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련희 / 탈북민

 

김련희 씨는 2011년 친척을 만나러 중국에 갔다가 한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탈북브로커에게 속아 여권을 빼앗긴 채 한국으로 왔으며, 이후 간첩 행세까지 하며 북한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정부가 관련 법규정이 없다며 북송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공안당국으로부터 세 번째 자택 압수수색을 당한 그는 그 부당성을 지적하며, 가족이 있는 북녘으로 송환해 줄 것을 남녘형제에게 호소하는 글을 <통일뉴스>에 보내왔다. 편의상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을 표준법에 맞게 수정했다. / 편집자 주

 

▲ 지난 5월 1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평양주민 김련희씨 송환 촉구 각계 공동기자회견’에서 김련희 씨가 북측으로의 송환을 호소하고 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저는 5년 전 중국에 친척방문을 나왔다가 브로커의 속임수에 걸려 여권을 빼앗기고 남쪽에 끌려와 강제로 억류되어 있는 평양시민 김련희입니다.

여기 남쪽에서의 저의 5년간은 혈육 한 점 없는 낯선 타향에서 오직 생이별 당한 가족을 간절히 그리며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그날만을 기다려온 눈물과 고통속의 5년이었습니다.

또한 저의 고향으로의 귀향길을 막아보려고 온갖 정치적 탄압으로 저를 오도 가도 못하도록 창살 없는 감옥에 묶어놓으려는 이 나라 정부와의 힘겨운 싸움의 5년이었습니다.

지난 기간 저는 끊임없이 고향으로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하였지만 이 정부는 무자비하게 저의 북송요구를 묵살해버렸으며 날이 갈수록 저에 대한 탄압이 노골화되고 폭력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10월 29일 토요일 경북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대구의 저의 자택을 압수수색하였으며 이번까지 3번째입니다.

29일 아침 7시 경북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9평도 되나마나한 좁은 단칸짜리 저의 집안에  20여명의 경찰들과 3대의 촬영기를 동원하여 3시간에 걸쳐 방안의 구석구석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경찰이 제시한 압수수색영장에는 국가보안법위반 고무, 찬양죄, 잠입 탈출죄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며 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오기 부끄럽지 않던가요?” 압수수색영장의 내용은 대체로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첫째, 민변, 양심수후원회, 기독교목자단, 범민련과 같은 이적단체와 반정부, 종북행사에 지속적으로 참가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인권을 소중히 여기시고 생이별로 고통당하고 있는 저의 아픔을 위로해주시는 여러 단체들과 고향으로의 송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나 집회에 참가했었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했던 한 가정을 생이별시키고 자국민이 아닌 사람을 강제로 억류하고 있는 반인권적이며 반민주주의적인 자들이 천ㅊㅜ에도 하지 말아야 할 죄를 지은 것이지 가족끼리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고 한 것이 왜 죄가 되는 것입니까?

둘째, 올해 추석을 맞으며 양심수후원회 공동행사에 참가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올해 추석을 맞으며 교도소들에 수감 중인 양심수들을 면회하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는 양심수후원회 공동행사 참가자들이 대구에 왔을 때 함께 만나 면회를 하였습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심수를 면회한 것이 무슨 잘못이며, 또 그것이 어떻게 고무찬양죄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까?

셋째, 창원, 광주에서 북 찬양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창원과 광주에서 간담회를 열고 제가 누구인지, 여기 남쪽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아직까지 고향에 가지 못하고 억류되어 있는지, 평양에서 어떻게 자라고 공부했는지, 무슨 직업으로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등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지금까지의 북에서 겪은 저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고난의 시절 추위와 배고픔으로 참으로 어렵고 힘든 때도 있었지만 인간의 따뜻한 정이 흐르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행복을 누리던 좋은 시절도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떻게 국가보안법위반죄에 걸리는 것입니까?

북에서 42년 동안을 생활해 왔는데, 제 머릿속에는 평양에서의 기억만이 있을 뿐인데 제가  무슨 말을 달리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TV에 나와서 자신들이 북에서 살아온 이야기라며 많은 말들을 하는데 저는 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법에 걸리는 것입니까? 고작 평범한 한 아줌마의 북의 생활이야기가 그토록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입니까?

넷째, 2015년 7월4일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북 찬양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는 2015년 12월 1일 국제엠네스티 언론상을 받은 기사입니다. 국제엠네스티에서는 “김련희의 이야기는 북한이탈주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채 강제로 남한 국적을 부여하는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를 고발했고, 보도 이후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기사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 페이스북에 북의 어투를 그대로 썼다는 것입니다.

