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65회부터는 남측교회와 해외교회가 주도해 북측 영토에 교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건축사업이 중단된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그 원인을 통해 합의점을 찾고자 한다. 이중에는 ‘평양조용기심장전문병원’ 내에 마련될 30평 규모의 ‘병원교회’와 평양 대동강변 IT단지에 설립될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예장 합동측의 ‘평양장대현교회’ 등이 있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추진 중인 미국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의 주도로 지어질 ‘평양국제외국인교회’도 다룰 것이며 평양 조선영화촬영소 산속에 지어진 ‘형제산교회당’과 거기 딸린 목사관을 방문한 이야기를 전할 것이며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분류된 ‘통일교’가 평양보통강호텔 앞에 설립한 ‘국제평화센터’와 평화자동차 공장 방문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필자 주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 설립이 추진되다

평양에 주재한 외국인 신자들을 위한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 설립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컴퓨터사업을 하며 IT기업 NOVA를 경영하던 조명호 대표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2001년 1월 북측으로부터 ‘IT산업 육성 전략계획’에 대한 전문가 의뢰를 받으며 북측과 관련을 맺기 시작한 조 대표가 그후 북 정보화산업을 위한 대동강변 IT단지 프로젝트를 직접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IT단지 조성과는 별도로 교회설립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북에서의 조 대표의 위상은 고위층들은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여러 차례 접견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였으며 평양 대동강변 IT단지 조성은 북 당국이 국가적으로 큰 관심을 나타내던 대형 프로젝트였다. 이에 북측은 조 대표의 IT단지 조성 제안을 받아들여 평양의 국제전시장 인근 부지 25,000평을 제공키로 약속하고 곧이어 조감도 제작과 현지 토지측량까지 모두 마쳤다. 

평소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조 대표는 평양을 왕래하며 외국인 신자들을 위한 교회 건축의 필요성을 몸소 절감했다. 따라서 교회설립은 조대표가 2002년도 들어 북측 지도부에 직접 제안하면서 IT산업단지 조성과 동시에 시작된 선교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에 북 조그련(조선그리스도교련맹) 측은 2004년 가을에 외국인전용교회 설립에 대해 정식 승인을 내렸고 준비위원회에서는 교회이름을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Harvest Church)’라고 명명했다. ‘Harvest’는 ‘가을추수’라는 뜻인데 그밖에도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외국인전용교회로 건축되는 이 교회당은 1,772평의 부지에 건평 639평, 지하 1층과 지상 3층에 1천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건축비가 총 600만 달러가 투입되는 공사였다. 교회당이 완공되면 북 최대 규모의 기록과 동시에 북 영토에 건축되는 최초의 민간교회가 되는 기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조 대표가 IT단지 조성을 위한 재정을 준비하던 중 북측에서 공사 추진을 2년간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해오면서 단지조성사업과 교회건립사업이 잠시 답보상태에 빠졌다. 또한 그뿐이 아니었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북 당국이 두 차례에 걸친 교회당 변경 요청을 하는 바람에 건축에 큰 차질이 생겼으며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 모든 프로젝트의 핵심 당사자였던 조명호 대표가 갑자기 지병으로 타계하는 바람에 대동강변 IT단지조성 프로젝트와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 건축 프로젝트는 전격 중단되어 지금까지 무기한 연기상태에 있다.

특히 이 교회건축 프로젝트는 조 대표가 단독으로 추진했던 것이 아니라 남측의 ‘한민족복지재단’과 미국 남가주와 북미주의 대북단체들과 여러 교회들이 주축이 된 ‘조국사랑선교연합회(조기련)’ 명의로 건립하는 형식이었다. 이처럼 미주 한인교계와 대북사역단체들은 큰 기대를 갖고 건축 완공에 전념하던 중에 여러 장애요인으로 추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

필자는 이 모든 추진과정을 다시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남과 북 모두에게 유익한 방법과 합의점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희산건축’에서 제작한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조감도. [사진제공-최재영]

