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65회부터는 남측 교회와 해외교회가 주도해 북측 영토에 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건축사업이 중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그 원인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자 한다. 이중에는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내에 마련될 30평 규모의 ‘병원교회’와 평양 대동강변 IT단지에 설립될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예장 합동 측의 ‘평양장대현교회’등이 있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추진 중인 미국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주도로 지어질 ‘평양국제외국인교회’도 다루고 평양 조선영화촬영소 산속에 지어진 ‘형제산교회당’과 거기 딸린 목사관을 방문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며 나진선봉교회도 다룰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분류된 ‘통일교’가 평양보통강호텔 앞에 설립한 ‘국제평화센터’와 평화자동차 공장 방문이야기들을 다룰 것이며 안식일교와 몰몬교의 대북사역 등도 심도 있게 다룰 것이다. / 필자 주 


기독교 개신교(Protestantism)의 한 분파인 ‘안식교’는 ‘재림교회’라고도 부르며 영어 명칭의 약어 S.D.A라고 부르는 등 그 호칭이 다양하다. 그러나 교단의 공식 명칭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 Church, 이하 SDA)’이다. 다른 교파들과는 달리 명칭이 매우 길며 이 즐비한 단어들에서 보여지듯  ‘안식일’과 ‘예수재림’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신교 분파인 재림파(Adventism)에 속하는 이 교파는 안식일과 예수재림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으로 다른 교파와의 확고한 차별성을 두고 있으며 이는 곧 이 안식교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과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을 지상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는 이 교파는 최근 들어 자신들의 교회를 ‘안식교’라고 부르기보다 ‘재림교회’라고 내부적으로 호칭을 통일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이나 해외에서는 안식교가 이단으로 취급받지는 않으나 한국교회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돼 비판받는 실정이다. 그러나 극단적 이단(異端)은 아니지만 성경해석에 있어서 정통교회와는 다른 여러 가지 이설(異說)을 주장하는 교파로 볼 수 있다. 안식교단의 신학과 교리는 근본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보수적이며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매우 보수적이다. 아울러 각 국가의 안식교 신자들은 특정한 이념이나 사상에 개입하지 않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고수하며 특히 정치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세계 재림교회(안식교) 본부의 자체 통계에 의하면 2016년 현재 “유엔에 등록된 237개국 중 216개국에 1850만 명의 신자와 14만 8023개의 교회를 비롯해 병원 173개, 학교 2164개, 식품공장 21개, 미디어센터 15개, 출판사 63개를 보유할 정도로 성장했는데 이는 전 세계 주요 교단들인 가톨릭, 동방정교, 영국 성공회, 하나님의 성회(오순절파)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이 엄청난 안식교단의 저력과 인적, 물적 자원을 대북사역을 통해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안식교회당이 없는 북한지역에 몰아넣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재림교회(안식교)의 대북사역 현장을 가다
     
안식교(재림교회)가 그동안 조용하고 체계적으로 대북사역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식교가 한국 개신교 최대 교단인 예장 통합 측처럼 평양 한복판에 교회당(봉수교회와 평양제1교회)이나 신학교(평양신학원)를 직접 건축했다거나 이단종파로 비판받는 있는 통일교(가정연합)처럼 평양에 종교적인 건물인 ‘세계평화센터’를 건축해 그 건물 3층 전체에 통일교 교회당으로 꾸미는 가시화된 사역은 하지 않았다.

안식교는 장로교 통합 측이나 통일교처럼 그동안 자신들의 종교적 거점이나 교두보를 북한 영토에 확보하지는 않았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동안 북 당국과 꾸준히 교류하며 종교적인 부분보다 가급적 보건, 복지, 식량, 의료 등의 복지 분야에서 신뢰를 쌓아왔던 것이다. 이는 북 당국 입장에서 볼 때도 다른 근본주의 기독교 교파들처럼 은밀한 포교활동으로 인해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는 등 안식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로 점차 인식되어 지속적인 교류의 폭을 넓히고 있다.
    
안식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이 설립한 국제구호단체인 아드라(ADRA)를 통해 대북사역을 진출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2008년 5월 30일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미국 안식교 본부 집행위원회가 금강산 북측지역에 모여 회의를 여는 등 국내외 안식교회 산하 단체와 기구들이 조직적이며 체계적으로 대북사역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이에 필자는 방북기간 중 안식교 사역자들의 대북사역을 직간접으로 목격할 수 있었으며 필자의 다양한 모니터링을 통해 지금까지 재림교회(안식교)가 긍정적 방식의 북한선교와 대북구호사역을 어떻게 해왔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방북기(안식교 상하편)에서는 북한과 안식교와의 관계, 그리고 김일성 주석의 가문과 안식교와의 관계 등은 물론 북 당국은 현재 안식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또한 미국 안식교가 최초로 조선에 상륙한 거점지역이 북한 땅이었는데 지금은 안식교가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가도 알아 볼 것이며 일제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안식교의 항일 독립운동과 친일 논란 부분도 다룰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된 정국에서는 미주지역의 안식교를 구심점으로 대북사역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안식교 대북사역 단체들을 구체적으로 알아 볼 것이다. 아울러 미주의 한인 안식교 교회들의 대북사역 활동을 비롯해 안식교에서 운영하는 각종 대북사역기구와 단체들을 상세히 살펴보고 그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것이다.
    
또한 지금도 미주에서 정기적인 방북을 하면서 안식교 대북사역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는 캐나다 시민권자인 한인출신 안재완 목사의 이야기도 다룰 것이다. 북측 당국에서도 지금까지 호의적이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안 목사의 대북활동을 통해 과연 북측이 진정으로 기독교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안 목사는 대북선교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현재 미국에 베이스를 두고 최근 3-4년간 중국과 북한을 부지런히 오가며 대북사역자 양성 훈련을 주도하고 있는데 몇 차례 방북을 통해 필자와도 자연스럽게 교류하기도 했다.
 

