라는 착각 속에서 출범이 가능했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당에서 일으킨 제보조작 사건이나 이언주의 망언 등이 어찌 보면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그것이 국민의당이 갖고 있는 본질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한편, 국민의당에는 또 다른 요소도 섞여 있다. 대표 경선에서 안철수와 경쟁자가 된 정동영, 천정배 등은 안철수보다는 훨씬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이해가 많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구민주당의 구태의연함과 보수성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탈당하였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그리고 호남의 민심이나 열성적인 당원들은 아마 이러한 점에 대한 믿음을 갖고 국민의당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새로운 정치를 원했다면 안철수와 손을 잡지 말았거나 아니면 안철수를 진보적으로 견인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새로운 정치는 안철수류의 제3의 길이 아니라 보수양당 정치를 극복하는 진보정치의 길이다. 그들은 그런 점을 알면서도 안철수에게 일시적으로 몰리는 대중의 지지에 압도되거나 혹은 매료되어서 국민의당에서 함께 추락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 안철수가 갈 길은 거의 정해져 있다고 보인다. 굳이 비교 대상이 되기도 힘든 김영삼과 비교하며 이야기한 것은 결국 그의 길은 수구의 품에 안기는 길로 갈 거라는 점이다. 그것은 결국 민주개혁세력을 배신하는 길이고, 역사를 배신하는 것이다. 김영삼은 그것을 통해 대통령이라도 되었지만 안철수는 이제 그런 길도 별로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그가 역사를 배신하지 않고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민주당보다 조금 더 진보적으로 가는 길이다. 경제는 진보인데 안보는 보수라는 따위의 바른정당류의 황당한 소리를 그만하고 진정으로 모든 면에서 진보적인 길을 가는 것이다. 안철수라는 개인으로는 그러한 길을 가기는 어렵겠지만 국민의당에 아직 남아 있는 열성당원 중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이러한 길로 갈 여지가 남아 있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민족민주운동을 진정한 자신의 동지로 여겨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안철수가 그러한 변신을 못한다면 국민의당에서 진정 이 땅의 진보적 개혁을 요망하는 이들은 과감히 그를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민주운동이 해야 할 성찰

이제 민족민주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민족민주운동은 많은 과오를 범했고, 무능력했다는 점에 대해서 깊이 성찰해야 한다. 하지만 민족민주운동이 그것보다 더 성찰해야 할 것은, 민족민주운동이 포괄적으로 동의하는 전략적 지침이랄 수 있는 노선이 결코 낡은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더디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점을 종종 잊는다는 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여기서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김영삼도 만났고, 안철수도 만났다. 또 그 외의 많은 보수정치인, 중도적 정치인을 만났고, 만나고 있고, 만날 것이다. 그들이 역사에서 어떻게 기여할 수 있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안철수 현상에 대한 경과를 통해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의 이념을 갖지 않은 세력이나 개인은 우리 역사의 근본적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인 위치가 부여될 수밖에 없다. 물론 민족민주운동의 이념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민주화 투쟁 혹은 평화 투쟁 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족민주운동의 이념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되는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 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고정적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한계와 그것의 극복 과정에 대해서는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그들이 민족민주운동을 자신의 동지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경쟁자 내지는 낡은 세력 정도로 치부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민족민주운동 역시 그들과의 연대를 통하지 않고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세력화와 집권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대시하는 외세와 독재의 무자비한 억압 때문에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세력화가 더디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 조건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적 역량이 미미하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상당히 오랜 기간까지 민족민주운동은 그들과 연대를 해야만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남한의 현대사에서 민족민주운동은 과오도 적지 않았고, 그 후유증이 지금도 없다고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성찰은 하되 자신의 기본을 버려서는 안 된다. 목욕물을 버릴 때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서양 격언이 있듯이, 민족민주운동의 여러 가지 전술적 실패를 빌미로 민족민주운동 자체를 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민족민주운동이 스스로 성장해 나가면서 여러 민주개혁세력과 연대하고, 그 과정을 통해 정치세력화해 온 것이 한반도 남쪽의 현대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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