 

▲ 대동강변에 ‘IT정보산업단지’와 ‘국제하베스트교회’가 들어설 부지. 지금은 1년에 두 차 례씩 열리는 국제전람관(International Trade Fair)등이 들어서 있다. [사진제공-최재영]

 

▲ 평양 국제전시장 부근에 세워진 대형 지구본. 부근에서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백개 업체가 참여하는 각종 전람회가 열린다. [사진제공-최재영]

 

▲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건축을 추진한 미국의 IT업체 대표 NOVA사의 조명호 집사. 북은 그에게 ‘IT산업육성전략계획’에 대한 전문가 의뢰를 한 후 그의 계획서를 ‘국가종합발전계획’에 적용했다. [사진제공-최재영]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여러 차례 접견한 조명호 집사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설립과 평양 ‘대동강변 IT단지’ 조성이 추진되던 무렵에는 이미 북이 국가적으로 21세기 경제발전을 좌우할 핵심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1991년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강화, 조기교육 실시 등을 진두지휘하던 시기였다. 특히 2001년 1월에는 중국 상해의 포동지역을 시찰해 IT분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가는 ‘신사고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귀국 즉시 IT인력양성과 대외협력 기반강화에 주력할 것을 선포하고 미국에서 IT기업 NOVA를 운영하는 조명호 대표에게 직접 의뢰해 ‘IT산업육성 전략계획서’를 작성토록 하여 IT분야의 자문역할을 구했다. 북은 이 전략계획서를 토대로 ‘국가종합발전계획’을 추진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김 국방위원장과 조 대표와의 만남은 시작됐다. 조 대표의 자문을 받은 김 국방위원장은 2004년 1월에도 중국을 방문해 “20세기가 기계산업시대였다면 21세기는 정보산업시대가 될 것입니다”라고 교시를 내리기도 했다.

조 대표는 이런 북측의 국가발전계획의 조언자이자 협력자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여러 차례 만남을 갖고 북의 인재들을 모아 IT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던 중 대동강변에 IT단지조성 프로젝트를 체결했다. 아울러 그는 교회 집사로서 자신의 기독교 신앙과 선교적 사명감에 의해 평양에 IT 산업단지를 조성해주고 그 댓가로 단지내에 국제하베스트교회를 세우기로 협상한 것이다.

미주의 대북사역연합단체와 교회건축을 함께 추진하다

한편 2004년 9월 20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소재 나성영락교회에서는 한․미 대북선교단체들이 한데 모여 남북관계와 대북사역의 현황을 파악하고 향후 남북교류와 선교의 올바른 방향 정립을 위한 목적으로 포럼이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분단 60주년을 앞두고 대북사역단체들이 서로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최초의 연합모임이었다.

1부 행사를 마치고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 설립계획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2부에는 여러 논찬자의 발표가 있었고 NOVA의 조명호 대표도 교회설립 준비위원장의 직책으로 발표를 통해 교회설립준비 상황을 보고했다.

이어 두 달 후인 11월에 조 대표가 직접 방북해 북측에 교회설립 계획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조선노동당 중앙당 21국의 협조하에 대동강변 IT단지조성사업과 교회건축사업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IT단지 조성을 위해 재정을 준비하던 중 북측에서 공사 추진을 2년간 연기해 달라는 요청을 해오면서 2년간 휴면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2005년 2월 24일 미국에서 ‘조기련(조국사랑기독교선교연합회)’라는 연합체가 결성되며 조 대표가 이 연합체와 함께 하베스트교회 건축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건축예산은 총 600만 달러(한화 60억원)가 책정되었으며 건축 설계와 시공은 남한의 (주)희산건축(Hee-San Arcihtects &Associates)에서 맡았고 곧 계획안과 설계도면, 조감도를 완성했다. 공사기간은 1년을 잡아 2006년에 완공을 목표로 잡았으며 대동강 정보기술 산업(IT 단지) 부지 안에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했다. 예배당 외에도 부대시설로 초, 중, 고교 과정의 외국인학교를 설립해 운영하기로 했고 주 건물인 교회당외에 서구식의 대형 벨이 부착된 종탑과 편리한 숙박시설과 사무실, 식당, 정원 등의 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기공식은 2005년에 구성될 예정인 합의체(북미주지역과 미국남가주의 대북단체들과 교회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한 ‘조기련’을 말함)가 조직되면 곧바로 착공식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선 희산건축(구 동림건축)이 완성한 교회조감도와 설계도는 즉시 북 조그련측에 전달됐다.

