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북한의 민간 요리를 다룬 ‘북한의 별미를 찾아서’에서는 필자가 방북 중에 맛 본 각종 진기한 민간 요리와 특별식 등을 널리 소개하여 음식문화를 통해 남과 북이 동질성을 회복하고 민족적인 가치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합니다. 


 

▲  평양냉면의 메카 옥류관에서 테이블에 둘러 앉아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모습. 옥류관 안은 식객들로 꽉 찼다. [사진제공 - 최재영]

 

평양냉면의 메카 옥류관을 찾다

오늘은 평양시 중구역 창전동 대동강 서쪽 강변에 자리 잡은 옥류관을 찾아 냉면과 간단한 요리들을 먹어보기로 했다. 옥류관이라는 간판은 대동강이 옥구슬처럼 흐르는 옥류교 옆에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워낙 건물이 웅장해서 그 위용에 저절로 압도되었다. 또한 줄을 서서 자유분방하게 기다리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냉면 매니아인 필자는 몇 차례 방북했을 때마다 이곳을 반듯이 방문했으나 오늘따라 평양냉면 맛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들떠 있었다.

옥류관의 브랜드 음식은 아무래도 냉면이다. 냉면 중에도 ‘평양랭면’과 ‘평양온반’이 가장 유명하고 그 외에 다른 요리 메뉴들도 매우 다양했다. 옥류관은 이제 명실공히 ‘냉면’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과 ‘일반요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 이 두 가지 컨셉으로 통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도 평양시민들이나 일반주민들은 예외 없이 본관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손님 가운데는 단체손님들도 꽤 있어보였다. 그러나 나 같은 해외동포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도록 별도의 출입문으로 입장하도록 배려하고 있었으며 안내원을 따라 쉽게 입장하려 하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마치 새치기라도 한 것처럼 송구하고 민망한 생각마저 들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고려호텔 식당 TV에서도(아마 비디오 테이프를 반복해서 틀어주는 듯) 자주 보던 ‘평양랭면 제일이야’라는 노래가 이곳 옥류관 복도의 TV에서도 계속 흘러나왔다.
 

▲ 옥류관 조명과 주체탑 조명이 조화를 이룬 평양시 야경(북한화보 조선관광안내도).[사진제공 - 최재영]

 

▲ 손님들이 냉면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옥류관 앞 마당과 주차장에 있는 즉석 사진 코너. [사진제공 - 최재영]


하루 육류소비량 2톤, 냉면 판매량 12,000그릇

안내에 따라 식당 안에 들어서니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샹들리에 불빛아래 천연보석과도 같은 바닥장식에 눈길이 갔으며 무대와 사방 벽면에는 대형 풍경화가 그려져 있어 보는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 할 정도이다. 건물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도 민족적 정취가 흠뻑 풍기는 조선의 건축미학을 적용한 듯했다.

식당 내부 홀 한편에는 옥류관의 역사와 유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병풍식 홍보물을 만들어놓아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옥류관은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의 이민위천의 리념이 구현되여 있는 위대한 사랑의 결정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고 옥류관과 관련된 두 지도자의 어록들과 업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옥류관을 지칭하며 '우리 민족요리의 원종장(原種場)'이라고 언급하였으며 옥류관에서 필요한 식자재 수급을 원활하게 지원해주기 위해 일꾼을 세우고 대책을 마련하여, 평양시 상원군을 '대외봉사 원자재 공급기지'로 지정했다는 내용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연회장에 이르는 복도를 지나 창가 쪽에는 작은 규모의 방들이 여러 개 연결돼 있었는데 점심시간대라서 그런지 방마다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우리 일행이 안내된 곳은 계단을 통해 올라간 2층의 작은 방이었다. 주로 해외동포들이 이용하는 공간이다.

옥류관에서 만드는 음식 메뉴는 그야말로 다양했으며 냉면과 온면 외에도 요리전문 메뉴판에는 코스요리도 있었다. 코스요리는 보통 9가지가 나오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8-10가지의 요리 메뉴도 있었으며 주로 차가운 음식부터 더운 음식 순서로 나왔다.

