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 종주대원, 전태일재단 대외협력위원장

일자: 2017년 6월 25일(일) 무박
구간: 육십령~할미봉~서봉~남덕유산~월성치~황점마을
산행거리: 13.24km, 11시간 34분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인원: 13명

 

▲ 6구간의 하이라이트 서봉으로 향하는 고달픈 그러나 멋진 산행길.[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긴장된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는 날 반가운 비가 내리고

▲ 백두대간 종주 6구간 들머리인 '육십령'에서.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24일 밤 11시 30분 사당역에는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이번 남덕유 구간은 험난하다는 소문에 비소식까지 겹쳐 참가 대원이 현저히 적다. 신청한 13명 중에 처음 참가하는 여성대원도 있고, 10살짜리 조민성도 첫 무박산행에 도전하는 쉽지 않은 산행이다.

이제는 낯이 익은 전세버스에 올라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5분정도 달렸는데 갑자가 전용정 대장이 지갑이 없어졌다고 한다. 기다리던 곳에서 빠진 것 같다고 하여 되돌아 와보니 다행히 지갑이 그대로 있었다. 동천에서 오창근 대원을 태운 버스는 우리를 무사히 5구간 종착지인 육십령 고개까지 데려다 주었다. 우리가 북진한 만큼 거리가 짧아져 도착 시간도 점점 빨라진다. 새벽 2시 30분이다.

육십령 휴게소에는 비는 오지 않고 오히려 별이 보일 정도로 맑았다. 산행하기에 좋은 날씨라서 다행이다. 단체사진을 찍고 신발끈을 조이며 1,500미터까지 올라야하는 덕유산 안내지도를 보니 긴장감이 흐른다.

저 높은 산을 우리가 오를 수 있을까?

▲ 6구간 산행 고도.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남덕유산은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전북 장수군의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난이도가 매우 어려움으로 분류되는 힘든 코스다. 특히 겨울의 설경이 뛰어나 전문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나 경사가 급해 준비도 철저해야 되고 각별히 조심해서 산행해야 한다.

새벽 3시. 한줄기 헤드랜턴 불빛으로 좁은 산길을 헤치며 설렘과 가벼운 흥분으로 첫발을 뗀다. 등산화에 스치는 풀잎과 팔에 와 닿는 나뭇가지에 물기가 가득하다. 이슬인지 약한 비가 내린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짙은 어둠 속에서 우리를 반기는 것은 소리다. 뻐꾸기가 울고 요란한 개구리 소리에 이어 소쩍새도 운다. 한밤중임을 실감한다.

능선에 올라서니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귀염둥이 민성이는 첫 야간산행에 신이 났는지 아빠의 걱정 어린 호통에도 불구하고 물방울 머금은 나무를 흔드는 장난도 치고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이 감겨오고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는데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벌레들이 대원들을 귀찮게 한다.

가파른 언덕길. 민성이가 조용하다 했더니 토할 것 같다고 한다. 잠시 숨을 고른다. 한 고개를 넘으니 날이 점차 밝아오고 새의 지저귐이 달라졌다. 밤에 들리는 새소리는 낮고 묵직하였는데 새벽녘의 새소리는 경쾌하고 맑다. 우리의 발걸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급경사길을 헐떡거리며 올라서니 1.026미터 높이의 할미봉 표지석이 불쑥 나타난다. 한 굽이를 더 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할미봉에 도착한 것이다.

▲ 어둠 속에 할미봉에 올라 차려 자세를 취한 조민성 군.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안내판에는 ‘할미봉은 함양군 서상면을 지나 전북 장계면으로 넘어가는 육십령 고개 바로 북쪽에 솟아있는 암봉으로, 함양을 지나가는 백두대간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기암괴봉의 운치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계절에 따라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으로 오가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기쁜 마음에 한 명씩 기념사진을 찍고 구름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서봉과 남덕유산의 우람한 모습에 감탄과 함께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올라야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 할미봉에서 내려오는 바위 길.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할미봉은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이번 산행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직벽에 가까운 암릉에 계단을 설치하지 않고 밧줄과 생나무 사다리만이 놓여 있을 뿐이다.