또한 조명호 대표는 하베스트교회 설립을 단독으로 추진하지 않고 자신이 미국에서 합의체로 조직될 ‘조기련’에 소속되어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조기련’은 대북사역 전문단체들과 후원교회들이 연합해 2005년 4월 4일 창립식을 했으며 이날 창립식에는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 외에도 북 영토 24개 도시에 교회를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세웠으며 이 모든 플랜은 남측의 ‘한민족복지재단’ 측과 협력하여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조기련 소속 단체들은 남측의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최홍준목사, 장기천목사)을 주축으로, 미국에는 ‘노바(NOVA)’ 조명호 대표를 비롯해 ‘카트리지선교회’(최형술), ‘세계어린이사랑회’(장철익목사), ‘중국동포크리스천연합회’(최민목사), ‘조국사랑네트워크’(제임스강 이사장, 이성우목사), ‘OMF 제다(GEDA)’의 최영태목사, ‘VOWE #37’(김대평목사), ‘GAP선교회’(박원철목사), ‘C.C.C 북한선교부’(안강희목사), ‘페니선교회’(박영선목사), ‘단미션’(유진소목사), ‘기윤실’(유용석장로), ‘변강의 뿌리’(대표 박원걸장로), ‘세계문화체육재단’(대표 전동석)등 미주한인교계 대북사역단체들을 포함해 현재 북에 억류중인 캐나다 큰빛장로교회(임현수목사) 등 모두 16개 단체들이 포함됐다.

북 당국으로부터 교회건축 승인이 떨어지자 ‘한민족복지재단’과 북미주지역 9개 북한선교단체가 시행처로 참여했는데 이 단체들은 기독교정신으로 대북사역을 펼치고 있는 15개 민간단체와 40여개 교회가 연합한 합의체다. 교회설립준비위원장은 조명호 대표가 직접 맡았으며 건축 협정대상(MOU)은 북 조그련으로 결정됐다.

▲ 미국 나성영락교회에서 개최된 ‘조국사랑기독교선교연합회(조기련)’창립대회 참석한 임원들과 관계자들. 앞줄 좌에서 네 번째가 조명호대표, 여덟 번째가 분당샘물교회 박은조목사 등이다. [사진제공-최재영]

 

▲ ‘조기련’ 태동을 위해 포럼을 준비하는 관계자들. 이들이 결국 국제하베스트교회 건립준비 실무자들이 된다. 가운데가 이사장 박희민목사, 우측이 실행위원장 이성우목사. [사진제공-최재영]

 

‘조국사랑기독교선교연합회(조기련)’ 창립대회와 교회설립 경과보고

미국에서 ‘조기련’이라는 연합체가 결성되고 두 달만인 2005년 4월 4일 오후 3시에 드디어 로스엔젤레스 소재 나성영락교회에서 창립대회를 열고 이사장에 박희민 목사를 선출했다. 대회에서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광복 6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와 미주한인교회들 그리고 대북 사역단체들이 연합해 사역할 수 있는 여러 비전과 사역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날 남측의 ‘한민족복지재단’과의 동역을 최종 결정했다.

