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2세인 Y씨는 이북5도위원회의 탈북민 군수 낙하산 임명에 유감이 많은 50대 중반의 전문직 종사자이다. 요즘 들어 부쩍 10년 전 돌아가신 부친의 수구초심을 깊게 헤아리지 못한데 대해 회한에 빠져들곤 한다고 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은 당신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실향민 2세의 통일 의지에 대해 글을 보내왔다.

‘아버지의 산소를 당신의 고향으로 옮기는 게 내 마지막 꿈’이라는 제목은 박기영 시인의 말에서 따왔다. Y씨의 희망에 따라 실명을 쓰지 않았다. /편집자 주

[연재 기사]

<기고> 명예시장·군수에 탈북민 낙하산 인사
<이북5도위①> 실향민 대신 탈북민의 손을 잡은 정부의 속내

“한 화분에 두 나무를 심을 순 없다”
<이북5도위②> 실향민 정책과 탈북민 정책은 달라야

“아버지의 산소를 당신의 고향으로 옮기는 게 내 마지막 꿈”
<이북5도위③> 실향민2세 Y씨의 격정토로, "우리는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

 

 

 

▲ 이북5도위원회 안에 있는 ‘화합과 통일의 염원상’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노래를 우리들에게 가르친 건 당신들이 맞다. 가르친 정도가 아니라 기회 될 때마다 부르게 하여 입술에 맴도는 노래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이 노래로 우리를 훈련시키고 길들였다 해서 우리 가슴에 있는 통일의 열망까지 당신들이 심고 거두는 텃밭 파뿌리처럼 생각했다면, 그건 당신들의 크나 큰 착각이다. 당신들이 심었다면 당신들이 거두어가는 게 맞겠지만, 미안하게도 우리 안에 있는 통일의 희망, 통일의 의지는 당신들이 내려 준 하사품이 아니다! 단연코!

우리는 통일을 우리의 아버님, 어머님으로부터 배웠다. 실향의 아픔에 평생 힘들어 하신, 어려운 날은 물론이고 좋은 날에도 고향과 가족생각에 눈시울이 울컥 붉어지시던, 기독교를 믿건 불교를 믿건 기도제목 앞자리엔 늘 ‘귀향’이 있었던 분들에게 우리는 통일을 배웠다. 아버지는 자신의 호적을 외우게 하셨고, 어머니는 고향의 음식을 잊지 않게 하셨다.

살아계셨다면 등에 업고 갈 일이고, 돌아가셨다면 관에 모셔 메고 갈 일이지만 반드시 모시고 돌아가야 할 의지는 내 가슴에 붉게 새겨져 있다. 그것이 우리가 배운 통일이다. 당신네들의 무슨 반공교육, 안보교육, 통일교육 따위에서 배운 게 아니니, 제발 우리 가슴 속에 있는 통일의 열망을 당신네들의 전유물처럼 취급하지 말아주었으면 한다.

당신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는 진정으로 통일을 원한다!

왜 올 추석에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없는가? 북쪽에는 핵(核)이 있고 남쪽에는 사드(THAAD)라는 것을 놔야한다고 해서 고향 찾아보고 피붙이 만나는 것까지 다 막아야만 하는가?

막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 하는 사람은 안보의식도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워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하는 지금 분위기는 대체 무언가? 인도적 남북교류와 국가안보가 왜 대척과 길항의 자리에 서야 하는가? 대체, 무슨 근거로?

팔백만 실향민이 북한에 가서 고향 가족친지들에게 선물바구니 하나 씩 안기고 오면, 그게 전부 핵미사일 만드는 자금으로 바뀌고 그 돈으로 하루 빨리 망해야 할 북한경제가 벌떡 일어나 김정은이 힘을 얻는다고 주장하려 한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다.

당신들이 그동안 정권논리에 따라 퍼 다 준 돈들, 몰래 줬네 잘못 줬네 하면서 당신들끼리도 싸우고 있는 그 엄청난 현찰 송금, 그리고 외교를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중국이 북한을 지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위안화가 대체 얼마인데...

