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존재는 무얼까. 이 질문에 시원스런 답변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혹은 사기꾼이지 않을까. 때론 신념과 이상을 위해 무모하리만큼 자신을 내던지고, 때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비열함의 극치로 치닫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그런 면에서 여전히 많은 울림을 전해준다.

책은 너무도 유명하기에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스페인 내전이라는 특정 사건,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 역시 사실이다.

▲ 조지 오웰/정영목 역, 『카탈로니아 찬가』 , 민음사, 2001. 5. [자료사진 - 통일뉴스]

오랜 시간동안 봉건 왕조와 가톨릭으로부터 억압받아왔던 스페인 민중은 마침내 혁명을 일으켜 체제를 전복하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하지만 그 혼란기를 틈타 마치 박정희처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 한 프랑코 장군이 등장하게 된다.

이후 공화국을 지키겠다는 스페인 민중들의 용기 있는 저항에 감동한 수많은 이들이 스페인으로 몰려들었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농민, 노동자, 엘리트 지식인 모두. 그 중 한 명이 바로 조지 오웰이었고, 그는 그렇게 혁명의 도시 ‘카탈로니아’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스페인에 처음 닿았을 당시 느꼈던 감격은 이내 시간이 흐를수록 의혹과 실망, 배신으로 치닫는다. 전체주의 파시즘에 대항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모인 이들이 점점 자신들의 입장차를 절감하며, 끝내 분열하고 반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스페인은 프랑크의 독재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책은 조지 오웰의 개인적 경험을 담은 르포르타주 형식의 자전적 소설이다. 국제여단이 어떻게 단결했고, 어떻게 싸웠으며, 어떻게 분열되었는지, 상세히 담고 있다. 아울러 오웰은 당시 유수 언론들의 행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는 비단 자본주의 국가의 언론 뿐 아니라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 역시 포함된다. 현장의 진실을 왜곡하며, 특정 세력에게 모든 잘못을 전가하는 모습에서 오웰은 환멸을 느끼게 된다.

아마 이후 오웰은 언론이라는 기능, 혹은 역할 자체에 회의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오로지 진실을 왜곡하는 데 열을 올리는 언론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언론의 제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우리 언론의 참담한 현실이 겹치지 않을 수 없다. 조·중·동을 대표로 하는 보수 언론들은 말할 가치조차 없지만(개인적으로 그들을 언론이라 생각한 적은 물론 없다. 그냥 매우 부정한 기업일 뿐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조차 자본의 논리, 패거리 논리에 함몰되어 무책임한 기사들을 남발하고 있는 현실이다.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를 양산하는 언론. 사실의 정확한 전달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위해, 이해를 위해 과장, 왜곡을 서슴지 않는 언론. 그걸 과연 우리는 언론이라고 불러야 할까.

기자, 언론이라는 태생 자체가 권력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기자는 곧 광대와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동종업계에서 밥을 빌어먹고 살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최소한의 양심적 가치, 기자적 신념마저 저버린 이들을 보면 부끄러움이 밀려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이처럼 역사적 사건에 직접 뛰어든 작가의 고뇌와 환희가 공존하고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던 가치와 신념을 위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전쟁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그러한 숭고함을 일거에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음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임을, 오웰은 말하고 싶어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찌되었든 책이 오웰에게 ‘찬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평등 사회, 누구나 당당할 수 있었던 꿈같은 시간을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어떤 경험보다 소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경험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백남기 어르신이 끝내 소천 하셨다. 그 와중에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국회의 농림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거부했다. 거기에 언론이라 할 수도 없는 통신사는 ‘정면돌파’라는 이상야릇한 제목으로 마치 대통령이 온갖 시련을 뚫고 정의와 상식을 수호하려 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구역질도 아깝다.

그 당시의 스페인도,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도 시간차만 존재할 뿐, 더럽고 역겨운 것은 다르지 않다. 다가오는 추운 겨울, 수해를 당한 북한 아이들의 겨울을 위해 방한복을 보내주자는 극히 정상적인 제안에도 정부와 국민들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북한 정권이 악마이기 때문에, 북한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일까.

여기에 언론은 그저 방관자이자, 눈치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휘두르고 국회와 국민 위에, 그리고 법 위에 군림하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히틀러는 1936년 말했다. “나는 독재자가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 과정을 단순화시켰을 뿐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유머가 담겨 있다. 매우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해도, 그 안에는 분명 웃음이 숨어있다. 그러한 ‘쓴 웃음’을 통해 그가 보여주려 했던 것,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은 분명 의미 있다.

스페인 내전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신념과 가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한 얼마나 연약한지 그대로 보여준 이 책은 분명, 남아있는 이들에게 오랫동안 긴 여운과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백남기 어르신의 명복을 간절히 빈다. 부디 편히 쉬세요.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