▲ 안식교의 안재완 목사와 신자들이 방북 기간 중 토요일을 맞이하자 자신들이 체류하는 평양호텔 세미나실 4층에 모여 안식일(토요일) 예배를 드리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중국 심양공항에서 평양행 고려항공 수속을 밟고 있는 안재완 목사와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 미국 메릴랜드에 본부를 둔 안식교(재림교회) 세계 본부 대총회 건물. [사진제공 - 최재영]


분단 후 북에서 첫 안식교 집행부 회의가 열리다  
    
분단 이전인 1904년에 북측 지역을 교두보로 삼고 조선에 대한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쳤던 미국의 안식교단(재림교회) 본부가 드디어 분단 후 63년이 지난 2008년 5월 30일, 금강산 북측지역에서 역사적인 집행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전 세계의 재림교회(SDA)는 대륙별로 13개 지회로 분류하는데 그중에 남한과 북한이 위치한 동아시아 지역을 관할하는 조직이 바로 ‘북아시아-태평양 지부’이다. 이 지부가 연례 중간 집행위원회 회의를 의도적으로 금강산에서 개최한 것이다. 이것은 안식교 대북사역 진출의 첫 신호탄이며 공식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전 세계 재림교회의 조직과 행정을 잠시 살펴봐야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림교단의 중앙정치 조직의 핵심은 대의제(代議制)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런 대의제의 기반은 교인들로 구성되며 이 교인들이 모여 지역교회를 이룬다. 또한 이 지역교회들이 모여 559 개의 지방합회(대회)가 구성되고, 이 합회들이 모여 102개의 연합회가 되고, 이 연합회가 대륙 규모로 분할되어 13개의 지회를 이루는 조직으로 구성되어있다. 마지막 최상위 그룹은 5대양 6대주의 모든 지회가 모두 모여 최상위 의결모임인 대총회(General Conference)를 이루고 있는데 현재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스에 교단의 대총회 본부가 위치해 있다.
   
한국의 안식교는 ‘북아시아 태평양지회’에 속한 ‘한국연합회’라는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규모를 보면 합회 5개와 교회 912개, 20만 명의 교인, 목회자 885명, 문서전도자 277명을 포함해 각 교회와 기관에서 일하는 전체 교역자수가 총 3,531명이나 된다. 금강산 회의 당시 북아시아-태평양지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글렌 미첼(Glenn Mitchell)은 당시에 회의가 열린 배경과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한반도 분단 이전에는 북한에도 안식교 교회당들이 있었다. 이번 회의가 북한에서 열린 것은 역사적, 상징적 측면이 강하다. 안식교가 1년 6개월 전인(2007년 초)부터 북한의 대표적 의료기관인 ‘김만유 병원’의 장비 개선사업을 지원해 왔다. 의료장비 개선은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으로 개인 기부자들이나 교회기금 등으로 충당하는 장기적인 지원사업이다. 그리고2008년에는 고품질 야채생산을 위해 1만 달러 상당의 비료를 북한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번에 금강산에서 집행위원회 회의가 열린 것은 안식교가 북한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안식교는 남한뿐 아니라 북한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미첼 대변인이 언급한 “남한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야”한다는 부분은 여러 가지를 암시하고 있는데 이 말의 뜻은 아직도 한국 기독교 교계에 팽배해 있는 안식교(재림교회)를 향한 배척과 이단시비 논쟁 때문에 한국도 여전히 북한처럼 척박한 선교지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금강산회의가 개최된 의도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재림교회(안식교) 본부가 교세의 여력을 한반도 땅에 불어 넣고자 애쓰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는 또한 직접적인 선교의 길이 막혀있는 북한 영토에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자구책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이날 금강산 회의를 마친 후 참석한 임원들은 현대아산과 북측 농업 당국이 함께 운영하는 ‘금강산협력농장’을 견학했는데 마침 이 농장에는 강원도에서 안식교 목회를 하는 양양제일교회 김석만 목사가 9년째 북한 농부들을 대상으로 영농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농장이었다.

110년 전 최초로 이북지역에 전파된 안식교
     
한국의 안식교가 선교 2세기를 맞이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안식교가 공식적으로 조선 땅에 전래된 시기는 1904년이며 전래 당시 선교 중심지가 현재의 북한지역이었다. 그래서 이 해를 기준으로 한국의 안식교는 대대적으로 선교 100주년 행사를 치렀고 벌써 10년 세월이 훨씬 지난 것이다. 조선선교 초기에는 주로 진남포, 용강, 강서, 중화지역을 중심으로 전파된 안식교는 그 이후 남북이 분단되기 직전까지 평안도 순안지역을 거점으로 교회, 학교, 병원 등을 건립하며 왕성한 선교활동을 이어갔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을 가던 손흥조는 5월 하순, 일본 고베항에 하선해 하와이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일본인 재림교회 전도사 쿠니야 히데에게 전도를 받고 최초의 조선인 안식교 신자가 되었고 하와이행을 포기한 손홍조가 조선으로 다시 돌아가는 귀국선에서 독립운동가 임기반에게 전도했으며 귀국 후 이 두 사람의 활동을 기점으로 조선의 재림교회가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05년 미국 캔사스 출신의 스미스 목사(W. R. Smith)가 조선의 초대 선교사로 부임해 지금의 평양 순안공항 지역에 선교 본부를 정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조선 땅 전체로 영역을 확대할 만큼 부흥하자 1910년에 교단 본부를 평양 순안에서 서울로 이전하게 됐다.
    
