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육체는 그 동물성 때문에 시적이고 신적일 수 있다 (조르쥬 바따이유)

 
 사랑의 시
- 네루다 

 여자의 육체, 하얀 구릉, 눈부신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그대의 자태는 세상을 닮았구나
 내 우악스런 농부의 몸뚱이가 그대를 파헤쳐
 땅속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튀어나오게 한다.
 ...
 ... 난 그대를 사랑한다.
 죽과, 이끼와, 단단하고 목마른 젖의 몸뚱이여.
 아 젖가슴의 잔이여! 아 넋 잃은 눈망울이여!
 아 불두덩의 장미여! 아 슬프고 느릿한 그대의 목소리여!

 내 여인의 육체여, 나 언제까지나 그대의 아름다움 속에 머물러 있으리.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있는 것을 보면 안심이 된다.

 그들은 선할 것 같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을 것 같다. 곁에 약자가 있으면 선선히 도와줄 것 같다.

 사랑은 한순간에 보통 인간을 ‘성인군자’로 만든다.
 
 다른 방법으로 성인군자의 반열에 오른다는 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

 그래서 나는 사랑을 예찬한다.

 '플라토닉 러브' 같은 고상한 사랑이 아니라 건강한 성인 남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몸의 사랑'을 믿는다.

 모 중학교에서 교사 대상의 성교육을 했단다.   
 
 그 강사는 성추행, 성폭행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며 성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단다.

 강의가 끝난 후 다 큰 아들을 둔 나이 많은 교사들은 한숨을 내쉬더란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랑과 성추행, 성폭행의 경계’가 너무나 위태로웠던 것이다.   

 나는 성교육을 ‘성의 안전 교육’으로만 보는 것에 대해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세상이 물질위주가 되면서 사랑도 물질화되고 있다.

 남녀 사이에서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적나라한 사랑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길거리 헌팅'은 언젠가부터 유물이 되어 버렸다.

 길거리에서 싱싱한 남녀들이 벌이는 온갖 사랑의 행위들은 얼마나 싱그러웠던가!

 요새 같으면 스토커나 성추행 범인으로 몰릴 것들이 수두룩했다.

 이제 남녀들은 그런 위험하고 끈적거리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

 물건을 사고팔듯 깔끔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사랑이 가능한가?

 늦여름에 자지라지는 수컷 매미들의 구애 노래, 봄 들판을 수놓는 꽃과 나비들, 사랑을 위해 화려하게 진화한 수컷들의 몸...... .   

 세상이 이리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건, 다 사랑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제 앞으로 남녀들은 마주칠 때마다 서로 멀찍이 떨어질 것이다. 몸이 아니면 마음으로라도.

 서로의 '성의 안전'을 위해.

 아마 조만간 사랑은 로봇하고 나눌 것이다.  

 성추행, 성폭행에 대한 교육은 우리 사회 같은 가부장 문화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성과 사랑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사랑이 사라져버린 '성의 안전'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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