전문산악인들이야 좋아할 법하지만 우리로서는 무척 힘든 코스였다. 국립공원이라도 등산객이 적게 오는 지역이라 그런지 나무계단이 무너져 내린 곳도 있었고 위험한 등산로에 대한 정비가 미흡하였다. 할미봉을 지나 6시 30분경 헬기장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가장 험난한 서봉을 향하여

▲ 멀리 보이는 서봉과 남덕유산.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서봉으로 향하기 전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는 대원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잠깐의 휴식과 함께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가장 힘든 서봉을 향하여 배낭을 다시 멘다. 걱정을 했던 민성이는 한 고비를 넘기자 앞장서서 잘 걷는데 오히려 민성이 아빠가 뒤처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후미대장의 역할을 맡고 있어서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임무다. 배낭을 들어보니 20Kg도 넘는 것 같았다. 무엇이 이렇게 많으냐고 하니까 민성이 것까지 2인분에 지난 산행에서 배가 고파 이번에는 계란말이도 정성들여 싸고, 우렁쌈장도 만드느라 잠도 못자고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 민성이를 데려갈까 말까 망설임도 많았을 것이고,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잠도 못 잤으리라. 버스 안에서 잠을 자라고 재촉하는 것도 보았고 새벽산행에서 민성이를 챙기느라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었을 것이다. 무거운 배낭을 이재흥 대원 것과 바꿔 메게 하고 뒤에서 천천히 걷게 하였다. 오늘 처음 참석한 여성대원도 힘들어하기 시작한다. 경험 많은 산악인도 힘들어하는 코스다.

▲ 언제 어디서 보나 멋진 일출.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 힘들게 계단을 오르고 나니 갑자기 시야가 탁트이며 운무가 한폭의 수묵화처럼 퍼져 있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지치고 힘들 때쯤이면 반드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자연의 선물이 있었다. 지난 무박산행에서는 해돋이가 우리를 황홀케 하더니 이번에는 운무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힘들게 계단을 오르고 나니 시야가 탁 트이고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모습이 펼쳐졌다.

동이 트기 전 새벽녘과 일몰 직후의 사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던데 실감하는 순간이다. 멋진 배경으로 한 명씩 사진을 찍고 단체로 우리 종주대원들의 아름다운 모습도 자연 속에 담았다.

▲ 산은 점점 가파르고 암릉이 앞을 막아선다. 그러나 걸어서 못가면 기어서라도 가리라.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배도 고프고 부족한 수면 때문에 졸음도 오고 지쳐가고 있다. 산은 점점 가파르고 암릉이 앞을 막아선다. 그러나 걸어서 못가면 기어서라도 가리라. 우리 종주대는 산행 경험이 많은 대원도 있지만 전혀 산에 다니지 않았던 초보자들도 많아 백두대간 종주대 중 가장 엉성하고 허약한 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종주대와 달리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가슴에 안고 산행을 한다. 남쪽 진부령에서 끊겨진 길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철책선을 넘어 금강산, 개마고원을 거쳐 백두산 장군봉까지 가는 북쪽의 백두대간 길을 가장 먼저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저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던 덕유산 서봉 정상도 한발 한발 가다보니 바로 눈앞에 와 있지 않은가. 우리 종주대는 이렇게 강하게 단련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남북화해와 교류의 물길도 그렇게 다가오리라.

▲ 서봉 정상 직전에서 아침식사를 풀었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서봉 정상에 가면 그늘이 없을 거라는 대장의 설명과 함께 정상 직전의 바위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산행에서는 먹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당연히 먹는 것도 좋지만 어깨를 파고드는 무거운 짐도 줄일 수 있기도 하니까. 모두가 앉을 만한 넓은 공간이 없어서 군데군데 모여 앉았다.