1943년 12월 일제에 의해 안식교가 강제 해산되었으나 해방 후 재건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구제위원회를 조직해 세계본부 대총회의 지원을 받아 전쟁 중에도 활발한 구호활동을 전개했으며 전쟁 후에는 수십 개의 고아원을 설립해 전쟁고아들을 돌봤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1995년부터 안식교에서 운영하는 국제구호단체 ADRA를 통해 대북활동을 하며 다시금 선교의 맥을 이어간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 12월에 들어서자 북 외무성은 자신들의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NGO 간부들에게 모든 구호활동을 정리하고 돌아가라는 요청에 따라 ADRA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안식교 목회자들과 구호단체 책임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방북을 추진하거나 대북접촉을 시도해 다시금 조용하게 활동 중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캐나다와 미국에 거주하는 목회자, 기업인, 언론인으로 구성된 ‘북한바로알기 방북단’이 조직됐는데 이때 목회자들 중에 필자를 비롯해 캐나다 시민권자인 1.5세 한인 목회자인 안식교단의 안재완 목사가 포함된 것이다. 필자는 그를 통해 현재 국내외 안식교가 주도하는 대북사역을 가까이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북사역의 첨병 안재완 목사
      
남북관계의 경색과는 무관하게 미주에서도 안식교 목회자들의 일시적인 단순 방북은 지속적으로 있어 왔으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남측의 안식교 목회자들의 일시적 방북도 있어왔다. 안식교의 배시언, 유영길 두 목사의 단순 방북을 비롯해 미국 남가주의 최희만 장로를 비롯한 전문적인 대북구호 사역자들의 방북은 계속 이어져왔다.
      
그런 가운데 미국에서 사역하는 안재완 목사가 2012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방북을 통해 대북사역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자신이 지도하는 미션스쿨(Mission School)에서 디렉토(Director) 역할을 하고 있는 안 목사는 지난 2012년 10월 2-11일, 1주일간 평양에서 열린 10.4선언 5돌을 기념해 개최된 남·북·해외동포 대표단의 통일포럼에 참석한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인 방북을 통해 선교의 기초를 다지고 있는데 이 포럼에 필자도 미주동포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으며 그 이후로도 각자가 방북해서 활동 할 때마다 서로 마주치는 등 그의 대북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안 목사는 그 후 2013년 4월 27일- 5월 10일까지 ‘우리는 하나(We Are One)’라는 대북사역단체의 후원으로 미주와 캐나다의 안식교 신자들과 실향민 출신의 안 목사 모친을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의 장년신자들을 이끌고 방북했는데 4월 30-5월 7일까지는 방북일정, 5월 8 – 10일 까지는 두만강 선교교육센터 방문일정, 5월 10 -14일까지는 한국의 교육현장 탐방을 하고 돌아올 정도로 북한바로알기 운동과 대북사역에 열심을 내고 있었다.  
    
안 목사의 부모는 실향민이라서 어릴 때부터 조국의 남북 분단과 통일문제를 항상 고민하였고 북한 동포를 생각하며 복음에 대한 열정을 품고 대북사역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요즘 매우 보기드믄 1.5세 영어권 목사인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성장한 후에는 다시 한국의 삼육대학교로 유학을 다녀왔으며 신학교 졸업 후 첫 목회 부임지가 자신이 성장한 캐나다 토론토 안식일교회(재림교회)였다고 한다. 지금도 모친이 여전히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으며 북을 떠난 지 63년이 되는 모친을 모시고 함께 방북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캐나다가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지만 대북사역을 위해서 지금은 미국 미시건주에서 목회와 선교사역을 병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2010년 4월에 미시건주 Berrien Springs지역에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앤드류스한인교회(Andrews Korean Seventh-day Adventist Church)’에서 두 영어권(Living Springs Fellowship & Living Word Fellowship)사역 담당목사로 부임해 2세들을 교육하고 있으며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는 ‘미션스쿨(Mission School)’에서 북한선교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본 안재완 목사
     
필자가 볼 때 안 목사는 상당히 긍정적이고 특별해 보였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아직도 안식교를 이단으로 분류하고 있어서 그런지 장로교 출신의 필자도 처음에는 안식교에 대한 경계심과 편견 때문에 서먹서먹했으나 그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에서 경계심이 사라졌다(또한 그 이전에 필자가 풀러신학교 유학생활 중에 알게 된 삼육대 김기곤 총장의 둘째 아들 김현민 목사와 교제하면서 안식교 목회자들만의 특유한 경건함과 신실함으로 안식교에 대한 관점이 바뀐 계기가 되었다). 필자가 거주하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안식교에 대한 이단시비가 거의 없거나 관대한 편인데 유독 한국교계에서는 아직도 이단시비 논쟁이 뜨겁다.
     
비록 안 목사는 40대의 젊은 나이지만 안식교 목사로서의 품위와 자세 그리고 재림신앙과 경건주의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으며 요즘 보기 드문 겸손하고 온유한 목회자로 보였다. 안식교 신자들을 인솔해 지속적인 방북 활동을 하는 그를 평양 여기저기서 마주치기도 했고 행사 참관하는 장소가 필자와 중복돼 함께 다니며 탐방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가 LA 지역을 방문하면 별도로 교제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특히 그는 북 당국에서 가끔 베푸는 저녁 회식에서 제공되는 주류를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전혀 입에 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채식을 기반으로 한 음식을 선호했으며 고기와 기름진 음식에 대해 절제하는 안식교의 전통을 보여주었다.
    
