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근 / 종주대원

 

밤 11:30, 서울 출발

봄 내내 온 대지를 바짝 태우던 가뭄 끝에 내리기 시작한 비가 폭우로 변해 여러 지역에 피해를 주고 있어 이번 산행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시작 전부터 걱정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덕유산 지역에는 큰 비가 없을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편안한 마음으로 등산장비를 꺼내 채비를 갖추었습니다.

비 때문에 간단한 행군식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해 배낭에 담고 동천 버스정류장에 가자마자 곧 바로 버스가 도착하네요. 반가운 대원들과의 인사는 잠시 뒤로 미루고 새벽부터 시작되는 산행에 대비해서 억지로라도 잠을 청합니다.

오전 3시 황점마을 출발

▲ 7구간 산행의 출발점인 황점마을 입구에서.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오늘 산행의 출발점인 황점마을 입구에 도착해서 장비들을 챙기고 졸린 눈을 비비며 백두대간 7구간 산행을 시작합니다. 몇 구간째 무박산행이 계속되면서 인원이 조금 줄어 이번 산행은 14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오늘 7구간을 마무리하면, 우리가 걸어야 할 백두대간 남쪽 종주 구간 중 드디어 10%를 돌파한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마음가짐이 새롭습니다. 전용정 대장을 필두로 올해 초 준비산행부터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벌써 7번째 구간까지 왔네요.

최연소 10세 조민성 대원부터 산행초보 아줌마까지 대원 모두가 이제는 각자의 산행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종주대원들이 되어 우리 백두대간 종주대를 떠밀고 간다고 생각하니 가슴 밑바닥에서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오네요. 이젠 모든 대원들이 소소한 어려움 따위는 잘 이겨내고 백두대간 종주산행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단단해집니다.

오늘 산행 첫 구간은 이곳 황점마을 입구에서부터 지난 6구간 하산지점인 백두대간 접속점 월성재까지의 3.8kM입니다. 동트기 전의 어둠에 짓궂은 날씨까지 겹쳐 산은 아직까지 적막한 새벽어둠에 묻혀있고 우리는 서로가 비추는 헤드랜턴에 의지하며 산을 오릅니다. 

▲ 어둠을 뚫고 정상을 향해.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지난 6구간 육십령 – 할미봉 1시간짜리 급한 오르막 구간을 경험한 터라 모두들 편안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오르막이 1시간 이상 계속되자 모두의 입에서 비명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지, 여기가 할미봉 구간의 험한 오르막길보다 2배 더 길구나…’ 모두들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하고 후미에서 계속 “선두 반보”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어렵다던 백두대간 육십령 - 할미봉 – 서봉 - 남덕유산 구간을 무사히 잘 넘겼다는 자신감이 산에 대한 겸허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 전진. 또 전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역시 모든 산행은 어려움이 있고, 그래서 산에 오르는 자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싶습니다.

출발지점에서 접속지점까지 의외의 난이도에 모두들 힘들어 하는 그 순간, 여기 저기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지네요.

‘아 ~ 온 천지가 여명으로 물들고 있구나. 참 신기도 하지… 아침 해의 변화에 가장 빨리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새들이야. 닭을 포함해서…’ 새날이 밝아오는 것을 나도 빠르게 잘 감지했으면 싶다. 그러면 이육사 시인이 광야에서 소리쳤던 것처럼 누구보다 먼저 우리 민족의 통일을 노래하고 있을 텐데…

5:00,  월성재 점속지점 도착

▲ 출발한지 2시간 만에 도착한 접속점 월성재.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출발한지 2시간 만에 드디어 월성재 접속점에 도착합니다. 주변의 사물을 인식할 정도로 새벽이 또렷해집니다. 헤드랜턴을 이제 배낭 속으로 넣고 새벽의 빛에 기대어 산길을 걸을 겁니다.

