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

공주타령 연재를 시작하며

우리 조상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힘 있는 자들이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을 통해 노여움을 표출해 왔다. 언뜻 보기에 자기 위안일 뿐인 것 같은 이러한 행위는, 노여움을 키워 나가는 방식이었고, 그것을 절제하여 한꺼번에 터뜨리는 슬기이기도 하였다. 병신년이 저무는 지금 아직도 우리가 조롱하고 노여워해야 할 권력이 구중궁궐 깊은 곳에 숨어서 나오지 않고 있다. 그 권력과 하수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향해 꾸짖는 만백성을 능멸하고 우롱하고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제로 돌아갈 것을 은연중 꿈꾸고 있다. 이제 정유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다시 조롱해야 한다.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모아서 마침내 거짓 권력을 끌어내고, 모든 쓰레기를 쓸어내야만 한다. 이 타령이 저 광장의 백만 촛불과 함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는 매주 금요일에 게재된다. (필자 주)

 

공주의 코걸이

공주는 귀걸이를 잘 하지 않는다
귀걸이 같은 것 안 해도
타고난 미모에 사람들이 넋을 잃는다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공주 자신이 굳게 믿고 있다
더욱이 요즘은 남에게 보여줄 일도 별로 없다
구중궁궐에 갇혀서 왕권이 정지되어 있으니
귀걸이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오늘은 귀걸이를 해야 한단다.
상궁과 궁녀들이 난리법석이다.
새끼 마법사가 승지에게 쪽지를 보내고
병든 소 승지가 내시에게 전통을 넣어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봄맞이 기자회견을 해야 한단다.
이번에 뒤집지 못하면 영영
궁궐에서 쫓겨나 의금부 찬바닥에 있어야 한단다.
공주는 기자회견이란 것이 정말 싫다.
그래서 왕권이 정지되기 전에도 되도록 하지 않았고,
한다고 해도 각본을 미리 짰었다.
궁궐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거기에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걸 시비 걸고 나오는 자들이 생겼다.
그래서 정말 싫다.
부왕이 옛날에 자기는 말꾼이 아니라 일꾼이라고 했었다.
공주도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그런 말이 통할지 자신이 없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야말로 공주 이미지가 낫지 않을까
봄맞이 기자회견을 하려고 궁궐 출입 기자를 불러 모으고
이 날만은 미모로 콱 죽여줘야지 하는 마음에
모처럼 안 끼던 귀걸이도 주렁주렁 달고
연단에 서보니 이상하게 언젠가 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걸 기시감이라고 하던가.
맞다. 지구 반대편 나라로 가야 하는데
이번에 확 사로잡아서
한 건 올리고 울적한 기분도 풀 겸
귀걸이를 하고 길을 나섰었다.
그 날이 마침 남쪽 바다에 배가 빠져서
300명이나 죽은 지 1년이 된 날이라
그래도 남쪽 항구는 갔다가 가시라고 하도 그래서
공주 고민 끝에 남쪽 항구까지 갔었는데
아 그런데 유가족이란 것들이 글씨
분향소를 폐쇄하고 사라진 게 아닌가
공주 꼴 보기 싫다고 하는 게 분명하렷다.
하긴 그때까지는 공주가 피해 다녔었다.
화가 잔뜩 난 공주 귀걸이를 떼어서
코에다 걸었는데 이 모양을 본 내시
벼락이 떨어질까 말도 못 하고
울지도 웃지도 못 하는 상황
공주 그래도 한 말씀하시겠다고
기자들을 불러서 목청을 가다듬고
구슬픈 어조로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시길
그랬는데 되바라진 기자 하나이
1년 전 오늘 8시간 동안 어디 계셨나요
인양은 언제 헙니까
시행령은 폐지하는 겁니까
최종 책임이 있단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까
공주 아픈 말만 지껄이것다
화가 나서 암말 안 하고 걸어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씀이죠 하니
한바탕 웃음이 터지고 공주 영문도 모른 채
공항으로 가려고 차에 올라 탓겄다
차 안에서 화장을 고치려고 거울을 본 공주