또한 상설기구 설치를 통해 ‘교회재건운동본부장’에 NOVA 대표 조명호 집사를 선출했으며 평양에 세워질 국제하베스트교회를 이 연합체와 함께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연합회 조직을 보면 법인이사장에 박희민 목사, 부이사장에 장철우, 박성규, 민종기, 송영걸, 송상철 목사, 운영이사장에 차현회 목사, 자문위원장에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장 박기호 교수, 실행위원장에 이성우 목사, 상임총무 데니스 한, 사무국장 나승렬 등을 확정했다. 한편 이날 창립식 기념 세미나에서 조명호 대표가 다음과 같이 경과보고를 했다.

“제가 미국서 컴퓨터 사업을 하던 중 2002년 북측의 IT 산업육성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추진하면서, 북측 지도부에 선교적 차원에서 평양 주재원들을 위한 교회설립을 제안했습니다. 북측은 평양의 국제전시장 인근 부지 2만 5000평을 제공키로 약속했고 곧이어 조감도 제작과 현지 토지측량까지 마쳤지만 제가 재정을 마련하던 중 북측에서 2년간 공사추진에 대한 연기를 요청해왔고 저 또한 당시 신병문제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였습니다. 지난 2004년 11월 북을 다시 방문해 교회설립을 위한 계획을 소개하고 북 조선노동당 중앙당 21국의 협조하에 현재 사업이 다시 추진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북측에서는 칠골교회 재건축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기존의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 북측과 협의 중입니다.”

조 대표의 브리핑은 참석자들과 연합단체 관계자들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으나 조 대표 자신은 북 조그련측의 의도와 계획을 간파하지 못한 듯했다. 북측이 칠골교회당을 리모델링해서 사용하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은 이미 새로운 교회 건축에 대한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을 간파했어야만 했다.

북 조그련측의 1차 변경 요청에 대한 대책

앞서 밝혔듯이 북 조그련측 강영섭 위원장은 2005년 2월에 방북한 조명호 대표에 게 “국제하베스트교회를 신축하지 말고 칠골교회 개건공사(증개축 리모델링)를 해서 그 교회를 외국인 전용교회로 변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기존 하베스트교회 설립프로젝트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제안을 했던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조그련은 중앙당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북 체제 내부에서의 여러 가지 역학적 관계로 인해 쉽게 교회당 건축을 허락할 수 없음을 반증하는 제안이었다.

선군정치 하에서 당과 군에는 강경노선의 인물들이 많다. 이들은 특히 해외의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북측 영토에 자꾸만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나의 방북기 중에 ‘평양봉수교회 편’에 보면 남측 장로교 통합측의 지원으로 건축되던 봉수교회당 지붕에는 제작해간 쌍 종탑이 끝내 올라가지 못한 채 미완성 작품처럼 서 있음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당시 군부 강경파들이 “평양하늘 아래 십자가를 높이 세울 수 없다”는 완강한 반대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과 이유 때문에 조그련은 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결국 조그련은 교회건축 프로젝트를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었고 그 대안으로 칠골교회를 리모델링 후 사용하라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조기련’ 측의 박희민 이사장은 여러 가지 대책을 간구한 후 두 가지 결론을 냈다.

“첫째, 북측 요청에 대한 우리측 입장은 어떻게 하든지 북에 교회를 하나라도 더 짓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원안대로 칠골교회가 아닌 제3의 장소에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북 당국에 요청한다.
둘째. 두 가지 모두 수용하는 방안을 채택해서 북측이 원한다면 하베스트교회 신축과 함께 칠골교회 증개축까지 모두 맡는 방안도 고려한다.”

한편 이날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훗날 국제하베스트교회가 완공되어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건축에 기여한 미주한인교회들을 평양하베스트교회에서 초청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조를 이미 북 조그련측으로부터 받았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양측 모두 서로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 일관성이 없어 보였다.

한편 이날 결의된 내용은 “하베스트교회 신축을 굽히지 않겠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며 이런 요구 문서를 다시 북 조그련측에 전달하기로 했다.