또한 안식교를 철저히 믿는 안 목사 일행은 방북 중에 토요일(안식일)이나 주일(일요일)이 돌아오면 예배 문제 때문에 고심하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평양에는 아직도 공식적으로 안식교 교회당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칠골교회나 봉수교회를 방문해 주일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소위 ‘일요일 예배(주일예배)’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안식교의 입장에서 볼 때 안 목사의 행동은 매우 파격적이고 열린 자세로 보였다. 그러나 안 목사는 매주 토요일(안식일)이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이 인솔해 온 안식교 신자들과 함께 자신들이 체류 중인 호텔의 조용한 공간을 빌려 진지하고 경건하게 안식일 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 목사가 인솔한 신자들은 대부분 ‘우리는 하나(We Are One)’라는 단체에 소속한 ‘의료지원단’겸 ‘북한 바로알기 방문단’인데 그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북녘 사회가 기독교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아니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대체적으로 서로의 신앙과 정견을 존중해 주기 때문에 외국에서 방문한 기독교 신자들끼리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모두 허용을 한다. 그러나 북측 인민들이나 시민들에게 전도를 한다거나 예배를 드리는 모임에 끌어 들이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간혹 마주치는 안 목사의 표정은 항상 밝고 평안했으며 북측 동포들과도 형제자매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친화력을 보이기도 했으며 출국을 앞두고 북녘 동포들과 이별하는 상황이 되면 못내 아쉬워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들을 초청한 북측 당국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잘 이끌어가는 성품이라서 안내원이나 북 당국자들도 안 목사의 인격과 활동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으며 안 목사가 인솔한 안식교 신자들의 생활자세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때로는 재해를 입은 북 동포들에게 복구 지원금을 전달하거나 봉수교회나 조그련에 특별 헌금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호활동과 지원활동을 하는 것도 목격했다. 이처럼 안식교 신자들과 구호단체 관계자들을 이끌고 여러 차례 방북을 하면서 북에 대한 다양한 현실 체험과 객관적 시각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방북 활동을 두고 안식교 내부에서 여러 가지 오해와 억측들이 제기되어 결국 자신이 속한 단체의 임원직을 사임하기까지 했다.
      
필자가 볼 때 안 목사는 청교도적인 생활의 모범과 진실성을 보여주었으며 기존 정통교회와는 다른 안식교(재림교회)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를 접근했던 합리적이고 열린 목회자였다. 특히 안 목사와 그가 소속한 단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의혹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소문들과 오해들을 접했을 때 멀리서나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북을 방문하고 귀국하면 근거 없는 과장된 소문들로 반드시 홍역을 치르듯 곤욕을 치루기 마련이다.

필자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어 안 목사를 바라보며 동병상련처럼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이다. 안 목사가 최초로 방북한 계기는 남가주지역 안식교계의 원로 지도자인 최희만 장로의 소개로 시작된 것이었고 안 목사는 안식교 교리를 벗어난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을 필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안식교 내부의 이런 여러 가지 오해와 의혹들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안 목사는 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우리는 하나”라는 단체의 임원직에서 사임할 정도로 강직함도 지니고 있었다.
 

▲ 10.4 선언 5주년 기념 통일토론회에서 발표하는 안재완 목사(우측 네 번째)와 필자(우측 두 번째). [사진제공 - 최재영]

 

▲ ‘평양 제3인민병원’을 방문해 병원장으로부터 병원 운영실태를 브리핑 받고 지원대책을 논의하는 필자와 안재완 목사(맨 좌측 반쯤 보이는 이가 안 목사, 그 옆에  원장과 마주보고 있는 이가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 김일성광장에서 거행된 행사에 참관 후 안재완 목사와 잠시 조우한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안재완 목사가 진행 중인 4단계 대북사역 계획
    
남북관계가 적대적으로 심화된 현재의 상황에서는 남과 북의 일대일 직접교류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특히 한국교회는 많은 대북사역 단체들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현장경험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선교센터가 전무한 실정이며 인력양성 시스템도 엉성하고 부실하며 비현실적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미주에 있는 영어권 2세 대학생들을 위한 구체적인 대북사역 훈련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는데 이런 와중에 안재완 목사가 추진하고 있다는 대북사역자 양성을 위한 미션스쿨(Mission School) 사역은 매우 현실적이며 북측을 자극하지 않는 통일지향적인 방법인 듯하다.
    
그는 ‘앤드류스 제자훈련센터(Andrews Discipleship Center)’건물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1단계 훈련을 시작해 북.중 국경지역인 두만강변의 ‘뉴스타트요양원(선교교육센터)’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킨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4단계까지 교육과 훈련이 지속된다. 이 사역은 ‘우리는 하나(We Are One)’라는 단체와 평화교류협의회 산하 ‘Mission North Korea’와 연계해 있으며 훈련을 마치면 ‘미션스쿨’과 ‘우리는 하나’의 후원으로 안식교 사역자들과 평신도들을 위한 북한선교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와 미션스쿨’에서는 미주에 있는 영어권 2세대를 위한 4단계의 북한선교 훈련과정을 운영해왔는데 주목적은 북한선교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교육하여 통일과 북한선교의 비전을 갖도록 하는데 있다.  먼저 1단계는 입학한 대학생들이 1년에 세 차례 미션스쿨 기숙사에 머문다. 각각 3, 4, 7일간(Thanks Giving, Winter, Spring Break) 머물면서 북한 선교에 관한 개론학을 교육 받는데 오전에는 북한을 직접 다녀온 사람들의 경험들을 듣게 되고, 오후에는 북한과 관련된 영문 책자들과,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북한 문화를 익히며 마지막에는 그것을 토대로 선교전략을 계획하며 저녁에는 예배와 기도회로 선교사로서 마음의 자세를 다지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2단계는 주로 여름에 진행되는 5주과정의 프로그램이다. 첫 주는 미션스쿨 기숙사에 모여서 선교사의 삶과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되며 둘째 주는 한국에 나가서 English Bible Camp에서 봉사하면서 경험을 쌓는 훈련을 한다. 나머지 마지막 2주는 북한과 지리적으로 제일 가까운 두만강에 위치한 선교교육센터를 직접 방문해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북한땅을 바라보며 선교의 꿈을 스스로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선교교육센터로 활용 중인 두만강가의 뉴스타트요양원으로 대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집중적인 ‘북한 바로 알기’와 ‘북한 선교를 위한 경험’을 갖게 하는 프로그램인데 창문만 열면 두만강이 바로 보이는 북한과 가장 지근거리에서  2주 동안 숙식하며 예배와 기도를 통해 북한에 대해 실전 교육을 받고 돌아오는 것이다. 바로 강만 건너면 북한 땅인데, 갈 수는 없지만 그곳을 바라보며 민족 분단의 아픔을 나누고 분단의 현실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선교를 하기 전에 먼저 북한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고 민족통일과 선교의지를 불태울 수 있게 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3단계는 매년 5월에 개최되는 2주간의 프로그램을 말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1,2단계를 거치고 나서 북한선교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찬 대학생들이 직접 방북해 평양이나 지방을 탐방하는 것을 말한다. 북에 대한 문화를 직접 배우거나 병원, 학교, 요양원 등 학생들이 직접 기관을 찾아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특별히 영어교사로 갈 수 있는 가능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고 한다. 안 목사는 이를 위해 미주에서 북한선교 인력 양성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우리는 하나’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직접 방북해 구체적으로 각 사회봉사 시설에서 봉사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타진하기 위해 2013년 5월과 10월에 방북하기도 했다. 방학을 이용할 수 밖에 없으며 3개월에서 1년을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중교육을 한다.
     
