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대표변호사)

 

갑자기 엄동설한에 한반도 둘레길은 왜 가?

▲ 지난해 12월 28일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나비평화포럼은 한반도 둘레길 1700km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사진 - 김남주]

2016년 12월 16일 음주 귀가하던 새벽에 문득 북-중-러 접경 지역과 백두산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 문득은 이렇게 시작된 것 같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었다. 그 주 온 가족이 촛불집회에 가서 빠르게 동북아 정세가 변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대북사업을 추진하고 싶어하던 재계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안보보수에 기를 펴지 못하였다. 그런데, 탄핵 이후에는 안보보수가 몰락할 것이므로, 북방경제가 활성화 될 것 같았다. 또, 국가보안법, 남북교류협력법 중 북방경제를 가로막는 규제가 철폐될 것 같았다. 왜냐면 이 법들은 북방경제를 막는 규제 대못이기도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에는 국가보안법이 필요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정신적으로 허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을 척결하지 못했고, 거듭된 민중 항쟁에도 불구하고 변신을 거듭하는 친일-부패기득권 세력 치하에 있다는 자괴감에 70여년을 보냈으나, 촛불혁명으로 이제 친일-부패기득권을 척결하고 따뜻하고 정의로운 조국, 우리의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에 대한 국민적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북한에 정신적으로 꿀릴게 없으니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우리 공화국은 자긍심으로 충만한 국민의 힘으로 보위될 것이다.

생각은 북방경제와 남북교류가 활성화 되면 동북아는 급속하게 변화될 것이라는 데까지 미쳤고, 그 맹아를 볼 수 있는 북-중-러 접경을 살펴봐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변호사, 교수, 봉제 사업가 등 8명이 ‘나비평화포럼’을 구성하고 지난 달 28일부터 이번 달 3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자루비노-크라스키노, 중국 훈춘-방천-권하세관-도문-연길-백두산(북파)-통화-수풍댐-단동-대련을 육로로 둘러보았다.

“왜 남한에서는 아직도 친일파가 떵떵거리고 삽네까?”

“왜 남한에서는 아직도 친일파가 떵떵거리고 삽네까?”
“노무현 때 조금 재산도 뺐고 했습니다만.....”

윤동주 생가에서 마을 촌장이 대뜸 우리 일행에게 물었다. 우린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6박 7일 동안 북한과 국경을 접한 러시아, 중국 지역을 방문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우리 일행은 백두산 천지에서 새해 첫날 장쾌한 일출을 보았지만, 그 보다 더 강렬했다.

항일 선열들에게 죄송하지만, 나는 우리 민족의 항일 독립운동이 별 볼일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남한과 북한 모두는 2차 세계대전 참전국도 샌프란시스코 회담의 당사국도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우린 일제로부터 해방됐다.

북한은 소련군 88여단 소속 조선인 김일성이 주축이 되어 수립되었고, 남한은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이 정부를 수립하고 친일파가 다시 판치게 만들었다. 학창시절 역사책에서는 만주에서 청산리전투 등 무력투쟁이 있었지만 분열과 반목으로 지리멸렬하였다고 배웠다.

▲ 연변박물관에 전시된 해란강 대학살을 그린 미술작품. 일제는 연변 조선인들을 잔인하고 참혹하게 학살하였다. [사진 - 김남주]

만주에 가보아도 ‘국사 교과서에서 배운 것 이상이겠느냐, 다만 생생함은 있으리라’ 짐작을 하고 연변박물관부터 가보았다. 하지만 눈물을 참기 어려운 기록들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만주의 지역마다 학교와 군사학교를 세워 인재와 독립군을 양성하고, 사재를 털어 무기를 사들였으며, 용맹하게 싸웠다.

일제는 항일투쟁의 기지인 명동촌을 세 번이나 불살랐고, 혜란강에서 1,600명 이상 조선인들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의 항일투쟁 정신은 말살할 수 없었다. 조선 동포 가이드가 “연변에는 산산마다 진달래, 마을마다 열사비”라는 싯구가 있다고 했는데, 정말 마을마다 혁명열사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역사와 정신이 우리 공화국에도 계승되길 바란다.

한반도 접경지를 둘러본 소감은 이렇다

한반도 접경지를 둘러본 소감은 이렇다. 첫째는 북한은 당장 붕괴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둘째, 러시아와 북한은 중국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흡수될까봐 중국을 두려워하고 있다. 셋째 러시아와 북한에게는 중국의 대체제로서 남한의 가치가 높고, 북한은 자원과 노동력, 물류 통로, 그리고 시장으로서 남, 중, 러 모두에게 가치가 높아 보였다.

넷째 시급히 남북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사할린을 통해 일본으로 연결될 확률이 높고, 남한은 영원히 섬나라로 고립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다섯째, 기존 패러다임인 친북(親北)도 반북(反北)도 대안이 될 수 없고 남, 북한 모두 서로를 긍적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는 정책, 즉 용북(用北) 정책이 대안이 될 것 같다. 용북의 전제로 북한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알아가는 지북(知北)이 필요하다.

