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출신 장기수 안신옥 선생이 뇌졸중으로 86세를 일기로 3일 오후 8시 40분 타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갑영씨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 201호에 마련됐으며, 4일 오후 7시 추도식을 갖고 5일 오후 1시 발인할 예정이다.

▲ 고 안신옥 선생 영정. [사진제공 - 통일광장]

고인은 1930년 전북 김제군에서 출생, 48년 단독선거 반대투쟁으로 피검됐으며, 49년 월북을 시도하다 체포됐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회문산에 입산해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무기징역형을 최종 선고받고 감형돼 1975년 감옥문을 나섰다.

출소 후 1981년 전갑영 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자녀는 없고, 그간 복덕방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고인은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 활동을 해왔고, 사회안전법 등으로 제약을 받았지만 민가협 목요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조용히 사회운동에 참여해왔다.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조국통일 임무를 못 다한 것에 대해 자괴감이 많아 내향적인 분이셨다”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말없이 충실히 복무했고, 누구보다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분”이라고 기렸다.

<고 안신옥 선생 약력>

1930년 6월 20일 김제군 백산면 출생
1939년 4월 백산국민학교 입학
1946년 8월 군산중학교 입학
1948년 단독선거 반대투쟁으로 피검, 집행유예로 석방
1949년 8월 월북하다 체포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받고 석방
1950년 7월 전북도당학교에 입학
1950년 8월 김제군당에 배치, 책임지도원으로 활동
1950년 회문산에 입산하여 군 유격대 소대장으로 활동
         이후 중대장, 문화지도원, 부대참모장으로 활동
1952년 전북도당 남부지도부소속 408연대 중대장 활동
1954년 5월 24일 체포돼 사형 선고받음
1954년 12월 고법에 항고하여 사형 선고받음
1955년 12월 27일 대법에서 무기형 확정됨
1956년 4월 전주교도소로 이감
1960년 7월 대전교도소로 이감
1961년 무기에서 20년으로 감형
1975년 12월 27일 광주에서 석방
1981년 전갑영씨와 결혼
2015년 10월 3일 20시 40분 사망

(수정,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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