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을 대표하는 상징은 누가 뭐래도 용(龍)이다.
왕이 거처하는 궁궐의 곳곳에는 용모양의 조각이나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왕이 앉는 커다란 의자에는 용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를 용상(龍床)이라 불렀다. 또한 왕의 얼굴을 용안, 왕이 흘리는 눈물은 용루라고 불렀으며 용의 모습을 화려한 금실로 수놓은 왕의 시무복은 곤룡포, 용포라고 했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면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가공할 능력을 발휘하는 여의주, 뿔과 날카로운 발톱, 상서로운 구름과 함께 몸을 뒤틀며 승천하는 용은 강력한 힘과 권능을 가진 존재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을 용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초월적 존재로 보았다는 말이다.

▲ 오봉도를 배경으로 용 장식이 들어가 있는 용상에 용무늬 관복을 입은 왕이 앉는다. 용은 왕을 상징한다. 왕은 용의 권위와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였을까? 아니면 오봉도와 마찬가지로 왕의 역할을 강조한 것일까? [자료사진 - 심규섭]

알다시피, 조선은 도술을 부리고 하늘을 나는 기묘한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하찮은 귀신조차 없었던 나라였다.
또한 왕은 신성한 혈통을 가진 초월적 존재로 보지 않았다.
왕을 상징하는 그림인 [오봉도]에서 하늘에 해를 두 개나 그린 까닭은, 중앙에 하나를 그려 넣으면 왕과 태양이 동일하게 보이는 현상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의 발톱 숫자를 가지고 서열을 매기는 사조룡(四爪龍), 오조룡(五爪龍) 따위의 구분을 만들고,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었던 관복 장식인 흉배에 떡하니 용의 모습을 그려 넣는 적극성을 보인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그저 용은 거침없는 힘과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에게 힘과 권위를 부여한 것은 사람이다. 특히 상상으로 만들어낸 동물일수록 특정한 상징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국사기에는 “용 2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 나타났는데 소낙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며, 성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용은 강이나 바다 같은 물속에 살고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닌다고 여겨져 왔다. 그래서인지 용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용은 구름과 비를 만들고 땅과 하늘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로 믿었다. 용은 대체로 짙은 안개와 비를 동반하면서 구름에 싸여 움직인다.
용은 우리말로 미르, 미르는 물이라는 뜻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용정, 용소, 용추, 용담과 같은 용과 관련한 지명에서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용궁, 용왕과 같은 도교적 개념도 모두 물과 관련이 있다.
농경사회의 수신[水神]에서 점차 왕권과 부귀와 권력, 권능의 힘으로 상징화되고 세속화 되었다. -인터넷 발췌]

▲ 경복궁 근정전 천정에는 황룡이 조각되어 있다.
중국의 황제는 발톱이 5개, 조선의 왕은 네 개라고 한다. 그런데 세종 때부터 오조룡을 사용한다. 심지어는 고종 때 용의 발톱이 7개인 칠조룡이 나타난다.
발톱이 7개든 10개든 무슨 상관이랴. 왕에게 용의 상징을 부여한 것은 백성들을 위한 태평성대를 만들라는 의미이지 자신의 권위를 높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7개의 용 발톱을 가진 고종 때 나라가 망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자료사진 - 심규섭]

용은 몸체, 여의주, 구름으로 이루어져있다.
이것을 미술적 상징체계로 분석해 보면 이렇다.
일단 용의 전반적인 모습은 뱀, 물고기 비늘, 사슴뿔, 사자머리, 돼지 코, 잉어꼬리, 악어 입, 독수리 발 따위가 결합한 형태로 세상의 모든 동물의 집합체이다. 그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어차피 인간 세상에 필요한 상징이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왕이나 장군이 아니라 백성이다.

여의주(如意珠)는 용이 가지고 다니는 보물이면서 힘의 원천이다. 여의(如意)는 그야말로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용과 여의주가 분리되어 있어서, 여의주를 얻지 못하는 용은 추락하여 이무기나 뱀이 된다고 여겼다. 용이 여의주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공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무조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의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말과 같다.

구름의 상징은 직관적으로도 물과 관련이 있다.
물은 생존이나 농사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구름은 [십장생도]의 요소에도 포함되어 있다.
구름을 오래 사는 요소로 비유하는 일은 쓸데없다. 오히려 뭇 생명들이 살아가기 좋은 기후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이다.

위의 요소를 모두 결합하여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도록 노력한다’가 된다. 물론 주어, 주체는 왕, 임금이다.

▲ 강혜선/용/종이에 채색/2016.
궁중회화이든 민화든 간에 우리 그림속의 용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무라이처럼 보이는 난폭한 일본의 용, 거대하고 화려하지만 장군이나 싸움꾼의 상징이 된 표정 없는 중국의 용과는 차이가 있다. 늙은 용은 싸움이나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저 지혜와 인자함을 드러낼 뿐이다. [자료사진 - 심규섭]

문무 대신들이 입는 관복의 흉배에는 장생도가 표현되어 있다.
학, 표범, 영지, 구름, 파도 따위를 그저 부귀영화, 불로장생, 출세로 해석하면 신하들이 자기를 위해 정치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고 정치를 할 겁니다’라는 생각을 대놓고 자랑한다는 말이다. 이런 뜻이 담긴 관복을 입고 왕 앞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오히려 탐관오리나 간신들일수록 ‘백성, 헌신, 희생’ 따위의 말로 위장할 가능성이 높다.
장생도는 태평성대와 같은 이상세계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징을 담은 그림을 입고 있는 신하는 백성들이 살기 좋은 태평성대를 만드는 자, 역할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마찬가지로 용포를 입고 용상에 앉아있는 왕이 스스로 무소불이의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로 여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용의 권위를 찾기 이전에 용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왕은 왕이기 전에 선비이고 학자였고 예술가이다.
왕은 어릴 적 유학적 가치를 엄격하게 훈련받고, 왕이 된 후에도 경연을 통해 군왕의 도리와 올바른 정치를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용의 권위와 힘을 백성들을 위해 사용하면 평화가 찾아오고 백성들은 편안한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용의 권위와 힘을 임금 자신에게 돌리면 폭군이 되었고 선비는 죽어나갔으며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그림에 표현된 용은 마치 인자하고 지혜로운 노인의 모습이다.
구름이라는 하늘의 뜻을 받고 여의주라는 정치를 통해 만백성의 태평을 만들어내는 왕의 또 다른 얼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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