4단계 프로그램은 미주에 거주하는 30-40대 영어권 평신도들 중에서 내과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검안사, 간호사 등 메디칼 그룹 인재들을 모아 그들과 함께 방북해 그들의 각 전공과 특성을 살려 전문분야에서 봉사 할 수 있도록 하는 코스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미주에서 처음으로 30-40대 Korean American(영어권 청장년) 지도자들이 Upper Room Church(다락방교회)에서 이 일을 구체적으로 상의하기 위한 첫 모임을 갖기도 했다. 선교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은 각 개인이 부담해야 하며 여름 프로그램은 1인당 2,200달러, 방북 프로그램은 3,500달러 정도로 예상한다. 대학생들에게는 부담스런 금액이기 때문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미리 알려주거나 출석하는 교회에서도 사전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여 선교자금을 미리 마련하도록 준비시킨다는 방침이다.
 

▲ 북한선교인력 양성 제1단계 교육장소인 Andrews Discipleship Center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 북한선교인력 양성 제2단계 교육장소인 두만강 뉴스타트요양원(선교교육센터)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미주지역의 안식교 산하 대북 사역단체들의 활동
     
대북 구호사역과 북한선교사역을 위한 국내외 안식교 기구와 단체는 그 분야가 다양하다. 우선 한국 안식교의 사단법인 평화교류협의회의가 설립한 ‘Mission North Korea’가 있고, 미주 한인 안식교에서 설립한 ‘미주한인 해외동포 원호기구(혹은 미주한인재림교회 원호기구)’가 있는데 이 원호기구는 북한 고아들을 돕는 ‘한 핏줄(KARRA)’과 연계되어 있다. ‘KARRA’라는 단체는 2005년부터 나진선봉지역의 고아들을 위해 빵 공장을 설립했는데 어린이들에게 빵을 생산하고 보급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공장 설비와 재료를 공급하고 있는 단체다. 2004년 1월부터 ‘한 핏줄’이라는 북한전문 소식지를 발행해 미주지역에 보급하고 있다.
      
또한 안식교의 ‘아태지회’와 ‘한국연합회’가 공동으로 설립한 ‘K-Project’가 있는데 이 단체는 평양 ‘김만유 병원’개건사업(리모델링)을 추진하기 위해 특별히 설립된 기구이다. 아울러 낙후된 북한의 여러 병원들의 의료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북아태지회와 로마린다 병원 측이 공동으로 의약품등 제공하거나 병원을 개건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미주 안식교 원로 최희만 장로가 ‘K-Project’추진위원회장을 맡아 이끌어왔으며 당시 이재룡 북아태지회장, 김대성 목사, 이용태 한국 종합의료원장 등이 힘을 합해 김만유 병원의 의료 장비와 기술적 부분을 지원하는 사업을 구상하며 지원해왔다.
   
또한 북한의 양로원 연합단체(조선연로자방조련맹)을 돕고 치과병원 및 덴탈사업을 돕는 ‘삼육의료구호봉사단(ASIMA, America Sahmyook International Medical Association)’이 있다. 이 봉사단은 2003년 4월 30일에 처음으로 발족된 ‘조선연로자방조협회’(HelpAgeDPRK)의 조직을 재정비해 다시 ‘조선연로자방조연맹’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는데 북 노인들의 복지와 건강, 권익보호를 위해 이 연맹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미 서부뿐 아니라 중동부 지역 중심으로 조직된 북한선교 그룹들은 모두 6개 그룹이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이민 2세대들을 주축으로 구호활동을 하는 ‘우리는 하나(We Are One)’라는 그룹이 있으며 미국인들이 설립해 평신도제자훈련을 하는 ‘ASAP(Adventist Southeast Asian Project)’라는 선교단체가 있다. 또한 앤드류스대학교 캠퍼스 앞에 ‘Global Care Partners’라는 메디컬 전문 북한사역단체가 있다. 이처럼 안식교 산하 여러 대북 사역단체들이 있는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네트워크를 형성해 하나로 묶어서 사역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첫 번째 미주 한인 1세 중심으로 결성된 ‘우리는 하나’라는 그룹은 2012년 5월 26일 설립되었는데 이사장에는 의사출신의 임성근, 고문에는 타계하기 전까지 로스앤젤레스의 최희만 장로가 맡아왔다. 이 단체는 북한에 재정이나 물자로  직접 돕기보다 미주의 125개 재림교회와 신자들이 북한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갖도록 유도하며 통일과 북한선교를 위해 구체적으로 교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신자들을 깨워 대북사역에 대한 도전을 주고 스스로 깊이 연구해 사역을 준비하도록 교육을 하는 역할이다.
    