이게 웬 일인가 귀걸이가 코에 달려 있네
재빨리 다시 귀에 걸고 맘을 진정시킨 일이 있었다.
그 날이 생각나서 귀를 만져 보고 코를 만져 보니
분명히 귀걸이는 귀에 달려 있다.
공주 될 수 있는 대로 엄숙한 말투로
회견문을 읽었것다. 공주는 국가와 결혼을 했고
이번 일은 누군가 계획적으로 만든 것 같다.
나는 빨리 왕권 정지가 해제되어
만백성이 사랑하는 여왕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하루 빨리 경제를 살리고 안보를 튼튼히 하고
(돈도 많이 뜯어 해외 비밀 금고에 퍼나르고
좋아하는 송로버섯도 맘껏 먹고 요상한 주사도 맞고
순살과 함께 이것저것 수다도 떨고
손봐줄 놈들 손도 봐주고)
이런 말들이 목구멍까지 나왔는데 억지로 참았다
백성들은 자기 생업에 충실한 나라가 되자
어쩌구 하면서 회견문을 읽었는데
기자들이 질문 좀 하잔다.
이전에는 찍소리도 못하던 놈들까지
이젠 덩달아서 까부는구나.
순살이 농단을 한 걸 모르냐고 묻는다.
공주는 농담인 줄 알고
순살은 농담을 아주 잘 하죠 호호
기자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는데
또 다른 기자가 재빨리 물었다.
순살이 국가기밀문건들을 갖고 있었다는데
그건 국기문란 아니냐고 한다.
순살은 평범한 가정주부이고
그저 연설문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기자 중얼거리기를
판서 참판 승지 자리 줄 수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라
공주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아서 멍하고 있었는데
공주의 해외 순방 일정까지 갖고 있었다면서
특별감찰관 때 언론에 알렸다고 국기문란이라고 한 게
바로 공주 아니냐고 따지듯이 묻는다
얼마나 속사포같이 빨리 말하는지
공주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버버 하는데
또 다른 기자가 묻는구나
예조 참찬까지 순살의 말을 듣고 자르고
순살이 판서, 참판, 참찬 등을 다 임명하고
심지어 멀쩡하게 잘 하고 있는 대사까지 쫓아내고
자기 이권 챙길 대사를 마음대로 임명했다는데
이러고도 국정 농단이 아니냐고 묻는다
잘못한 사람은 잘라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고
잘린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이고
임명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대답하니
누가 그러더냐고 묻는다
순살이 그러더라고 불쑥 말해 버렸다
둘러싼 기자들이 와르르 웃는다
공주는 이들이 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해 하는데
대포폰 금지가 공주님 4대악 근절 중점 방침 중 하나였죠?
이런 말을 누군가 갑자기 묻는다.
대포폰이 뭐더라 그게 뭐죠 하고 물으니
맨날 쓰셨으면서 모르세요
다른 사람 명의로 쓰는 휴대전화 있잖아요
범죄 등에 쓰인다고 근절해야 한다고
아 그거요 당연히 근절해야죠
엄벌에 처해서라도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근데 왜 순살과 대포폰으로 통화하셨어요
하루에 평균 세 차례 이상씩 했다던데
나를 도와주는 사람과 통화한 게 뭐가 문제예요
딱하다는 듯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지만
공주는 자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거상들한테 뇌물받고 특혜를 준 것을
묻는 기자도 있고, 특정 중소기업을 지원했다면서
그게 여왕이 할 일이냐고 묻는 기자도 있었다.
공주 말하기를 중소기업을 도와주는 것은 좋은 일 아니냐.
왜 하필 순살이 아는 기업만 도와주었냐고
그런 일까지 직접 나서서 챙겨야 했냐고 물으니
공주는 또 다시 작은 기업 도와주는 게 뭐가 나쁘냐고 했다.
블랙리스트 이야기도 나왔다. 안 나올 리가 없지.
공주가 직접 지시한 일 아니냐고 한다.
벼슬아치들 중 상당수가 불었다는 것이다.
공주는 무조건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는 게 무어냐고 웅얼대는 기자도 있다.
어르신들에게 돈을 주어서 시위하게 만들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 분들이 나를 위해 눈 오는 데도 나가서 외치니
정말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그 사람들에게 돈을 준 것 아니냐고 질문하니
어르신들 추운데 고생하니 돈 좀 준 게 뭐가 나쁘냐고
묻는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 본다
