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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핵공방, 임계점까지 왔다

기사승인 2017.04.24  21: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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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2017 대선, 한반도 평화를 말한다 (4)

장창준(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연재 순서

분단과 혐북: 또 하나의 적폐 – 변학문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혐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우리가 보지 못한 북한의 변화 – 강호제 평화연구센터 소장
북미 핵과 미사일 공방, 어디까지 왔는가 – 장창준 평화연구센터 상임연구위원
⓹ 대선 이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언 - 평화연구센터

 

트럼프 정부의 ‘장난’은 대성공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를 폭격하고, 그 폭격이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것을 암시하고, 호주로 향하고 있던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회항시킨다는 거짓 언론 플레이 말이다. 트럼프 정부는 한반도 안보 위기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강인함’을 과시했다. 그 결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비판 여론은 더욱 높아졌다. 군사적 옵션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강인한 이미지’는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이 ‘평화적 해법’을 거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 옵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따라서 ‘칼빈슨호 해프닝’은 ‘4월 위기’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칼빈슨호 회항’이 한반도 위기의 요소가 아니라, 트럼프의 ‘막가파식’ 행동이 한반도 위기의 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설정한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위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4월 위기’의 실체이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 유력 대선 후보들의 사드 배치 입장이 선회했다는 또 하나의 성과를 얻었다. 어느 후보는 당론마저 바꾸겠다면서 사드 배치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고, 또 다른 어느 후보 역시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사드를 배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후퇴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장난’으로 ‘찬성 vs 반대’ 입장이 팽팽했던 사드 배치에 대한 한국 내에서의 논란은 ‘찬성’의 방향으로 쏠려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4월 위기’는 ‘북한발’이 아니라 ‘미국발’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권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북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위기 인식의 일천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왜 트럼프는 막가파식 외교를 벌이고 있는가? ‘미국발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보다는 북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한국 정치권을 지배하는 ‘위기 인식 구조’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임계점에 도달한 북미 핵·미사일 공방
 
우리가 인식하고 있건 아니건 간에 북핵 문제는 트럼프 정부의 최고의 안보 문제로 부상했다. 북한의 미사일 수준이 미 본토를 위협할 정도로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미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이는 냉전 해체 이후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 중에서 핵무기를 미본토에 떨어뜨릴 수 있는 군사 능력을 보유한 유일한 국가가 등장하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중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대북 정책 재검토를 완료했다.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이름의 대북 정책을 완성했고, 국가안보회의(NSC)의 모든 고위 당국자들이 이를 승인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트럼프 정부가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을 행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군사적 옵션이 배제되었거나 후순위로 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 관리들이 북한의 핵시험과 ICBM 발사에 대한 강 도높은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군사 옵션이 다시 부상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과의 협상이 완전히 배제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트럼프 정부의 관리들이 ‘대북 정권교체 추진하지 않는다’, ‘평화적 방식의 북핵 문제 해결’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이 얼마나 평화를 원하는지가 관건”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 역시 협상의 여지를 보여주는 단서라 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정책 재검토를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세 가지의 대안이 모두 거론되고 있다는 것은 대북 정책이 갖는 어려움을 의미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 어느 방향의 대북 정책도 성공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는 것은 북한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며 결국 군사적 옵션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군사적 옵션은 동맹국뿐 아니라 태평양의 미군 기지 더 나아가 미본토까지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대화와 협상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갖는 현실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북한과의 핵군축 협상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냉전 시기 때부터 미국이 추진해왔던 핵정책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핵전쟁을 항상 걱정해야 하며,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3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이 발언이야말로 현재 북미 핵·미사일 공방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결과 미국은 항상 북한과의 핵전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그 결과 미국 정부는 ‘무언가’를 해야 할 만큼 북미 핵·미사일 공방이 임계점까지 도달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언가’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여부에 따라 한반도는 ‘대파국이냐’ 혹은 ‘대전환이냐’가 결정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혐오와 무시가 부른 파국
 
오바마 정부는 8년 동안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사실상 방치했다. 자국민들을 연명 못 시킬 정도의 낙후한 경제적 상황,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기만 했던 조악한 과학기술력. ‘전략적 인내’가 전제하고 있었던 북한에 대한 평가이다. 그런 북한이 어느 순간 돌아보니 핵무기를 소형화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까지 개발할 정도로 핵과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켰다.
 
혐오는 무시를 낳고 무시는 혐오를 강화시킨다. 주민들은 ‘굶어 죽어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 이미지가 혐오의 이미지라면, 기술 수준이 형편없으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 이미지는 무시의 이미지였다. 그런 북한과는 대화를 해도 의미가 없으며, 시간을 끌다 보면 결국 제풀에 넘어질 것이라는 전제가 ‘전략적 인내’에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북한에 대한 혐오와 무시의 미국판 버전이 ‘전략적 인내’라면 그에 대한 한국판 버전은 ‘비핵 개방 3000’이고 ‘통일대박론’이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이득을 챙겨주겠다는 ‘비핵 개방 3000’은 북한이 돈벌이를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통일대박론’은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라는 주관주의에 사로잡혀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결과였거나 혹은 북한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의 결과였다.