ASAP(Adventist Southeast Asia Projects)라는 선교단체는 앤드류스대학교(Andrews University) 인근에 위치해 있다. 안식교 재단에서 설립한 대학으로서 미시건주에 있는 전체 대학 랭킹 1위에 속하는 이 대학교에서 약 2 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ASAP는 현재 총재를 맡고 있는 Judy Aitken 여사가 설립했다. 평소에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지역을 담당하는 단체이며 1년 예산이 150만 달러이다. 이 단체는 미주에 있는 안식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모금과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한인 부부인 Martin & Liana Kim 목사 부부가 홍보담당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난 2012년 10월에 열린 ASAP 이사진 회의에서 앞으로의 사업방향을 동남아시아 중심으로 하되 그 첫 사업을 북한선교 방향으로 결정을 했다. ASAP 이사진 12명중 3명이 Korean American이기 때문에 그들의 관심이 많이 반영된 결과였던 것이다. 이 단체의 선교철학은 직접 선교사를 보내는 것보다 그 지역 본토인을 훈련시켜 그들이 자국에서 봉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교육한다. 안재완 목사가 이끄는 미션스쿨도 이 사역에 합류해 북한사역을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앤드류스대학교 캠퍼스가 위치한 Berrien Springs 지역에는 ‘Lake Union Conference(LUC)’라는 연합회가 있는데 이 연합회에서 ‘Global-Care-Partners’라는 메디컬 전문 대북 선교단체를 설립했다. 이곳은燙년도부터 북한 의료계의 각종 의학실험실에 새로운 기술과 장비를 보급하고 향상 시키는 일을 해왔다. 특히 ‘Marcia Kilsby(Ph.D)’라는 여성교수가 매해 두 차례씩 정기적으로 방북해 의료진들에게 2주간씩 의료검사기계 사용법과 기술을 전수하고 있으며 북측 의대 교수들에게 Department of Medical Laboratory Sciences(의료과학 연구 분야)를 직접 교육시키고 있다.  
   
이들의 방북 비용과 북 의료진 교육에 필요한 재정은 Kilsby 교수가 미국의 비영리단체의 스폰서를 받아서 직접 해결한다. 평양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는 혈액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이나 전기 시설이 미비하기에 태양열 에너지로 작동하는 휴대용 혈액 검사기를  Kilsby 교수가 직접 개발했으며 매번 새로운 의료기기를 준비해서 방북하고 있다. 기초 의료 수준에 불과한 질병 진단과 건강 검진이 북녘의 동포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이런 기계는 한 대 당 가격이 5,000달러 정도 한다.
 

▲ ‘우리는 하나(We are One)’이사진(앞줄 좌에서 세 번째부터 최희만 고문, 임성근 의사 부부, 뒷줄 맨 우측이 안재완 목사). [사진제공 - 최재영]

 

▲ ‘우리는 하나(We are One)’와 사단법인 평화교류협의회 임원진의 첫 미팅(좌측 두 번째부터 안재완 목사, 임성근 의사 부부, 최창규 장로, 김한영 장로, 삼육대 명지원 교수). [사진제공 - 최재영]

 

▲ 안재완 목사가 평양 ‘김만유병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최근 이 병원은 평양과과기대 의과대학병원으로 변경됐다. [사진제공 - 최재영]

 

▲ 평양 김만유병원 재건을 위한 ‘K-Project 추진위원장’ 최희만 장로가 병원사진을 보이며 의료수준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다(우측부터 최희만 추진위원장, 이재룡 북아태지회장, 김대성 목사, 이용태 한국 종합의료원장). [사진제공 - 최재영]

 

▲ ‘미주한인재림교회 원호기구’가 이사회를 여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ASAP 이사진들이 이사회를 통해 북한을 돕기로 결정한 직 후 기념촬영한 모습(2012년 10월). [사진제공 - 최재영]

 

▲ Kilsby 교수가 북한 의료진에게 혈액검사기 사용법 등 의료교육을 실시한 후 단체 촬영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Kilsby 교수가 직접 개발한 태양열 에너지로 작동하는 휴대용 혈액 검사기와 관련기기들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미주 이민사회에 불고 있는 한인 안식교회들의 북한선교 열풍
   
현재 미주의 한인사회는 안식교(재림교)가 주도하는 대북사역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15년 6월 27-28일에는 이틀간 ‘제1차 미주 북한선교대회’가 400명의 안식교신자들과 대북사역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가든 그로브한인재림교회에서 열렸으며 작년에 이어 올 2016년 7월 30일에도 제2차 대회가 열렸다. 이처럼 미주 안식교 산하 여러 북한선교 단체들이 미주지역 안식교회들의 연합체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 모여 서로 협력하며 일관된 채널을 통해 사역을 하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이런 미주대회를 여는 이유는 안식교의 여러 대북단체들이 서로 분산돼 각개전투 식으로 사역하는 것보다는 하나로 통합돼 서로 조율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결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남북관계가 악화된 경우에는 남한에서 직접 방북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한 안식교회들이 어쩔 수 없이 미주 내 선교단체들을 활용해 활동을 하는 실정이다. 그러기 때문에 북미주 안식교회들의 모임인 ‘북미주한인재림교회협회’가 통합 채널로 사역을 진행해야 더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데 뜻을 같이 한 결과이다.
    
제1차 대회는 ‘북한선교대회(포럼) 및 바로알기’라는 행사제목으로 개최됐으며 400명의 리더들이 모여 북한사역을 계획하는 자리였다. ‘북아시아 태평양지회(이하 북아태지회)’북한선교부가 주관하고 ‘북미주한인재림교회협회’가 주최한 1회 대회는 미주 전역과 남한 안식교의 북한선교 전문가들이 모여 북한 내부의 실정을 객관적으로 알고 선교를 위한 전략을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다. UN자문위원인 김양일 회장이 수십 차례의 방북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정세와 동향’을 발표해 참석자들이 북을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었고 둘째 날엔 미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북한구호단체와 선교단체들의 사역보고가 있었다.
    