또한 단일 요리 메뉴로는 대동강 숭어국, 송어회를 비롯해 철갑상어와 자라요리, 연어, 메추리, 왕개구리요리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한 음식재료를 요리로 승화시켰으며, 일반 메뉴항목에는 피자와 스파게티까지 주문할 수 있다.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여성을 붙들고 물어보니 최근 이 곳 주방에서 소요되는 육류 소비가 “하루에만 2톤가량이며 하루에 내는 국수그릇(하루 냉면 판매량)이 12,000그릇 정도”라고 알려주어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소비량이었다.

▲ 대형 홀의 테이블은 손님들로 가득 차서 빈자리가 없었다. [사진제공 - 최재영]

 

▲ 대형 홀에서 평양시민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둘러 보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주로 여성은 100그램, 남성은 200그램 주문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북한 음식문화에 있어서의 냉면의 정체성는 겨울철 음식이라고 한다. 워낙 역설의 역사를 강인하게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다보니 뜨거운 삼복더위엔 온돌에 불을 지펴 땀을 흘리며 개고기(단고기) 보신탕을 먹었듯, 냉면도 마찬가지였다. 동지섣달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뜨거운 온돌에서 뼛속까지 시원한 냉면을 즐겨 먹었으며 이런 전통은 주로 평안도 지방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메뉴판에 적힌 냉면 값을 보니 200그램 ‘쟁반국수’와 ‘평양랭면’의 가격은 북한 돈으로 공히 560원이며 유로화로는 4유로였다. 100그램 ‘쟁반국수’와 ‘평양랭면’의 가격은 모두 200그램의 절반액수(280원, 2유로)였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환율적용과 화폐가치 체계를 정산하는 방식이 미국이나 한국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음식가격의 고저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옥류관에는 같은 냉면 메뉴인데도 분량에 따라 주문을 달리해야 한다. 음식이 먹다 남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남성들이나 대식가들은 200그램짜리가 적당하며 여성들이나 소식가들은 100그램짜리가 적당했다. 그러나 나처럼 냉면 매니아는 300그램을 먹어야 성이 찬다.

가장 먼저 나온 식탁 차림은 녹두지지미 빈대떡과 평양 물김치이고, 이어서 꿩고기를 비롯한 닭고기 국물 등으로 육수로 쓴 메밀 냉면을 놋그릇에 담은 쟁반국수를 내왔으며 일행 중에 한분은 쟁반온반도 따로 주문했다. 나는 미국에서 옥류관 냉면을 쉽게 먹어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식탐이 발동하다 보니 나오는 대로 먹다보니 배가 불러졌다.

▲ ‘주식’차림표가 담긴 옥류관 메뉴판. [사진제공 - 최재영]

 

▲ ‘요리’차림표가 담긴 옥류관 메뉴판. [사진제공 - 최재영]

 

▲ ‘주류와 음료’차림표가 담긴 옥류관 메뉴판. [사진제공 - 최재영]


냉면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쉬지 않고 목으로 집어넣어야

책임 있는 관료 한분은 냉면을 좋아하는 나를 볼 때마다 냉면 먹는 방법에 대해 평소 이것저것 자주 알려주었다.

“원래 우리 조선에서는 냉면을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단숨에 먹습니다.”

“단숨에 먹다니요?”

“냉면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국수오리를 한 번도 끊지 말고 쉬지 않고 목구멍에 넣어야 합니다.”

그분 말에 의하면 평양냉면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국수오리’(냉면 면발)을 쉬지 않고 목구멍으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인데 도무지 그 말뜻이 지금도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북한주민들은 냉면 면발이나 냉면사리를 ‘국수오리’라고 불렀다. 냉면을 입안에 연속적으로 목구멍에 집어넣으라는 말이다.