백두대간 종주보다 접속점까지의 연계구간이 훨씬 힘들다고 투덜거리게 만드는 구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접속점까지 오르내리는 구간 때문에 종주의 소중함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전 대원이 월성재에서 쉬고 있는데 밤12시에 육십령을 출발했다는 덕유 주능선 종주팀을 만나 인사를 나눕니다. ‘아이구~ 우린 아직 멀었네… 지난 6구간에 우리가 하루 종일 걸었던 그 구간을 5시간 만에 돌파했다니…’ 아마 우리 백두대간 종주가 2~30%를 넘기면 산행실력도 많이 올라가 있을 겁니다. 그래야 우리가 남에서부터 북까지 이어진 백두대간의 최초 종주팀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 삿갓봉 가는길. 새벽을 뚫고 아침햇살이 퍼져 장관을 이루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삿갓봉을 향해 오르다 보니 드디어 온천지가 밝아집니다. 오늘은 해가 뜨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산에서 맞이하는 여명과 일출의 순간은 항상 인상적입니다.

저 멀리 전라북도 쪽의 산과 골이 운무에 쌓여 있네요. 논바닥이 갈라지는 지독한 가뭄에도 질긴 생명을 보존하다 반갑게 내려준 빗줄기에 금새 생기를 띄며 활력을 되찾는 자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네요.

이러한 이치 때문에 70여년 분단으로 고갈되는 5천년 민족의식도 민족화해의 새 소식에 금새 활력을 되찾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우리는 이미 그런 경험을 했었군요. 6.15의 단비에 단기간 통일 새 기운이 용출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절대 어렵지 않겠다 싶군요. 언제 또다시 통일의 단비가 내릴 것인지… ‘우리도 그 단비를 만드는 비구름 씨앗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오늘 아침 해는 유달리 가슴이 짠하네요.

이런 우리 종주대의 소박한 소원을 이끌어 주는 등반대의 길라잡이 두 분입니다. 많은 대원들을 도와주고 끌어주며 완주가 가능한 백두대간 종주대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너무 고맙죠.

▲ 우리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대장님.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그리고 산행기록부터 우리 종주대의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하는 유병창 대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6:00  동이 터오는 산하에 취해 대간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삿갓봉에 도착했습니다

▲ 삿갓봉에 오르는 마지막 지점에서.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슬슬 잠도 오고, 접속점까지 오르며 기력들이 빠졌지만 구름 속 삿갓봉에서는 모두들 힘을 내봅니다. 이 구간을 넘으면 아침식사를 나누며 잠시 쉴 수 있어서죠.

7:00,  삿갓재대피소 도착 그리고 식사

▲ 삿갓봉대피소에서 아침식사.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모두들 아침준비에 분주합니다. 우리는 행군식으로 준비한다고 주먹밥만 챙겨왔는데…

내놓은 음식들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집니다. 조리를 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피소가 있는 산을 만나기가 어렵다네요. 그래서 대피소식사에 맞게 김성국 대원이 생삼겹살을 준비해왔습니다.

▲ 진수성찬에다 삼겹살까지...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아~ 감동... 삼겹살에 감동하고, 안 녹게 배낭에 잘 건사해 가져온 그 마음에 감동하고, 그 정성에 진심 고마워하는 종주대원들 마음에 감동하고… 오늘은 백두대간 종주의 10%가 끝난 게 아니고 남은 90%의 산행을 무사히 진행시킬 우리 종주대의 저력을 확인했다고 하면 제 호들갑인가요?

8:00, 삿갓재대피소 출발

▲ 삿갓재대피소 출발에 앞서.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든든한 삼겹살과 라면 국물로 아침식사 후 잠깐 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무룡산을 향해 출발합니다. 식사가 든든해서인지 산행에 속도가 붙네요.

9:10,  무룡산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 무룡산에서 바라본 남덕유와 서봉.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9:20 무룡산 정상 아래

▲  이날 처음으로 가빈 가희를 집에 두고 부부만의 등반(!)을 한 가빈네 부모(가운데 두 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가빈이네 가족은 오늘 처음으로 가빈 가희를 집에 두고 부부만의 등반(!)을 합니다. 어린 가빈이, 가희 자매걱정이 많습니다만, 학교 선후배가 모여 우리 백두대간 종주대에 참여하여 산행을 같이 하고 있으니 20여 년 전으로 돌아간듯합니다. 그 우정이 참 부럽습니다.