제2차 대회도 2016년 7월 30일 남가주 인랜드에 소재한 로마린다 한인 안식일교회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제1회처럼 ‘북아태지회’북한선교부가 주관하고 ‘북미주한인재림교회협회’가 주최했는데 이번엔 ‘남가주재림교회(안식교) 목사회 및 장로회’가 후원을 했다. 특별히 이날은 한국의 대통령 직속 기구인 평통 본부 운영위원인 홍명기 회장(밝은 미래재단 이사장)과 OC(오렌지카운티)-SD(샌디에고)평통의 권석대 회장 등 다수의 평통위원들이 참석해 큰 관심을 나타냈으며 지난해처럼 안식교 신자 300명이 참석했다.
    
이날 평통위원들이 특별한 종교적인 행사에 모일 수 있었던 계기는 로마린다 재림교회의 수석장로이면서 평통 본부 임원인 홍명기 회장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통일에 대한 불을 지피며 안식교의 고유한 대북사역에 대한 전략을 논하는 이날 1부 예배에서 북아태지회장을 맡은 이재룡 목사가 몽고, 중국, 일본, 대만, 그리고 한국과 북한에 대한 재림교(SDA) 현황에 대한 보고를 했는데 정확한 통계수치로 여겨져 눈여겨 볼 만 했다.

“현재 북아태지회 내에 있는 재림교회는 모두 6,500개 교회이며 교인 수는 72만 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중국교회는 4,500개 교회에 교인수가 40만 명에 달한다. 중국의 종교정책이 완화되어 인민들의 종교활동이 좀 더 관대해지면 교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어서 2부 순서에서는 한국인으로서 북아태지회 선교부장을 맡고 있는 김시영 목사가 북한선교 현황을 보고했다.

“SDA(안식교) 대총회 산하 구호재단인 ADRA는 전 세계 130개국에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2002년에 북한에 빵공장을 설립해 하루에 빵을 5만개 생산했고 쌀가루로 우유를 생산해 무려 32,300명에게 공급했으며 그 외에도 지금까지 수많은 방법으로 북한을 도왔다. 또한 미주 재림교 ‘한 핏줄 구호재단’도 북 나진선봉 고아원 아이들을 도왔으나 현재는 대북지원 정국이 좋지 않아 관망하고 있는 상태이다. 해방 이전부터 북에서 신앙생황을 하던 재림교인들이 아직도 믿음을 지키고 있는 실정으로 알고 있다. 한국 재림교단에서는 십일금(십일조)의 1%를 북한선교를 위해 떼어놓고 북한이 개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탈북 주민 29,500명에 대한 선교정책도 펴고 있다.”

이처럼 미주 안식교회들은 혼연일체가 돼 대북 지원활동과 복음전파를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장로교 목회자인 필자는 이들을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다. 지금까지 미주와 한국에 있는 일반 개신교회들의 대북사역 행태들은 극우 보수성향에 치우쳐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그동안 국내외 선교사들이 체포되거나 억류되는 등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내재적 접근과 통일지향적 선교정책은 온데간데없고 제국주의적 선교와 일방적 선교만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 비해 안식교(재림교회)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우선 보건, 복지, 식량, 의료지원 등에 앞장서면서 북 당국과의 신뢰회복과 관계 개선부터 힘을 쏟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북미주 안식교 교회들이 모여 ‘제1차 북한선교대회(포럼) 및 북한 바로알기‘행사를 열고 관계자들이 단체촬영한 모습(2015년 6월 27-28일). [사진제공 - 최재영]

 

▲ 제1차 대회 이후 미주 안식교의 북한선교 리더 400명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북한선교 포럼에 참석해 경청하는 모습(2015년 9월 15일). [사진제공 - 최재영]

 

▲ 미주 평통위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제2차 북한선교대회가 로마린다 재림교회에서 열렸다(2016년 7월 30일). [사진제공 - 최재영]

 

▲ 제2차 대회에 참석했던 OC-SD 평통위원들의 모습. 홍명기 회장은 로마린다 안식교회 수석장로로서 평통에서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사진제공 - 최재영]


미주 안식교의 교세와 사회적 영향
      
미국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한인 신자들이 많으나 그 중 대표적인 신자 두 명을 꼽으라 한다면 우선 닉슨부터 부시까지 무려 일곱 명의 미국 대통령들의 법률자문위원과 법률고문을 맡았던 고한실 박사가 있다. 또한 듀라코트라는 회사를 설립해 미주 한인사회의 거부가 되어 기부왕으로 잘 알려진 로마린다교회 수석장로 홍명기 회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홍 장로는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총회장직을 비롯해 한인 이민사회에서 독보적인 저명인사로 자리매김을 하며 각종 사회사업과 장학금사업, 선교후원금 등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통 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의 삼육대 캠퍼스 건물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홍명기홀’이 있을 정도이다. 또한 자신이 출석하는 로마린다교회가 1천만 달러를 투자해 1,200명 수용 규모로 예배당 건축을 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홍 장로가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에 관여하게 된 이유는 안창호 선생도 재림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도산은 한국 재림교회의 기초를 놓은 임기반이라는 인물과 동향 친척이자 후원자였으며 임기반은 독실한 안식교 신자인 이석관의 장녀 이혜란(안혜란)과 안창호의 결혼을 성사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친일논란이 있는 춘원 이광수도 안창호의 동서 김창세 박사를 통해 안식교를 알게 되어 매주 안식교 성경공부를 했다.    
    
뿐만 아니라 요즘 트럼프가 공화당의 공식 후보로 당선되기 전, 경선 초반에 혜성같이 나타나 이목을 집중시킨 신경외과 의사 ‘벤 카슨 (Ben Carson)’이 안식교 장로이다. 또한  현재 미국의회 상원 원목으로 사역하는 ‘베리 블랙(Barry C. Black)’목사와 미 국방성 펜타곤 원목 ‘윌리암 코넬 브롬리(william connell bromley)’목사도 안식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앤듀류스 신학대학(Andrews University) 출신의 안식교 목사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안식일 교회 교인은 약 1천 9백 만 명이 있으며 미국에만 120만 명이며 미국 전역에 흩어져있는 한인 안식교 교회는 130여개, 남가주 지역에만 약 25개가 되며 교인 수는 약 1만 2천 명 정도이다.  
    