씹는 듯, 마는 듯, 그릇을 모두 다 비울 때 까지 단숨에 목구멍 안으로 집어 넣는 거야말로 폭식이지 어째서 맛을 음미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으나 그분은 내 앞에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단숨에 냉면을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그 맛을 음미하는 듯했다. 역시 고구려의 후예들답게 음식 하나에도 철학이 담겨있는 듯했다. 이곳 평양에서 해외동포들을 담당한 공식 안내원들은 웬만하면 옥류관 냉면에 대해서는 박사급들이다.

안내원들은 자신들이 마시고 싶은 주류들을 주문하는 방법을 애교 넘치게 했다. 소주 한 두병을 일단 주문부터 한 후에는 다음과 같이 너스레를 떤다.

"일단 한 잔 쭈욱 들이키시면서 음식을 기다리는 것이 냉면을 제대로 즐기는 첫 단계입니다.”

아무튼 안내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냉면을 맛있게 먹으려면 우선 냉면 면발에만 식초를 뿌리는 일부터 해야 한다(냉면 그릇에 식초를 뿌려서는 안된다). 냉면에 올린 고명을 무너뜨린 후 젓가락으로 냉면 뭉치를 대각선으로 찔러 건져 올려 그릇에 걸쳐놓아야 하며 이때 젓가락을 십자가 형태로 벌려놓으면 된다.

그리고 면발에만 식초를 친 후에 적당량의 겨자를 육수에 넣고 풀어준 후에 먹기 시작하면 된다. 가장 먼저 육수를 한 모금을 쭈욱 들이켜 맛을 본 후에 면발을 골고루 말아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식초를 친 후 면발을 뒤집으면서 젓는 방법은 의외로 쉬웠다.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 중에 마지막 과정은 냉면 말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평소 미국이나 한국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보통 아무 생각 없이 기존의 먹던 방식대로 후루룩 먹어 제치는 습관 때문에 아직은 이 방법이 익숙하지는 않았다.

▲ 200그램 ‘쟁반국수(랭면)’을 주문한 필자의 그릇. [사진제공 - 최재영]

 

▲ 100그램 ‘평양랭면’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후식으로 나온 필자의 아이스크림. [사진제공 - 최재영]


 옥류관에 오시면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봐야 합네다

나는 음식을 기다리면서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다른 일행을 안내하는 인텔리풍의 안내원이 옆 테이블에서 시원시원하게 큰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나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나는 테이블 너머로 그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옥류관에 오시면 도착하자마자 일단 ‘국수(랭면) 맛’을 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것저것 먹고 나면 소화도 시킬 겸 해서 대동강이 보이는 난간(테라스)으로 나가서 대동강 ‘풍경 맛’을 봐야 합네다. 거기서 주체탑, 릉라도경기장, 옥류교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시고 담배도 한 대 피우시면 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그런 다음에 세 번째로는 밖으로 나가서 옥류관 전체 건물 구경을 하면서 ‘건물 맛’을 봐야 합니다. 엄청난 크기의 건물을 구경하다보시면 수령님과 장군님의 체취가 절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옥류교로 이동해서 옥류교 아래에서 시원한 대동강 ‘바람 맛’을 보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류관 우측에 있는 옥류약수터에 가서 약수 한 사발 들이키며 ‘약수 맛’을 보시면 됩니다. 그래야 옥류관의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맛보신 겁네다. 여기 사는 사람들도 그거 자세히 잘 모릅네다.”

이날 나는 실제로 저 안내원의 말대로 옥류관 타운의 다섯 가지 맛을 모두 보게 되었다.

▲ 주방 봉사원이 빠른 속도로 냉면을 운반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평양랭면 제일이야‘라는 노래가 고려호텔식당과 옥류관에 가면 흘러 나온다. [사진제공 - 최재영]

 

▲ 옥류관 요리전문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1. 식당에서 평양냉면 맛을 음미하다

나는 냉면을 워낙 좋아해서 처음엔 200그램짜리 쟁반국수를 주문한 후 잽싸게 다 먹고 나면 다시 100그램짜리 평양랭면을 추가로 주문해 먹는다. 평양에 오면 옥류관 냉면은 두 그릇이 기본 아닌가. 배운 대로 적용하면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먹으며 냉면 맛을 즐겼다.