북에서 태어나 북의 사상과 이론, 문학과 문화를 배우며 체질화 해온 42년이라는 세월이 저의 전부입니다.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해외에 나가면 어느 나라 어투를 쓰십니까? 해외에 나가서 그 나라 어투를 쓰지 않았다고, 그 나라 사상을 따르지 않았다고 법에 걸리신 적 있습니까? 저에게서 북 어투 아니면 어떤 어투가 나와야 정상인 것입니까?

여섯째, 베트남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신청하여 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망명자, 이민자로 해외에 나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망명이 불법이고 그것도 국가보안법 위반 잠입, 탈출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이번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5년 동안 나의 고향으로, 가족의 곁으로 가기 위해 밀항과 위조여권 시도, 셀프간첩 허위신고까지 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노력하였지만 이 나라 정부는 절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답만 한결같이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나중에라도 북으로 도망갈 수 있다면서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여행의 자유마저도 빼앗고 5년 동안 여권도 발급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태를 보면서 저는 더 이상 이 나라 정부에 그 어떤 기대나 미련을 가질 수가 없으며 내 인권은 내가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권은 시혜적 차원이 아닌 쟁취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고민 끝에 인권보호신청서를 가지고 베트남대사관에 들어가 정식 망명을 신청 하였던 것입니다.

남의 나라 대사관에까지 뛰어 들어가서라도 자기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었던 제가 국가보안법 잠입, 탈출죄인이라면 북쪽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를 남쪽 땅에 강제로 억류해놓고 저의 송환요구를 철저히 무시하였으며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인간의 초보적인 자유를 박탈하고 5년 동안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고 출입금지를 하고 있는 이 정부의 행태는 어떤 죄에 물어야 하는 것입니까?

▲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김련희 씨가 지난 2월 2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무기한 1인시위에 돌입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이렇게 되어 말도 안 되는 압수수색영장으로 3시간에 걸쳐 압수수색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추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압수수색이 끝나기가 바쁘게 “다방간첩 김련희 집 압수수색”이라는 뉴스가 발 빠르게 발표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압수수색 영장만 보고서는 제가 왜 이 일을 당해야 하는지를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뉴스기사를 보고서야 이번 압수수색의 기본 목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29일 토요일 아침 7시, 20여명의 많은 경찰들과 3대의 촬영기를 동원하여 TV와 옷장 하나밖에 없는 좁은 단칸짜리 방을 3시간에 걸쳐 진행한 이번 압수수색은 그 어떤 증거 수집이나 수사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의 가방에는 2개의 USB가 있었고 옷장에는 베트남대사관에 들어갈 때 만약을 생각하여 비상용으로 준비했던 미화가 있었습니다. 수사에서 컴퓨터나 USB가 우선된다는 것은 저 같은 평범한 아낙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들을 이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저의 집에서 압수해 간 것은 황선 선생님의 책 “서울동무, 평양친구”와 신은미 선생님의 대담집 “그래도 나는 노래하리”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철저한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이 아닌 형식적, 공포심을 자아내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수사가 아닌 다른 음흉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번 압수수색의 목적은 저의 송환운동을 막고 저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송환요구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저를 강제 억류시킨 국정원의 반인권적인 실태를 밝혔으며 북에서 42년 동안 살아온 저의 생활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왜곡되고 허위된 선전으로 북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이질감을 가지고 계시던 많은 분들이 저의 이야기를 들으며 북도 자신들과 꼭 같은 따뜻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형제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국정원이나 이 정부는 그것이 제일 눈에 든 가시였습니다.

오늘날 북의 진실된 현실을 아는 것, 이 정부가 매일같이 선전하던 거짓과 사기로 그려진 암흑과 공포의 땅, 북이 아닌 밝고 따뜻한, 웃음 많고 희망에 넘친 오늘날의 북의 현실을 국민들이 알아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나 저의 입을 막고 송환운동을 막기 위해 이렇게 끊임없이 정치적 탄압을 강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번 압수수색은 저를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매장시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압수수색이 끝나기 바쁘게 발 빠르게 전격적으로 나간 기사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압수수색 영장에는 간첩행위라는 협의는 한 글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방간첩 김련희 집 압수수색”이라고 아주 의도적인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여기서 이 기사내용을 잠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5년 전 국정원의 압박과 강요에 의해 여기 남녘땅에 강제 억류된 때로부터 오직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기기 위해 밀항을 시도하고 위조여권도 만들어보면서 안타깝게 귀향길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돌아온 것은 국가보안법 위반 잠입, 탈출죄로 경찰과 검찰의 조사뿐이었습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혼자서 생소한 이 나라의 법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저는 혹시 간첩이라고 하면 몇 년 감옥살이를 하고 북으로 강제 추방되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창 저를 조사 중이었던 보안수사대에 제가 90여명의 다방의 탈북자들의 명단을 북에 넘겼다고 허위자백 하고 진술서를 써주었습니다.