9시10분 무룡산을 돌파하고 동엽령을 지나 오늘의 백두대간 최고봉 백암봉으로 향합니다.

10:20,  무룡산에서 동엽령 가는 길

▲ 무룡산 지나 동엽령 가는길.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저 앞 보이는 동엽령을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깁니다.

13:10 백암봉( 1504m ) 도착

▲ 백암봉 가는 길.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드디어 백두대간 7구간 최고봉인 백암봉에 도착.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드디어 오늘 백두대간 7구간 최고봉인 백암봉에 도착했습니다.

저 멀리 남덕유산이 보입니다. 해가 구름 때문에 그런대로 태양을 걱정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백암봉을 지나 중봉과 향적봉으로 가는 길에 접어들자 날이 개더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햇살에 쏟아져 내려옵니다. 피부가 따갑네요. 그것도 아주 많이…

체력이 바닥나는 지점인데 고산지대의 강력한 햇빛까지 가세하여 많은 종주대원들을 탈진으로 몰아갑니다. 준비한 식수도 바닥나고 이제부터는 모두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따가운 햇빛을 견디며 묵묵히 걷다보니 들꽃이 만개한 너른 평원이 나타납니다.

▲ 중봉 가는 길, 좌우로 넓게 펼쳐진 덕유고원.[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덕유고원에 군락하는 원추리.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아 ~ 덕유고원(=덕유평전)이네요.

백두대간에 걸쳐있는 지리산구역의 잔돌고원(=세석평전)과 더불어 손에 꼽히는 고원지대인 덕유고원입니다.  원추리가 군락지를 이루어 자생하며 시원스럽게 주변지역을 아우르는 것이 참 절경이네요.

▲ 우리가 지나온 산길. 덕유고원 건너 무룡산이 보이고 저 멀리 남덕유산과 서봉이 보인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중봉에 올라 걸어온 덕유산구간의 길을 되돌아봅니다. 저 멀리 무룡산과 남덕유산과 서봉이 보이네요. 저희 종주대가 2차례로 나누어 걸어온 길입니다. 아름다운 조국 산하를 직접 걸으며 느끼는 이 호사가 얼마나 계속될까 걱정과 기대가 교차합니다.

우리 백두대간 종주대가 백두대간 혈맥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북한이 자랑하는 세포등판의 목초지도 지날 것이고(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4684), 개마고원과 대홍단의 감자꽃도 곧 볼 수 있지 않을까? 남쪽 산들보다 높고 더 추운 북쪽 고원지대의 식생을 바라보며 백두대간을 걸을 수 있는 날이 멀지 않기를 희망하네요.

▲ 앞서 간 대원들이 후미 대원들에게 어서 오라고 응원.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향적봉 오르기 전 곳곳에 고사목이 보인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언어와 공동체의식을 공유하고 핏줄기를 같이하면 그것을 민족이라고 하는데, 우리 민족은 여기에 더해 백두대간 혈맥을 통해 민족의 터전마저도 하나로 이어져 있으니 이런 민족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이런 소중한 가치를 지닌 하나의 민족이 지난 70여년 갈리어져 왕래마저 끊어져 있으니, 이 산하에도 조상들께도 그저 죄스러울 뿐입니다. 우리 백두대간 종주대가 미력하나마 끊어진 백두대간 혈맥을 잇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많이 힘을 쏟아야겠다 싶은 간절함이 밀려오는 시간입니다.

14:20  향적봉에서 백두대간 무사종주와 백두대간 혈맥의 복원을 기원합니다

▲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드디어 전체 백두대간 종주산행(남쪽구간)의 10%를 돌파했습니다.

이제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이 신입대원들의 손을 잡아줄 정신적 체력적 준비가 많이 된 것 같네요. 여러분도 저희 종주대에 참여하셔서 앞으로 남은 백두대간 종주산행에 함께 해주지 않으시렵니까?  

더 많은 벗들과 백두대간 혈맥을 복원하는 이 길을 함께 걷고 싶습니다.

▲ 산행 경로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산행 고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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