내 앞에 당도한 냉면그릇을 바라보니 냉면위의 고명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절제되고 정갈했다. 얇게 지진 계란지단을 채를 썰어 올렸고 그 아래는 양념장을, 그 밑에는 배 한조각과 오이, 김치가 올려져있었다. 그리고 고기수육이 올려져있으며 맨 아래는 배추절임이 놓여있는 식이었다. 또한 잣도 몇 알 들어가 있어 품위가 있어 보였다.

냉면은 한국에서 먹어 본 냉면에 비해 새콤달콤한 맛이 부족했으며 약간 덤덤한 느낌이었다. 육수도 첫 맛이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미지근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 시원하다고 느낄 정도로 차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면발도 그리 쫄깃하지 않아 가위로 자르지 않아도 한 입 베어 물면 잘 끊어졌다. 또한 평양에는 냉면을 먹을 때 면발을 자르기 위한 가위가 준비되는 법이 전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느껴지는 식감이 어딘지 달랐다. 면발에서는 밋밋한 느낌도 아니면서 야들야들한 젤리 같은 식감이 느껴졌으며 뭐라 형언하기 힘든 깊은 맛을 제공해 주었다.

나는 면발에 식초 뿌리는 일이 귀찮아서 그냥 고명을 냉면 그릇 한쪽으로 밀어놓고 면발을 젓가락으로 높이 집어 올려 폭포가 흘러내리듯 식초를 살짝 흘려주었다. 면발은 한국의 유천냉면이나 일반 칡냉면처럼 칙칙하고 검은 색깔이다. 면발을 젓가락으로 휘감아 한 입 베어 물면 새큼한 맛이 느껴지며 동시에 달달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이때 육수를 한 모금 쭈욱 들이키면 입안에는 냉면 맛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듯 감칠맛이 난다. 이래서 모두들 옥류관 냉면의 마력에 빠지는가보다. 육수는 알려진 대로 때에 따라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를 기본으로 하며 거기에 꿩고기를 더해 푹 우려낸다고 한다. 면발과 육수가 입안과 목구멍에서 만나면 구수한 향이 올라와 입안을 휘감는 듯하다. 오늘의 옥류관 냉면 맛은 50년 명성 그 이상이었다.

▲ 그릇에 담겨진 냉면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식초를 치기 위해 냉면을 건져낸 모습(<민족21> 제공).


2. 발코니에서 대동강 풍경을 맛보다

나와 일행은 식사를 마친 후 대형 홀을 들어가서 대동강 쪽으로 나 있는 커다란 문을 열고 난간으로 나왔다. 테라스와 발코니 역할을 하는 이곳으로 나오니 옥류관 건물을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 더 웅장했으며 뒤에서 보는 건물의 느낌은 매우 달랐다. 대동강 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나는 난간과 커다란 기둥에 기대서 무심코 흘러가는 대동강을 바라보며 조선시대 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떠올렸다. 또한 해방정국, 6.25전쟁 등을 생각하니 역사의 소용돌이가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지금은 해당화관과 해맞이 식당을 비롯해 고급식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평양 시민들의 고급 외식 코스나 손님 접대장소로 자주 이용되고 있는 옥류관은 곧 북한 외식 문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져왔다. 외국인과 해외동포들 중에 주요 인사들이 옥류관을 방문하면 이 테라스로 안내해 구경시켜준다고 한다.