북 조그련측의 2차 변경 요청에 대한 대책

2005년 4월말에 “하베스트교회 신축을 굽히지 않겠다”는 ‘조기련’의 요구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방북한 조명호 대표는 북측의 요청에 대한 대안책을 전달했으며 이 문제와는 상관없이 하베스트교회가 세워질 장소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귀국했다.

그러나 북 조그련은 이듬해인 2006년 들어서 또 다시 국제하베스트교회 건축 프로젝트에 대한 변경을 요청해왔다. 이번에는 하베스트교회 건축에 앞서 평양 시내에 사회복지관을 먼저 건축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와같이 두 번에 걸친 교회변경 요청으로 인해 원래의 교회 건축계획은 큰 난항을 겪으며 진퇴양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원래 교회 건축 승인은 2004년에 정식으로 통과되었고 공사기간 1년이 지난 2006년이면 완공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완공은커녕 프로젝트 자체가 무기한 연기되거나 완전히 무산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평양에 사회복지관을 먼저 지어달라는 북측의 요청은 교회건축 준비에 들떠 있던 ‘조기련’ 담당자들에게는 날벼락같이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이미 중견 건설회사에 설계와 시행 등 건축 절차를 모두 맡겼고 설계도와 청사진 등을 이미 북측에 제출한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착공식조차 못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와 관련해 수차례의 자체 협의를 거친 조기련 지도부는 북측의 교회변경 요구를 모두 거절하기로 결론을 내리면서 교회건축 계획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조기련측은 기존 칠골교회당을 허물고 다시 재건축하는 것보다 새롭게 하나를 더 짓기를 원하기 때문에 원래 약속했던 제3의 장소를 달라고 수정제의를 했으나 이에 북측은 반대급부로 사회복지센터를 지어달라고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호 대표는 몇 차례 더 방북을 했고 뒤이어 미국의 조기련측 임원들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위해 2006년 3월에 방북을 결행했다.

이때 방북 대표단에는 남측 인사 1명이 포함됐다. 그 동안 북측이 하베스트교회 건립에 남측교회가 관여하는 것을 반대해 왔었으나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남측 인사를 포함시켰다. 건축준비위원회 입장에서 볼 때 건축예산이 600만불인데 100만불은 미주에서 마련할 수 있으나 나머지 500만불은 남측교회들과 단체들에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남측을 배제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런 일이었는데 이번 방북에 남측 인사를 허락한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미국의 ‘조기련’ 실무팀으로 구성된 방북단에는 조명호 집사를 비롯해 박희민 목사와 김대평 목사(Vowe 37 대표), 이성우 목사(실행위원장)등 5명이 함께 했다. 이들은 2006년 3월 11-14일까지 나흘간 평양 사회복지센터 건립 문제를 협상하기 위해 평양에 도착했다. 이들은 북측 조그련 위원장 일행과의 협의를 통해 북측의 교회변경 요구를 모두 거절하기로 통보하고 교류증진만큼은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고 두 가지를 합의했다.

“첫째 미국내 목회자들의 연차적인 방북과 미주의 한인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여름방학 기간 등을 이용해 평양을 방문하는 문화체험을 가능하도록 한다. 둘째, 북미간의 관계개선을 위해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와 오글비 목사, 젝 헤이포드 목사 등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들의 방북을 추진하기로 한다.”

당시 방북단의 실행위원들은 릭 워렌 목사 등의 방북이 경색된 북미 관계를 푸는데 크나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 특히 양측은 미국의회 상원 채플린 목사이자 국가조찬기도회를 이끌고 있는 오글비 목사가 방북을 한다면 그 자체로서 북․미간에 큰 의미가 있으며 새로운 전기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보고 조속히 추진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또한 2006년 9월말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되는 통일포럼에 북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을 초청하는 것도 추가로 합의했다.