그 때문이 아니라고? 그럼 뭔가? 북한을 방문한 실향민들을 저들이 억류하여 유사시 당신네들이 평양을 초토화시키려 할 때, 방북실향민들을 인간방패로 쓸까 봐?

당신네들이 언제부터 실향민 걱정을 그렇게 했나 모르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 유엔(UN)이나 외신기자들에게 가서 먼저 해 봐라. 그들로부터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소리를 안 듣는다면 우리들도 당신네 이야기를 믿겠다.

그도 저도 아니라면? 당신네들은 실향민 고향방문을 인도적으로 추진하려 했는데, 북한정부가 그러는 거라고? 좋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 실향민 단체에서 직접 추진해보겠다! 북한에 있는 우리 부모님 형제자매와 그들의 자녀에게 우리가 직접 연락하여 북‧중 접경지역 어디쯤에 천막을 치고 우리 부모님들이 고향친지들과 명절을 함께 보내실 수 있도록 이벤트를 만들어 보겠다.

탈북 브로커들을 통하면 사람도 빼 온다는 데, 고작 얼굴 한 번 보시고 손 한 번 잡게 해드리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럴 결의가 있고 그 정도 형편도 된다. 그러면 되겠는가?

뭐? 그것도 안 된다고? 1990년에 제정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하 남북교류법)에 의하면 민간 인적교류도 다 당신네들 허가를 받아야 하니, 범법자 되고 싶지 않으면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당신들이 만든 남북교류법 1조에는 법 제정 목적이 ‘남‧북간 상호교류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대체 당신들은 언제까지 우리를 바보취급 하려 하는가?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가?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아님, 세월호 타고 있던 학생들처럼?

그동안 당신들이 뭔 이야기를 하건 우리 부모님들이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살아오신 건 당신들 이야기를 다 믿어서가 아니었다. 어리석고 모자라서는 더 더욱 아니었다.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말이 월북을 기도하는 것으로 몰릴 수 있는 세상, 빨갱이로 한 번 찍히면 삼족이 풍비박산 나는 절대반공국가에서 살며 배우신 삶의 지혜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실향민들은 ‘통일’이나 ‘남북교류’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남북대화가 시작된 이래, 인도적 교류나 이산가족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려나는 관심사였고 기껏해야 대의명분용으로나 협상테이블에 올랐던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실향민들은 이에 대해 항의도 건의도 해 본 적이 없다.

어쨌거나 북한과 연루된 문제이기에 마냥 조심스러웠고 고향 가족친지 만나는 것보다 급한 건 여기 가족들을 잘 부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묵묵히 생업에만 종사하며 그저 당신네들이 이끄는 대로 이북 5도청이라는 기관 아래 질서정연하게 모여, 당신네들이 ‘나랏 일’이라고 하기만 하면 오직 협조모드로 일관했다.

모이라면 모였고, 외치라면 외쳤다. 당신네들이 북진통일이라 하면 그렇게 외쳤고, 평화통일이라 하면 또 그렇게 외쳤다. 그렇게 70여 년이 흘러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통일문제나 남북교류문제의 최우선 이해당사자는 바로 우리 실향민들이다! 당신네들도 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통일을 원하는 집단 역시 우리 실향민들이다. 생각해보라! 대박을 노리고 통일에 관심 갖는 사람과 생이별한 가족을 만나려고 통일을 원하는 사람의 바램이 어찌 비교나 되겠는가?

어둠속에서 밝아오는 여명

지금 한반도는 칠흑 같은 어둠에 갇혀있다고 한다. 당신네들처럼 우리도 그 어둠을 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둠에서 이제 곧 새벽이 멀지 않았음을 본다.

우리의 믿음 안에서는 이미 어슴푸레 벌게지는 동녘 하늘이 저 만치 있다. 그래서 이 새벽에 다시금 우리의 소원을 불러본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부끄러워서, 또는 두려워 목소리가 떨리지만, 그래도 단호하게 우리의 목마른 열망을 담아 끝까지 불러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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