한편 미국의 안식교 재단은 무려 100년 전부터 미국인들의 건강과 교육에 투자해 지금까지 40여개가 넘는 유명한 병원들을 미 전역 대도시에 세웠는데 동가주와 남가주에만 대형 병원 3곳이 있다. 필자가 거주하는 남가주지역에는 글렌데일의 ‘Adventist Hospital’, 다운타운 동쪽의 ‘White Memorial Hospital’, ‘Loma Linda University Hospital’등 큰 병원들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안식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남가주지역의 대학교중에는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Loma Linda University’의 의과대(School of Medicine)와 치과대학(School of Dentistry)이 매우 유명하다.
 

▲ 평소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에 열중하는 안식교의 홍명기 장로(로마린다교회 수석장로, 듀라코트 회장). [사진제공 - 최재영]

 

▲ 안식교의 홍명기 장로가 자신의 이름을 딴 한국 삼육대 ‘홍명기홀’ 현판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안식교 재단인 로마린다병원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안식교 국제구호단체 ADRA의 대북지원 현황
     
미국을 비롯한 안식교 산하 각종 기관과 단체들 그리고 각종 모임들 중에는 북한을 돕기 위해 다방면에서 애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구호단체의 경우는 더 적극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안식교는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본격적인 구호사업을 시작해 현재 ADRA를 통해 북한 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각종 재난 구호와 방지, 개발사업, 복지사업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세계 안식교 재단의 국제국호기구인 ‘ADRA’는 ‘ADVENTIST DEVELOPMENT & RELIEF AGENCY’의 약자인데  한국에는 ADRA  KOREA가 있으며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북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미국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스에 본부를 둔 ADRA는 UN산하 협조기구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 126개 국가에 조직을 갖고 있다. ADRA는 현재 안식교(재림교회)라는 종교적 색채를 탈피해 초교파적인 구호기구로서 탈바꿈했고 구호기구로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특히 ADRA는 스위스(Switzerland) 지부를 통해 북한 아동들의 영양지원, 에너지 개발, 병원개선사업 등을 해왔으며 룡천역 폭발사고 때는 병원 재건축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평양에 빵공장 운영을 통해 2005년에는 칼슘강화 빵 990만 개를 만들어 369곳 유치원 어린이 2만여 명에게 매일 두 개씩 제공하기도 했으며 하루 5톤 분량의 영양강화 빵과 비스킷을 생산해 평양지역 학생들에게 공급하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한국에 세운 ADRA KOREA는 사단법인 삼육국제개발구호기구로서 재단 본부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다. ADRA KOREA는 지부를 다섯 곳(동중한, 서중한, 영남, 충청, 호남)에 두고 있으며, 지사(지역)는 다시 구회(지구)와 분회(교회)로 나눠 조직을 갖추고 활동하고 있다. ADRA KOREA는 대북사업도 왕성하게 전개해 1996년과 1997년 북한 홍수피해 지역을 지원하였고, 빵공장 사업, 사리원 아동병원 개축과 메탄가스를 이용한 전력발전 사업, ADRA 스위스 지부와 함께 룡천역 폭발 사고와 관련한 복구 개발사업, 북한 어린이병원 개발과 어린이 건강향상 프로젝트와 일반 종합병원 재건 프로젝트를 지원해왔다.
    
특히 북한에 세워진 ADRA KOREA의 빵공장 가동은 지난 2002년 8월에 평양공장이 완공되어 평양 지역 25,000 명의 어린이들에게 매일 혜택을 주었고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출퇴근하는 35명의 여성 근로자를 빵공장에 고용해 매일 5만개의 빵을 생산해왔다. 이는 일주일에 6차례씩 평양과 사리원에 있는 95개 고아원과 유치원에 공급하고 있는 규모로서 단일 공장으로는 가장 많은 생산규모였다. 생산비는 빵 10개당 1천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국내외 안식교 신자들이 지속적인 모금활동을 벌여 충당하며 운영해왔다.
    
또한 북한 어린이병원 두 곳에 대한 개축 및 수리를 지원해왔는데 그중에서 황해북도 사리원에 있는 병원은 50년대 건축된 노후된 건물인데다가 여러 차례 수해를 겪어 거의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상태에 있는 병원을 재건하기도 했다. 이 병원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 수만 달러를 투입해 개축과 수리를 통해 수도시설, 난방장치, 벽보수, 하수펌프, 멸균된 수술실, 외과도구 등을 새롭게 갖추고 운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북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정책으로 인해 대북 제재와 압박이 더 한층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일부 평양주재 국제구호단체를 이용해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자행하는 스파이 행위들이 빈번히 발생해 다른 국제구호단체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고 실정이다. 북 당국은 혐의가 있는 구호단체 관계자들을 추방하는 등 현재도 대북 구호활동이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외 각 ADRA지부들과 ADRA KOREA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모든 안식교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합심해 북한돕기 바자회와 모금운동, 각종 북한선교 행사들을 통한 재정확보를 통해 대북구호 지원금을 마련하고 있으며 동시에 미주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북한선교 대회나 기도회 그리고 후원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현상들은 안식일교회(재림교회)가 추구하는 대북사역의 미래를 밝게 앞당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속)
 

▲ 평양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ADRA의 빵 공장 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 평양 ADRA 빵 공장에서 큰 사이즈의 빵이 자동시스템으로 생산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평양 ADRA 빵 공장에서 생산된 다양한 영양빵들이 판매용으로 진열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ADRA 의료팀들이 낙후된 병원시설 개선을 위해 시설물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