나는 방북할 때마다 빠짐없이 이곳을 들리지만 오늘따라 대동강과 그 주변의 풍광들을 한가득 두 눈에 가득 담으며 풍경을 맛보기 시작했다. 일행들과 난간에 걸터앉아 대동강과 평양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찍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담소를 나누었다. 멀리 능라도 경기장을 비롯해 발전된 평양 시가지를 한눈에 보는 것만으로도 안구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 테라스에서 보이는 대동강물, 멀리 능라도 5.1경기장이 보인다. [사진제공 - 최재영]

 

▲ 옥류관 건물 뒤편의 위용과 대동강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테라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3. 옥류관 건물 위용의 맛을 보다

실내를 빠져나와 외부를 천천히 둘러보니 건물이 너무 웅장해서 다시 기가 질려버렸다. 좀 전에 내부 구경을 위해 여기저기 헤맬 때도 어디가 어딘지 미로처럼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전통식 합각지붕으로 지은 2층 건물인 옥류관 본관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지 16주년을 기념하여 1961년 8월 15일에 문을 열어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그 후 1988년 세계청년학생 축전을 계기로 본관 좌우에도 별관을 지어 두 날개를 달아주듯 현재 형태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옥류관은 현재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다.

본관은 철근 콘크리트구조 2층 건물에 지붕은 조선식(한식) 기와를 얹은 소위 합각식으로 되어 있는데 연건축면적 5,800㎡(혹은 6,000㎡)에 좌석 수가 2,200석이라고 한다. 청기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수십여 개의 합각지붕에는 사찰이나 고궁의 서까래들처럼 부채살처럼 미끈하게 휘여져 올라갔다. 콘크리트로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아름다움이었다. 총천연색 단청과는 사뭇 다른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1층에는 100여석의 연회장이 두 곳, 40석짜리 중간규모의 단체방과 15석의 소규모 단체방 6개 등 총 30여 개의 중소 연회장과 단체방을 갖추었고, 2층에는 600석 규모의 대연회장이 있었다.

별관은 1988년 9월에 개건공사를 마치고 준공했다는데 연건평이 7,000㎡나 된다고 한다. 옥류관은 그 후 지난 2008년에 다시 한 번 외장 공사를 거쳤고 2010년에 주변건물과 경관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별관에도 대중식사실, 가족식사실, 연회장, 그리도 대동강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야외식당이 있는데 이 곳에서는 1,400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하니 입에 딱 벌어져 다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평양냉면도 세계가 탄복할 만한 맛이지만 옥류관 건물 자체도 세계에 내 놓을만한 기념비적인 보물 그 자체로 보였다. 우리 민족 고유의 고전미와 현대미가 잘 결합되어 절제되고 단아함을 풍기는 옥류관은 하나의 거대한 타운이며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건축물 앞에서 필자와 일행들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특히 야간 조명이 비추는 날이면 그 화려한 웅장미와 함께 우아함과 정교함이 조화되어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적이 많았다.

▲ 개건공사를 마친 직후의 옥류관 전면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옥류관 주차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4. 옥류교 아래서 대동강 바람을 맛보다

옥류관 건물 구경을 마친 우리 일행들은 옥류교를 향해 걸었다. 1960년도에 건설되었다는 옥류교는 왕복 4차선이며 평양 중구역과 대동강구역을 잇는 역할을 하며 양측에는 주체사상탑과 옥류관 등이 보였다.

평양시내의 청류다리, 릉라다리, 대동교, 양각다리, 충성의 다리 등 많은 교량들이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주변 풍광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다리가 바로 옥류교이다. 특히 유람선에 탑승해서 바라보는 옥류교는 그야말로 옥류관과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일행들이 다리 아래를 거닐자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강바람이 불었다.

구슬처럼 푸른 강물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옥류’라는 것은 알겠는데 오늘 안내원을 통해 ‘옥류’라는 말이나 ‘청류’라는 말이 모두 대동강을 일컫는 별칭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아. 그래서 냉면 업계의 팽팽한 맞수인 옥류관과 청류관의 명칭이 결국 대동강을 지칭하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최 선생님, 옥류교 바람이 어떻습니까? 아까 그 야외 난간에 서면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이 다리가 놓여 있지 않았습니까? 열두 개 교각 밑에 구슬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해서 옛 조상들이 만들어낸 이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아름답지 뭡니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평양에서 제일 큰 다리가 이 옥류교랍니다.”