경찰은 간첩 증거라고는 저의 진술서 한 장뿐인 이 사건을 검찰에 기소하였지만 겸찰은 하도 어이없는 간첩사건이라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법정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전혀 무근거하며 형체도, 뼈도 없는 완전한 거짓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경북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많은 기사를 통해 이 내막이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또다시 내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은 정당한 저의 송환요구를 막을 길이 없고 세계 앞에 자신들의 반인권적이고 반인륜적인 범죄가 드러나게 되자 저를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이 사회에서 매장시켜 나 스스로가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너무나 추한 목적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남녘동포 여러분.

저는 그냥 가족을 만나고 싶고 사랑하는 남편과 보석같이 소중한 딸을 안아보고 싶고 한 지붕아래 한 식탁에서  우리 세 식구가 오손 도손 살고 싶은 평범한 한 아줌마입니다.

고향으로 돌려보내달라는 저의 안타까운 하소연이 어떻게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으며 다른 나라 대사관에 뛰어들어서라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의 곁에 가고 싶었던 것이 어떻게 잠입, 탈출죄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어떤 사상이나 체제, 이념을 떠나 고향에 가서 저의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을 뿐입니다. 제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까? 제가 가질 수 없는 남의 것을 탐내는 것입니까? 

지금 북과 남은 60여 년 간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픔은 이미 나이 드신 지난 세대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도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분단현실의 아픔입니다.

자식이 아플 때 부모도 잠을 자지 못합니다. 저 역시 아픈 자식이며 자식을 키우는 어미였습니다.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도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 왔습니다. 국가의 이념이 어떻든지, 사상이 어떻든지 가족은 가족이요, 자식은 그저 품안의 자식일 뿐입니다.

저는 어머니 산고의 고통 속에서 생명을 가지게 되었고, 아버지 사랑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저 역시 산고의 고통 속에서 내 자식을 낳았고, 내 남편이 그 자식을 애지중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족을 천만금으로 바꿀 수 있다니요.

저는 천만금을 준다 해도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가족이며 이 나라 정부가 아무리 저를 압박하고 탄압해 온다 해도 한시라도 헤어져 살수 없는 것이 가족입니다.

그 나라가 어떤 사상과 체제가 있든, 국가가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을 끊는 일은 천추에도 하지 말아야 하며 이것은 반인륜적, 반인권적 행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미 중국으로 가기 전부터 앓아왔던 간경화로 인한 투병 속에서 건강은 날로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5년 전에 생이별한 딸자식을 그리는 이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남녘형제 여러분.

연로하신 저의 부모님이 세상을 뜨시기 전에 이 딸의 얼굴을 한번만이라도 보여 드릴 수 있게, 엄마를 애타게 부르며 눈물 속에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디고 있을 저의 사랑하는 딸을 안아볼 수 있게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이 나라 정부와 국정원, 경찰청, 검찰청, 똑똑히 들으십시오.

저는 혼자서 오직 가족만을 간절히 그리며 눈물 속에, 한탄 속에 외로운 나날을 보내던 지난날의 어리숙한 김련희가 아닙니다.

당신들의 종북몰이와 간첩잡이 성과, 특진을 위해 필요한 희생물이었던 어제 날의 그 어리석은 김련희가 아닙니다.

지금은 저의 조국이 큰 믿음이 안겨주고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저의 남편과 딸자식이 저를 지켜보고 있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인권과 정의를 소중히 여기시는 세계와 남녘의 많은 분들이 저를 응원하고 있으며 가족의 품으로 반드시 돌아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가족이 그리워서 미칠 것 같은데, 보석같이 소중한 내 딸을 안아 보고 싶어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데 아직도 저에게서 뺏을 것이 더 남아있습니까? 아직도 저에게 주지 못한 아픔과 눈물이 더 남아있습니까?

당신들이 다음에는 이보다 더 추한 모습으로 저를 시궁창에 몰아넣는다 해도 저는 열백 번을 다시 연꽃으로 피어나 저의 존재를 알릴 것이며 끝까지 송환운동을 벌려나갈 것입니다.

왜냐면 제가 고향에 돌아가 사랑하는 남편과 소중한 딸자식과 함께 산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며 그 누구도 천륜을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의 가족의 곁으로 기어이 돌아갈 것입니다. 아무리 손으로 하늘을 가린다 해도 정의와 진실은 절대로 가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국제법 위반이며, 이러한 반인권적이며, 반민주적이며,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는 반듯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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