왜 궁궐에 대한 압수수색을 못하게 하냐고 누군가 물었다.
공주 말하기를 군사보호시설이라서 그렇다고
그러면 의원, 주사 아줌마, 기치료 아줌마, 말장수는
군사보호시설에 검문도 없이 들어갔냐고 물으니
공주 대답하기를 내가 아는 사람인데 뭐가 문제냐고
순살과 공주는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가 맞냐고 물으니
그런 관계가 어디 있느냐고 순살은 부엌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그러면 순살이 공주의 재산을 관리한 것이 맞냐고 하니
공주가 자기는 재산이랄 것도 없다고 하는 거라
왕이 되기 전 사저를 순살 엄마가 계약했다고 하고
현찰로만 냈다고 하고
공주가 부왕의 돈 6억냥 가져간 것은
무엇에 썼냐고 묻는데 입에 거품을 문 듯하다
공주 화가 났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나는 오로지 나라만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하고는
내 머리 속에는 누구를 도와주고 하는 것은
아예 없었다고 대답을 했더니
그러면 왜 백성들 앞에서 사과를 했냐고 물었것다
공주 아 몰라잉 그런 것까지 왜 자꾸 물어 하고는
대답하기를 어쨌든 시끄러워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하도 해야 한다고 해서 그랬다고
그게 누구냐고 하니 순살과 통화할 때 그러더란다
이미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의금부가 그러더라고 하자
누군가 각본을 짜서 자기를 엮은 거라고
순살은 그저 내 뒤치다꺼리 하던 사람인데
자기 사업을 한다는 것은 몰랐다고 하면서
단호한 표정을 짓는 공주 앞에서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
기자들이 한숨만 쉬고 있는데
누군가 큰소리로 물었다.
남쪽 바다에 배가 빠졌을 때 8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요?
또 그거냐. 공주가 참았던 화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말로는 못하고 혼자 생각했는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만큼 위로했으면 된 거고
최종 책임이 공주에게 있다는 건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이놈 저놈 구속하지 않았냐
내가 그 시간에 어디서 무얼 했는지 알아봤자
나라 망신밖에 더 되냐
다 알면서 왜 자꾸 파고 드는 거냐
누군가 말했다던데 이제 좀 그만하고
따뜻하게 나를 봐줘라
국가와 결혼한 공주 좀 봐주라는 거다
이제 정말 갱제 생각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나는 여왕 일만 하고
니들은 백성 일만 하자고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열이 받은 공주
귀걸이를 확 빼서 코에 걸었겄다
그리고는 그 이야기는 골백번도 더 말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
서둘러서 회견장을 나와 편전으로 향했것다
그런데 짓궂은 사진 기자들 때문에
귀걸이가 코에 걸린 사진이
만천하에 알려졌겄다
승지들이나 내시들이나
공주 성질 아는지라 말도 못하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는데
백성들도 어안이 벙벙해서 말도 못하고
저게 사실인지 합성인지 몰라서 주저주저 하는데
한 아이가 큰 소리로
공주님은 귀걸이를 코에 걸었다
하면서 육조 앞 뜰을 뒹굴며 깔깔대고 웃었다지
그 소릴 듣고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노랠 지어 불렀겄다
공주님 귀걸이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렇게 불렀다는데
공주가 의금부까지 코걸이를 달고 갔는지
그건 아직도 알 수 없는 일이라는데
아주 오래된 옛날 어느 먼 나라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

필자 소개

정해랑은 여의도 고등학교,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노동정책연구소 정책실장, 경희총민주동문회 회장, 이수병선생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21세기 민족주의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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