결국 북한에 대한 혐오와 무시가 ‘북맹’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이명박근혜 정부의 ‘비핵 개방 3000’과 ‘통일대박론’도 ‘북맹’의 산물이다.
 
북한에 대한 혐오와 무시가 부른 첫 번째 파국이 미국이 북한과의 핵전쟁을 항상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두 번째 파국은 ‘북미 핵·미사일 공방’이 임계점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이 같은 한반도 상황의 위기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 공방의 결과 ‘대파국’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4월 위기’는 실존한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4월 위기’는 ‘5월 위기’, ‘6월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그 위기는, 단지 ‘군사적 충돌’이 아닌 트럼프가 우려하듯이 ‘핵전쟁 위기’이다.
 
대선주자들의 케케묵은 ‘북한 주적론’ 공방은 한반도 위기에 어떤 해법도 제시하지 못한다. 핵시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면 사드를 배치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은 한반도 위기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북한에 대한 혐오와 무시가 냉전 수구 세력에게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치명성은 더욱 크다.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국가보안법 철폐마저도 자신 있게 주장하지 못하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만을 한반도 긴장의 원인으로 여기는 대선 후보, 북한의 핵포기만을 강조하는 ‘비핵화 해법’에만 치중하고 있는 정치 세력이 2017년 대선을 지배하고 있다. 여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북한에 대한 혐오와 무시, 즉 ‘혐북’이 한국의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핵전쟁 위기’가 결국 북미 적대 관계의 산물이며, 적대 관계 하에서의 북미 공방이 임계점까지 다다른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한반도 평화의 그 어떤 해법도 제시할 수 없다. 인식에서의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비록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핵전쟁 위기’의 가장 큰 당사자이면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외교 무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미국 대통령 역사상 초유의 ‘막가파식 대통령’으로 평가 받고 있는 트럼프마저 ‘북한과의 핵전쟁’을 걱정하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시진핑 주석마저 한반도 전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그것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북한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질서에서 미국과 중국 버금가는 영향력 있는 행위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마저도 북한을 통제하고 제지하는 데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협상의 문을 닫고 있는가. ‘혐북’에서 벗어났을 때 협상을 주장하는 북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더욱 치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16년의 사례만을 놓고 보더라도 북한은 두 차례의 핵 시험과 30차례에 가까운 미사일 시험을 공개했다. ‘통일대전’, ‘선제타격’ 등 호전적 언사는 여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못보고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북한은 수 차례에 걸쳐 미국과의 대화, 남측과의 대화를 강조해 왔다. 2014년 북한은 국방위원회 명의로 ‘남조선 당국에 보내는 중대제안’을 발표했다. 비방중상을 중지하고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지하자는 것이 요지였다.
 
2014년 11월 방북했던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에게 북한은 ‘한미군사연습과 핵시험의 상호 중단’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이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병행 추진), ‘쌍중단’(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한미군사연습의 동시 중단)을 제안하면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보다 앞서 북한이 먼저 그 같은 제안을 했던 것이다.
 
2015년 8월 소위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하고 남북 군사적 충돌 위기가 발생했다. 당시 북한은 준전시 상태 선포 등의 행동도 보였지만, 고위급 접촉을 먼저 제안하는 평화적 해법도 제시했다.  2016년 7월 6일 북한은 공화국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에게 핵위협 중단과 핵불사용 공약을 요구했다. 당시 성명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대목은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북한은 여러 차례 비공식 정부간 접촉, 1.5 트랙 등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 타협점을 모색해왔다. 특히 지난 해 11월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접촉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미국측 참석자들에게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수 차례 문의하기도 했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 윤곽이 드러나기 전에 “협상 가능성의 문을 닫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7년에 들어와서도 북한은 다양한 형태의 협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단적인 예로, 4월 3일 로동신문은 윌리엄 페리(클린턴 정부 시절 미 국방부장관)가 북미 협상을 촉구한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과 함께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동신문은 북한의 조선로동당 기관지로서 당의 입장과 어긋난 기사가 나올 수 없다. 따라서 로동신문 기사에서 페리의 발언이 언급되었다는 것은 북한이 협상 의지, 타협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이다.
 
‘혐북’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북한의 이 같은 협상 메시지를 읽어낼 수 없다. ‘북맹’은 북한의 협상 제안과 의지를 읽어 낼 이성적 능력을 마비시킨다. 대화가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남측에서 보고자 하는 북한의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의 모습을 직시했을 때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데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존재한다.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려는가? 그렇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속에 담겨 있는 북한의 협상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장창준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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