마침 옥류교 주변에는 옹벽 쌓기공사와 산책길 조성공사를 위해 장비들과 물자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놓여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내년(2015년)에는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초가을 대동강 강바람은 오늘따라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대동강 강바람 맛은 고급 커피보다 더 향긋하게 느껴졌다.

▲ 주체탑에서 내려다 본 옥류교와 옥류관의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 옥류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5.  옥류약수터에서 약수 한 대접을 맛보다

나와 일행은 옥류관을 나온 후 마지막 코스로 옥류약수터를 찾기 위해 옥류관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배기로 향했다. 대동강 기슭사이에 자리 잡은 옥류약수터는 대동강 풍경에 어울리게 옥류교와 옥류관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강에 좋고 질병 치료에 효험이 좋기로 유명한 약수터라서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약수터 입구에는 ‘옥류약수는 평양의 자랑’, ‘약수도 봉사도 제일’이라는 문구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옥류약수 봉사소에서 근무하는 여성 봉사원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유래를 설명해주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주체 76(1987)년 5월에 몸소 이 약수의 이름을 ‘옥류약수’로 지어주시었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약수터 유래에 대한 설명 듣는데 약수를 기다리던 주민들이 모두 쳐다보며 살며시 웃고들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시는데 약수가 끊기거니 모자라지는 않습니까?”

“하루 약수량 400㎥이 나오며 “칼리움, 나트리움, 칼시움, 마그네시움, 철이온, 염소이온, 수소탄산이온, 류산이온 등을 비롯한 많은 유용광물이온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수터 안에도 외부와 마찬가지로 ‘옥류약수는 최고의 명약’, ‘삶의 기쁨과 활력, 기백을 돋구어주는 약수’라는 글자들이 나붙어있었다.

“우리 몸에는 얼마나 좋습니까?”

“위, 십이지장, 소대장, 담낭, 취장, 방광, 간장 등 여러 질병치료에 매우 좋습니다. 그뿐 아니라 만성위염, 위십이지장궤양, 만성간염, 경한 당뇨병, 철부족성빈혈 치료에 아무 효과가 좋습니다.”

“여기도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있습니까?”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문을 열자마자 평양시민들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많이 찾고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숫자가 연인원 25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항상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북한 당국은 이처럼 대표적인 민족식당인 옥류관 타운 내에 약수터를 운영해서 시민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는 듯 했다. 특히 사회적 공헌을 한 어른들과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매우 감동적이었다.

“저의 봉사원들뿐 아니라 봉사조직(봉사단)이 별도로 있어서 항일혁명투사들과 국가영웅들과 공로자들, 영예군인(원로군인) 들에게는 정기적으로 그분들의 집까지 약수통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약수터를 찾아와서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봉사조직을 잘하고 필요한 설비들과 조건들이 잘 갖추어져 있도록 한 것이다. 평소 동네 약수터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이처럼 체계 있게 운영하는 약수터가 마냥 신기했다.

“옥류약수는 밥물을 잡는데 좋아서 밥을 하고 나면 밥에 기름기가 흐릅니다. 뿐만 아니라 김치를 담그는데 약수를 쓰면 김치가 좋은 맛을 내고 각종 요리에도 아주 그만입니다.”

“약수의 용도가 이처럼 다양할 줄 몰랐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평양시내 여러 식당에서는 국수나 빵을 만들거나 얼음과자(아이스크림)을 비롯한 갖가지 공장음식들을 전국에 있는 약수로 가공해 봉사해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북한에는 이곳 외에도 하당약수, 강서약수, 유호동약수, 갈산약수, 삼마약수, 삼신약수, 고방산약수, 보통강약수, 학산약수, 구서약수 등이 있어 주민들이 항상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계속)

▲ 고려의학과학원 벽면에 걸려있는 전국 약수터 현황판. [사진제공 - 최재영]

        

▲ 옥류약수터 입구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