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4일 준공 30년을 맞은 서해갑문 전경. 저수능력 29억㎥, 통수능력 초당 4만2천㎥, 갑문 1시간 수위조절능력 1억 5천만㎥ 규모로 북한 3대 갑문 중 하나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10.4선언'에 서명한 2007년 10월 4일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남포 서해갑문을 방문했다. 그리고 방명록에 적었다. "인민은 위대하다."

지난 24일 북한 남포시에 들어선 서해갑문이 준공 30년을 맞았다. 북한은 오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 강종관 육해운상, 강양모 남포시당 위원장, 독고창국 지배인 등이 참가한 가운데 서해갑문사업소 창립 30돌 기념보고회를 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인민은 위대하다"는 상징인 서해갑문은 어떤 곳인가. 서해갑문에서 출발한 남북경협의 꿈은 여전히 꿈에 불과한 것일까.

북한은 서해갑문을 '대자연 개조'의 상징으로 꼽는다. 1981년 착공에 들어간 서해갑문 개발은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월 21일 김일성 주석은 보통강개수공사 착공식에 나와 첫 삽을 떴다. 

그리고 "대자연개조사업을 종합적이며 통일적인 국토건설계획에 따라 전망성있게 진행하라"면서 △토지정리와 새땅찾기, △산림조성과 강하천 정리, △간석지 건설 등과 함께, 남포시 서해갑문 건설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토관리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하여'라는 노작 발표와 함께, 김일성.김정일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 1984년 4월 서해갑문 건설장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자료사진-통일뉴스]

북한은 새로운 천리마속도, 80년대속도창조운동의 대표적 사례인 서해갑문을 두고 "20리 날바다를 가로질러 언제를 쌓고 거기에 5만t급까지의 각종 배들이 통과할 수 있는 여러 개의 갑실과 수십개의 수문을 건설하며 언제 위에 자동차길과 철길을 놓아야 하는 매우 어렵고 방대한 서해갑문건설은 세계 갑문건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대자연개조사업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의 위대한 승리이며,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불패의 힘과 자립적 민족경제의 위력에 대한 일대 시위"라고 평했다. 서해갑문은 미림갑문, 봉화갑문과 함께 북한 3대 갑문 중 하나이다.

1981년에 착공을 시작해 1986년 6월 24일 준공된 남포 서해갑문은 대동강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된 대형 다목적 방조제로 원래 남포갑문이었으나 준공 당해 9월 서해갑문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남포시와 황해남도 은율군 송관리 사이에 폭 14m, 길이 8km의 제방을 쌓고, 피도와 송관리 사이 약 8백m에 5천t급, 2만t급, 5만t급의 3개 갑문과 댐을 갖추고 있다. 대형선박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90m정도의 90° 회전교량을 설치했다. 또한, 제방과 갑문 위에 4차선 도로와 철도를 부설했다.

5년의 공사기간 동안 총 40억 달러와 연인원 2천3백만 명, 시멘트 110만t이 투입됐으며, 저수능력 29억㎥, 통수능력 초당 4만2천㎥, 갑문 1시간 수위조절능력 1억 5천만㎥ 규모다.

서해갑문 건설로 북한은 남포항 접안능력을 2만t에서 5만t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비롯해, 서해안에 새로 조성하는 총 30만 정보의 간석지 중 평남.황남의 20만 정보에 농업용수 공급, 남포공업지구 공업용수 확보 등을 꾀했다.

그리고 수량조절로 대동강 하류지역의 홍수방지, 내륙 수상운수 확충, 남포와 항남 간 육로수송 단축, 남포.대동강 지역 풍치 조성, 인공호수 내 양식업 개발 등을 목적에 뒀다.

결과, 미림.봉화.성천.순천 갑문과 함께 남포.평양.순천.덕천 주요공업.광업.농업 지역을 연결하는 운하망이 생겼고, 남포항은 국제항구로의 면모를 갖췄다.

▲ 2007년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갑문을 시찰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서해갑문 건설로 조성된 남포지역은 남북 경협 후보지로 꾸준히 거론됐다. 2007년 10.4선언 5항에는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며,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사업을 진행해 나기로 하였다"라고 명시됐다.

여기서 남포는 서해갑문으로 조성된 남포 영남배수리공장의 공동활용을 의미했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우수한 인력을 결합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영남배수리공장 진출로 세계 조선업계를 이끌자는 취지였다.

또한, 남포항과 송림항에 5만t급 화물선이, 평양 계선까지는 3천t급, 평양 북쪽 순천 계선까지 1천t급 화물선이 대동강을 타고 오르내릴 수 있어, 남포항에 약 9백만 평의 대규모 물류단지를 건설할 계획으로 확대됐다.

북한도 서해갑문 건설 이후 1990년대부터 남포공단에 남측 기업 유치방안을 추진해왔고 2004년에는 남포시를 특급시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갑문 방명록에 남긴 글. "인민은 위대하다"[자료사진-통일뉴스]

즉, 서해갑문으로 조성된 남포시는 남북 경협의 상징이었던 셈.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간 경색국면으로 서해갑문 일대 남북경협의 꿈은 접어야 했다. 그리고 북한 서해갑문은 우리 뇌리에서 사라졌다. 

세계 조선업계 강자를 자처하던 한국은 이제 조선업 몰락의 위기에 놓여있다. "인민은 위대하다"던 서해갑문 30년은 그래서 남북 국민들의 한낱 꿈으로만 남아 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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