▲ 2017년 첫날 백두산 천지에서 북한 함경산맥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 [사진 - 김남주]
▲ 2017년 첫날 장쾌한 일출을 본 후 태양과 백두산의 기운이 전해졌는지, 웃음이 절로 났다. 백두산 정상에 선 나비평화포럼 단장 조승현 방송대 교수(왼쪽)와 필자. 멀리 눈 덮힌 북한측 백두산 봉우리가 보인다. [사진 - 김남주]

북한 붕괴하고 있나?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파탄나고 있지 않다고 보였다. 러시아에는 약 5만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진출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많게는 한 달에 한국 돈으로 약 150만 원을 벌고, 빠른 공사로 인기가 높아서 블라디보스톡에서 최근 건축된 대부분 건물 공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또 블라디보스톡 시내에 있는 북한 식당 ‘금강산식당’에는 손님으로 온 북한 사람들이 여럿 목격되었다. 이들은 북한 식당의 비싼 음식료를 지불할 경제력이 있을 정도로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연변대학교 무역학과 모 교수는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제재로 북한이 붕괴하지 않는다”고 견해를 밝혔다. 또 안보리 2270호 결의로 대중 무역량이 약간 감소하기는 했지만, 북한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하여 대 중국 수출품을 지하자원에서 가공품으로 품목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대 중국 수출품 중 2위에서 5위까지를 의류가 차지한다고 했다.

김일성종합대 교수들이 연변 방문 후 돌아갈 때 예전에는 시장에서 물건을 많이 사서 돌아갔는데, 요즘에는 북한에도 좋은 물건이 많다며 사가지 않는다고 했다. 연변대학교 관광학과 모 교수는 “평양에 가보면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었고, 제재에도 불구하고 상점에 가면 물건이 다양하고 풍족했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우리 일행은 북한 접경을 둘러보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관찰했다. 지난 해 큰 물난리가 난 두만강 유역 함경북도 남양에는 몇 달 만에 집들을 새로 짓는 등 큰 홍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구가 되어 있었다.

중국 훈춘과 북한 라선시 사이의 권하세관, 중국 투먼과 북한 남양 사이의 남양세관,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 사이의 단동세관에서 정상적인 북-중 물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단동세관 인근에서는 북한 상점도 여전히 성업 중이었으며, 여러 대의 일본 차량도 북한으로 운송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중국 도문에서는 북한 남양으로 1일 관광을 다녀오는 중국 관광객이 목격되기도 했다.

▲ 지난 2일 단동 고려거리에서 북한으로 수출을 대기하는 차량들. [사진 - 김남주]
▲ 단동 세관 옆에서 성업 중인 북한 상점, 오른쪽 ‘전기밥가마’ 용어가 이색적이다. [사진 - 김남주]

중국과 북한 잇는 새로운 교량들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교량은 새롭게 건설되고 있었다. 한반도 둘레의 동쪽, 즉 북한 나진과 중국 훈춘을 잇는 신두만강대교는 지난해 11월 개통하여 사람과 물자를 실은 차량이 오가고 있었다. 이 통로 인근으로 송전선도 건설되어 있었다. 북한 나진 앞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이 신두만강대교를 건너 중국 훈춘과 연변 지역으로 공급되었다. 연변에서 북한 산 회를 먹을 수 있다.

북한 남양과 중국 도문을 잇는 남양대교는 지난 해 물난리로 안전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남양대교 옆에 겨울 추위에도 불구하고 신남양대교 공사가 진행 중에 있었다. 올해 말 내년 초 쯤 개통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한반도 둘레의 서쪽, 즉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동을 잇는 신압록강대교는 중국 쪽에서는 즉시 운행이 가능할 상태로 공사가 끝나 있었다. 신압록강대교 북단의 중국 쪽 세관은 중-러 사이의 장영자 세관, 북-중 사이의 권하, 도문 세관보다 월등히 규모가 컸다. 하지만 아직도 북한 쪽 진입 도로 공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 지난달 30일 신두만강대교가 개통되어 차량이 오가고 있다. 교량 위로 흰색 차량이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사진 오른쪽 위). [사진 - 김남주]
▲ 두만강 건너 신두만강대교 남단에 북한측 세관 건물 등이 신축된 모습이 관찰되었다. 사진은 원정여행자세관 건물이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신두만강대교를 통해 북한 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통관 절차를 마치고 권하세관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 - 김남주]
▲ 지난달 31일 두만강 건너 남양 시가지(사진 왼쪽)에 작년 여름 홍수 후 저층 아파트가 건축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빨래와 장작더미가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입주를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신남양대교가 건설되고 있었다(사진 정면 철골, 멀리 보이는 철교는 도문과 남양을 잇는 기차 교량이다. [사진 - 김남주]
▲ 지난해 여름 홍수 피해를 입은 남양대교 곁에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신남양대교가 건설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 국장(國章)에 들어있는 수풍댐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졌지만, 육안으로 관찰되는 큰 누수는 보이지 않았다. 발전 수문 일부로 물이 방류되는 것으로 보아 발전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신의주시에는 대로에 밤새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가정마다 전기 불이 켜져 있었으며, 레이저 불빛도 관찰되었고, 고층 건물이 새로 올라가 있었다. 북한의 전력 사정이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연변대 교수들도 평양은 단전 없이 전기가 잘 들어온다고 전했다.

다만, 나선지역은 전력이 부족해 중국 자본이 투자한 공장에서는 단축 조업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중국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신두만강대교를 통해 연결된 전력선으로 연변 지역의 남는 전기를 북한 나진 지역으로 전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북한은 근래 다양한 대형 오락시설을 개장했는데, 일반 주민들이 그 시설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남한 사장이 운영하는 단동 시내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20대 중반의 남성 화교(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중국군과 북한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화교의 3세)는 태어나서 1년 전까지 평양에 살았었는데, 문수물놀이장(이용료는 남한 돈 약 4천원), 미림승마구락부(이용료 약 2만원), 마식령스키장(이용료 약 2만원)에 모두 가봤으며, 북한의 일반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여정을 통해 살펴본 바로는 안보리 결의로 인해 아직 북한의 붕괴나 경제적 궁핍을 확인할 수 없었다. 반대로 북한의 전력사정이 나아지고 있었고, 생필품이 풍족하며, 북-중 연결로가 새로 정비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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