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북한의 ‘수소탄시험’이 미국보다는 중국을 겨냥한 무력시위였다는 북측 인사의 증언이 나와 주목된다. 그간 북한의 핵실험이 미국보다는 중국을 겨냥했다는 분석도 일부 있었지만 북측 인사를 통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지난 18일 “이번 북한의 핵실험이 중국의 처사에 반발해 단행된 것이라는 북측 인사의 발언을 접했다”며 “12월 15일 핵실험을 결정한 시점이 모란봉악단이 전격 철수한 12일 직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10월 류윈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의 방북을 거치면서 북중관계 정상화를 자신감 있게 추진했지만 막상 중국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고.

“분노한 김정은, 핵실험에 서명”

지난해 12월 8일(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재무부는 북한의 ‘전략군’을 비롯한 단체 4곳과 개인 6명을 추가 제재대상으로 지정했고, 이에 반발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수소탄’발언으로 맞섰다. 그런데 그 여파로 사실상 북한 당국의 친선사절단인 모란봉악단이 리허설까지 마치고 공연 당일인 12월 12일 전격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소식통은 “모란봉악단 사태 당시 시진핑 주석이 냉정한 태도를 견지해 결국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들었다”며 “이에 분노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12월 15일 핵실험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모란봉악단 철수 당시 왕자루이와 쑹타오 전현직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장이 모란봉악단이 머문 호텔을 찾아와 잔류를 설득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시진핑 주석이 북측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것.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중관계의 흐름에 대해 “중국의 개혁개방과 한중수교 등을 거친 뒤 북중관계가 다시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양국의 역학관계가 변해 북한이 우위에 서게 됐고, 이후 김정은이 방중하면 중국공산당 상무위원 9명 전원을 만나곤 한 파격이 연출됐다”며 “시진핑 주석이 이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다시 관계정상화로 갔다가 북한이 실망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류윈산 방북 이후 북한의 대외경제성과 중국 랴오닝(遼寧)성 정부가 신의주 특별행정구(특구)의 본격적인 개발에 합의하는 등 북.중관계는 호전되는 분위기였고, 모란봉악단 방중은 이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막상 모란봉악단이 중국에서 직면한 실제상황은 북측의 기대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고 중국측은 북측의 요구사항을 끝내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의 핵실험은 ‘중국판 전략적 인내’인 중국의 현상 유지책이 가능한지 묻는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핵실험으로 가장 어려움에 처한 것이 중국인 것은 사실”이라고 짚었다.

새롭게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미국과 새로운 동북아 틀을 짜면서 북한이 이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을 제어하는 데만 주력하고 경제협력은 뜨뜨미지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북 핵실험의 득실, “가장 득 본 것은 미국”

다른 민간 소식통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중국이고 가장 득을 본 것은 미국”이라며 “미국이 일거에 동북아에서의 열세를 뒤엎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고 평했다.

특히 “시진핑이 지금 열받아 있다”며 “중국에 경제위기가 와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으로 미국이 원하는 동북아정세로 가버렸고, 대만 선거마저 져버렸다”고 진단했다.

이 소식통은 B-52의 한반도 전개를 단적인 예로 들며 “북미 간 모종의 물밑거래에 대해서도 의심할만한 상황”이라고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북한은 핵실험 당일인 지난 6일 정부 성명을 통해 “우리 공화국이 단행한 수소탄시험은 미국을 위수로 한 적대세력들의 날로 가증되는 핵위협과 공갈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철저히 수호하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담보하기 위한 자위적조치”라고 분명히 밝혔다.

나아가 “이 세상에 적대시라는 말이 생겨난이래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처럼 그토록 뿌리깊고 포악무도하며 집요한것은 전례를 찾아볼수 없다”면서 ‘발광하는 잔악한 날강도무리’, ‘피를 물고 덤벼들고있다’, ‘침략의 원흉’ 등 미국을 향한 강렬한 적대의식을 쏟아냈다.

이에 반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반응은 군사적 반응과 달리 거의 ‘무대응’에 가까워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북핵은 커녕 북한 자체도 언급하지 않았다. 토니 블링큰 미국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 16일 도쿄에서 열린 제2차 한.미.일 외교차관회의 직후 도어스태핑에서도 북핵문제를 맨 나중에 간략히 언급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 입장에서는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정책의 실패를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굳이 거론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사실 마땅한 해법도 없는 실정이다. B-52 한반도 전개나 핵 항공모함 추가파견 등 실리만 챙기면 되는 셈이다.

“시진핑이 아직 화가 안 풀렸다”

중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송유관을 차단하라는 등의 국제적 압력에 직면한 데다 미국의 군사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 이같은 상황을 방영하듯 “시진핑이 아직 화가 안 풀렸다”는 전언도 나오고 있다.

오는 5월 제7차 노동당대회를 소집해두고 있는 북한이 북.중 정상회담을 통한 경제발전에 주력하는 대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 중 핵무력 건설을 우선 일단락하고 경제건설에 올인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도 있다.

특히 '전략적 인내'로 사실상 북한을 무시하고 있는 미국과 현상 유지적인 중국, 12월 11~12일 개성에서 열린 제1차 남북 당국회담에서 보여준 한국 보수정권의 태도 등을 종합할 때 당분간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건설 보다는 핵무력을 한단계 높이는 전략적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10월 북한이 올해 5월 제7차 당대회 소집을 발표할 당시부터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정해졌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결과론적 해석이고,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경제강국 건설 비전이 뜨뜨미지근한 중국측 태도로 인해 불투명한 상황에서 결국 북한은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미국과 한국은 물론 중국에게 신호를 보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 전문가는 “7차 당대회 이전에 북.중 정상회담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6자회담 재개 등을 매개로 당대회 이전이라도 북.중관계 개선이 가능하고 북한의 어려운 경제형편도 이를 요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당대회가 끝나면 북한의 병진노선과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는 사실상 일단락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편, 다른 전문가는 “중국은 이번 북한의 핵실험으로 오히려 홀가분한 입장”이라며 “북한이 이번에는 자기들에게도 사전통보를 하지 않아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을 일도 없고, 북한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맘껏 낼 수 있게 됐다”고 중국 내부의 다른 기류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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