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조지 오웰)

트렁크

- 김언희

이 가죽 트렁크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지퍼를 열면

몸뚱어리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 벌어지는

수취거부로

반송되어져 온

토막 난 추억이 비닐에 싸인 채 쑤셔 박혀 있는, 이렇게

코를 찌르는, 이렇게

엽기적인

 

갓 태어난 아이는 희미한 의식이 있을 뿐이다.

차츰 세상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이는 ‘나(자아. 자기의식)’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헤겔은 이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정신현상학’에서 말한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고상한 정신’으로 상승하느냐 ‘자아중심의 의식’에 머무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자아’는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자신의 어두운 면들은 자신의 깊은 마음속으로 숨긴다.

융은 무의식 속으로 숨긴 이 어두운 것들을 그림자라고 말한다.

이 그림자들은 무의식에 얌전히 머물지 않는다. 수시로 우리의 의식 세계로 ‘반송되어져 온다’.

‘토막 난 추억이 비닐에 싸인 채 쑤셔 박혀 있는, 이렇게//코를 찌르는, 이렇게/엽기적인’ 모습으로.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자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더 마음 깊은 곳으로 숨긴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이 그림자들은 밖으로 자신들을 투사한다.

우리 눈앞에 자꾸만 ‘코를 찌르는, 이렇게/엽기적인’ 것들이 어른거린다.

우리는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자꾸만 밖에 있다고 아우성친다.

혐오스러운 것들, 악으로 보이는 것들은 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다.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는 ‘자아중심의 사고’에 빠진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객관적으로 보는 ‘정신’이 형성되지 않는다.

‘자유, 평등, 사랑’ 같은 고상한 정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자유, 평등, 사랑’을 향해 나아갈 때다.

‘나를 위한 행진곡’이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 한다.

한용운 시인은 ‘기룬(그리운) 것은 다 임’이라고 했다.

‘자신만 기룬 자아 중심의 의식’은 얼마나 슬픈가!

이런 ‘자아 중심의 의식’으로 사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이 억울하다고 한다. 그래서 세상을 향한 분노가 가득하다.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역사가 진보한다는 게 너무나 힘들다.

우리는 지금 한 걸음 한 걸음 진보의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안의, 우리 역사 안의 ‘코를 찌르는, 이렇게/엽기적인’ 것들을 마주하며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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