이번 산행에서도 먹을 걸 꺼내놓고 보니 푸짐하다. 무박산행 아침식사에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은 역시 따뜻한 국물이 있는 라면이다. 누룽지를 끓였더니 힘들고 지친 대원들이 좋아한다. 정성들여 만들었다는 계란말이는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기까지 하고 애주가는 반주가 있어야 산행의 맛을 더해준다.

▲ 드디어 서봉. '야 신난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주섬주섬 배낭을 정리하고 코앞에 보이는 정상을 향한 발걸음이 조금 가볍다. 언덕길을 치고 올라가니 1,492미터 서봉 안내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서봉은 장수군에 속해 있어서 장수덕유산이라고도 한다. 정상에 서니 시야가 트이고 어둠속에 걸었던 할미봉이 저렇게 많이 걸었나 싶을 정도로 저 멀리 보인다. 장수 쪽의 골짜기는 온통 구름에 뒤덮여 있고 봉우리들만 어렴풋이 그 모습을 보여준다.

▲ 이날 6구간 최고봉인 남덕유산에 오르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에 감탄하며 환한 얼굴로 기념사진을 찍고 내친김에 남덕유산까지 올라갔다. 덕유산의 최고봉은 향적봉이지만 백두대간길이 아니라서 1,531미터인 이곳 남덕유산이 종주코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정상에 서니 구름이 산 전체를 에워싼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속의 산세에 반하고 정상주에 맘을 뺏겨 내려갈 생각이 없어진다.

정상을 허락했던 산. 그러나 호락호락하진 않은 백두대간

▲ 하산하는 길, 계단에서 모처럼 여유있게 찰칵.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가장 험난한 서봉과 남덕유산을 예정대로 무사히 올라 기세를 올린 우리 대원들은 오늘의 목적지인 삿갓재를 향해 진군하였다. 그러난 여기는 백두대간 중 험난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덕유산이다.

하산길은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긴 산행에 다리가 풀리고 마음과는 달리 발걸음이 따라가지 않는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다.

경험이 많아 산을 잘 타는 대원도 미끄러지면서 굴러 머리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고, 처음 참가한 대원은 다리가 풀리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한발을 떼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한다. 무릎 인대의 통증 때문에 절뚝거리는 대원도 있다.

오늘이 6월 25일. 한반도에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주었던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인데 우리의 모습이 후퇴하는 상이용사 대오 같았다.

▲ 몇몇 대원의 부상으로 월성치에서 삿갓재 가는 것을 포기하고 황점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11시 40분 월성치에 도착해 삿갓재 가는 것을 포기하고 황점마을로 내려가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큰 산을 넘었다는 뿌듯함이 중도하산이라는 아쉬움보다 더 큰 것 같아 다행이다. 안내판을 보니 아직도 1,200미터 고지 위에 있었다.

하산길이라고 하지만 버스가 있는 곳까지는 3.8킬로미터나 더 내려가야 한다. 절뚝거리며 걷는 대원들의 배낭을 벗기고 김지영 원장이 비상약으로 지어준 진통제를 먹어가며 고통 속에서 걸어야했다. 내려가는 길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이 가뭄 속에서도 월성계곡에서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 조금만 가면 되겠다 싶었을 때 사람 소리가 들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도착하였다. 먼저 온 대원들은 벌써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도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갔는데 1분도 못 견딜 정도로 물이 차다.

시원한 계곡에서 더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배낭을 둘러메었다. 마을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소나기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한다. 우비를 꺼내 입을 정도로 제법 비가 내렸지만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졌다.

▲ 6구간 날머리에서. [사진제공 통일뉴스 백두대간 종주대]

무사히 산행을 마친 대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인증사진을 찍었다.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미리 예약해 둔 장수군 북상면에 있는 북상식육식당에서 김치찌개와 뼈다귀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식당치고는 돼지고기가 맛있어 추가로 시킬 정도다. 힘든 산행후의 술은 잘 넘어간다.

버스에 앉으니 피로가 밀려와 모두들 곧바로 잠이 든다. 7시20분 사당에 도착하니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소나기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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