▲ 북 ‘조그련’과의 마지막 협상차 방북한 미국 ‘조기련’ 임원들이 칠골교회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좌에서 세 번째부터 박희민 이사장, 조그련 강영섭 위원장, 김대평 목사, 이성우 목사. [사진제공-최재영]

 

▲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설립준비 핵심위원들. 좌부터 조명호 설립준비위원장, 박희민 이사장, 이성우 실행위원장. [사진제공-최재영]

 

지병으로 인한 조명호 대표의 타계와 북 조그련의 한계

그러나 안타깝게도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 설립준비위원장을 맡은 조명호 대표는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두 번에 걸친 북측 요청을 받아들이며 건축이 성사되도록 열정적으로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암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평소 미국 남가주 소재 ‘오렌지카운티한인교회’(담임 남성수 목사)에서 안수집사 장립(2003년 10월 5일)을 받고 신앙생활을 해오던 조 집사는 오래전부터 암과의 사투를 벌리며 투병생활을 해왔고 다행히 신앙으로 극복했다. 2005년 5월에는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건강을 회복한 드라마틱한 내용으로 신앙간증을 할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었으나 그 이후 대북사역과 비즈니스로 인해 격무에 시달리면서 다시 쇠약해지며 투병하다가 2006년 12월 11일 안타깝게도 운명한 것이다.

그는 투병 중에도 IT 정보기술업체를 운영하며 대북사업을 병행했는데 조 대표의 갑작스런 타계로 평양 대동강변 IT산업단지 조성과 국제하베스트교회 건축을 비롯한 평양사회복지관 건축에 대한 추진은 탄력을 잃으며 무기한 연기됐고 10년이 지난 2016년 현재까지도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보수적인 남측교회나 해외한인교회가 주도해서 북측 영토에 교회당을 짓는 프로젝트는 성사시키기가 매우 힘든 일이다. ‘평양국제하베스트교회’ 건축은 착공조차 못해 실망스럽지만 이것을 교훈삼아 북측과의 사업은 단기간에 성과와 결실을 보려고 무리하게 밀어붙이거나 청사진 한 장만 들고 이미 다 이룩한 듯 생색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북사업은 인내심을 가지고 장기간에 걸쳐 철저히 준비해야 하며 특히 북측 인민들과 관료들의 역사인식과 그들의 정치체제 이해, 북 사회 상황에 대한 몰이해로는 저들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할 수 없다.

북측 인민들의 입장과 정서를 배려하지 않고 제국주의적 선교나 근본주의 기독교 관점에서의 일방적 선교 개념으로 무조건 교회당만 지으려 한다면 이는 매우 무모한 일이며 실패한 사역에 불과하다. 설령 교회당이 원하는 대로 건축되었다 한들 건축 이후의 철저한 사후 대책과 대안이 없다면 차라리 건축을 시도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이미 남한의 예장 통합측이 주도해서 동평양 지역 대동강변에 건축한 ‘평양 제1교회당(제1기도처소)’은 수억을 투입해 준공했으나 사후 운영대책이 전혀 없어 결국 건물 일부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텅 비어있는 공간으로 방치되어있고 나머지 건물은 거대한 온실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북 중앙당과 군부에는 대남 강경파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들의 대남정책과 인식은 아직도 반미, 반기독교정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그들은 보수적인 남한교회와 해외한인교회들이 반공, 반북사상을 품은 채 북 영토에 교회당을 짓는 것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북 영토에 교회당을 지으려는 순수한 행위를 저들은 오히려 스파이혐의나 체제 전복세력으로 오해 할 소지가 많기 때문에 교회당 건축을 순수히 허락할 리 없다.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를 신축하는 대신 기존 칠골교회를 허물고 다시 재건축해서 사용하라는 제안과 평양사회복지센터를 건축해 달라는 제안은 조그련의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이 권한 밖의 일이며 인민들과 당의 방침을 받드는 행위일 뿐이며 거기까지가 조그련의 한계이다. 모든 대북사역자들에게는 민족의 앵글에서 북을 바라보는 내재적인 접근방식이 절실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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